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 라는 이름 때문이었을까.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롭다는 뜻의,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어제와 다르게 발전하며 나날이 새로워지는 일이 어디 쉬우랴. 그 일을 매일 해내고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페이퍼 프레스의 박신우 대표를 만났다.
최근 어떤 작업하고 계시는지 근황 좀 알려주세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소소한 공연 축제와 관련된 일을 했고요.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은 제가 예전부터 계속 같이 일해 온 패션 브랜드의 리뉴얼 작업과 성수동에 있는 맥주가게 브랜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작업실은 4월에 냈는데 처음엔 일단 질러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12월부터예요. 현재 24시간 풀가동 하고 있습니다(웃음).
성수동에서 작업하시는 분들이 많아졌지요. 커뮤니티가 있나요?
올해 삼원 페이퍼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했던 팀 중에서 독스(dogs)도 있고, 좋은 작업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동네 분위기도 독특해서 자주 다니다보니 정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작업실을 어디에 구할까 큰 고민 없이 여기로 정했던 것 같아요. 왠지 편안해요. 공장 같은 곳이 많은데 눈에 띄는 가게도 중간 중간 있고. 정말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데 들어가고 싶은 맛 집이나 카페가 불쑥 솟아 있는 느낌이 들어서, 여긴 어디야? 하고 웃게 되는 재미가 있어요.
2016년에 특별히 기억할 만한 작업은 뭐라고 꼽으세요?
아무래도 모교에서 있었던 프로젝트네요. 올해 한 일 중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작업이었는데 기숙사 벽면 전체를 디자인하는 일이었어요. 정면에 타이포그래피를 사용하자는 기획이었죠. 저를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과 공동으로 한 작업이기도 했고, 기숙사니까 한 번 하면 오래 가잖아요. 이상하게 되어도 지울 수도 없고(웃음). 그래서 긴장도 많이 했는데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무사히 끝냈어요. 페인트칠 하러 갔는데 작은 화면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구현되는 과정을 보니까 감회가 새로웠어요.
최근에 수상도 하셨지요. 축하드려요.
이화여대에서 스타트 업 하는 학생들이 본인들의 아이템을 내면 52번가라는 플랫폼을 찍고 나가는 구조가 있어요. 플랫폼 브랜드 작업이었는데 작년 6월에 전시가 있었어요. 그 브랜드 디자인을 맡아서 전체적인 진행을 했는데 운이 좋게도 그걸로 상을 받았네요. 에피소드가 너무너무 많아요. 공간이 작았는데도 보통 일이 아닌 거예요. 도와준 친구들이 고생 많았죠.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에요.
참 성실하다. 성실함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세상이라고 해도 디자이너의 힘은 기본적으로 끝까지 해내는 성실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묵묵히 책임지고 할 일을 해나가는 일을 단지 기본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많은 디자이너들이 오늘도 현장에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박신우도 그렇다.
꾸준히 성장해나가는 원동력이랄까, 힘들어도 해내는 큰 힘은 어디에서 생기나요?
책임감인 것 같아요. 제가 어디 속해 있는 게 아니니까, 책임지지 않으면 다음 일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학생 때도 내가 할 일은 내가 해야지 어렴풋이 느끼긴 했는데 사회에 나와서 현장에서 부딪치니 더 리얼하게 알게 되더라고요. 실수라도 하면 제가 다 감당해야 하니까요.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면서 그냥 힘들어도 해야지, 이런 맘이 드는 것 같아요.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떤 건가요?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서로 시점을 맞추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요. 제가 지나치게 고집을 부리지 않으면서 클라이언트 요구를 그대로 알아듣는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면, 일은 사실 다 된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런데 가끔은 그 과정에서 오해도 생기고, 상대가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닌데 제가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그래요. 아직 경험이 충분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고요. 이것을 잘하게 되는 게 좋은 성과를 내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타이포그래피를 이용한 작업도 많이 하시죠.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방대한 지식이 있거나 전문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진 못해요. 하지만 다른 디자이너들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건 사실이에요. 처음엔 타입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만큼 애정도 깊고요. 하지만 타입과 그래픽을 엮는 걸 더 재미있어 한다는 걸 알았어요.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쓰면서 지나치게 두드러지거나 어색하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묻히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말하고 보니 뭔가 엄청난 걸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웃음).
타입을 이용해 작업하신 것 중에서 기억나는 일이 있으신가요?
개인적인 취미로 일러스트를 해요. 타입과 함께 그린 것도 있고요. 순전히 개인적인 작업인데 그걸 처음 적용해본 브랜드가 강릉에 있는 ‘버드나무’ 맥주집이에요. 강릉에 있는 곳이니 소나무 등 동양적인 이미지를 살리고 싶었어요. 맥주의 소재도 섞으면서 결과적으로는 꽤나 복잡한 그래픽이 되었어요. 보신 분들이 강렬한 느낌이 좋다고 해주세요. 타투 같다고도 하고요. 정통적인 타이포그래피라기보다 타입을 이용한 일러스트 그래픽에 더 가까워요.
시간과 공간이 바뀌면 조건이 바뀌고 그 조건에 따라 당연히 변하는 것이 생긴다. 그래서 더욱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조망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신우는 디자이너로서 여성으로서 한국사회에 사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자연스럽게 세상을 보고 주변의 환경을 생각한다.
브랜딩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브랜딩 작업을 할 때 나만의 강점이라고 꼽는 점은 어떤 건가요?
하고 있는 일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게 브랜딩 작업인데 이미지들이 움직이는 게 재미있어요. 하나를 만들면 다양하게 변형되거든요. 편집, 그래픽, 타입 등 모든 분야를 다뤄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고요. 아직 나만의 개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없지만, 아마 유연함?(웃음) 고정되지 않은 점 같아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약간 이미지가 세게 섞이는 방향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목소리를 하나로 만드는 강한 특이점을 만든다고나 할까, 복잡하든 단순하든 응집력 있게 만들려고 해요. 형태는 단순해도 내부는 되게 복잡한 작업이 많거든요. 극단적으로 갈수록 어디 지점에선가 단순해지는 면도 있고요. 딱 봤을 때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묶여 보이도록 의식적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편이에요.
이미지를 만들 때 자연스럽게 디자이너의 성향이 녹아날 것 같은데 그런 편인가요?
젠더, 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어요. 구조적인 문제에서 나오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조금씩 바뀌고 있고 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녀 성차별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잖아요. 남성 디자이너는 그냥 디자이너라고 하는데 여성일 경우 여성 디자이너라고 할 때도 많고요. 목소리를 더 내기 위한 시각으로 조명하고 부각시키는 자리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졸업을 앞둔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저도 아직 앞날을 걱정하는 처지라…(웃음). 졸업 즈음에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용기를 내라는 말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뭐가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게 고민이었거든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은 되지만 일단 흘러가는 대로 그때그때 할 일을 하는 게 좋다고 봐요. 저도 “나는 무조건 스튜디오를 할 거야!”하고 결심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거든요. 고민을 엄청 했지만 시작했으니 일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게 전부였어요. 너무 고민하지 않되 큰 방향만 잡고 뭐라도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