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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풍 가고 싶은 봄날엔, 일러스트레이터 굴리굴리

    “결국 누구를 위해 그릴 것인가의 문제 같아요. 클라이언트인가, 내 그림을 좋아해줄 대중과 나 자신인가.”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4년 04월 11일

    소풍 가고 싶은 봄날엔, 일러스트레이터 굴리굴리

    아, 이렇게 귀여울 수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러운 존재들은 보기만 해도 입가가 빙그레 모양이 된다. 신 나게 여행을 떠나고, 천진난만하게 미소 짓는 굴리굴리의 그림을 보면 복잡하게 얽힌 실꾸리가 풀리듯, 마음이 스르르 놓인다. 동글동글한 캐릭터들이 금방이라도 말을 건넬 것 같다. 체로 고른 듯 햇살이 고운 봄날, 목련 나무 아래로 우리 같이 소풍 갈래요?

    본격적으로 일러스트를 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화가가 되는 게 꿈이어서 줄곧 회화를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대학에서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게 됐어요. 하지만 디자인에는 흥미를 못 느꼈지요. 그러다 대학 3학년 때 출판미술대전 입상을 계기로 처음 그림책을 출판하게 되었고 그 후로 자연스럽게 일러스트를 그리게 됐어요. 졸업 후에도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러스트 일을 하다가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되었죠.

    일을 쉬지 않고 꾸준히, 해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림 그리는 작업은 저에게 ‘돈’ 버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의 유일한 취미이기도 해요. 그림 그리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지금까지 쉬지 않고 꾸준히 그림만 그리고 있네요.(웃음) 본격적으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나서부터 일이 끊긴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그땐 제가 그림을 잘 그려서 그러는 줄 알았죠. 그러다가 일러스트 커뮤니티 사이트에 저작료 관련 글을 하나 올렸었는데, 그것을 본 기획사가 밤늦게 문자로 일을 취소시키더라고요. 저작료가 불만이면 하지 말라는 거였죠. 스케치도 상당 부분 진행한 상태였는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아 충격이 컸어요. 그동안 꾸준히 함께 해온 기획사에서 내가 그 정도의 작가로밖에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는데 마음의 상처가 컸어요. 그때 알았죠. 제 그림은 언제든지 다른 작가와 대체 가능한 그림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요. 그 후로 나만의 그림을 그리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때 많이 힘드셨겠어요. 많이 힘들었어요.

    혼자였다면 잠시 리플레시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을 텐데, 그즈음 아이도 태어나고 아내도 회사를 그만둔 상태라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어요. 그래서 동료 작가들과 함께 인사동에 작업실을 내고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지요. 집과 작업실이 따로 분리되면 그림 그리는데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러고 나서 그림 스타일을 바꾸려고 노력했지요. 그전에는 주로 포토샵으로만 작업했거든요. 학습지와 교과서 작업 위주로 쉴 틈 없이 일하다 보니 특별히 그림 스타일에 대해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일을 겪고 나서는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지 않고서는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때 페인팅도 배우고 그림책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출판사도 찾아다니고 그랬어요.

    위기를 기회로 만드셨네요.

    다른 그림과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그림이 아닌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언젠가 출판사에서 미팅이 있었는데, 어떤 작가의 그림이 꼭 필요한데 그 작가 스케줄 때문에 2년 동안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참 부러웠어요. 나도 그런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었죠. 그때가 그림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던 시기였고 그래서 어느 때보다 많은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고 그림책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죠.

    큰 파도와 맞서봐야 바다의 깊이를 알 수 있다고 했던가. 그는 자신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늘 고민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삽화를 그리다가 그림책을 그리고 자신의 그림을 판매하게 된 일은 그저 주어진 우연한 행운이 아니었다. 그동안 그가 그려온 그림의 양은 그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그 후에 또 한 번 전환의 계기가 있으셨죠?

    예전의 작업 영역보다 좀 더 확장된 작업을 많이 했지만, 이런 작업들도 클라이언트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클라이언트가 일을 의뢰해야만 그림을 그리고 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언제나 불안했지요. 클라이언트잡에서 벗어나는 게 절실했어요. 학습지나 전집 작업을 아무리 많이 해도 독자들은 제 그림을 몰라요. 수십 권의 전집에 함께 묶여서 판매되거나 일회성으로 소비되기에 특정 작가의 그림에 대한 피드백은 없어요. 오로지 출판사에서만 피드백을 주죠. 다음번 작업 의뢰로요…(웃음). 출판사나 기획사가 아닌 나의 그림을 직접 소비하는 독자들과의 소통이 필요했어요. 제 그림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클라이언트는 그 소비자를 따라가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 구조가 가장 이상적인 구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품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밖으로 가지고 나가기 시작했지요.

