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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 디자이너 겸 캘리그래퍼 안병국의 작업실

    낡은 빨래판과 각종 고물들이 놓인, 웹 디자인 스튜디오의 낯선 풍경


    글. 임재훈

    발행일. 2012년 04월 27일

    웹 디자이너 겸 캘리그래퍼 안병국의 작업실

    2002년 6월에 설립된 웹 디자인 스튜디오 ‘비쥬얼스토리’(www.visualstory.co.kr)는 올해로 꼭 10년째를 맞았다. 현재 위치인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이사 온 지는 5년째. 스튜디오의 히스토리 절반을 ‘홍대 앞’이라 불리는 이 동네에서 지내온 셈이다. 그동안 비쥬얼스토리는 ‘웹’이라는 디지털 공간을 디자인해왔다. 기업 웹사이트를 비롯해 원더걸스와 2PM 등 가수들의 홈페이지 작업을 해오며 웹 디자인 분야에서 입지를 다졌다.
    
    아무래도 디지털 친화적일 것만 같은 곳이지만, 세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반대다. 각종 고철들, 빨래판, 돌멩이, 화분 같은 것들이 스튜디오 안에서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다. 흡사 시골집의 정경 같기도 하다. 이 소품들은 비쥬얼스토리 대표인 안병국이 손수 가져다 놓은 것들이다.
    
    10년 이상 웹 디자이너로 살아온 그는 “오래된 고물처럼 손때 묻은 디지털이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캘리그래피와 도예 등 손때를 묻혀가며 작업하는 일을 즐긴다고 한다. 스튜디오에 따로 캘리그래피 작업실까지 마련해놓았을 정도다. 묵향이 감도는 웹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덩달아 사람 냄새도 나는 듯하다. 안병국이 ‘손때 묻은 디지털’을 위해 작업하는 곳, 비쥬얼스토리를 구경해보자.
    ▲ ‘비쥬얼스토리’ 스튜디오 입구. 커다란 조형 화분이 방문객들을 처음 맞이한다.
    ▲ 입구에 들어서면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매년 겨울마다 꼬마 전구에 불이 켜져 성탄절 분위기를 낸다. (지금은 봄이라 잠시 소등 중)
    ▲ 웹 디자이너이자 캘리그래퍼이기도 한 안병국의 작품들. 2009년에 열린 그의 첫 번째 개인전 <Relation>에 전시되기도 했다. 
    ▲ 라운지처럼 꾸며진 개방형 회의 공간.  대형 TV는 디자인 작업에 대한 모니터링뿐만 아니라
        스튜디오 식구들이 축구 중계방송을 시청하는 데에도 사용된다고. 
    ▲ 회의 때 사용되는 마커보드. 하지만 회의 내용만 적힌 건 아니다. 다소 뜬금없는 온도계와 스냅사진도 붙어 있고,
        심지어 스튜디오 식구들의 사적인(?) 메시지까지 적혀 있다. 그중 하나. ‘의욕 제로! 아놔 살리도~’
    ▲ 책장 칸칸에 와인병과 전통 술잔 들이 진열되어 있다. 몇 개는 안병국과 절친한 캘리그래퍼 강병인의 선물이다.
    ▲ 안병국이 고물상에서 얻어왔다는 철제 부속물. 옛 자동차에 쓰였던 부품이라고 한다. 
        스튜디오 곳곳에는 이렇게 누군가 쓰다 버린 물건들이 장식품처럼 놓여 있다.
    ▲ 넓은 통로 한쪽에 자리한 목재 테이블과 화분, 석재 조형.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적절한 조화가 좋은 웹 디자인을 만든다”라고 말하는 안병국이 직접 꾸민 인테리어다. 
    ▲ 안병국이 발품을 팔아 구해왔다는 낡은 빨래판과 돌덩이들. 그는 길거리에 버려진 물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주워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비쥬얼스토리 디자이너들의 작업실.
    ▲ 안병국의 개인 작업실. 별다른 장식품 없이 꼭 필요한 도구들만으로 채워져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공존을 강조하는 그답게 컴퓨터와 붓을 한 공간에 놓아두었다.  
    ▲ 작업실 한쪽에 세워져 있는 안병국의 작품. 대학 시절 수업 과제로 제작했던 것을
    아직까지 보관해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되었던 한국인들이 광복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을 표현한 작품.
    ▲ 안병국이 서재에서 꺼내 보여준 아이디어 노트. 그야말로 ‘빛바랜 노트’이다. 
        군 복무 시절에 만든 것으로 제목은 <열린 생각 유치한 사고>이다. 군대 행정반에 있던 종이와 제본기를 활용해 수작업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 자신의 아이디어 노트를 펼쳐 보는 안병국. 그는 자신 혹은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물건들을 좋아한다. 
    ▲ 개인 작업실과 별개로 마련된 캘리그래피 작업 공간. 스튜디오 내부에 은은히 감돌던 묵향의 진원지이다. 

    ▲ 타이포그래피 서울을 위해 즉석에서 전각 도장을 제작해준 안병국. “손님을 그냥 보내드리기가 아쉽다”며 기어이 전각도를 집어들었다. 

    왜 홍대앞인가?

    회사 초창기에는 서울 사당동에 조그만 오피스텔을 얻어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그러고는 돈암동으로 옮겼다가, 2007년에 이곳 홍대 앞으로 왔다. 스튜디오 위치가 서울 외곽 쪽일 경우, 변방 혹은 2류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또 아무래도 디자인 스튜디오이다 보니, 이런저런 볼거리가 많은 홍대앞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 이사를 오게 되었다.

    왜 하필 고물들을 갖다 놓았나? 혹시 디자이너들의 크리에이티비티를 자극하려고?

    그들보다는 내 크리에이티비티를 위해서다(웃음). 길거리에서 고물들을 보면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는 꼭 어딘가에 써먹을 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주워온다. 또 고물이란 게 누군가가 오랫동안 썼던 물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손때 묻은 것들이 좋다.

    왜 회의 공간을 개방형으로 둔 것인지?

    예전에는 지금처럼 개방형이 아니라 ‘회의실’을 따로 두었다. 그런데 스튜디오 식구들이 하는 이야기가, “우리 내부에서는 굳이 비밀스럽게 회의를 할 필요가 없지 않겠나”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서로 간의 의사소통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회의 공간을 열어놓았다.

    왜 회의 공간에 온도계를 붙여놓았나? 열정의 온도를 재려고?

    내가 붙인 건 아니고···. 디자이너들이 붙여놓았다. 음,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건물 관리자가 난방을 제때 안 해준다. 계속 온도를 확인하면서 관리자에게 따지려고 한다.(웃음)

    왜 이렇게 술이 많은가?

    오해하지 말아달라. 나는 결코 애주가는 아니다(웃음). 강병인 선생님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로부터 선물 받은 술들을 쌓아두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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