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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 ‘둘셋’ 방정인·홍윤희

    둘+셋 말고, 둘×셋도 말고, 꼭 ‘둘셋’이어야 하는 이유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20년 10월 19일

    스튜디오 ‘둘셋’ 방정인·홍윤희

    둘셋(studio twothree)은 그래픽 디자이너 방정인과 공간 디자이너 홍윤희의 스튜디오다. 그래픽 디자인이 2차원이라 ‘둘’, 공간 디자인이 3차원이라 ‘셋’이다.
    
    둘과 셋의 조합에 방정인·홍윤희는 굳이 수식(數式)을 넣지 않는다. 둘+셋, 둘×셋 말고 그냥 둘셋이다. 스튜디오 둘셋이 지향하는 결과물은, 둘에 셋을[셋에 둘을] 더한다거나 둘을 세 배[셋을 두 배] 늘리는 식의 정량적 산출물이 아니다. 둘인 줄 알았던 것에 셋의 가능성을 부여하기, 둘과 셋이 실은 서로를 품고 있음을 은은히 알리기··· 이런 쪽이 스튜디오 둘셋의 방향성과 좀더 맞다.
    
    어쩌면 ‘둘셋’은 방정인·홍윤희가 표방하는 감응의 상징어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둘-그래픽 / 셋-공간’을 의미하는 지시 대명사가 아니라. 두 디자이너는 일상 속 여러 요소들 간의 상호 감응을 구현하고 싶어하는데, 이를 “판이해 보이는 두 요소 사이에 디자인이라는 징검다리 놓기”라 표현한다. 아마도 그 다리의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둘셋’은. 방정인과 홍윤희는 둘셋,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다.

    “2차원과 3차원, 디자인과 문화, 작업과 일상의 융합점이 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합니다.”
    ···라는 스튜디오 소개문이 인상적입니다. 사실, 이 문장에 끌려서 두 분을 꼭 뵙고 싶었어요. 그래서인지 스튜디오 둘셋의 여러 작업 영역 중에서도 ‘공간’ 쪽을 오래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또 끌리게 된 것이, 와인바 심퍼티쿠시 작업입니다. 3개 지점(경복궁점·역삼점·한남점)의 공간 디자인을 진행하신 것이지요? 특히 경복궁점 천장의 서까래가 상당히 이색적이에요. 기와 지붕 아래에서 와인을 마신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런 게 스튜디오 둘셋이 지향하는 ‘융합’이라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심퍼티쿠시의 공간 디자인을 하나의 사례로서, 스튜디오 둘셋의 ‘2차원-3차원, 디자인-문화, 작업-일상의 융합점 되기(만들기)’란 어떤 것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둘 ― 방정인
    우선 관심 주셔서 반갑고 고맙습니다. 해당 문장은 스튜디오 시작 초기에 만든 문장인데요. 소개문이지만 사실, 바람을 담았습니다.(웃음) 둘셋 자체가 ‘둘’과 ‘셋’의 융합인 만큼, 각자의 역할을 모아서 시너지를 내고자 하는 마음이 시작이었어요.

    그뿐 아니라 저희에게 디자인은 업무이기도 하지만 관심사와도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곧 작업 영역이 되며 일상이기도 합니다. 취향과 관계된 일만 할 수는 없지만, 사실 디자이너이다 보니 많은 것에 관심을 두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도 납득이 되는 일에 참여해서 마음을 잘 연결하고 싶은 뜻에서 정리해본 문장입니다.

    프로젝트 이야기를 해보면, 심퍼티쿠시는 제가 즐겨 찾는 한남동 골목에 오픈한 캐주얼 와인바입니다. 나름대로 술을 즐기는 저희에겐 흥미 있는 테마였어요. 자주 다니던 곳, 좋아하는 콘텐츠의 브랜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 업무와 여가의 융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저는 브랜드 디자인으로 공간과 와인을 잇는 역할을 맡았어요. 엠블럼에 쓰인 아치 형태는 와인의 테이스팅 노트(tasting note)를 이루는 펜타곤이면서, 실제 매장의 기둥과 천장 형상이기도 합니다. 로고 형태를 단순히 사이니지로서 공간에 설치하기보다, 로고 자체의 개념과 시각성을 특정 공간 안에 하나의 볼륨(volume, 부피에서 오는 느낌)으로 구현하고 싶었어요.

