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는 용어가 있다. 휴대전화와 노트북 같은 디지털 장비를 휴대한 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현대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든 전 세계에 걸쳐 있는 통신 네트워크망에 접속해 먼 거리의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연락할 수 있다. IT기업의 디자인팀에서 일하는 임재희(35) 과장(KT 코퍼레이트센터 통합이미지 담당)도 디지털 노마드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사무실과 작업실은 동격의 공간이다. 디자인 작업이 곧 그의 사무이기 때문이다. 출장과 외근이 잦은 임 과장은 “내가 어디에 가 있든 그곳이 작업실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유목민처럼 늘 움직여야 하는 그에게 한곳에 정박해 있는 오프라인 공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임 과장은 “사무실은 고성능 컴퓨터와 메모장만 갖춰져 있으면 충분하다. 예쁘게 꾸미거나 정돈을 한다거나 하는 신경을 안 쓰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직원들 중에서 내 책상이 제일 지저분하다”라며 쑥스럽게 웃는다.
임재희 과장이 책상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각종 스마트 기기들이다. 임 과장은 이 영리한 작업 도구들을 이용해 이른바 스마트워킹(Smart Working)을 구현하고 있다. 그가 몸담고 있는 회사 내에서도 스마트워킹 시스템이 활성화돼 있어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는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스마트워킹이란 지면 보고나 대면 회의 대신 이메일과 화상 회의를 적극 활용하는 업무 방식이다. 이를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많은 직원들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으며, 오프라인 업무에서 발생하는 시간 및 사무기기의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내가 있는 곳이 곧 작업실”이라는 임 과장은 2009년 KT의 브랜드 로고인 ‘올레(olleh)’ 디자인과 광화문 올레스퀘어의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스마트워킹 덕을 톡톡히 봤다.(두 프로젝트는 지난해 각각 레드닷 디자인상과 iF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그는 공교롭게도 올레스퀘어 프로젝트가 시작될 즈음 임신을 했다. 개월 수가 늘어나면서 점점 몸이 무거워졌고,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거나 장시간 업무에 무리가 따르는 경우도 생겼다. 그럴 때마다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 바로 스마트 기기들이었다. 사무실 밖에 있어도 컨퍼런스콜을 통해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수시로 확인했고, 장거리 이동 중에 긴급히 수정해야 할 디자인 시안이 생기면 아이패드를 이용해 즉석에서 해결했다. 몸은 무거웠어도 일처리만큼은 신속할 수 있었던 이유다.
1년 장기 프로젝트였던 올레스퀘어가 마무리될 때쯤, 임재희 과장은 건강한 딸을 낳았다. 산후조리 차원에서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스마트 기기들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갓 태어난 딸아이를 돌보다가도 곧장 이메일을 수신하고 사무실 직원들과의 화상회의에 참석했다. 이렇게 일과 육아를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스마트워킹의 장점은 임 과장 같은 워킹맘에게 무척 고마운 것이기도 하다.
다만, 그 고마움을 느끼려면 최신의 스마트 기기들을 항상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PC는 일종의 공구 세트인 셈이다. 임재희 과장은 이 연장들이 녹슬거나 무뎌지지 않도록 공을 들인다. 주기적인 업그레이드와 업데이트, 필수 소프트웨어들의 매뉴얼 숙지 등은 임 과장에게 책상 정리보다 중요한 일이다. 디지털 노마드 임재희 과장의 온라인 작업실이 늘 ‘가장 새로운(最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