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만드는 타이포그래피 잡지 『티포찜머(Typozimmer)』. 이게 가능할 일일까? 싶지만 가능하다. 편집, 기획, 디자인, 인쇄, 발행, 기사, 유통까지 혼자 하고 있는 타이포그래피 잡지 티포찜머 발행인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강주현을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스튜디오를 3월부터 시작해서 이제부터! 라는 기분이죠. 함께 하는 지인들이 학교 선후배 사이라서 편하기도 하고요. 저는 굉장히 좋아요. 들어온 클라이언트 일을 하면서 시간 내서 『티포찜머』를 만들고 있는데 지금은 이런 상황이 만족스러워요. 이 동네(익선동)가 재미있어요. 밖에서 볼 때랑 안에 들어왔을 때 느낌이 다르고, 볼거리도 많고요.
『티포찜머』는 편집, 디자인, 기획, 디자인, 인쇄, 발행, 기사, 발행까지 혼자 하시는데 어떠세요?
매거진 『그래픽』 발행인인 김광철 편집장님께 배운 게 많아요. 1년 정도 같이 있었는데, 책의 출판에 관해 배울 점이 많았어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독립출판, 특히 『티포찜머』는 시간적 여유가 될 때 혼자 취미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창간호는 이런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다른 저자분들에게 글을 부탁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티포찜머』의 성격이 어떤지도 모르고, 문체라든지 어떤 방향으로 써야 할지도 정해진 게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첫 호에는 저도 제작자임에도 불구하고 글을 기고하고 주변에 부탁도 해서 제작했는데, 이런 방향으로 갈 겁니다, 라는 걸 제시한 면이 크죠. 2호는 생각보다 많이 진지해진 것 같아요. 글을 써주신 분들도 고민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해요. 3호는 제작 중입니다.
편집 방향을 정해놓고 가시나요, 각 권이 독립적인가요?
각 권이 독립적인데 한 권을 만들 때 방향성은 갖고 있어요. 그 방향성은 우선 저자 위주로 만들어지는 게 크고요, 특히 제가 생각하는 저자분들에게 부탁을 하는데 하나의 콘셉트를 정하는 게 어려워요. 노하우도 약간 생기고 주변 분들도 알아주시니까 첫 번째 호보다는 두 번째 호가 작업은 수월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쫓기면서 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최대한 해야 할 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티포찜머』를 시작하기 전후에 어떤 변화가 있나요?
제 손으로 매체 하나를 만드는 거니까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 같아요. 작업 방향이나 스타일이 달라진 것 같진 않아요. 오히려 이것 때문에 제가 생각하던 스타일에 실험을 더 하게 돼요.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것도 있고. 그냥 하면 되지 뭐, 실천과 행동으로 옮기면 하게 되더라고요.
그는 외로운 날 가만히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처럼 위로가 되는 눈빛과 목소리를 가졌다. 그런 성향은 작업에서도 드러나는 법일까. 사람과 디자인이 참 닮았다. 뒷골목에 가만히 자리 잡은 작업실 공간처럼, 팍팍한 순간에 찾고 싶은 장소처럼, 그의 작업은 옆에 두고 오래 보고 싶어진다.
유학 생활은 어떠셨어요? 스위스 바젤로 가셨던 이유가 있나요?
타이포그래피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고, 그런 전통이 남아 있는 학교여서 선택을 했죠. 스위스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부지런하거든요. 학교에서도 성실함을 하나의 덕목으로 강조해요. 한국과 분위기가 달랐던 것은 여기서는 과제를 하면 밤샘을 하는 게 당연했는데 거기선 밤새 작업을 하고 싶으면 하지만 그만큼 과제가 많지도 않았어요. 한 수업에서 과제 하나가 주어지면 호흡 자체가 길어요. 2~3주 만에 하나 쳐내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포스터 하나를 한 학기 동안 하는 식이라 작업을 하는 과정 자체에서 배운 게 많죠. 게다가 제가 좀 느려서 잘 맞았던 것 같아요(웃음).