    이런 작업 의도 역시 융합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융합’이란 말 자체가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데, 저로서는 공간과 연결 지어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어요. 콘텐츠를 시각화한 그래픽을 경험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일, 이라고요.

    셋 ― 홍윤희
    에디터님이 ‘기와 지붕 아래에서 와인을 마신다면 어떤 기분일까’라고 궁금증을 가져주셨듯, 저 역시 작업할 공간을 마주할 때마다 ‘이 빈 공간을 어떻게 매만져야 사용자의 호기심에 닿고, 이후에 이곳을 채울 모든 게 하나로 잘 엮일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합니다. 심퍼티쿠시 경복궁점도 마찬가지였어요.

    클라이언트께서 100살 먹은 한옥을 구해 오셨는데, 그 공간을 ‘와인바’라는 테마로 꾸미는 작업이었습니다. 이걸 대체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한옥은 너무나 한국적이고, 와인은 지극히 서양 술인데, 이 둘을 동시에 챙겨 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실마리가 쉽게 안 풀리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경복궁의 적색 기둥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컬러로부터 시작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짙은 적색을 매개체로 한옥과 와인을 한 바운더리로 묶어보자는 구상이었죠. 다행히도 이 적색이 한옥과도 이질감 없이 어울리고, 와인 본연의 색도 잘 담아내주었습니다. 경복궁 기둥 색을 배경색 삼아 다른 요소들을 추가하고 적절히 한데 묶어 가면서 ‘한옥 와인바’라는 다소 어려운 테마를 서서히 풀어낼 수 있었어요.

    판이해 보이는 두 요소 사이에 디자인이라는 징검다리를 놓는다, 그럼으로써 상반된 두 가지는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진다, 그것도 아주 매끄럽게-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공식이 긴 수학 문제를 풀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쾌감이 있습니다. 아, 참고로 수학은 잘 못합니다.(웃음)

    그래서 더 치열히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다리를 놓아야 할까, 하고 말예요. 공간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요소, 그 사이사이에 과연 어떤 다리를 놓아야 융합점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 제 나름의 시뮬레이션을 반복적으로 해보는 편입니다.

    공간 얘기를 좀더 해도 될까요? 스튜디오 둘셋이 작업한 공간들에서 공통점이 보였습니다. ‘식물성’요. 심퍼티쿠시도 그렇고, 스튜디오33이나 낙성대 나인온스버거 매장, 2018 설화문화전 〈FORTUNE LAND(포춘랜드) – 금박展〉 전시 공간, ···. 모두 식물성이 느껴졌습니다. 어떤 데는 화분이, 또 다른 곳엔 통나무가 놓여 있고. 계간 『디렉토리 매거진』 3호에 소개된 둘셋의 작업 공간에도 식물들이 많더군요. 혹시 두 분에게 식물이란 영감을 주는 오브제 같은 것인가요?

    둘 ― 정인
    둘셋 초창기에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과천 화훼단지에서 식물을 사 온 거였어요. 저희 둘 다 식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당시엔 일이 별로 없어서 시간도 많았거든요. 지금 돌이켜보면, 좁고 어둑한 데다 콘크리트 마감으로 된 첫 작업실에 생기를 돋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식물의 푸르름으로요.

    언어로 구체화할 수 없는 어떤 미(美)를 식물에게서 느껴요. 일종의 동경이랄까. 그래픽을 하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벡터, 기하학적 형태, 단순화된 표현에 많이 노출(?)되는 편이거든요. 그래픽으로 감히 흉내내기 어려운 자연의 감수성을 곁에 두고픈 마음 아닐까 싶습니다. 식물과 가까워지고 싶은 이유는요.

    셋 ― 윤희
    영감까지로는 거창할 것 같고, 식물과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공사장에 머무는 시간들이 길어지면서였던 것 같네요.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저희가 공사 감리를 나가거든요. 몇 달간 내리 공사 소음, 먼지, 온갖 치수(measure) 등등에 둘러싸여 지내야 해요. 그런 속에 있다 보면 별안간 머리가 지끈해집니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지는 순간이 도래하는 거죠. 그럴 때 바람 소리만 들리는 곳, 파란 하늘과 초록 자연이 펼쳐진 곳을 찾아가면 정말 신기하게 머리랑 입으로 ‘정말 좋다~’라는 말을 한없이 반복합니다. 마음도 한결 편안해지고요.

