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표정의 인형이 나란히, 나란히. 하나씩 꽂을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나온다. 어라? 요것 봐라. 은근 중독성이 생긴다. 단순한데 재미있다. 심지어 감각을 넘어 어떤 '감정'마저 느껴진다. 게임회사에 근무하면서 개인 작업도 활발히 하고 있는 인터랙션 디자이너 강슬기를 만났다.
인터랙션 디자인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원래는 타이포그래피와 시각디자인이 제 디자인의 베이스였어요. 그런데 유학 중에 생각이 바뀌었어요. 종이와 같은 평면에서 입체적인 작업도 재미있었지만,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더라고요. 고민하던 중에 과를 옮겨서 전공을 바꿨죠. 하지만 어떤 디자인을 하든지 간에 자신의 디자인 신념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표현하는 도구는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단지 생각의 스펙트럼을 조금 더 넓히게 된 거죠.
그런데 인터랙션 디자인이 뭔가요?
다들 어려워해요. 저도 어려워서 지금도 공부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웃음). 제 나름의 해석으로 이야기한다면, 사용자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행동과 그 과정 모두를 예측하고 도움을 줄 수 있게 설계하는 것을 인터랙션 디자인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하지만 사람들에게 인터랙션 디자인을 어설프게 설명하기보다 직관적으로 좀 더 쉽게 알려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했죠. 그러다가 놀이와 장난감이 떠올랐어요. 놀이를 위해서 사용자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용해야 하고 재미있으면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겠지만, 재미없으면 다신 이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인터랙션 디자인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제품 중에 작은 사용의 즐거움을 주는 디자인이 성공하는 사례가 많은데요, 인터랙션 디자인을 거창하게 보지 말고 하나의 놀이로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랙션 디자인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상호작용 디자인인데, 이것도 설명하기 힘들어 보이네요.(웃음)
활동하고 있는 ‘어토이팩토리(atoyfactory)’는 어떤 그룹인가요?
2005년에 런던 유학시절 때 일본인 친구랑 둘이 만든 게 시작이었어요. 지금 그 친구는 현재 일본으로 돌아가 다른 팀을 만들었고요, 저는 한국에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장난감을 통한 놀이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재미있어서 그룹으로 전시도 했는데, 주로 미디어 아트 전시회나 교육 관련 워크숍에 나가다 보니 사람들이 너희는 뭐 하는 사람들이냐?(웃음), 디자이너 그룹이냐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이냐? 물어보는데 궁극적으로는 인터랙션을 기반으로 한 놀이 디자이너 그룹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디자인도 놀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인터랙션 디자인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셨나요?
고등학교 때 처음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하다 보니 처음 마음과 지금 마음이 너무 많이 달라져 있는 거예요. 뭐가 문젤까,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건데. 내 디자인도 내가 즐기지 못하면서 남에게 어떻게 즐거움을 전해줄 수 있겠나 싶더라고요. 인터랙션 디자인 속에는 제가 찾고 있던 생각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재미 요소가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전시하면 사람들이 작업을 만지면서 새로운 경험에 재미있어하고요. 인터랙션 디자인과 지금 하고 있는 놀이 디자인을 연관시키면서 제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은 거죠.
하나의 인터랙션에서 하나의 길이 생기고, 그 하나의 길은 또 다른 길을 낳으면서 무수히 많은 다양성에 가 닿는다. 장난감과 놀이는 재미와 더불어 교육의 가능성으로 열리기도 하고 공공질서에까지 확장된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새로운 인식의 확장을 열어간다.
‘톤톤’ 프로젝트 영상을 봤는데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일상에서 늘 디지털을 쓰면서도 어딘가 거부반응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톤톤’을 만들게 된 요소가 있었는데요, 첫 번째 콘셉트는 디지털 도구의 단점보다 장점을 부각하자는 것이었어요. 두 번째는 잊히는 장난감들은 가치가 없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극적인 것이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역사 속으로 흘러가는 장난감 중 하나가 러시아의 마트료시카라는 인형인데, 러시아의 다양한 민족의 의복문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학습시키기 위한 교재였대요. 마트료시카를 디지털 기술로 의미 있게 재해석하면 어떨까, 라는 착안에서 시작했죠. 저희가 만든 마트료시카에 굳이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넣지 않아도 표정이나 캐릭터를 보고 아이들 스스로 소리를 가지고 학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표정에 의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사운드 조합을 보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함께 이유를 묻는 등 아이들과 소통의 역할도 할 수 있어요.
작업하면서 부여하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요?
