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장 ‘양’ 양희재와 ‘장’ 장수영은 서체 디자이너다. 두 사람이 함께 서체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한다. 양은 로만체를, 장은 한글을 디자인한다. 로만체와 한글, 한글과 로만체, 양·장, 장·양. 어떻게 ‘함께’일 수 있을까. 두 디자이너가 한 작업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궁금하다. 양장점은 4년차 스튜디오인데, 양·장―로만체·한글 관계는 여전한 호기심이다. 장수영은 올 초 ‘협업 사례를 통한 한글과 로마자의 관계’라는 강연까지 진행한 바 있다. 점 양장점은 서체 디자인 ‘상점’을 표방한다. 서체 디자인 시장의 소상공인이라 할 수 있다. 양희재는 한때 디자인 에이전시 소속이었고, 장수영은 서체 디자인 기업에서 일했었다. 그러다 두 사람은 양장점을 차렸다. 서체 디자이너로서, 서체 디자인으로써 시장 경제에 뛰어든 셈이다. 시장 경제의 원칙은 (무려) 자유 경쟁이다. 상점을 운영하는 양과 장, 녹록지 않을 것 같다. 양·장/점 이 인터뷰에서 양장점은 ‘양·장/점’이다. 양(양희재)·장(장수영)과 (상)점을 구분한 것이다. 어쨌든 ‘양·장/점’은 ‘양장점’이다. 양·장도 (상)점도 늘 열려 있다. 양희재·장수영의 작업은 날마다 개시되며(서면으로 진행된 인터뷰 와중에도 두 사람은 계속 마감에 쫓기고 있었다), 그로써 양장점도 늘 개업 상태다. 안심하고 두 주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로 했다.
2016년 10월 양장점을 시작하신 지 3년이 흘렀고, 이제 4년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양장점’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서체 디자인 시장에 진입하신 지 3년이 넘은 셈인데요. 지난 3년간의 활동을 통해 두 분께서 새롭게 얻은 통찰 내지 교훈 등 『타이포그래피 서울』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양
끝낸 것보다는 과정 중인 것, 계획하고 있는 것, 막연히 꿈꾸는 것들이 더 많아요. 통찰, 교훈 같은 얘기를 전할 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이 말씀만 드리고 싶네요. “우리 모두 열심히 해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됩시다.”
장
이전까지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이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 양과 함께하면서부터는 좀 더 폭넓은 고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개인의 행복을 전제한 희망이잖아요. 장의 행복이 곧 양의 행복이라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예를 들어 제가 학교 선배라는 이유로 양에게 저의 한글 디자인에 맞춘 라틴 알파벳만 줄곧 요구한다면, 양은 적어도 작업적으로는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대 입장일 경우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한글이 글자 수가 훨씬 많으니까 저는 육체적으로도 불행하겠네요···.
결국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간에 양보하고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특히 경제적 관점에서 상품 구성을 기획하고, 사이트를 제작하고, 영업을 하고, 단가를 정하고, 판매 정책을 만들고,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고, 계약서를 작성하는 등등의 제반 업무가 그렇죠. 이런 것들은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이지, 서체 디자인을 하는 직접적인 행위 자체는 아니니까요.
지난 3년은 관계에 따르는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지 않으려 노력하고, 서로를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분업해 나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 질문과 맥락이 이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제 주변의 몇몇 1~2년차 서체 디자이너들의 증언(?)에 따르면, 양장점이 처음 등장했을 때 어떤 희망 같은 걸 느꼈다고 해요. 이른바 ‘서체 디자인 상점’을 표방하는 양장점의 존재 덕분에, 서체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기업의 기성품’이 아니라 실제 양장점의 맞춤양복 같은 ‘친근하고 근사한 상품’으로 변화하리라는 희망요.
