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베인스(Phil Baines)는 1985년에 영국의 세인트마틴 예술학교(St Martin's School of Art)를 졸업했고, 1987년에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에서 커뮤니케이션 아트 및 디자인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은 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을 시작해, 펭귄북스(Penguin Books), 파이돈(Phaidon), 템스 & 허드슨(Thames & Hudson)과 같은 출판사를 비롯해 메츠 갤러리(Matt's Gallery)와 같은 예술 관련 기관에서 일해 왔다. 디자인뿐 아니라 아이(Eye)라는 잡지와 저널에 투고하고 있으며 <펭귄 북디자인 1935-2005>, <퍼핀 북디자인> 등 4권의 저서가 있다. 현재 센트럴 세인트마틴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Central Saint Martins' Graphic Communication Programme)에서 타이포그래피 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12년 벨기에에서 열린 2012 페르낭 보댕 대상(Fernand Baudin Prize)의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실은 가톨릭 신부가 되려고 3년 동안 수행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느라 약간 먼 길로 돌아온 셈이죠. 수행생활이 저와 맞지 않는다는 걸 도중에 깨닫고는 자연스럽게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항상 예술과 디자인, 건축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 무렵 제 여동생이 대학에서 기초 예술 과정을 밟고 있었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디자인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는 학교를 마칠 때까지 줄곧 같은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펭귄 북디자인 1935-2005>이라는 책을 쓰셨는데요, 펭귄북스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거기서 월급 받으면서 일한 건 아니었고요, 다른 사람들처럼 프리랜서로 일했습니다. 출판사의 Great Ideas 디자인팀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해 볼 수 있었고, 상도 몇 번 탈 수 있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안 데이비드 피어슨(David Pearson)이라는 친구가 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더니 저더러 그 책을 쓰라고 하더군요. 데이비드는 제가 가르쳤던 제자였고 출판사 일을 하면서 더 가깝게 지냈죠. 그래서 책을 쓰는 일이 참 즐거웠습니다. 놀랍게도 집필하는 동안 출판사의 간섭은 거의 없었어요.
디자인 초창기에 도움이나 조언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하셨나요?
저처럼 대학에서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 보세요. 그러면 평생 도와줄 겁니다. 그리고 본인 또한 그 친구들을 돕게 될 거고요. 운 좋게도 대학 다니면서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제가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시간을 아끼지 않고 도와줬습니다.
교육자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계시는데요, 가르침과 실습은 어떻게 균형을 맞추세요?
저는 항상 가르침과 실습 사이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볼 때 기분이 좋습니다. 둘을 분리해서 생각하기는 힘들어요. 그렇다고 교육과 실습 시간을 분배하는 일이 항상 쉽다는 말은 아닙니다.
요즘 열중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디츨링 미술공예박물관(Ditchling Museum of Art & Craft)의 브랜드와 이미지 개선 작업, 전시 디자인 개선 작업을 하던 중인데,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네요. 18개월 동안 계속된 프로젝트인데요, 박물관장님도 아실 테지만 프로젝트 시작 전에 비해 아주 만족스럽게 바뀌었습니다.
작업 프로세스가 궁금합니다.
작업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가장 이상적인 순서는 아이디어를 내기 전에 그 작업의 특수한 면을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일에 착수하면 신속하게 진행합니다. 잡다한 아이디어를 계속 내기보다는 한두 개의 좋은 아이디어를 간추리는 데에 중점을 두지요.
작품 중 가장 만족스럽고 의미 있는 것이 있다면요?
지난 2005년 7월 7일에 일어났던 런던 폭탄 테러를 기억하기 위해 하이드 공원(Hyde Park)에 기념비를 세울 당시에 기념비의 레터링 작업을 했습니다. 아주 자부심을 느끼는 작품인데요, 처음으로 큰 팀의 일원이 되어 건축가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이 제게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추진 위원들은 희생자의 유가족이었어요. 그들의 아픈 마음과 기념비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레터링 작업은 그다지 ‘재미있는’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 일은 아니었지만, 기념비에 사용한 새로운 소재를 다루면서 소재의 특성을 파악하고,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물공장의 전문가들과 보낸 시간은 즐거웠습니다.
디자인 철학이 궁금해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작품의 겉모습보다는 기능 구현에 관심이 있습니다. 어떤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는데요. ‘훼방 놓는 이가 없다면 아름다운 게 아니다. 그건 단지 예쁜 거다.’라고요.
책과 사이니지(signage)같은 걸 모으신다고 들었어요. 디자이너로서 수집과 관련된 이야기를 좀 해 주시겠어요? 그리고 그것이 작품에 영향을 주었나요?
저는 그냥 물건을 모으는 사람이에요. 관심 있는 물건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좋아하고, 항상 그래 왔어요. 그리고 어떤 물건에 대해서 글을 쓸 때, 그것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글이 잘 써지지가 않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이것 때문에 좀 곤란해졌어요…. 집에 물건을 쌓아 둘 공간이 더 이상 없어요. 제 아내도 물건들을 모으거든요.
일하지 않을 때는 보통 뭘 하시나요?
무릎이 괜찮으면 자전거를 탑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만나서 한잔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나에게 타이포그래피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타이포그래퍼라고 생각하게 될 때가 많은데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저는 타이포그래퍼가 아닙니다. 보통 저는 하나의 작업을 위해 그것의 모든 면을 살피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신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말을 항상 사용합니다. 타이포그래피라는 말이 제 특정 업무를 지칭하는 주된 명칭이기는 하지만요.
작품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요?
필요한 건 뭐든지요. 때로는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반성이 되기도 합니다. 나머지 대답은 여러분에게 맡길게요.
일과 삶에 있어서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저는 잘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그리고 관심이 있는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가 좋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워커홀릭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일과 생활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인트마틴 예술학교와 왕립예술대학(RCA) 졸업생으로서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데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세요?
세인트마틴은 좀 더 기초적인 내용을 다룹니다. 디자이너로서의 기본기를 다지게 도와줬죠. 왕립예술대학은 저를 더욱 다듬어주고 더 많은 기회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 드려요. 특히 런던에서 공부하려는 학생이 있다면 어떤 말씀을 해 주고 싶으세요?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세요. 런던에 오게 된다면 런던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 온 이유를 항상 기억해야 해요. 그리고 자신의 문화적 게토를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유학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가 됩니다.
필 베인스 관련 링크 바로 가기
– 디자인한 서체 http://www.myfonts.com/person/Phil_Baines/
– 퍼블릭 레터링에 관한 사이트 http://www.publiclettering.org.uk/
– 레터프레스 작업 http://www.flickr.com/photos/phil_baines/sets/72157633110006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