    이런 이유로 주말이면 직접 자연을 찾아가기도 하고, 평소에도 곁에 식물을 두려고 해요. 예전엔 다이내믹한 도심을 당연히 더 좋아했거든요. 지금은 자연을 찾는 빈도수가 점점 늘고 있네요. 자연이 찍어주는 쉼표는 시끄러워진 마음을 고쳐먹을 때마다 도움을 받습니다. 자연 경관의 규모가 크든 작든, 자연의 쉼표는 언제나 효과가 좋더라고요.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하신 바대로, 둘셋은 그래픽 디자인[2D, 둘]과 공간 디자인[3D, 셋]의 결합을 지향하는 스튜디오입니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19 시국이잖아요. 3D 쪽의 사정이 녹록지 않을 것 같습니다.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디자이너들의 생활(혹은 생존) 방식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는데요.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디자인 스튜디오의 운영자로서 두 분은 어떻게 대처해 나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둘 ― 정인
    다행이라 해야 할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들어왔던 일이 취소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일정이 미뤄진다거나, 본래 오프라인이었던 걸 온라인으로 옮겨 진행하는 등등의 변동은 무척 많았습니다. 특히 코로나 상황이 조금 나아졌던 지난 5월에 정말 바빴어요. 연기됐던 작업들이 한꺼번에 재개됐거든요.

    이 시국을 통해 뭔가 확실히 달라졌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디자인 작업을 했던 ‘별의별 도시기록가’라는 세미나 프로그램이 대면 강연에서 온라인으로 변경됐었는데요. 그러면서 기존 홍보물 관련 디자인에서는 해본 적 없던 유튜브 섬네일을 어플리케이션으로 진행하게 됐어요.

    평소라면 현수막이나 엑스배너, 리플릿 같은 인쇄물을 작업했을 거예요. 그런데 유튜브 섬네일이라니! 기분은 이상했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변화였습니다. 시대가 정말 달라지고 있구나, 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어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디렉터 분도 기존에 해본 적 없던 영상 촬영과 유튜브 업로드 업무를 맡아야 했고요. 플랫폼과 운영 방식 모두 크게 변하고 있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아직까지는 ‘대처’라고 할 만큼 작업 방식이 크게 변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디자인 결과물이 퍼블리싱 되는 구조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는 걸 실감하는 만큼, 작업 방식을 다양화하고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둬야 할 것 같아요.

    셋 ― 윤희
    모두가 그랬듯 올 연초엔 저도 활동을 자제하고 집에서 OTT 서비스와 함께 꽤 오랜 시간을 보낸 것 같네요.(웃음) 그런데 어느 시점을 지나고 나니까 오히려 ‘요즘 같은 때 공간을 손보자’ 하고 생각을 전환하시는 클라이언트 분들이 생기더라고요. 공간을 손보는 일이란 게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니까요. 제 주변이나 언론 기사를 봐도, 인테리어나 홈스타일링에 대한 수요가 확실히 늘어난 것 같더라고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공간을 주의 깊게 보게 된 거죠.

    이런 양상에 맞춰서 관련 시장도 함께 커진 걸 느낍니다. 덩달아 저도 OTT랑 멀어져서 바쁘게 지내는 중이에요. 코로나는 사라지되, 요즘 같은 시장 상황은 오래 유지됐으면 좋겠네요.(웃음)

    ‘별의별 도시기록가’ 포스터와 유튜브 섬네일 디자인, 2020
    한국·태국 수교 60주년 기념 복합문화행사 ‘사바이 사바이’ 포스터 디자인, 2018
    [좌] 도심제조지역 공공미술 프로젝트 전시 〈을지금손박물관〉 포스터 디자인, 2017
    [우] 서점 인덱스 오픈 기념전 〈USEFUL WORDS〉 출품 포스터,
    ‘우리의 평화 앞에 그들의 죽음은 무죄, 그들의 죽음 앞에 평화는 유죄’, 2017

