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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아트디렉터 윤여경

    현직 신문사 아트디렉터가 얘기하는 ‘언론사 소속 디자이너’의 역할과 미래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4년 02월 17일

    경향신문 아트디렉터 윤여경

    그는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안정된 직장에 둥지를 틀어 현실에 안주하기 마련일 것 같은데 디자이너의 사회적 참여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어떤 생각이나 입장을 지지하든 먼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경향신문사 아트 디렉터, 정보그래픽(인포그래픽) 디자이너 윤여경을 만났다.

    언론사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어떠세요?

    자신의 일을 잘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 실수해서 사고가 나면 인쇄된 신문 몇만 부 내지 몇십만 부를 버리고 다시 찍어야 하니까요. 그만큼 쓰레기를 만들어버리는 거잖아요. 언론사에서 디자이너 역할은 나사 하나에 불과하지만 이런 점에서 상당히 중요합니다. 디자인은 특히 언론사에서는 디자이너 개인의 생각을 반영하기 힘든 구조예요. 지금 언론사 디자이너는 주어진 정보를 시각화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최근에는 TF팀에 소속되어 국정원 댓글 사건을 다룬 ‘그놈 손가락’이라는 뉴미디어 콘텐츠에 관여했어요. 마치 추리소설 구조와 비슷하게 전개했어요. 이게 호응이 생각보다 좋았어요. 제가 한 역할은 전체 디자인 디렉팅을 하고 정보그래픽을 했는데…. 앞으로 이런 것들이 언론사에서 디자이너가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과거엔 디자이너가 기획부터 참여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디자이너가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의 책임을 평소 강하게 의식하고 계신 것 같아요.

    디자이너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이에요. 전문가는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는 안된다고 봐요. 자기 생각과 언어로 분명하게 답변도 해야죠. 저는 이건 이거야, 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이에요(웃음). 학교에서 수업할 때도 학생들이 아름다움이 뭔가요? 물으면 하늘의 구름 어쩌고 하는 식으로 모호하거나 추상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캘리포니아 대학의 인지심리학자 빙켈만 연구에 의하면 아름다움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한다.”라고 확실하게 말해주죠. 그러면 그것에 동의하는 학생들도 있고 아니라고 하는 학생들도 있죠. 이때 비로소 피드백이 오가고 이런 과정에서 깨지고 정리되고 다시 부서지고 하면서 담론이 이뤄지는 거거든요. 먼저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자신 안에서만 품고 있기보다 꺼내놓고 깨지고 하는 것이 중요해요.

    논쟁과 토론도 두려워하지 않으시죠?(웃음)

    좋아하진 않지만 즐깁니다(웃음).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할 땐 디자이너들을 대표한다는 묘한 사명감도 갖게 돼요. 누가 부여한 것도 아닌데(웃음). 한 사람의 디자이너지만 그 한 사람을 통해 사람들은 디자인분야를 보거든요. 변화는 빠르고 시장은 점점 좁아지고 디자인 전공자는 많고…. 그런데 죄송한 말이지만 디자이너들은 별로 공부 안 하는 것 같아요. 디자인 집단은 크고 디자이너는 이렇게 많은데…. 전문적으로 디자인을 비평하는 분들도 손에 꼽을 정도고요. 그런데 내가 이런 얘기 막 해도 되나?(웃음)

    평소 어떻게 세상을 지각하고 바라보는지 궁금하네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세상을 보는 입장은 관점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세상 속에서 점 하나로 존재하는 내가 전체 세상을 보기는 어렵죠.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면 점점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게 돼요.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인간 세상을 떠받치는 자연도 인식해야 하고 그래서 책을 읽을 때 한 분야 보다는 다양한 분야, 경제, 역사, 정치, 철학, 과학 등 주요 서적들을 두루 보려고 노력해요. 디자인은 세상의 복잡한 문제들을 다양한 사람들이 협업해서 해결하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려면 인간과 세상을 알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하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통섭(通攝)하기 위해, 좀 더 나아지기 위해 계속 공부를 해야 합니다.

    투자금융
    2010년 천안함 2010년 천안함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 친인척 비리 개요도
    공대에 다니다가 밴드 동아리를 같이 하던 후배와 광고공모전에 응모했다. 덜컥, 상을 받았다. 너무 재미있었다. 시각디자인과에 편입해서 새롭게 배우며 공부를 했다. 그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천국을 만났다.' 평생 스승이 된 윤호섭 교수 밑에서 배웠다. 자신의 스승에 대해 진한 애정을 표현하면서도 예의를 깍듯이 차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윤호섭 선생님께 많은 영향을 받으셨다고 들었는데요.

    천국을 만났던 거죠(웃음). 윤호섭 선생님과의 만남은 지금까지 제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까요. 전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는데 가치 있는 인생이 무엇인지 찾게 된 거죠. 대학원 다닐 때 선생님께서 주요 서적 100권 읽으면 학교 다닐 필요 없다는 말 하곤 하셨어요. 필독서 목록이 있었는데 형광펜으로 그어가면서 읽기 시작했어요. 70권쯤 넘어갈 무렵 생각이 크게 바뀌더라고요. 졸업하는 날 선생님께서 다음 학기 강의를 맡기시더라고요. 반 강제적으로(웃음).

    국민대학교 이지원 교수님과 디자인 읽기, 디자인 말하기도 같이 하고 계시죠?

