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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종상가’ 만든 박길종

    “의뢰받는 작업마다 과정이 늘 달라요. 요청에 응답하면서도 새롭고 예쁘게 만드는 일이 재미있어요.”


    인터뷰. 스토리베리

    발행일. 2016년 05월 13일

    ‘길종상가’ 만든 박길종

    참 신기했다. 만나는 젊은 디자이너마다 한 번씩은 꼭 언급하는 ‘길종상가’. 그것도 100% 호감 어린 목소리로 말이다. 도대체 어떤 곳이고 누가 운영을 하길래 그러지? 스튜디오라는 이름 대신 상가라는 이름을 쓰는 것도 특이했다. 자연스럽게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길종상가의 박길종을 만났다.
    프로필 사진: 하시시박(2013), 길종상가 로고 디자인: 신동혁(2011)

    이름이 특이한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시작은 2010년이에요. 홈페이지가 생겨서 이름이 필요했는데 평소 좋아하던 낙원상가나 세운상가처럼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상가’라는 말에 이름을 걸고 일을 하니 맡겨 달란 의미에서 제 이름인 ‘길종’을 합쳐서 길종상가라는 이름을 짓게 됐어요. 홈페이지를 위해 단순하게 별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지었어요.

    그런데 폴더 구성도 상가에 맞게 하면 재밌겠다 싶어서 상점 이름도 집어넣고 101동 102호 같은 호수도 집어넣었어요. 상가란 게 여러 상점이 들어가고 나오고 바뀌고 그러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왔던 일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상점화 시켰죠. 처음엔 혼자 시작했는데 지금은 김윤하, 송대영이 합류해 세 명이 하고 있어요.

    혼자 하다가 같이 하게 된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개인적인 일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어떤 행사를 하거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큰일을 할 때 세 명이 같이 힘을 모아서 아이디어를 짜거나 디자인을 할 땐 제가 혼자서 하는 가공소 일과는 다른 디자인이나 결과물이 나와서 재미있어요. 아무래도 같이 하면 혼자서 할 수 없는 큰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강점 같아요.

    즉흥적으로 구상하신 것 같은데 초반에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되셨어요?

    처음에는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1~2년은 금방 가더라고요. 마침 당시에 페이스북이 활발하게 시작되던 시기였어요. 홈페이지에 있는 결과물들을 페이스북에서 공유했는데 보신 분들이 좋아해 주고, 그래서 덕분에 알려진 점도 있어요. 초기에는 친구를 위한 선물 같이 주위의 아는 사람들이 의뢰한 간단하고 작은 물건들부터 시작했어요. 그중에는 제가 필요해서 만든 것도 있고요.

    예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변화해왔구나, 라고 생각되는 점이 있다면요?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온 건 변함이 없지만, 재료의 변화는 있었어요. 처음엔 나무를 소재로 많이 썼는데 지금은 금속이나 아크릴, 유리도 많이 쓰고 있어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데 디자인이나 공간에 맞는 것을 골라 쓰기 때문에 특정한 어떤 재료만 고집하지는 않아요. 결과물이 놓였을 때의 모습이나 결과물이 나오기 전에 스케치할 때, 구상할 때가 재미있어요. 그러고 보니 크게 변한 점은 없네요(웃음).

    스펙트럼-스펙트럼, 사진-이종철, 제공-삼성미술관 플라토, 2014(김윤하, 박길종, 송대영 공동 작업)
    카운터와 파티션, 클라이언트-Bumpygeorgette, 2015 (박길종 작업)
    가구로 소리내기, 클라이언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15(디자인, 제작: 박길종, 제작 도움: 김윤하, 송대영)
    3개의 삼각형과 6개의 긴 선반, 클라이언트: 명필름아트센터, 2015(박길종 작업)
    앞뒤가 다른 책장 겸 파티션, 클라이언트: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2015(박길종 작업)

    페인팅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아르바이트로 잠깐 배운 일로 길종상가를 열어 지금까지 부침 없이 잘 운영하고 있다.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본인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다를 수 있으니 그것에 대한 경계를 생각해 보고, 조율하면 좋다고 한다. 삶과 일, 일과 관계의 균형을 잘 잡으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지금은 어떤 작업 중이세요?

    카페에 들어갈 가구들, 테이블과 의자 등을 준비하고 있어요. 작업할 땐 의뢰하신 분들이랑 이야기해서 그 공간에 어울리는 것이 무얼까 생각하죠.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기능이나 크기를 중요하게 보고요. 그 안에서 제가 디자인을 새롭게 해요. 상대가 원하는 것이 어떤 건지 충분히 듣고 협의를 한 후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공간 전체를 다루는 일도 할 때가 있지만, 대개는 약간 기본이 깔린 공간에서 작업하니까 벽과 바닥 천장이 어느 정도 되어 있으면 여기엔 이런 물건이 어울릴 것 같다는 물건을 만들죠.

    디자인은 재미있는 일이지만 어렵고 힘든 부분도 있잖아요. 꾸준히 할 수 있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의뢰가 들어오면 해결을 해야 하는데 그 해결 과정이 늘 달라요. 똑같은 방법으로 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요청하시는 분도 제게 새로운 것을 바라고요. 똑같은 일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것도 재미있어요. 만화 책장은 같은 걸 몇 번 만들긴 했지만 조금씩 업그레이드시켰죠. 요청한 기능에 응답하면서도 새롭고 예쁘게 만드는 일이 재미있어요.

