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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 ‘더블디’ 허민재

    “제가 못하는 일은 친구 불러서 같이 하고, 저는 다른 쪽 일을 하고. 서로 피드백도 주고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3년 07월 04일

    스튜디오 ‘더블디’ 허민재

    하나의 아이디어가 작품으로 완결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걸까? 누군가는 숨어 있는 대각선을 찾고, 또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포인트를 뒤로 감추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가로지르기도 한다. 영국에서 활동하다 최근 귀국하여 서울에서 스튜디오 더블디(Double-D)를 운영하고 있는 허민재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망설이지 않고 발부터 먼저 떼는 작가다.

    영국에서 활동하시다가 귀국하셨는데,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귀국한 지는 8개월 정도 됐어요.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고 일도 미국과 영국에서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글로벌한 생활을 하게 됐는데(웃음), 만나는 분들이 왜 한국에서 활동하지 않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일하기 훨씬 더 좋다고. 외국에서 일하다 보면 나 혼자 독립적으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한국에선 서로 돕는 일도 많고 하니까.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어디에도 속한 데가 없어서(웃음).

    미국과 영국에서 활동하실 때 주로 어떤 작업을 하셨나요?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한 건 미국에서였어요. 빅 에이전시에서 일하다가 영국으로 옮긴 후 작은 스튜디오에서 있었는데 좀 더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서 좋았어요. 미국에서 좋았던 점은 HR 관리가 철저해서 프로젝트 매니저가 시간이나 업무 등을 관리해줘요. 좋은 점도 많은데 가끔은 내가 리소스로만 쓰이나? 하는 생각도 생기죠. 문화적 차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국에선 2년 반 정도 있었는데 RCA를 빼고는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재미있는 사람들도 많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찾아야 했기에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좋았어요.

    귀국해서 적응하는 동안 어려웠던 점은 없으셨어요?

    면접을 몇 군데 봤는데 안 뽑아주시더라고요(웃음). 굉장히 유니크하고 재미있는 작업 위주로 한 것 같은데 우리 회사랑은 안 맞을 것 같다고(웃음). 그래서 한국에 와서 좀 놀던 시기가 있었는데(웃음) 놀고 있으니 주변에서 일을 조금씩 주시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혼자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튜디오를 차리게 됐죠. 웹사이트 관련 일을 맡았는데 제가 그쪽 일을 잘 못해요. 개발자를 뽑아야 했는데 사업자 등록을 안 하면 세금폭탄을 맞겠더라고요. 그래서 어쨌든 시작하게 됐죠(웃음).

    스튜디오 운영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

    제가 일하는 형태가 프로젝트의 플랫폼을 제공하는 구조인데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일을 따와도 혼자서는 다 못하잖아요. 주변 지인들에게 소개를 받아서 각자 가능한 일의 파트를 나누고 같이 협업하는 구조예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애니메이션인데 제가 못하는 일은 친구 불러서 같이 하고 전 다른 쪽 일을 하고. 서로 피드백도 주고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 [좌] Metronomy  [우] AllIwantisoutofhere
    ▶ [좌] k.pop-couture  [우] Ensaimad_art_circles
    ▶ Min-David-wedding
    ▶ Font
    그의 작업 방식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무거운 주제라도 그가 기획하고 움직이면 발랄한 것이 된다. 주제가 무거우면 오히려 가볍고 밝게 표현하고자 한다. 무거운 내용에 표현까지 진지해지면 내용 때문에 무겁다고 느껴지는 건지, 표현 때문에 무겁다고 느껴지는 건지 헷갈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콘텐츠 자체가 보여주는 힘을 믿기에 가능한 일이다. 

    초기 작업과 비교하면 최근 3년 사이에 작업의 성격이 좀 바뀐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색감이나 형태가 부드럽고 따뜻해진 것도 같고요.

    예전 것은 회사에 다니면서 일 끝나고 개인적으로 했던 작업이에요. 많이 힘들었죠(웃음). 책도 심각하고 어려운 것만 막 읽고(웃음). 최근 것은 클라이언트와 작업을 하다 보니 수용자를 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분명 달라진 점은 있을 거예요. 제 그래픽 디자인의 조형적 성향이 어떤지 스스로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작업을 할 때 일맥상통하는 게 있다면 섹슈얼리티와 대중에서 오는 랜덤 메시지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 생각해요. 트위터에 올라오는 말들, 댓글로 다는 말들, 이런 것들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요.