여타의 많은 산업 영역과 마찬가지로, 국내 서체 디자인 시장 역시 아무래도 유력 기업들 중심으로 유통망 등이 형성돼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러한 시장 환경이 양장점의 존재를 더욱 선명히 부각시켜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서체 ‘펜바탕’ 같은 경우는 마치 기존의 시장을 향한 두 분의 선전포고(?)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펜글씨도 본문체가 될 수 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서체 한 벌의 제작비 수급이 가능하다!(다양성보다는 시장성에 무게를 두는 기업 관계자라면 ‘컨펌’을 그리 쉽게 해주진 않았을 듯합니다.) 두 분이 ‘서체 디자인 상점 양장점’을 통해 이루고 싶은, 혹은 선사례로 남기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 내지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
장
개인적으로는 언급하신 그 유력 기업들 중심의 유통망에 귀속되지 않는 양장점만의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1차 목표입니다. 서체 디자인은 회사 소속이 아닌 개인 또는 소규모 디자이너 그룹에겐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예요.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매력적인 서체를 그려내는 것뿐 아니라 마케팅, 개발, CS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업무들이 관여하는데, 여기에는 나름의 전문지식 또는 별도의 인력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 하더라도 이미 수백 종의 패키지 구성을 갖춘 기업들을 상대로 질적 또는 양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물리적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양과 장 둘만으로는 힘에 부쳐서 김이박최 등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궁극적으로는 독립해서 글자 만들어도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선례를 남기는 게 목표라 할 수 있겠네요.
양
큰 그림을 그리고 사는 사람은 아니라 명확한 목표가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다는 확신은 있습니다. 그 정도 확신이면 충분한 듯해요. 제가 하고 있는 일, 함께하는 사람이 현재의 나에게 딱 맞는 느낌입니다.
장과 함께 미래를 그리는 대화를 구체적으로 해본 적은 없지만, 어렴풋이 비슷한 방향일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좀 더 잘해내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적어도 당분간은 이전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양희재 작가님이 『비슬라 매거진(VISLA Magazine)』(2019.7.27)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더군요. “양장점 스튜디오는 한글 디자이너와 라틴 알파벳 디자이너로 구성된 스튜디오인 것을 가장 큰 특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글의 콘셉트에서 출발한 라틴 알파벳도 있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출발의 다양성이 우리가 가진 장점이다.”
또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작업의 방식도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어떤 주제를 정해서 서로 작업한 뒤 각자 완성이 되었을 때 모여서 서로 작업을 맞춰본다. 같이 앉아서 토론하고 회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두 멘션의 내용, 그러니까 ①한글 디자이너와 라틴 알파벳 디자이너로 구성돼 있기에 가능한 ‘콘셉트 출발의 다양성’과 ②같이 앉아서 토론도 회의도 거의 하지 않는 완전히 분리된 작업 방식이 제 머릿속에선 동기화가 잘 안 되더라고요. 두 디자이너가 서로 분리돼 작업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양한 콘셉트의 출발로 이어질 수 있는 걸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양희재 작가님, 두 멘션에 대한 부연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양
저는 한글과 함께 하는 라틴 알파벳 작업을 각자 다른 색의 피부를 가진 커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커플이 되는 과정의 처음은 서로의 매력을 발견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선 독립적인 매력이 필요합니다. 한글도 라틴 알파벳도 각자의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매력을 만드는 과정은 독립적이어야 하고요. 두 문자를 디자인하는 방식이 다르고, 디자인의 중요 지점 또한 다르니까요. 두 문자의 디자인 방향이 결정되어 서로의 매력을 정의했을 때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율합니다.
물론 작업의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의사소통이 없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각자의 디자인 방향이 결정되기 이전에는 의견을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한글 같은 라틴 알파벳, 라틴 알파벳 같은 한글. 동양인처럼 수술한 서양인, 서양인처럼 수술한 동양인이 서로의 매력을 발견하기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유전적으로 다르기 때문이죠.
