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 스튜디오(Ore-Oh! studio)는 그래픽디자이너 4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픽 디자인과 연계하여 글자 작업도 한다. 폰트를 제작하고 레터링을 한다. 업무로서뿐 아니라, 연구 목적으로도 꾸준히 글자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연구 주제는 ‘글자를 그래픽·이미지 요소로 조화롭게 다루기’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타이틀 레터링과 포스터 디자인은 오래오 멤버들의 최근 연구 결과물들 중 하나다. 스튜디오 자체 프로젝트인 ‘월간 포스터’ 연작은, 강민경·김가영·박계현·정예슬 네 디자이너가 매달 돌아가며 발표하는 실습 과제 같기도 하다. 그런데 오래오 멤버들의 진짜 연구 과제는 따로 있다. 다름 아닌 ‘오래오래’다. 2016년부터 오래오래 즐겁게!! ···는 오래오 스튜디오의 모토다. 민경·가영·계현·예슬은 9년차 대학 동기인 데다 5년차 사업 파트너다. 오랜 시간 어떻게 ‘케미’를 유지하고 있는지 물으니, 반응이 제가끔이다. 우리한테 케미가 있나요, 각자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둡니다, 신뢰와 소통과 배려가 가장 중요하지요, 우리는 ‘휴먼’ 한 명과 ‘AI’ 셋으로 구성돼 있답니다(?), 라는 대답들이 돌아온다. 또 누군가는 이런 말도 덧붙인다. 아직도 맞춰가는 단계라고.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를 위한 작업들을 다수 진행하셨더라고요. 문화체육관광부, 그 산하 기관인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및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등등. 오래오 스튜디오의 자체 프로젝트 ‘월간 포스터’ 시리즈도 국경일과 기념일을 자주 다루던데요. 특히 4월 발표작인 ‘COVID-19, Stay Strong’은 단순한 포스터 작업이 아니라, ‘스테이 스트롱’ 캠페인 동참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을 드려볼게요. 국내외 사회적 이슈나 정책 등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요?
강민경
많은 사회 이슈에 대해 항상 대화하면서 공유하고 있어요. 서로 워낙 가까우니까 외부 이슈 얘기를 많이 할 수밖에 없거든요. 저희끼리의 생산적 대화 소재이기도 합니다. 네 사람 다 어떤 사안을 깊숙이 알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어서, 대화가 어느 순간 열띤 토론이 되기도 해요.
‘월간 포스터’ 같은 경우는 작업으로 풀어나가는 그 달의 일기, 혹은 메시지의 역할로도 자리잡았기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저희의 멘트를 포스터에 담아내게 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때문에 정부 부처나 관공서 일이 이어진다는 느낌은 아니에요. 공공기관과 업무를 할 때는 특히 소통 부분에서 편한 지점이 있었고, 일 진행이 대부분 순조로웠거든요. 그래서 관련 프로젝트들을 꾸준히 받게 된 거죠.
김가영
저희가 느끼기에 흥미롭거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슈나 정책은 멤버들끼리 서로 공유하고 얘기합니다. 제가 놓쳤던 부분을 알 수 있고, 각자 생각과 의견 들이 달라서 대화하는 시간 자체가 재미있어요. 특히 사회적 이슈에 대한 ‘화남’의 포인트는 넷 다 같아요.
박계현
네,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특히 젠더 이슈요. 국내외 할 것 없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꼭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여건이 된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야 한다고도 생각하고요.
