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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 ‘가가린’ 유현아

    스물아홉 살, 그래픽 디자이너로 전직하다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20년 11월 30일

    스튜디오 ‘가가린’ 유현아

    가가린(Gagarin)은 2019년 문을 연 1인 스튜디오다. 주인 유현아는 순수 미술을 전공한 뒤 5년간 학원 강사 일을 하고 얼마간 식물 가게를 하다 ‘뒤늦게’ 그래픽 디자인을 시작했다. 스물아홉 살이 되어 첫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고 디자인 계통 현업에 발을 들였다. 건조하게 소개하자면 ‘스튜디오 운영 2년차 신진 독립 디자이너 유현아’다.
    
    아재 용어(?)로 ‘사연 사연 노사연’ 없는 디자이너들이 있을까. 저마다 각양각색 굴곡과 시행착오를 딛고 짚고 넘어 데뷔를 하고 커리어를 쌓아간다. 어떤 디자이너를 인터뷰이로 섭외하려 할 때, 일반적인 고려 사항은 그러저러한 ‘사연’이 아니라 ‘작업’이다. 즉 ‘결과’다. 어떤 작업물을, 무슨 결과물을 내놓고 있는가, 하는 것에서 우선은 인터뷰어의 궁금증이 촉발된다.
    
    그래픽 디자이너 유현아의 경우는 예외다. 에디터가 호기심을 품은 지점은 그의 작업-결과가 아니라 ‘시작’이었다. 요컨대 유현아는 서른을 목전에 두고 디자인 분야로 전직(轉職)한 인물이다. 전직 자체는 딱히 사건이 아니다.(이 또한 사회의 수많은 ‘사연 사연 노사연’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전직의 시점이 인생 29년차일 때고 그 환승 노선이 디자인으로 향한다면 『타이포그래피 서울』에겐 충분히 사건으로 읽힌다.
    
    유현아 본인은 “늦은 나이에” 디자인을 시작했다 말하지만, 스물아홉 살 정도면 취업 적정 연령이라 할 만하다. 달리 말해, 이직이나 전직의 시기로는 꽤 이른 나이대다. 에디터 멋대로는 유현아의 말을 이렇게 정정해보고 싶다. 대단히 이른 나이에 디자인으로의 전직을 속행했다, 라고. 이것이 그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다. 스물아홉에, 재빨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한 방법과 절차’가 궁금했던 거다.

    올가을 진행하셨던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 『산책, 서울의 글자들』(단행본)을 통해 ‘디자이너 유현아’를 알게 됐습니다. 펀딩 설명 글 말미에 짤막하게 덧붙여진 창작자 소개가 눈에 띄었어요.(이 소개문이 책에도 실려 있더군요.) 그래서 인터뷰 요청까지 드려본 것이고요.“디자인 비전공자”이자 “늦은 나이에 (디자이너 직무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라고 쓰셨던데요. 『타이포그래피 서울』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한 번 더 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계기로 뒤늦게 디자인을 시작하게 됐는지, 독학의 시간과 1인 스튜디오 설립 과정은 어땠는지 등등,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셔도 괜찮습니다.(웃음)

    안녕하세요, 스튜디오 ‘가가린’ 디자이너 유현아입니다. 인터뷰는 태어나 처음이라 얼떨떨하네요. 제가 부족하지 싶지만, 책을 낸 이유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제 소개를 조금 자세히 해볼게요. 저는 현재 강남에서 1인 디자인 스튜디오 가가린을 1년 조금 넘게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제 이력이 조금 특이해서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우선, 전공은 ‘순수 미술’입니다. 대학 졸업 후 대부분 동기들이 그랬듯이 저도 대학원에 가려고 했습니다. 작가로서 활동을 하고 싶었다기보다, 하던 것이 그림 그리는 일이라 그렇게 생각했어요. 제 밑으로 동생이 둘이나 있어서 대학원비는 직접 벌어야 했기에, 미술 학원에서 강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5년이나 강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원에 대한 꿈도 점차 희미해져 갔어요. 먼저 대학원에 간 동기처럼 졸업 후 평범한 직장인이 되거나,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거나, ···. 제 미래를 그리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뻔히 보이는 미래에 대한 실망감이 커져 대학원에 들어갈 마음도 사라질 때,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어요. ‘사람 관계’에 너무나도 지쳐 있었고, 스스로 발전이 없는 강사 생활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저 자신도 모르게 이 쳇바퀴 같은 상황을 벗어나게 할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것 같아요.