그래픽 안에서도 분야를 좁힌다면 어느 쪽이 자신의 특장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색을 잘 쓰지 않고 주로 흑백에 컬러가 들어가는 식으로 포인트를 주는 성향이라 건조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주변에서는 타입과 이미지가 조화롭다는 피드백을 많이 들어요. 점, 선, 면을 써서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들 때도 화려한 것보다 간결한 것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정해진 스타일에 갇혀 보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하죠.
작업할 때 자신만의 프로세스가 있으세요?
『티포찜머』에도 쓴 적 있는데 타입 하나를 세팅한 후에 레이아웃을 하죠. 그리드 연구는 물론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점, 선, 면을 보고 의도적으로 망점을 세우고요. 8가지로 나뉜 방식은 바인가르트 선생님이 선생님이셨던 당시 본인 수업 때 사용하던 프로세스인데, 저 스스로 저의 작업에 적용해보고 난 뒤, 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개인적으로 두 번 정도 그분을 뵌 적이 있는데 한번은 전시회에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성격은 괴팍하세요(웃음).
창조적인 일을 할 땐 쏟아내고 채우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세요?
서점을 많이 가요. 스위스에 있을 땐 헌책방을 자주 갔어요. 디자인에 영향도 많이 받아요.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 넘는 책이 있는 책방들도 있거든요. 우리나라에도 동대문 평화시장 뒤쪽에 헌책방들이 있는데 책을 오래 구경하기는 눈치가 보여서 천천히 볼 수 없는 게 아쉬워요. 그래도 헌책방이 있다는 게 좋아요. 『티포찜머』 자체도 제가 독자적으로 생각했다기보다 예전에 본 책에서 콘셉트와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포맷이나 베이스를 짜기는 어렵지 않았어요. 거기에 저만의 것을 첨가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첨가된 것보다는 특색 없는 서체가 좋다고 한다. 전면적으로 타입을 내세우는 스타일은 아니다. 두드러지거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지만 섬세하게, 조용조용 자신의 공간을 채우는 작업 스타일과 닮았다. 앞으로 자신의 작품을 좀 더 많이 보여주길 기다려본다.
작업할 때 어디에 영향을 많이 받으세요?
공간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스위스에서도 학교 건물이 되게 멋있어서 건물에 들어서면서부터 기운을 받는다고나 할까, 학교 가는 게 너무 좋았어요. 지금 작업실 공간도 좋고요. 작업실 이름을 ‘익선 터미널’이라고 지었는데 익선동에 있기도 하고 작업의 가능성을 많이 열어주는 플랫폼이라는 의미예요. 터미널처럼 열린 공간으로 쓰고 싶어서인지 다들 자유롭게 다니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티포찜머』 같은 작업이 참 의미가 있는 게 만드는 사람의 정신이 담겨 있어서인 것 같아요.
타이포에 대한 성향과 관심도 있지만,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해요. 흔한 소재라고 하더라고 독자의 시선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흥미를 끄는 화려한 글보다 글 자체가 주는 힘이랄까. 문자가 주는 영향도 있지만 『티포찜머』 글을 쓰면서도 한번 읽으면 중간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많은 독자층을 타깃으로 하기보다 스스로 읽을 만한 것을 만들고 싶어요.
올해 계획은 어떠세요?
일 열심히 해야죠. 『티포찜머』 3호를 내야 하는데 6개월에 한 번 나온다는 선입견을 깨고 바로 내볼까(웃음). 그리고 다른 작가분들과 삼원페이퍼갤러리에서 8월에 할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어요. 올해는 기반을 다지는 해가 될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타이밍이 있는 것 같아요. 학생 때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 좋겠고, 일하게 되면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그다음 역량이 더 커지면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하는 것 같아요. 특히 학생 신분이라는 건 특권이거든요. 자신이 동경하는 스튜디오나 만나고 싶은 디자이너가 있으면 만나서 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스스로 부딪치는 경험을 하면 도움이 돼요. 독립출판도 하고 싶으면 스트레스받지 말고 취미처럼 하면 좋고요. 주객전도가 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게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비결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