처음 스튜디오를 시작했을 때 저와 장수영 디자이너는 1년을 함께 살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심도 있게 토론하는 문화는 아니었지만, 간접적으로 한글 디자인의 과정을 지켜봤고, 그 과정이 내가 배운 라틴 알파벳 디자인과는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과정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부분에서 다른 지점들을 발견했어요.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분리함으로써 서로에게 다른 지점을 찾는 기회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점들이 서로의 문자에서 다양한 콘셉트의 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계방향] ‘Actual’, ‘It is My Private Toolbox’, ‘Fifty’, ‘Sfont’
장수영 작가님이 올 초 진행하신 ‘인스퍼레이션디’ 특강 커리큘럼이 인상적이었어요. ‘협업 사례를 통한 한글과 로마자의 관계’라는 챕터요. 사실, 두 분이 양장점을 시작하실 때 저 또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한글 디자이너와 로만체 디자이너, 한글 디자인과 로만체 디자인, 과연 어떤 형태의 관계 맺기가 생성될 수 있을까, 라는 점이 퍽 흥미진진했거든요. 서체 디자인이라는 하나의 영토를 공유하되, 한 사람은 한글, 또 한 사람은 로마자라는 거주 공간을 갖고 계신 셈인데요. 실제 작업 과정에서 두 분은 어떤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 나가고 계신지요.
장
단순히 한글과 로만체 디자이너로만 보기에는 훨씬 더 복합적인 관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때로는 양이 먼저 제작한 라틴 알파벳을 참고하여 제가 한글 서체를 만들기도 하고, 또 때로는 제가 먼저 제작한 한글 서체를 통해 양이 라틴 알파벳을 디자인하기도 합니다. 양이 자신의 그래픽 작업에 필요한 한글 레터링을 저에게 의뢰하기도 하고, 거꾸로 제가 만든 한글 로고타입에 어울리는 조합의 라틴 알파벳을 양에게 의뢰하기도 합니다.
한 주제로 동시에 작업을 진행하면서 둘이 맞춰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서로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는 독립적인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저희가 이상적이라고 판단하는 방식으로 협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클라이언트에 의해 타의로 협업 방식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각자의 프로젝트에 따라 서로에게 필요한 작업을 의뢰하고 설득하는 관계가 되기도 했다가, 제삼자의 입장이 되어 서로의 결과물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혼자였다면 하지 못할 값진 경험들이기에 결론적으로 지금의 이 관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양장점이 참여한 최근의 두 전시(〈타이포잔치 사이사이 2018-2019〉, 〈New Wave ll: 디자인, 공공에 대한 생각〉)는 제가 느끼기엔 마치 두 분의 매니페스토 같았습니다. 뭐랄까, 서체 디자이너로서의 지향점 혹은 두 분만의 세계관을 전면에 선언하신 듯했다고나 할까요.
우선, 〈타이포잔치 사이사이 2018-2019〉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참여 프로젝트 이름인 「조화를 위한 실험」이란, 두 분과 정말이지 잘 어울립니다. 일단 표면적으로, 한글 디자이너와 로만체 디자이너가 ‘조화’를 이루어 스튜디오를 결성한 것 자체가 ‘실험’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저는 ‘조화’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질문해보겠습니다. 디자인적 측면에서, 두 분이 제시한 ‘조화’라는 키워드는 어떤 의미를 갖나요?
양
「조화를 위한 실험」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은 “왜 우리는 다른가? 다른 이유가 서로 다른 문자를 디자인하기 때문인가?”였습니다. 양과 장이 조화롭다고 생각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 문제가 있었던 적도 없었어요. 이 지점에서는 장이 선배로서 이해해주는 부분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 같아요. 저는 장수영 디자이너에게 작업자로서 존중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조화롭지는 않아요.
참여 프로젝트 「조화를 위한 실험」
설치: 임정주
장
양과 같은 의견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양과 장 각자의 성장 배경이 다르듯, 한글과 라틴 알파벳 디자인 또한 다른 태생과 환경에서 각각 발전해왔습니다. 양과 장이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을 위한 100퍼센트 맞춤형 존재가 될 수는 없듯, 서체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국적의 고작 30년 산 인간 개체끼리도 그러한데, 훨씬 더 방대하고 오랜 역사를 지닌 한글과 라틴 알파벳은 오죽할까요. 공통된 주제를 함께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조화의 충분조건은 성립된다고 생각합니다.