정예슬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고, 많이 관심을 가지려고 해요. 저희는 나름대로 여러 이슈를 작업에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크게 두드러진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이 부분이 아쉽고 여러 다양한 이슈가 있을 때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스튜디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월간 포스터’ 얘기를 좀더 해보고 싶습니다. 네 분 모두가 실험적이라 부를 수 있는 작업들을 계속 이어 오고 있는데요. 디자인하는 이, 글 쓰는 이, 그림 그리는 이, 음악 하는 이 같은 이른바 크리에이터들에게 ‘실험’은 일종의 탈출구 역할을 해주는 듯합니다. 실험이라 쓰고 놀이라 읽는다, 라는 표어도 가능하지 않나 싶고요. 클라이언트잡은 말 그대로 job이잖아요. 일은 일대로 하되, 크리에이터로서 맘껏 놀이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놀이의 시간들이 ‘잡’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고요. ‘월간 포스터’ 프로젝트는 오래오 스튜디오의 지속 가능성(오래오래의 가능성)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가영
처음 기획 의도는 ‘우리가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하자’였어요. 스트레스 탈출구 개념으로 시작한 거죠. 그런데 하필 클라이언트가 오래오 멤버들이라··· 오히려 제일 부담스러운 작업이 되었네요.(웃음) ‘월간 포스터’는 정해진 틀 없이 자유롭게 작업을 시도할 수 있으니까 저희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듯해요. 제 경우는 새로운 툴을 활용한다거나, 해보고 싶었던 컬러를 쓰는 방식으로 ‘월간 포스터’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예슬
우리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라는 걸 스튜디오 초창기에 깊이 고민했어요. ‘월간 포스터’는 그 답이었습니다. 여전히 좋은 동력이 되고는 있는데, 처음의 자유로움보단 의무감 때문에 계속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월간 포스터’ 외에 또 다른 가지를 뻗어나가려고 합니다. 작년에 진행한 ‘vacation plastic sackpack’도 어찌 보면 비슷한 맥락의 자체 프로젝트였고요.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오래오의 지속 가능성을 모색 중입니다.
민경
클라이언트잡에선 소통이 가장 중요해요. 저희의 의견과 작업 방향은 두 번째입니다. 이런 우선순위에서 비롯되는 아쉬움이 있죠. 표현 연구라든지, 아쉬운 시안이라든지. 이런 것들의 디벨롭 버전을 ‘월간 포스터’로 녹여내는 거예요. 정말 ‘놀이’라는 개념의 포스터 작업이죠.
솔직히 말하면 저희에겐 너무나도 ‘의미 없는’ 프로젝트였어요. 스튜디오 초창기 일이 없을 때 ‘뭐라도 하자’면서 가볍게 시작했던 거라. 그런데 이제는 저희의 정체성과 색을 보여주는 소중한 프로젝트로 자리잡은 느낌이에요. 많은 분들이 흥미롭게 지켜봐주실 뿐 아니라, 클라이언트 쪽에서 ‘월간 포스터’를 레퍼런스로 제시하는 경우도 많아요. 또 하나 좋은 점은, 저희의 스타일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는 거예요. 스스로에 대한 연구 자료, 저희를 표현하는 시각 자료라고 할까요?
오래오 스튜디오의 시장 경쟁력(?)은 아무래도 ‘글자도 만드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라는 점 아닐까요? 최근 1~2년만 보더라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타이틀 레터링(2020), 디즈니 코리아의 시즈널 캠페인 ‘Disney Classics Come to Life’ 레터링(2019), 밴드 ‘이날치’의 로고타입 제작(2019) 등 다수의 글자 작업들을 진행했습니다. 2018년 『에스콰이어』 9월호와 『하퍼스 바자』 12월호에 각각 실린 레터링들도 인상적이었고요. ‘오래오 스튜디오 폰트랩’이라는 채널을 운영하는가 하면, 2,350자 지원을 목표로 본문체(‘oreoh좁은본문체’)를 개발 중이기도 합니다. 오래오 스튜디오가 이렇듯 ‘글자’를 꾸준히, 그리고 규모 있게 가져가는 이유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민경
‘글자’는 그래픽 디자인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시각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글자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는 이유입니다. 언급하신 작업들처럼, 오래오 스튜디오의 글자 작업은 ‘폰트’와 ‘레터링’으로 나뉘는데요. 작업자로서 각 분야마다 서로 다른 매력을 느낍니다. 폰트는 가독성, 그리고 좀더 실용적인 방안을 고려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긴 호흡이 필요해요. 그렇게 완성된 결과물이 다방면에 쓰여서 다방향의 아웃풋을 내는 면면들이 흥미롭습니다.