    어떤 준비를 해서 밖으로 나가게 되셨나요?

    전시를 준비했어요. 그때까지 한 번도 전시회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전시에 대한 로망(?) 이 대단히 컸지요. 전시회를 하면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그림을 좋아해 주고 팬이 생길 줄 알았죠(웃음). 하지만 현실은 달랐어요. 두 번의 그룹전에 참여했지만…. 자기만족으로 끝났고 달라진 건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결정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일은 무엇이었나요?

    어쨌든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은 필요했기에 그다음에 생각한 건 그림 액자 판매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그림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작가가 많지 않았지요. 제 그림이 판매되고 작품을 좋아해 주는 분이 많이 생길수록 작가로서 작품 활동하는데 큰 의미이자 동기부여가 되었어요. 그리고 굳이 전시회를 하지 않아도 여기저기 제 그림을 걸어놓으니 홍보도 많이 되었고요. 작품에 대한 소비자의 피드백이 빠르다 보니 그림의 방향을 잡는데도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어떤 점에서 가장 달라진 것 같으세요?

    저만의 그림 색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작업 범위도 다양해졌어요. 특히 개인 작업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동안은 클라이언트의 울타리 안에서 주어진 작업만 하다 보니 피드백에 따라 그림의 방향이 많이 바뀌곤 했어요. 하지만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해내는 개인 작업을 하고부터는 그전과는 다르게 그림이 많이 좋아졌지요. 그런 과정을 겪고 난 후부터는 작업 범위도 넓어지고 다양해졌어요. 롯데갤러리 개인전 제안도 그때쯤 있었고 광고나 패키지 작업과 상품 제작 등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지요.


    그는 대학 때 컴퓨터를 막 배우기 시작한 세대다. 모든 작업을 손작업으로 하다가 대학교 2학년 때 맥을 배워서 선 긋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아날로그 방식의 작업을 하다가 디지털로 넘어오는 과정을 거치면서 양쪽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흡수했다. 지금은 두 가지에 모두 익숙한 것이 강점이 되었다. 그에 여전히 손작업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대부분 디지털로 작업을 하는데도 그의 그림에는 아날로그 감성이 진하게 느껴진다.


    개인 작업이 좋은 이유가 있나요?

    피드백이 굉장히 빨라요. 출판사 일은 클라이언트의 피드백이지 독자들의 피드백이 아니잖아요. 사실 제 그림이 좋은지 아닌지 잘 모르게 되죠. 클라이언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개인 작업(그림 판매, 아트상품 개발)을 많이 하다 보면 대중에게 피드백을 받게 돼요. 그만큼 그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죠. 저는 디지털 작업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디지털은 감성적인 면에서 아날로그를 따라갈 수 없고 뭔가 미진하다는 느낌이 들었죠. 그런데 그림 액자는 대부분 디지털 작업인데, 사람들이 그래도 좋아하더라고요. 디지털이냐 아날로그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림이 좋으냐 아니냐가 더 중요했던 거죠.

    많은 작가가 대중에게 노출되는 기회를 얻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결국, 누구를 위해 그림을 그릴 것인가의 문제인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를 위해서 그릴 것이냐, 내 그림을 좋아해줄 대중과 나 자신을 위해 그릴 것이냐. 저는 개인적으로 커넥션을 만들고 그림을 보여주면서 괜찮다, 괜찮다, 라는 피드백을 들으면서부터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그림을 판매하면서 그림도 정말 많이 달라졌고요. 그림을 판매하고부터 시작된 일이 많아요. 클라이언트들도 다양한 분야에서 만나게 되고요. 중요한 건 자신의 그림을 좋아하는 팬층인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일이 있으셨나요?

    몇 년 전 도쿄 페스타에 참가했던 일이 커다란 전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재미있고 신 나게 살 수 있구나. 젊음, 열기, 에너지가 꽉 차 있었어요. 나도 이렇게 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었죠. 그다음 해에 후쿠시마 핵 사고가 있어서 함께 가기로 한 한국 작가들이 많이 빠졌는데 전 그냥 갔어요. 그때 만난 분들과 인연이 되어서 일본에서 전시도 하게 되었는데, 오신 분들을 보면서 작가로서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감명을 받았어요. 올해 5월에 서울에서 한일 작가전도 열려요.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그동안 아이디어 북에 담아 놓은 이야기들이 제법 많은데 올해부터는 하나씩 세상에 내놓을 생각이에요. 아마도 내년부터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제주도에 오오이마치 그림책 미술관 같은 작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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