    당시 제 뇌리에 꽂힌 말이 ‘죽기 전 가장 큰 후회는 해본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다’라는 것이었어요. 충분히 예상되는 범주 안의 삶이 아닌, 내가 그린 나만의 인생을 찾으려 했어요. 그때 다른 고민도 없이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 하고 결심했습니다. 제 스스로 미래에 대한 목표를 삼은 게 이때가 처음이었어요. 돌이켜보면 그림을 전공으로 정한 것도 부모님과 선생님의 추천이었고, 대학교 진학도 꼭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주위 친구들에게 물어 국가에서 취업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내일배움카드’라는 걸 만들고 편집 디자인 코스를 등록했죠.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을 배우고 포트폴리오까지 완성할 수 있는 6~8개월 커리큘럼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기초부터 배웠어요. 사실 어릴 때 호기심이 많아서 포토샵 정도는 독학으로 배워 홈페이지도 만들곤 했어서 어려운 건 없었습니다. 그래도 작은 것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푼 것 같았거든요.

    제34회 서울여자대학교 현대미술전공 졸업전시 〈Ballon〉 포스터 디자인, 2020

    배우고, 포트폴리오 완성하는 기간 포함해 1년 조금 넘게 걸렸던 것 같아요. 어느새 저는 스물아홉 살이 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알았어요. 저는 좋아하는 게 참 많더라고요. 어릴 적에 아빠 따라 보게 된 영화나 내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들요. 그리고, 그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항상 동경하고 매우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자라면서 흡수한 문화 예술들이 제 폭풍 같은 마음속 파도를 다스려주어 지금의 제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 포스터를 디자인하거나 음반 아트워크를 작업하고 싶었어요. 그게 디자이너가 된 이후의 목표였습니다.

    가고 싶었던 영화 관련 회사에 지원해서 최종 합격까지 했는데, 출근하라는 전화에 제가 죄송하다고 하고 거절했어요.(웃음) 비슷한 시기에 면접을 봤던 또 다른 회사가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어서 힘든 길을 자처했습니다. 고민도 없이요. 그렇게 직장을 다니며 기대 이상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일이 너무 좋은 나머지 공휴일, 주말 출근도 자처했고요. 아침 8시부터 새벽까지 일하고 동료 분들과 삼겹살에 소주 마시고 퇴근하는 게 일상다반사였습니다.

    고된 하루를 다 같이 마무리하면서 전우애 같은 것도 느꼈지만, 득이 있으면 실도 있듯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아마도 번아웃이 왔던 것 같아요) 직장을 그만두고 식물 사업을 했어요. 좀 특이하죠? 제가 고민 오래하는 성격이 아니라 퇴사하고 얼마 안 있다가 친동생이랑 이태원 쪽에 식물 가게를 차렸거든요. 좀 해보니 아무래도 동생과의 동업은 영 아닌 것 같아서 본가로 내려가 부모님 땅에 농장을 짓고 본격적으로 식물을 수입해서 인터넷으로 팔다가··· 그러다가 다시 디자인을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시작했는데 감사하게 의뢰가 꾸준히 들어와서 아예 사업자를 냈어요. 그렇게 이윽고, 지금의 상태(?)가 된 것이랍니다.