레터링의 경우는 텍스트로서의 글자보다 이미지로서의 글자를 만드는 작업인데요. 글자가 그래픽이 되고 이미지가 됨으로써 성공적인 시각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냈을 때, 작업자 입장에선 꽤 보람차죠.그래서 레터링 분야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틀을 벗어나는 시도와 실험이 저희의 글자 작업 경쟁력의 기반이 아닐까 싶네요.
가영
레터링은 오래오 스튜디오의 강력한 장점 중 하나입니다. 작업의 인상을 결정짓는 데 큰 비중을 지니는, 표현 방식이나 범위를 확장시켜주는 유용한 수단이 바로 레터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레터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편입니다.
예슬
기존의 글자들로 새로운 인상을 표현한다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좀더 눈에 띌 만한 요소들을 찾다 보니 글자에 매력을 느꼈고, 대학 시절 소학회에서 글자 디자인 공부까지 하게 됐습니다. 꾸준한 레터링 작업이 오래오의 경쟁력이긴 하지만, 사실 레터링이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는 적거든요. 그래서 그래픽, 사진, 타이포그래피 같은 다른 요소들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계속 훈련 중입니다.
몹시 사적인 질문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장영규 음악감독님이 프로듀싱을 한 밴드 ‘씽씽’과 ‘이날치’의 곡들, 영화 〈타짜〉와 〈곡성〉 사운드트랙을 제가 참 좋아하는데요. 오래오 스튜디오에서 이날치 관련 작업들을 여럿 진행하셨더라고요. 좀 아까 언급한 로고타입도 그렇고, 싱글앨범 〈어류〉의 아트워크도 담당하셨지요? 이날치와는 어떤 계기로 관계를 맺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예슬
첫 작업이 2015년 ‘수궁가 프로젝트’라는 공연의 포스터 디자인이었어요. 홍대 곱창전골(산울림 소극장 근처 LP바) 안에 있는 클럽 코스모스에서 열린 공연이었습니다. 이 작업을 계기로 밴드에 필요한 로고나 다른 공연 포스터들까지 맡게 됐고, 저희 작업들을 좋아해 주시다 보니 지금은 아트디렉팅까지 맡고 있습니다.
민경
‘수궁가 프로젝트’ 작업 때 저희가 분석했던 이날치의 지향점, 그걸 토대로 표현한 유니크한 비주얼이 장영규 감독님의 뜻과 일치했던 것 같아요. 이날치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이어가면서 저희가 비주얼 아트디렉터 역할을 하게 됐죠. 전반적인 비주얼(브랜드 이미지)과 뮤직비디오, 머천다이즈, 디지털 앨범, 피지컬 앨범(LP), 온오프라인 공연 등에 제작 팀으로 참여했습니다.
장 감독님 얘기를 살짝 해본다면요, 우선 저희 의견에 대해 좋은 시각으로 수용해주세요. 감독님 쪽에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저희와 논의해주시기도 하고요. 과감한 작업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해주시는 덕분에 흥미로운 결과물들을 만들 수 있었어요. 저희를 많이 신뢰해주십니다.
그리고, 이날치 프로젝트의 상당 부분은 협업을 통해 진행돼요. 여러 아티스트들과 협력하면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창출한다는 점이 저희에겐 큰 메리트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네 분이 대학 동기잖아요. 옛말에, 자고로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끼리는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물론 웃자고 해본 말입니다.) 스튜디오 공동 운영자로서, 그리고 디자인 작업 파트너로서 네 분의 ‘케미 유지법’은 무엇인가요?
