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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활자꼴의 뿌리 ‘오륜체’

    『오륜행실도』 전용 활자체, 일명 ‘오륜체’로부터 이어진 한글 명조 활자꼴의 흐름


    글. 이주현(서체 디자이너)

    발행일. 2014년 11월 24일

    한글 활자꼴의 뿌리 ‘오륜체’

    얼마 전 한글날이 568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한글의 모습도 다양하게 변화해 왔는데, 오늘은 우리 한글 글꼴 중에서 명조(또는 바탕체)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훈민정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글꼴은 고딕일까, 명조일까? 붓으로 쓴 옛 느낌을 살린 명조꼴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고딕에 가까운 형태였다. 서양에서 ‘산스(sans)’ 계열이 나중에 만들어진 것과는 정반대다.

    출처: 김진평, 연구 논문 「한글 활자체 변천의 사적 연구」(한국출판연구소, 1990)

    훈민정음이 반포된 시기(1446년)는 세계적으로 인쇄술이 발달한 이후였고, 조선에도 이미 활판인쇄술이 가능했던 시기였다. 아마 그런 시대적 흐름으로 인해 명조꼴보다는 고딕꼴로 개발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면 명조체는 언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을까? 훈민정음 창제 초기에는 고딕체였지만, 전통적인 필기구인 붓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점점 다양한 스타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출처: 위의 논문

    창제 초기와 창제 후기의 활자체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다섯 가지 특징들을 크게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로줄기가 굵어지고 가로줄기가 가늘어졌다. 둘째, 줄기의 시작과 끝에 필기구인 붓의 흔적이 보인다. 셋째, 붓의 흔적으로 인해 쓰기 순서가 보이는 닿자가 나타난다. 넷째, 정원의 형태는 유지하되, 네모틀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다섯째, 창제 초기보다 한자와의 대비가 심했던 현상이 완화되었다.

    출처: 위의 논문

    활자체는 우리나라의 고유 필기구인 붓의 영향으로 인해 창제 이후부터 계속해서 명조체, 궁체, 흘림체 등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학계에서 말하는 한글 활자체 최초의 정형은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전용 활자체’(이하 오륜체)이다. 오륜체는 많은 사람에 의해 독자적인 활자체로 다듬어졌다. 이는 균형 있고, 완성도가 높은 새로운 형태의 활자체로 궁체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창제 후 350년이 흐른 정조 21년(179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오륜체는 놋쇠활자설과 나무활자설이 있어 활판의 주재료는 확인할 수 없다.

    오륜체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두 가지이다. 첫째, 돌기와 맺음, 빗침과 내리점, 이음줄기 등이 오늘날 활자체의 기본 줄기 및 닿자 모양과 거의 동일하다. 둘째, 한글 궁체의 쓰기법과 한자 명조체의 특징을 적절히 조화시켜 한글과 한자가 어우러지도록 만들었다.

    출처: 위의 논문

    오륜체는 명조꼴 활자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오륜체, 후4체, 최지혁체, 한성체, 박경서체로 흐르는 명조꼴 흐름의 시작에 있기도 하다. 후4체는 오륜체의 정형과 연결되지만 짜임새가 다소 허물어지고 활달한 붓글씨적 성격이 더 강하게 반영되고 있다. 한성체는 오륜체에서 완성된 한글 활자체의 정형이 가장 충실히 반영된 활자로, 최초 정부 인쇄국인 박문국의 설립과 더불어 정부에서 주도한 활자체로 제작 과정에서 활자체의 정형을 충분히 검토한 결과로 보인다고 한다. 박경서체는 한성체 이후 붓글씨적 성격이 반영된 가장 완성도 높은 활자체로, 원도 활자 시대 원도의 기초가 된 활자체였다. 박경서체 이후에는 최정호의 명조체, 최정순의 국교체 등 완성도 있는 명조 활자체가 개발되었으며, 최정호의 원도는 현재까지도 활자 디자인의 교과서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이른바 명조꼴 흐름의 초기 한글 활자체들에서는 두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붓글씨체의 강한 영향을 받은 형태와 닿글자 지읒·치읓은 반드시 갈래지읒·갈래치읓을 고수하고 꺾임갈래를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히읗과 치읓의 꼭지는 세로줄기나 간혹 내리점으로만 표현하고 가로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출처: 위의 논문

    명조체의 또 다른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 활자체가 바로 ‘이원모체’이다. 동아일보의 개량된 본문 활자체인 이원모체는 국내 최초로 활자 공모전을 통해 채택되었다. 붓글씨적 성격에서 벗어나 일본 한자 활자 명조체의 영향을 받아, 한자의 특징을 적용한 형태를 띠고 있다.

    출처: 폰코(FONCO), 계간 『그래픽』, 마켓히읗,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 『타이포그래피 서울』

    앞서 언급한 한글 명조체의 흐름에서 보시다시피 현재의 명조체는 오륜체를 그 뿌리로 하고 있으며 이후로도 꾸준한 발전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복고적 디자인이 유행하면서 고딕보다 명조체를 기반으로 선보인 폰트들이 많았는데, 풍부한 명조체 디자인들이 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나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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