부여하고 싶은 가치는 수십 개도 더 되죠.(웃음) 하나 예를 들면요, Homo Ludens라는 말이 있어요. 유희를 즐기는 인간이라는 뜻이죠. 사람들의 유희에 대한 욕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고, 각각의 문화마다 다양성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공통으로 추구하는 ‘유희’라는 가치의 무게는 어느 문화권에 있다 하더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또 다른 형식의 장난감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죠. 이러한 기대는 단순히 기술에 따른 새로운 개념의 장난감이 아니라 어렸을 때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으면서도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맞는 새로운 감성, 감각기관의 자극을 기대한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가치를 반영한 예가 좀 전에 이야기한 ‘톤톤’ 프로젝트와 같은 거죠.
‘믹시스트’도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사람들에게 빛으로 원하는 색을 만드는 과정에서 색다른 경험으로 주고 싶었어요. 스위치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도 바꿔보고 싶었고요. 우리가 불을 켜고 끌 때 꼭 스위치를 켜야만 하는 게 아니고, 빛도 물처럼 따라볼 수 있고, 그런 행위가 놀이나 경험의 확장이라고 생각해요. 재미있었던 경험 중 하나가 전시회 때 아이들이 믹시시트를 갖고 서로 하겠다고 싸움이 날 뻔했는데, 색을 섞으면서 엄청나게 고민하면서 집중을 하더라고요. 아이가 그걸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한참을 바라봤던 기억이 나네요.
‘톤톤’도 ‘믹시스트’도 생기를 많이 살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고급스럽고 복잡하고 멋진 걸 만든다고 다들 좋아하진 않거든요. 확실한 것은 단순히 흥미 위주가 아닌 메시지가 담긴 작업일수록 남녀노소 상관없이 각자 다양한 감성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말씀해주신 생기를 살리는 느낌을 받으신 것도 같은 이유에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네요. 일부러 생기나 감성을 의식해서 만들지는 않아요. 그래서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어른들도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웃음).
그는 놀이에 관심이 많다. 인터랙션 자체를 일종의 놀이라고 생각한다. 눈으로 보이는, 멋지게 구현된 시각적 디자인 외에 무형의 상호작용 놀이를 만들어내는 디자이너가 되기를 꿈꾼다. 9월에 아빠가 되는 그가 아기와 함께 앞으로 어떤 재미난 놀이 세상을 만들어갈지 한껏 기대된다.
인터랙션 디자인을 하면서 영향을 받은 점이 있다면요?
여러 훌륭한 스승과 디자이너가 주변에 계시지만, 제 작업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제 작업을 사용하면서 다양한 피드백을 주는 모든 분입니다. 결국, 이분들의 의견은 인터랙션 디자인 전문 서적에서 놓쳤던 부분들이나 다 담지 못하는 내용을 제 눈으로 확인하게 해주지요. 가장 큰 장점은 이러한 직간접적인 피드백은 선순환적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고 저도 이 과정을 통해 끊임없는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 고갈되지 않는 샘물 같은 거죠.(웃음)
시작 무렵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이전엔 자극적인 것이 많았어요. 단순히 개인, 즉 사용자만 혼자 재미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렇다 보니 초기에는 자연스럽게 아이들 작업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지금은 놀이를 통한 관계 형성에 대해서 고민 중입니다. 아이와 부모, 교육자와 부모, 교육자 그룹 간의 관계 등 다양하고 세밀한 관계에서 놀이의 형태는 또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공부 중이라 좀 더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조만간 이와 관련해서 사회적 놀이 프로젝트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인터랙션 디자이너보다 놀이 디자이너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현재 바라는 것이 있다면요?
디자인 문화가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래픽 디자이너라도 놀이 디자인을 충분히 제작할 수 있잖아요. ‘무슨무슨’ 디자이너라는 타이틀 속에 갇히면 그 분야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장난감과 놀이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해지더라고요. 도구를 사용해서 표현하는 것은 제가 부족한 대로 간단하게라도 배워서 표현하면 만족이 되는 성향이어서 그런지, 틀에 갇혀서 획일화되고 패턴화되지 않으면서, 한 가지 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가끔 이렇게 이야기하면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도 가끔 받아요. 기술적인 면으로만 본다면 그럴 수 있죠. 하지만 디자이너는 도구만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들을 위해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놀이 디자인도 단순 재미가 아닌 현재 놀이문화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할 수 있죠.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찾아내서 보여줄 고민을 하고 있다면 디자인적 가치와 전문성은 충분하지 않을까요?
인터랙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저도 공부하고 있어서 누구에게 조언할 입장이 안 되는 것 같은데요?(웃음) 음…. 글쎄요. 저의 경우를 잠깐 말하자면요, 인터랙션 디자인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동안 주변에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때마다 전문가들의 조언이나 학문으로만 풀려고 하지 말고 그 장소에서 잠시 벗어나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 돌아다니면서 주변 사람을 관찰해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의 중심에는 사람을 빼고서는 무엇이든 제대로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유와 즐거움을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