    식물 가게 ‘플럼(Plum)’ 아이덴티티 디자인, 2017

    『산책, 서울의 글자들』은 서울시 권역 12개 동(성수·을지로·한남·이태원·신사·상수·합정·망원·연희·연남·청담·압구정)의 간판 사진들을 수록한 일종의 기록물입니다.(TMI 같긴 한데, 「상수·망원·합청」 챕터에 실린 스키야키집 ‘illda’는 지난달에 영업을 종료했더라고요. 이제 온라인 주문만 받는다고 하네요. 회사 근처라 종종 갔던 곳이거든요.)
    맨 처음 「성수」부터 마지막 「청담·압구정」 챕터까지 주-욱 본 뒤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영어 간판이 정말 많다!’ 만약 한글 간판 사진들이 없었다면, 여기가 서울인지 뉴욕인지 홍콩인지 전혀 분간을 못 했을 거예요. 일부러 의도하신 건 아닌 듯한데, 제게 『산책, 서울의 글자들』은 약간 풍자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 수두룩한 영어 간판들을 보라! 여기가 바로 서울이다!’(웃음) 제 감상은 이만 줄이고··· 창작자로부터 기획 의도와 제작 과정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원래는 식물 책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제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던 차에 친한 친구가 사무실에 놀러 왔습니다. 제가 회사 다닐 때 찍어뒀던 사진들을 같이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어요. 그런데 친구가 사진들에 보인 반응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 한남동, 삼청동, 신사동 등 지역별 간판들 사진이었는데, 너무 좋다면서 “책으로 만들면 바로 살 것 같아!” 하더라고요. 그 순간 느낌이 왔습니다. ‘돈이 되겠구나!’ ···라는 건 물론 농담이고요(웃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언젠가 일본 도쿄로 출장 갔을 때 찍어둔 사진이 있는데, 족히 2,000장은 돼요. 일본 특유의 느낌을 디자인에 녹여야 할 때, 매번 그 사진들을 참고합니다. 여전히 도움이 크게 되거든요. 나 자신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레퍼런스가 되어줄 사진, 그걸 모은 책. 분명 유의미한 작업이 되리라 판단했습니다.

    사진집 『산책, 서울의 글자들』 디자인 및 제작, 2020

    저처럼 비전공자인 디자이너에겐 관련 서적 한 권이 정말 소중하거든요. 서점을 제집 드나들듯 해도 고를 수 있는 책의 폭이 정말 한정적이에요. 그래서 제가 만드는 책은 두 가지를 충족시켜야만 했어요.

    첫째, 이해하기 쉬운 쓸모 있는 내용으로 채워진 책일 것. 둘째, 이왕이면 만듦새도 예쁜 책일 것.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산책, 서울의 글자들』을 모니터 곁에 두고 작업 도중에 여러 번 펼치고 메모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본문의 필요한 사진에 마킹 테이프도 붙이고요. 구상을 이렇게 하다 보니 제본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더라고요. 표지 종이는 서울에서 많이 쓰는 건축 재료인 시멘트와 닮았다 생각이 들어 선택했는데, 이 부분을 독자 분들도 느껴주실지 모르겠네요.(웃음)

    에디터님 얘기처럼 서울에 영어 간판 참 많죠. 그런데 그조차도 현재 서울의 맨얼굴이라고 생각해요. 제 눈에는 매장과 브랜드가 얼마나 쉽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지가 더 확연히 보입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 ‘브랜딩에 좀 투자하지’라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습니다.

    33제곱미터(약 10평)도 안되는 매장이라도 한 번 철거하면 건축 폐기물이 말도 안 되게 많이 나와요. 서울에선 기존 매장 철거 후 새 매장이 들어오는 데 정말 얼마 안 걸리거든요. 임대료가 비싼 탓입니다. 임대료 장사가 ‘된다’는 방증이죠. 쉽게 만들고 버리는 브랜드가 그만큼 많다는 거잖아요. 브랜드를 돈벌이 수단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일종의 도박 같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가가린 인스타그램에 스튜디오 로고를 게시하면서 이런 한 줄 문구를 남기셨더군요. “내 거 하는 게 제일 어렵습니다”라는. 말꼬투리를 좀 잡아보겠습니다. 왜 어렵나요? 어려운데 왜 하시죠?