    이지원 선생이 하자고 해서 했어요(웃음). 예술과 디자인이 뭔지, 디자인분야가 무엇인 문제인지, 담론은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던 시절이었죠. 저는 저 나름대로 그 친구는 그 친구 나름대로 블로그에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어요. 서로 댓글 열심히 달아주고(웃음) 격려하고 그러다가…. 이런 것을 좀 확장해보자, 이러다가 시작하게 됐죠. 다른 디자이너들의 블로그를 찾아다니면서 좋은 글을 디자인 읽기에 모았어요. 그러니 자발적으로 글 쓰는 분들도 늘어나고…. 초기에 그렇게 인연이 된 사람들이 많았어요. 혼자 공부하던 친구들이라서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하다 보니 어떤 변화가 있으셨나요?

    저야 뭐, 개인적으로 굉장히 많이 변했죠. 일종의 사명감도 갖게 되고요. 더 많이 공부하는 계기도 됐고. 재미도 있었어요. 그런 장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었고요. 제 기질상 그런 점도 조금은 있겠지만,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어서 그런지 하고 싶은 말을 막 하는 거 같아요. 약간은 이런 점에서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거든요.

    정말 많은 일을 하시는데 스트레스는 없으세요?

    없어요(웃음). 최대한 부담 없이 편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재밌어서 하는 일이니까요. 꾸밈없이 그냥 적당히 촌스럽게 해요. 2013년도 디자인 말하기에서는 디자인 고민 상담소도 하고, 멤버들과 투어도 다니고 그랬는데 보람도 있고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도리어 배우는 것이 많아요. 1년 정도 지나니 고민 상담소에 질문은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취업문제가 제일 크고요. 현실적인 고민이 아무래도 많더라고요. 고민을 받으면서 고민보다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대부분의 고민이 무척 길었거든요. 대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고민을 나누고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경향제호 로고타입
    향이
    [좌]디자인예술경계 [우]자본주의극복
    편집국 미술팀에 있다가 입사 3년 차에 편집국장 직속 아트 디렉터로 발탁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제호에서부터 신문 그래픽까지 그는 경향신문 디자인 홍반장이다. 압력도 있었지만,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회사에서 디자인에 관한 문제가 생기면 생각만 하지 않고 지적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아니면 아니라고 말한다.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렇게 하는 힘은 지속적인 공부에서 나온다. 질문하고 대답하며 사회의 요청과 디자이너의 책임에 응답하는 그가 만들어갈 2014년이 기대된다. 

    디자인은 뭔가요?

    디자인이요?(웃음) 제가 정의하는 디자인은 ‘안정된 아름다움을 향한 노동의 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오죠. ‘안정된 아름다움’이 뭐냐, ‘노동’이 뭐냐, ‘협업’이란 뭐냐, 이런 고민을 계속 해요. 이런 것에 답하면서 생각을 하나로 모으다 보니 나름대로 정의가 만들어지더라고요. 디자인이라는 세계가 있다면 밖에서 안을 비평하는 분들도 계시고 안에서 밖을 보는 분들도 계시는데 제 경우는 경계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디자인은 쉽게 말해 문제 해결이에요. 문제와 해결 사이에는 갈등과 대화, 타협의 과정이 숨어 있고요. 이 과정에 노동과 협업이 따라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디자이너신데 지금 읽고 책은 어떤 건가요?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와 박명림 교수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을 읽고 있어요. 둘 다 국제전쟁과 내전을 다룬 책이라 자연스럽게 비교됩니다. 내전이 발발하면 양쪽 극단으로 편이 나뉘고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는 온건파 등 중간들은 모두 숙청돼요. 담론이고 뭐고 없죠. 이것이 현대 한국을 만든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요. 저는 한국 사회의 본질을 알아야 전체 큰 그림 속에서 한국디자인 분야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기 위해선 한국을 둘러싼 세계 흐름도 알아야 하고요. 현재 한국 사회는 한국전쟁의 극단적 잔재가 여전하고 디자인 분야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거든요. 저는 디자이너들도 인문학적 생각을 축적해서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대화해야 발전이 있다고 봐요.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선 회사 일을 잘해야죠. 경향신문이 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저는 그 안의 일원이니까요. 나아가 그린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졌어요. 제 내부에서 질문이 많아졌죠. 디자이너의 역할과 책임은 뭐지? 디자인이 뭐지? 왜 아무도 이런 얘기를 안 하지?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살고 있지? 이런 것들이 막 다가오는 거예요. 그런 의문들을 떠올리면서 책을 읽고 만나서 대화하고 이런 활동의 연장이 디자인 읽기, 디자인 말하기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고민하고 공부한 것을 나누는 그런 장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좀 말해주세요

    이지원 교수랑 함께 ‘디자인학교’를 열려고 해요. 도메인도 샀어요. designerschool.net이에요. 온라인에서 디자인 교육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고요. 우리 사회에는 디자인을 공부하고 나눌 수 있는 여건이 많이 부족해요. 대학의 문턱은 높고요. 또 공부를 지속적해서 하려면 그것을 나누는 장이 반드시 필요하고요. 디자인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해요. 제 첫 번째 책이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X축>이에요. 전체 3권으로 생각한 터라 1권인 셈이죠. 그러니까 계속해서 제겐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가 화두에요. 2권을 쓰기 위해서 계속 공부해야죠. 그리고 다음 달에 윌리엄 모리스와 디자인을 다룬 책이 나와요.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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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모형2
    2012년 11월 출간된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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