    그래픽 작업물들의 타이포그래피가 눈에 띄었습니다. 〈미디어 펑크: 믿음·소망·사랑〉 같은 전시 아이덴티티, 문화 행사 ‘사바이사바이’ 아이덴티티, 〈을지금손박물관〉 포스터, ‘우리의 평화 앞에 그들의 죽음은 무죄, 그들의 죽음 앞에 평화는 유죄’ 포스터의 글자 다룸새가 인상적이었어요. 콘셉트를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글자를 상당히 중점적으로 활용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멋대로의 감상입니다만, 부연 설명(또는 반박!)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둘 ― 정인
    〈을지금손박물관〉 작업은 글자를 새로 만든 사례, ‘우리의 평화 앞에 그들의 죽음은 무죄, 그들의 죽음 앞에 평화는 유죄’ 작업은 글자를 메시지와 맥락에 맞게 재해석한 사례입니다. 〈미디어 펑크: 믿음·소망·사랑〉 전시 작업은 반짝이는 형태의 그래픽과 글자를 섞어서 전시 테마와 맥락에 맞게끔 디자인한 경우고요.

    이 밖에도 다양한 작업 방식을 동원해서 글자를 사용하는 편입니다. 글자는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 요소잖아요. 형태나 이미지 같은 그래픽 요소와 만나고 연결될 때, 작업물 안에서 글자의 개연성과 아이덴티티가 더 공고해진다고 생각해요. 제가 타이포그래피를 다방면으로 시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 나름의 그럴듯한 작업론입니다만, 달리 생각하면 제 자신이 글자에 의지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지난해 설화문화전(화장품 브랜드 설화수가 문화 메세나 일환으로 기획하는 전시) 〈미시감각: 문양의 집〉 작업 때 글자를 다양하게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설화문화전의 기획 의도는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되짚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널리 알린다, 라는 건데요. 작년 주제는 ‘문양’이었습니다. 저로서는 주제도 좋았고, 한자를 재료 삼아 레터링을 해본다는 점이 무척 재미있었어요. 타이포그래피적 유희라고 해야 할까요?

    ‘전통의 미’를 콘셉트로 레터링 작업을 한 뒤, 이 형태를 변주하고 확장하며 전체적인 전시 아이덴티티를 이끌어가도록 방향을 잡았습니다. 전시 타이틀은 최대한 깔끔하고 정교한 인상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포스터 및 리플릿 디자인 작업 시 한글과 한자는 ‘초설(初雪)’, 라틴 알파벳은 ‘가라몬드(Garamond)’를 썼습니다.

    두 서체의 간결하고 시원한 공간감, 유려한 곡면, 단단하고 정교한 형태감이 전시의 속성과 잘 연결된다고 판단했거든요. 당시 초설이 공식 유통되기 전이었는데, 제작자인 채희준 디자이너님이 감사하게도 서체를 제공해주신 덕에 기쁘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 타이틀인 ‘미시감각’을 한자 ‘微視感覺’으로 표현한 건 제 나름의 전략이었어요. 한자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한자어를 곧바로 읽어내기란 어렵겠죠. 즉, 글자를 이미지로 인지하게 되는 겁니다. 이 점에 착안해서 한자를 이미지처럼 활용하려고 했어요. 微視感覺 네 글자의 형태와 내용으로 전시 맥락을 세련되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단, 과도한 시각화 탓에 전혀 글자처럼 안 보이게 되는 상황은 피하려고 주의했습니다.

    전시의 근간이자 메인 작품 중 하나인 조선시대 〈화조도 10폭 병풍(花鳥圖十幅屛風)〉의 테마를 바탕으로, 微-視-感-覺 레터링을 전통의 미를 지닌 꽃잎과 잎사귀로 형상화했습니다. 각 글자에 해당하는 문양은 화조도의 상징물과 엮어서 ‘微[열매]- 視[꽃]- 感[나비]- 覺[새]’로 디자인했고요. 레터링한 타이틀의 획 형태는 그래픽 유닛으로도 사용했어요. 약간의 변주를 입혀서 리플릿, 소품, 레이어드 게이트 등 전시 어플리케이션 전반에 썼습니다.