    너무 깊이 들어가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상업적인 표현 방법보다 개인 작업이라는 생각으로 동굴 속에 들어가서 만드는 일종의 수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내 거 하는 게 제일 어렵다는 건 그런 뜻이었습니다.

    순수 미술은 군더더기 없는, 무조건 덜어내는 작업이거든요. 가가린을 표현할 때도 비슷했습니다. 이미지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말끔히 배제하고, 1년 뒤의 나 자신이 봤을 때 ‘이건 딱 가가린이야!’ 했으면 싶었거든요.

    에디터님이 언급하신 포스팅 이후로도 쭉 고민 중입니다. ‘내 거 하는 거’에 대해서요. 지금도 어렵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아, 그리고, 곧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가가린 이미지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하하하!

    올해 1월 경기도 이천에 오픈한 카페 ‘사운드오브커피(Sound of Coffee)’를 위한 포스터 디자인, 2020

    2019년 스튜디오 설립 후 이제 2년차입니다. 예전에 어떤 디자이너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내 거 하고 싶어서 스튜디오를 차렸는데, 내 거를 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내 거 아닌 일들이 너무 많더라···”. 제 지레짐작이겠습니다만, 어쩌면 디자이너 유현아의 고군분투도 이 말과 어느 정도 맥이 닿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라면 죄송합니다.(웃음) ‘내 거 하는 게 제일 어려운’ 와중이지만, 현재 시점에서 스스로 가장 만족하는 작업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다행히 저는 디자인을 맡으면 모두 재미있더라고요. 말씀 속 디자이너 분처럼 아직 짬밥(?)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제 손에 들어오는 모든 작업이 그저 감사할 뿐이에요.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아직 ‘만족’이라고 말씀드릴 만한 건 전혀 없습니다. 대신, 제게 의미 있는 작업 하나를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다원식당’ 로고 작업입니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가 자체 레스토랑을 운영했거든요. 그때 알게 된 동갑내기 셰프님이 개인 식당을 내면서 저한테 작업 의뢰를 해주셨습니다. 제 첫 클라이언트였어요. 그분이 아는 디자이너가 저뿐인 것도 아니었고 딱히 친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연락을 주셔서 일단 고마웠어요.

    셰프님이 식당 개업을 워낙 급하게 진행하셨던 터라, 제 입장에서도 이렇다 할 준비도 없이 서둘러서 로고를 만들어드렸습니다. 올 초에 셰프님으로부터 명함이 다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고서 잘됐다 싶어 아예 새로 제작했어요. 이 로고가 제게 의미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제 취향대로 만든 결과물이라 그렇습니다.(웃음) 셰프님이 특별히 언급한 요구 사항은 딱 하나였어요. ‘한글이었으면 좋겠다’라는 거. 다원식당의 메뉴판은 와인을 포함한 모든 메뉴의 표기가 한글이에요. 셰프님의 섬세한 배려가 느껴졌습니다.

    직접 이 식당의 음식을 먹어보고, 사장님(셰프님)이나 주변 분들과 대화를 하면서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려 나갔습니다. 가장 신경썼던 부분은 안정감 있으면서 딱딱하지 않은 인상을 연출하는 거였어요. 그리고 와인잔을 심벌로 삼되 지나친 고급스러움은 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향을 시각화해서 아늑한 느낌을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손님이 늘어나던 시기에 로고를 바꿔서 참 뿌듯했는데, 하필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여러모로 많이 안타까웠어요.

    다원식당 리브랜딩, 2020

    스튜디오 가가린 문패에 “디자인이 필요한 모든 분야의 작업을 합니다”라고 선언해놓으셨던데요. 그 ‘모든 분야의 작업’ 중에서도 일러스트레이션 쪽이 인상적입니다. 여기서 인상적이란 말은, 작업의 완성도를 평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뭐랄까요, 디자이너 유현아가 ‘정말 하고 싶어서 한 작업’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영화 덕후, K팝 덕후로서의 정체성(!)도 엿보였고요. 일러스트레이션 독학에 상당한 시간을 들였을 것도 같습니다. ‘영화’와 ‘K팝’ 관련 클라이언트를 겨냥한 전략적 창작 활동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봤습니다.