예슬
저희가 케미가 있나요?(웃음) 서로의 성향을 잘 이해하고 배려하려고는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생활과 대인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참 싫어서, 이런 고단함을 다른 곳에서 해소함으로써 케미를 유지하는 것 같아요.
가영
저희의 케미 유지법은 ···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기’입니다. 앞서도 얘기가 나왔지만, 멤버 각자의 성향이나 취향이 너무나도 달라서 디자인 쪽으로는 서로 터치를 안 해요. 초반에는 맞춰가는 게 많이 어려웠지만, 저희의 규칙을 정하고 암묵적인 룰이 생기면서 예전보다는 갈등 상황이 적어진 것 같습니다. 지금도 계속 맞춰가고 있는 중이에요.
민경
오래오 스튜디오에서 ‘휴먼’은 저밖에 없습니다. 다른 세 명은 각자 다른 회사에서 만들어낸 ‘AI’ 수준이에요. 9년을 함께하는 동안 어쩌면 이렇게도 접근 방식이랑 생각이 다른가 싶어서 종종 서운할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안 그래요. 휴먼이 한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이런 팀워크가 불가능했을 것 같아요. 나머지 세 친구들이 휴먼(성능 좋은 AI일지도···)이 돼가는 과정도 재미있고요. 저희 넷 다 스타일이 판이해서,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배려하게 되더라고요. 취향 존중! 네 명이 적절히 달랐기 때문에 오히려 견고한 합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퍼즐처럼요.
계현
신뢰, 소통, 배려.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해요. 저희는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이거든요. 각종 이슈, 가치관, 작업, 관계, 문화 같은 주제에 대해서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깨닫고 이해하려는 나름의 노력이랄까요? 이런 게 케미 유지법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2016년 문을 열었으니, 오래오 스튜디오는 올해로 다섯 살이 됐습니다. 네 분 각자가 기억하는 지난 5년 동안의 best와 worst 경험을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스튜디오 창업을 계획 중인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민경
지금까지 저희 스스로 만족할 만한 best와 기억에서 없애고 싶은 worst는 없었습니다. 비등비등한 so so였다고 생각해요. 물론 프로젝트가 훈훈하게 클로징 되면 각 프로젝트마다의 만족감과 뿌듯함은 있죠. 하지만 이런 건 단순히 저희가 느끼는 만족도일 뿐이잖아요.
항상 모든 프로젝트는 불가피한 컨디션도 있기 마련이고,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하기 때문에 best가 아직 없었던 것 같아요. 스튜디오를 더 오래 운영하면서 여러 일을 해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best에 대한 만족감의 한계를 짓고 싶지 않은 욕심도 있습니다.
가영
best의 경험은 아직 없는 것 같네요. worst의 경험은 대부분, 클라이언트와의 소통 문제가 생겼을 때죠. 디자인 작업물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원활한 소통 같습니다. 아직도 많이 어려워요.
계현
연차가 쌓일수록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인내입니다. 생각은 쉬워도 행동으로 옮기고 지속적으로 지켜내기란 결코 쉽지 않죠. 사업을 하다 보면 다양한 환경을 접하게 되는데, 그럴 때일수록 문제 상황을 스스로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자기만의 노하우가 생길 테고, 그렇게 사업체는 더욱 굳건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슬
들어오는 일의 규모나 수입을 봤을 때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까, best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뜻이겠죠? 저한텐 이게 best네요. 딱히 worst였던 순간은 기억나지 않고요. 아직까지 해체 위기는 없었으니깐. 굳이 꼽자면, 코로나19 시국인지라 일이 줄어든 상황. 현재.
2025년 어느 날 〈오래오 스튜디오 10주년 기념전〉이 열린다고 상상할 때, 네 분 각자가 전시 도록에 꼭 적고 싶은 멘트는?!
민경
우리 아직은 오래오래 하고 있어요.
가영
감.사.합.니.다.
계현
더 성공해라. -_- ^
예슬
이보다 멋진 전시는 없었고,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