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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그래픽인쇄물특별전시 2012

    <모노클>의 글을 지나 차근차근 전시장을 둘러보면 ‘촉각의 종이’라는 부제를 실감할 수 있다. 총 280여 점의 전시작들은 세계 각국의 카탈로그•브로셔•달력•애뉴얼리포트 등 인쇄제작물들, 그리고 페이퍼아트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글. 임재훈

    발행일. 2012년 03월 27일

    세계그래픽인쇄물특별전시 2012

    한때 라디오 DJ들은 ‘사서함 주소’라는 걸 읽어주었다. 편지지에 손글씨로 사연을 적어 보내던 시절이었다.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라는 유행가도 있었다. 기자들은 원고지에 기사를 써서 마감했으며, 디자이너들은 제도용 펜과 자로 패키지디자인 도면을 그렸다. 아날로그 시대의 정경이다.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감성, 그리고 모든 정보들은 종이에 쓰이고 그려짐으로써 표현되었다. 좀 더 나은 아이디어와 감성이 나올 때까지, 여러 장의 종이들이 구겨지거나 찢겼고, 그만큼 새 종이의 사용도 많았다. 한때 종이는 사람의 아이디어와 감성을 표현해주던 가장 일상적인 도구였던 것이다.
    
    날고 기는 스마트 기기들과 PC가 상용화된 지금, 사람들은 쓰거나 그리는 대신, ‘입력’을 한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우개로 지우거나 종이를 구기고 찢는 대신, 간단히 수정 버튼을 눌러 다시 작업하면 된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종이책 1,500권 분량을 저장할 수 있는 전자책 단말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미디어아티스트 백남준은 이미 20여 년 전에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말했지만, 나는 종이가 죽었다고 말한다. 크리넥스만 빼고.”라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고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종이가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어 안심이다. 삼원페이퍼갤러리에서 3월 14일부터 시작된 ‘세계그래픽인쇄물특별전시 2012’다. 부제가 ‘촉각의 종이(Tactile Paper)’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영국의 문화잡지 <모노클(Monocle)>에 실렸던 글을 볼 수 있는데, 이 글은 종이가 여전히 살아 있고, 앞으로도 살아 있을 거라고 관람객들을 안심시키는 듯하다. 
     전시장 입구의 대형 포스터에 적혀 있는 <모노클>의 글과 전시장 전경

    <모노클>의 글을 지나 차근차근 전시장을 둘러보면 ‘촉각의 종이’라는 부제를 실감할 수 있다. 총 280여 점의 전시작들은 세계 각국의 카탈로그•브로셔•달력•애뉴얼리포트 등 인쇄제작물들, 그리고 페이퍼아트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종이로 만들어진 전시작들은 직접 손으로 만져보는 것도 가능하다. 재질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나는 종이의 질감은 디스플레이 기기를 ‘터치’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전시장에 놓인 종이 작품들은 하나하나 저마다의 촉각과 생명을 지닌 채 펼쳐져 있는 것이다.

    다양한 종이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전시작들

    눈에 띄는 전시작 하나. 독일의 필기구 회사인 파버카스텔(Faber-Castell)에서 나온 2012년도 달력이다. 이름이 ‘연필에 대한 경의 혹은 희망’이다. 가로로 넓은 스케치북 형태의 달력에 연필 한 자루가 박혀 있다. 1월, 2월, 3월, … 한 장 한 장 넘겨도 연필은 계속 그 자리에 박혀 있다. 시간이 흘러도 연필의 가치는 변함없을 거라는 의미 부여와 함께, 250년 넘게 필기구를 만들어온 이 회사의 홍보를 곁들인 작품이다. 연필에게 표하는 경의는 종이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쓰고 지울 수 있는 연필의 특징은 종이 위에서만 실현되기 때문이다.

    파버 카스텔의 2012년도 달력

    ‘세계그래픽인쇄물특별전시 2012’는 삼원페이퍼갤러리가 매년 진행하는 연례 기획전이다. 종이의 상업적•기능적 면모와 디자인 오브제로서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함이 기획 의도다. 2004년에 처음 선을 보였으니, 올해로 8회째다. 그동안 종이는 여전히 촉각을 잃지 않고 살아온 셈이다. 스마트 기기가 폭발적으로 보급된 요 몇 년 사이에도 종이는 건재했다. <잡지는 매거진이다>라는 책에는 “대중매체 시장에서 뉴미디어가 아무리 위력적으로 보일지라도 종이매체의 미래는 여전히 안전하다”는 구절도 있다. 안심하라. 종이는 영원할 것이다.


    |전시 정보|
    • 기간 : 3.14(화) ~ 4.14(토)
    • 장소 : 삼원페이퍼갤러리 제2전시관 
    • 문의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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