    제 경우는 기업뿐 아니라 소상공인 분들로부터도 작업 의뢰가 오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작업물만 보고 연락해라’라는 식으로 만들긴 싫었어요. 또, 한 가지만 하는 것보다 다양한 일을 했을 때 저도 재미있게 지속할 수 있고요.
    영화와 K팝 관련 작업은··· 뭐 잘되면 좋겠지만 에디터님 표현처럼 ‘전략적 창작 활동’인 건 전혀 아닙니다. 이른바 ‘덕질’이라고 하잖아요.

    제게 ‘덕질’은 당 같은 거예요. 당 떨어지면 빨리 충전해야 하잖아요. 어릴 적 만든 웹도 당시 ‘덕질’ 하던 J-rock 가수를 다른 어른 팬들처럼 나도 사진을 꾸며서 올리고 싶어서였고요. 중학생 시절부터 애정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꾸미고 공유하는 게 낙이에요. 디자인은 미간에 주름 잔뜩 잡고 작업해서 날카로워지는 반면, ‘덕질’은 하는 자체로 행복한 일입니다. 요즘엔 너무 바빠서 ‘덕질’을 못하니 힘들어요.

    그리고, 제가 디자이너로서 꼭 하고 싶은 음반 작업은 영국 록밴드 플라시보(Placebo)의 앨범입니다. 뮤지션의 음반들에는 각각의 아트워크를 담당한 아티스트들의 역사도 담겨 있잖아요. 참여 자체로 유의미한 작업이지 않을까요? 게다가, 제가 10년 넘게 플라시보의 음악에 의지해 살아오기도 해서요.

    실은, 최근에 K팝 관련 일을 했거든요.(웃음) 12월 말이 되면 공개할 수 있는데, 제 ‘덕질’이 실무에도 영향을 미친 결과물 아닐까요? ···라고 해석한다면 일단은 성공했습니다. 하하.

    유현아의 최근 일러스트레이션 작업들, 2019~2020

    스튜디오명이 유리 가가린(Yurii Gagarin)의 ‘가가린’ 맞나요? 보스토크(Vostok) 1호에 탑승했던 인류 최초의 우주인요. ‘가가린의 유현아’ 혹은 ‘유현아의 가가린’은 어디로 날아가고 있나요.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디자이너로서 어떤 임무를 수행할 계획인지 궁금합니다.

    네, 맞습니다. 어릴 적 백과사전에서 본 가가린이 참 인상 깊었어요. 나중에 성장해서 돌이켜보니, 영화 〈그래비티〉 속 조지 클루니의 마지막 모습을 볼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왠지 제 자신을 보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자꾸만 ‘안정’을 스스로 거부하며 끊임없이 ‘불안정’ 속으로 나아가지만 신기하게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그런 태도.

    포트폴리오 준비를 지도해주신 선생님조차 “참 잘하는데 너무 늦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아무도 “넌 안돼”라고는 안 하더라고요. 그러면 괜찮은 거잖아요. 그리고 제가 언제까지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요? 자의 혹은 타의든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할 날이 언젠가는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매일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작년만 해도 금액이 크지 않은 일까지 맡아서 말 그대로 다작을 했어요. 처음에는 다시 디자인을 하고 싶어서 전단지 일도 했었고, 로고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만들었어요. 그러다 디자인 서적을 창고에서 꺼내 책장에 채우게 됐죠. 하다 보니 미팅 업무가 점차 늘어서 강남에 사무실 계약하고, 맥북에서 아이맥으로 바꾸고, 카메라도 사고, 새로운 디자인 서적과 폰트를 구입하고······. 직장 생활 하는 동안 미처 해소가 안 됐던 다양한 곳에 스스로 투자를 했습니다.

    점차 제 자신의 가치를 올려가는 중이고,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는 매일이 감사해요. 앞으로의 가가린도 뚜렷한 목적지는 없을 것 같아요. 이대로 주어진 일에 그대로 몰두하다 보면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또 새로운 곳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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