    제게 타이포그래피는 그래픽 디자인 영역의 가장 기본 재료 혹은 도구로 기능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타이포그래피 관련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수업 자료를 정리하는 동안 한 번 더 저만의 정의를 내려봤었어요. ‘타이포그래피는 디자인의 재료이자, 그것을 고르고 다듬고 다루는 방법’이라고요. 제 경우엔 서체를 고르고, 섞고, 재해석하거나, 콘셉트를 형태에 담아 새로운 글자를 만들기도 합니다. 글자를 디자인 재료로 쓰기 위한 여러 시도들인 셈이에요.

    조선시대 화조도(花鳥圖)의 네 상징물을 바탕으로 제작한 전시 아이덴티티 문양
    좌측 문양부터 시계방향으로 나비, 꽃, 새, 열매
    (하단 문양은 설화수의 브랜드 문양이기도 하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에 ‘인터뷰/애프터뷰’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인터뷰이 분들을 수 년이 지나 다시 인터뷰하는 시리즈예요. 그간 무슨 일을 겪었는지, 어떤 변화를 맞았는지 등등을 이야기해보는 겁니다. 만약 5년 후에 ‘인터뷰/애프터뷰’로 『타이포그래피 서울』과 재회(!)해주신다면, 그때쯤 스튜디오 둘셋은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세요?

    둘 ― 정인
    와, 5년이라니! 저희가 올해 10월 16일이 딱 사업자 등록 4주년이었거든요. 벌써 5년차에 접어드네요. 사실 저는 지금이 아주 좋습니다. 드디어 조금 균형을 찾은 느낌이랄까요? 한 곳에 너무 치우치지 않고 일도 열심히 하고, 친구와 놀러가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가족과 시간도 보내고 있어요.

    이 상태를 좀더 유지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5년 만에 이루어낸 상황인 만큼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너무나 잘 아니까요! 스튜디오 초기에 일이 없을 때, 현재를 충실히 잘 해내면 그것이 자연스레 좋은 발판이 되리라는 마음가짐이 있었어요. 4년이 지난 지금, 그 생각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고 앞으로도 쭉 가져가고 싶습니다.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어요. 5년 후도 금방 오겠죠? 둘셋을 시작하고 1년이 되던 때에 생존 기념으로 1주년 파티를 했었거든요. 보고픈 사람들과 얘기 나누고 놀자는 핑계로 추진했던 조촐한 연말 파티였습니다. 벌써 세 번이나 파티를 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올 연말은 저희 둘만 조용히 보내야겠네요.

    5년 후면 둘셋은 10주년이 되는데요. 그때쯤 가질 수 있길 바라는 ‘10년 차의 여유’와, 1주년 파티를 했던 순간의 ‘신인 같은 마음’이 어우러진 모습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온 세계가 하루빨리 활력을 되찾길 바라는 현 시점의 소망을 담아 성대한 10주년 파티를 하겠어요!

    전주국제영화제 〈100필름 100포스터〉 출품작
    [좌] 〈레모네이드〉(이오아나 우리카루 감독), 2018 / [우] 〈청연〉(윤종찬 감독), 2019

    셋 ― 윤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정도 잔잔함으로 꾸준한 상태였으면 합니다. 혹은 조금만 더 시끄럽게?(웃음) 사실 이건 5년차쯤 되니 요즘 들어서 더 생각이 많아진 부분이긴 해요. 지금까지는 계속 ‘그래!’만 외치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거든요. 이제는 어느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달려야 좋을까를 고민하는 시기입니다. 분명한 답은 아직도 못 내렸어요. 딱히 답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결국 다 나름의 양면이 있는 것 같고.

    이대로를 잘 유지해보자, 라고 일단은 길을 잡아보기로 했습니다. 어떤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게, 정말로 그대로 있는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보이지 않는 노력이 꽤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노력하는 시간이 지속되면 어느 틈엔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같고요.

    요즘 같은 시대에 너무 묵묵하고 조용하면 묻힐(?) 위험이 커 보이긴 하지만, 꼭 몸집이 크고 요란한 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갈수록 굳어지고 있습니다. 5년 뒤에도 안 무너지고 다방면으로 적당함과 꾸준함을 단단하게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겠지요···?(웃음)

    오래된 건축물을 발굴/중개하는 공간연구집단 ‘초현실부동산’ 아이덴티티 디자인, 2020
    (방정인은 초현실부동산의 전문가 그룹 일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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