「조화를 위한 실험」은 다른 문자를 디자인하는 양과 장의 조화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업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스스로가 작업 자체를 언어화하거나, 언어적인 콘셉트를 조형화하는 부분에 있어 이미 고착화 혹은 관습화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메타적 성격의 작업이기도 해요.
“‘미래지향적인, 유려한 곡선 표현’ 같이 서체의 인상이나 감성을 전달하는 우리의 언어가 실제 조형과 부합하는가. 상업성을 전제로 한 서체 디자이너가 설득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적 표현은 조형적인 그것과 실제로 조화로운가. 간극이 있다면 이를 좁히는 훈련을 각자의 문자가 아닌 순수 조형으로 시도해보면 좀더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까” 같이 조화에 대한 여러 의미의 고민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이번에는 〈New Wave ll: 디자인, 공공에 대한 생각〉에 대한 질문입니다. 어떤 전시의 경우는, 그 전시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로서 메시지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전시 참여 자체가 전시작 못지않은 메시지가 되는 셈이랄까요. ‘디자인, 공공에 대한 생각’이라는 제목의 전시에 참여했다는 건, 그러니까 ‘양장점은 공공에 대해서도 고민한다’라는 메시지로 읽히거든요. 서체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혹은 서체 디자이너로서 ‘공공’이란 키워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또는 어떻게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양
저는 개인적인 관심에서 출발해 디자인을 합니다. ‘공공’이 여러 사람이 모여 힘을 함께 한다는 뜻이라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개성의 서체가 있어야 사용자의 선택지가 늘어나고 타이포그래피 생태계에 활력이 될 겁니다. 서체 제작자들의 사적 관점의 서체들이 산업의 다양성이 되고 그 다양성이 공적 가치로 치환될 거고요.
서체 디자인은 폰트 파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폰트 사용자의 손을 거쳐 다양한 디자인 결과물의 요소로서 완성됩니다. 그 때문에 서체 디자이너는 서체를 사용할 가상의 인물과의 관계가 늘 성립돼 있어요. 이 관계 속에서 서체 디자이너의 개인적 관점이 담긴 폰트는 100퍼센트 사적인 결과물이 될 수 없죠. 폰트를 만든 이와 쓰는 이의 관점이 섞여 결과물을 만든다면 그것은 공적인 물건이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관점이 섞인다면 나의 개인적 견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장: 이상우 / 프로그래밍: 김동우 / 3D 모델링: 임정주
장
제가 해당 전시의 홍보를 위해 개인적으로 썼던 글로써 답변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공공’은 ‘관계’이다. 개인의 관점에서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거시적인 관계일 수도 있으며, 집단의 관점에서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시적인 관계일 수도 있다. 동시대 및 특정 장소를 공유하는 이들 간의 현실적인 관계일 수도 있으며, 이상 또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들 간의 관념적인 관계일 수도 있다. ‘문자’는 이러한 공공이라는 관계 속에서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가장 상징적인 ‘공공재’이며, ‘서체’는 오랜 시간 문자를 매개로 한 수많은 관계 속에서 파생·축적되어 온 문자의 다양한 ‘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체 디자인’은 텍스트가 생산되어 전달·파급되는 중간 지점에 존재한다. 화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텍스트의 태도를 구체화하며, 이를 통해 화자와 독자의 관계를 섬세하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펜바탕 Regular’는 도구적·표현적 관점에서 드러나는 문자 표정의 단면들을 본문용으로 재구성한 서체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제시하는 서체가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맥락에서 좀 더 새로운 관계로 다가가길 바란다. 금호미술관으로 고고씽. 입장료 5,000원.
참여작 「네모꼴 안에서의 한글 닿자들」
양장점의 2020년 계획, 그리고 두 분 각자의 새해 계획이 궁금합니다.
양
양장점으로 돈을 버는 일보다 양장점이 돈을 써서 우리 것을 만드는 일에 시간을 더 쓰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국외로 판매하는 라틴 알파벳 서체를 발표하는 것이 계획입니다.
장
이미 많이 지체된 ‘펜 시리즈’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내는 것. 판매 사이트를 오픈해서 안정적인 수익이 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10년째 실패 중인 다이어트 성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