    디자이너분들한테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어느 인터뷰를 가도 거의 길종상가 이야기가 나와서 궁금하기도 했고요.

    저한테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는데(웃음). 자주 교류를 하지는 못하지만, 길종상가 로고 디자인을 해주신 분이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라 그분을 통해 알음알음 알게 되었어요. 어떤 가게를 위해 일할 때 로고나 그래픽 일이 필요하면 다른 디자이너께 협업을 요청하기도 하고요. 전시에 참여할 때도 같이 하고. 그러다 그분들 사무실에 필요한 것을 요청하시면 만들어드리기도 하고, 협업하면서 만나는 분들도 많아요.

    일하는 방식이랄까, 선호하는 일이 있으신가요?

    약간 고르는 면도 있긴 한데요. 그것도 단순해요. 제가 굳이 할 필요가 없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도 똑같이 나올 것 같은 작업은 사양하고 있어요. 이미 도면이 나와 있고 그냥 만들기만 하는 걸 굳이 제가 할 필요는 없다고 보거든요. 요청하는 디자인 사례가 저랑 안 맞을 때도 그렇고. 제게 꼭 맡기고 싶은 분이 계셔도 일정이 안 맞으면 그분한테 기다려줄 수 있냐고 해서 괜찮다고 하면 진행하고 아니면 다음 기회에 해요.

    혼자 사는 법, 커먼센터, 2015(김윤하, 박길종, 송대영 공동 작업)
    1/2, 시청각, 사진: 정민구, 2015(김윤하, 박길종, 송대영 공동작업)
    동글동글한 테이블과 의자 세트, 클라이언트: MUSEE DE SCULP, 2015(박길종 작업)
    작가를 찾는 8인의 등장인물, 클라이언트: 아르코미술관, 2015(박길종 작업)
    길종상가 가는 날 보슬보슬 봄비가 내렸다. 은방울처럼 반짝이는 빗방울을 따라갔더니 골목 안 시장 안에 자리 잡은 사무실이 나왔다. 그의 이름 뜻을 물었더니 물 길, 마루 종이라고 한다. 은은하게 흐르는 물길처럼 그의 일솜씨도 작업도 목소리도 조곤조곤 온화하다. 그러고 보니 집이나 작업실에 꼭 하나 있었으면 탐나는 작업물도 그의 성품을 똑 닮은 듯하다. 

    대부분의 디자인 스튜디오나 작업실이 운영에 관련돼서 어려움이 있는 것 같고요, 그것 때문에 시작하기를 어려워하는 젊은 디자이너가 많은 것 같아요.

    당장 보증금에 월세, 공과금에 사업자를 내면 각종 세금에 많은 것이 필요하죠. 그런데 처음부터 모든 걸 완벽하게 세팅을 해놓고 시작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엔 공구 한두개로 시작해 일해서 돈이 들어오면 하나씩 하나씩 늘려나갔어요. 작업실도 처음엔 주택의 방 한 칸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때 비하면 많이 넓어졌어요. 처음에는 본인의 금전적 상황 하는 일에 따라 공간의 크기와 지역을 정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점점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구분될 거예요.

    일을 시작하기 전과 실제로 현장에 일하면서 다른 점이 있을 텐데요.

    경험인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엔 경험이 많이 부족했어요. 회사에 다닌 것도 아니고 아르바이트로 잠깐씩 익혔던 터라 전문적이고 깊은 기술도 아니었거든요. 현장에서 변수가 생겼을 때의 대처법 같은 것들도 일하면서 배우게 됐어요. 특히 실제로 일을 하면서부터 발주를 받으면 금액을 매기는 것도 어려운 거예요. 이런 걸 배운 적이 없으니까. 그런 것들이 일이 년 지나면서 경험이 쌓이고 적정선을 찾아가고 그러면서 또 배우고 하죠. 지금도 인테리어 업계의 견적 내는 기준과 제 기준은 많이 다르겠지만 저는 그런 게 크게 중요할까 싶어요. 제가 만족하는 금액이면 된다고 봐요.

    부침 없이 꾸준히 운영하는 비결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응용력이려나. 사람들이 어떤 걸 배울 때 한 가지를 통해서 그것만 할 수 있다고 보통 생각하지만, 꼭 그렇진 않거든요. 이렇게 배웠지만 이렇게도 쓸 수 있지 않을까? 다르게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그리고 순발력도 중요한 것 같아요. 생각대로 만들었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여기면 빨리 대처하는 게 일할 때 도움이 돼요. 특히 우리나라는 시간을 짧게 주기 때문에(웃음).

    길종상가처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주세요.

    특정한 롤 모델을 세우는 것보다 자기 상황에 맞게 본인에게 맞는 시스템과 룰을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시작해서 이렇게 운영하는구나, 라고 생각해볼 수는 있지만 본인에게 적용했을 때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자신에게 잘 맞는 방식을 찾아서 처음부터 너무 계산하고 어렵게 시작하지 말고 과감하게 해보고 안 되면 바꿔보고. 그러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배우는 게 많으니까요.

    ▶일민미술관 로비, 클라이언트-일민미술관, 2015 (박길종 작업)
    작은 원형 탁자, 클라이언트: 이동열, 최경주, 2016(박길종 작업)
    검정 원형 세트, 클라이언트: 장욱진미술관, 2016(박길종 작업)
    백색 공간, 클라이언트: 정구호, 2016(박길종 작업)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사진: 나씽스튜디오, 제공-일민미술관, 2016(김윤하, 박길종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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