    특별히 섹슈얼리티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다면요?

    섹슈얼리티는 모두가 다 알고 모두가 느끼지만 모두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요. 여성들의 오르가슴(orgasme)에 대한 주제로 작업했을 때 사람들이 속에서 은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공적인 공간으로 나왔을 때 보이는 괴리감 같은 것이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오르가슴은 하나의 단어지만 사람마다 생각하고 느끼는 게 다 다르잖아요. 모두가 동의하는 커다란 개념도 있을 수 있지만, 개인만의 특별한 느낌도 있고요. 은어로 작업하면 또 달라지고요.

    <엑스의 유품>이라는 작업이 재미있던데요.

    전 남자친구, 전 여자친구에게 받은 물건을 시간이나 노동력으로 교환하는 오픈 마켓을 해본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은 이것을 보면 싸웠던 기억이 많이 나는데 마음의 치유를 받고 싶으니 매일 따뜻한 문자 한 통을 받는 것과 바꾸고 싶다, 라든가(웃음). 기획하고 홍보하면서 어려운 일도 있었는데 친구들 도움도 많이 받고 공간도 펀딩을 받아서 사용한 거라 감사한 일이 많았어요.

    재미있는 기획을 많이 하시는데 최근 새로 시도하시는 작업이 있나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난 아이디어로 <할머니의 요리법>을 기획하면서 저희 할머니를 인터뷰해봤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요리법은 뭔지, 어떤 추억이 담겨 있는지 인터뷰한 것을 스크립트로 따서 텍스트로 만들었어요. 재미있었던 건 6․25 때나 일제 강점기 때의 가난한 이야기를 막 하시다가 제일 기억에 남는 음식은 아이다호 포테이토랑 스테이크라고(웃음). 다음 작업으론 할머니가 말하는 요리법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데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레시피가 참기름 조금, 간장 두 바퀴, 이런 식이니까요. 두 바퀴라니, 어느 정도 크기로 돌려야 하는 거지?(웃음)

    ▶ X의 유품
    ▶ 할머니의 요리법
    그는 어떤 작업을 하든지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소 느끼고 생각하던 것들이 작업에도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그러나 혼자만의 세상에서 개인의 생각에 갇혀있다기보다 사회적 이슈와 이어지는 것이 많다. 젠더, 데모, 섹슈얼리티에서부터 이별, 추억, 가족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흥미로운 방향으로, 마음이 끌리는 대로 다채로운 작업을 해나간다. 

    작업도 그렇고 액티브한 분이신 것 같아요.

    그래서 회사를 잘 못 다니겠더라고요(웃음). 생각하면 바로 실천하는 것을 좋아해요. 안 좋은 점은 시간이 지나면 흥미가 떨어져서 완성이 안 된 것들도 많아요(웃음). 결과론적인 것보다는 작업의 과정을 즐기려고 해요. 개인 생활과 작업을 따로 구분하는 편도 아니고. 그래서 저희 인턴이 힘들어하세요(웃음).

    하신 작업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을 하나 고른다면요?

    아까 말씀드린 오르가슴에 관한 작업인 것 같아요. 대학원에 가서 했던 첫 작품이었는데 엄청난 반대와 비평을 무릅쓰고 한 거거든요(웃음). 개인마다 다르게 느끼는 건데 그게 연구할 의미가 있겠느냐부터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할 거냐까지. 생각하지도 못했던 반응들을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상처를 받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난 이걸 꼭 해야겠어! 이렇게 생각하며 그냥 했어요(웃음).

    본인의 작업 스타일은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일단 해요. 소스는 내가 아니라 남한테서 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리서치부터 먼저 하죠. 영감을 받는 순간은 정말 한순간이에요. 댓글 같은 거 보다가 아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다니!(웃음) 이런 데서 오는 모순 같은 게 재미있어요. 리서치는 시간 될 때 하고요.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면서 아이디어를 주고받기도 하고 한동안은 갖고 있어요.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쌓여 있는 게 많아요(웃음).

    올해 하반기 계획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일단은 지금 하고 있는 일 열심히 하는 거예요. 기회가 되는대로 공동 프로젝트도 꾸준히 할 계획이고요. 디자인을 열심히 해서 내년에 멤버 몇 명이 같이 쓸 수 있는 스튜디오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웃음). 그리고 꼭 하고 싶은 일은 자기만의 미학을 찾을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강의하는 건데, 의뢰가 안 들어와서 아쉬워하고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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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uture without P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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