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란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일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완벽하게 인정받는, 그런 엄친딸(엄마 친구의 딸)의 이미지는 아닐까. 하지만 여기 ‘성공한 커리어우먼’에 대해 제각기 다른 해석을 보여주는 7가지 서체가 있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서체로 담아냈는지, 윤디자인연구소의 새로운 서체 ‘성공한 커리어우먼 시리즈’를 제작한 7명의 디자이너에게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디자이너
김태희(윤디자인연구소 서체 디자이너) 올레체 한글, 순천시 전용서체, 디즈니채널 전용서체, 파리바게뜨 전용서체, 롯데백화점 전용서체, 양요나/가는 소금, 굵은 소금, 헬로키티체, 교양 있는 글씨 등 제작
컨셉
보통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라고 하면 당당하며 도시적인 직장 여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직장을 떠나 가정을 돌보는 주부의 모습에서, 소소한 일상을 꼼꼼하고 알뜰하게 계획하며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에서도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따뜻함을 마치 햇살을 타고 내리는 여우비처럼 딱딱한 사회에 촉촉하게 내리는 편안한 손글씨 서체로 표현하고 싶었다.
특징_모듈
손글씨 서체이다 보니 글줄은 자연스럽게 가운데 맞춤으로 하였고, 손글씨 서체를 가장 자연스러운 서체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인 자폭과 자간에 집중했다. 자폭은 원도(原圖)에 충실하게 가로로 큰 글씨(사람들은 보통 ‘ㅏ’계열을 크게 쓰는 것 같다.)와 ‘을’, ‘를’같이 세로로 좁게 쓴 글씨의 조판을 자연스럽게 하였다. 특히 자간은 ‘ㅏ’, ’ㅑ’등의 곁줄기들이 글자방(EM box) 밖으로 뻗어나가도록 하여 글줄이 자연스러워지게 했다.
특징 _영문
영문작업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많은 양을 원도 작가가 써줬음에도 불구하고 한글과 딱 어울리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한글과 영문의 필체에서 오는 속도감을 맞추는 게 가장 어려웠다. 결국엔 글씨를 정말 못쓰는 내가 한글을 개발한 그 느낌대로 비교도 해가면서 직접 썼고, 결국 많은 실패 끝에 영문이 탄생할 수 있었다. 사실 아직도 조금 부족한 느낌이지만 30살의 내 미숙함을 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징_굵기
처음에는 원도에 맞추어 Medium을 개발하고 기존 스크립트 서체에는 많이 없는 다소 굵은 Bold를 개발했다. 얇은 펜으로 쓴듯한 Light가 작업하기에 제일 힘들고 까다로웠지만 만들고 나니 여우비의 이름을 꼭 닮은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여우비의 굵기는 3가지다.
원도
기존의 윤디자인 스크립트 서체는 워낙에 사랑 받는 베스트셀러이기도 하고 국내 최고의 캘리그라퍼 강병인선생님의 손글씨로 만들었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번 ‘성공한 커리어우먼 시리즈’에 넣을 새로운 스크립트 스타일에 대해서 고심하게 되었다.
스크립트 서체는 ‘소설책 165페이지’나 ‘로맨틱가이’처럼 서체디자이너가 직접 원도를 쓴 서체도 있지만 대부분은 캘리그라퍼에게 의뢰를 해서 원도를 받아 제작한다. 서체를 통해 캘리그라퍼의 감칠맛 나는 손글씨를 쉽게 보고 쓸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이번에는 ‘신예작가의 발견!’ 이라는 목표로 여러 작가의 글씨를 받았다.
보통 스크립트는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글씨의 경우에는 한글자 한글자가 똑똑 떨어져 속도감 없이 천천히 쓴듯한 느낌이 매력적이었다. 마음에 쏙 들었음은 물론이다.
제작과정
여우비의 원도 작가는 30대 후반의 멋진 아기 엄마였다. 500여자를 써야 하는데 낮에는 아기를 보고 저녁에 아기가 깨기 전에 후다닥 써야 했다. 힘든 과정이지만 늘 예쁜 글씨가 나왔으면 좋겠다면서 꼼꼼하게 써주셨다.
처음 200자를 받아 대표자를 파생하고 필요한 글자나 꼭 있어야 하는 글자들을 요청해서 받아 만드는 과정이 되풀이 되었다. 7번째 서체라 작업 시작 시기도 매우 늦었고, 단독으로 진행할 수 없는 과정이다 보니 시간도 많이 필요했다. 게다가 최대한 아날로그 느낌의 손글씨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획의 방향과 굵기를 다양하게 접근하였고, 짜여진 규칙이 더 디테일하고 복잡해 힘들었다. 하지만 한글을 다 만들고 보니 내가 생각한대로 원도와 많이 닮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가끔 튀는 글자들을 정제하고 공간을 확보해줬더니 가독성도 좋았고. 게다가 원도는 굵기가 하나인데 서체로 만드니 작가 손글씨 그대로 굵기를 3단계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라고 할까.
에필로그
아무래도 ‘여우비’가 마지막으로 만들어지는 서체이다 보니 일정에 대한 압박이 너무 컸다. 6번째 서체 홍시의 광고가 나올 때쯤 여우비는 2350자 파생에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우울한 몇 주였지만 서체에 마음이 담긴다는 이사님의 말씀이 떠올랐고, 처음 여우비의 컨셉대로 자연스럽게! 즐겁게! 마무리하자는 다짐을 했다. 비가 많이 오던 날, 끝내 ‘여우비’가 모두 완성되고 동료들과 다른 디자이너들의 축하를 받을 수 있었다. 비록 ‘여우비’가 화려하거나 세련된 느낌은 아니지만 착하고 따뜻한 손글씨, 여유 있는 손글씨, 작은 포인트로 종알종알 쓰여지는 손글씨로 많이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
서체 디자이너 김태희에게 궁금한 몇가지
이름 김태희 / KIM TAEHEE / 金 太(클 태) 喜(기쁠 희) –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되는 삶.
나는? 한마디로 표현 못하겠다. 굳이 표현하자면 ‘긍정발랄 글로벌 오지랖’?(웃음)
서체 디자이너서울여자대학교를 다니며 한글동아리인 <한글아씨>를 하며 서체와 가까워진 것 같다. 이후 대학 4학년때 윤디자인 인턴쉽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전공을 살리고 글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즐거웠던 것 같다.
보물 1호
토리의 <너무좋다> 싱글 앨범. 작곡가인 남편의 앨범인데, 가사내용의 주인공이 본인이다. 믿을 수 없으시겠지만.
좋아하는 서체
소망. 어릴 때. 복숭아 과일 박스에 ‘복숭아’라고 적혀있는데 서체가 참 예쁘다 생각했었고 매우 궁금하기도 했다. 그게 소망체였다. 그 당시 처음으로(윤고딕보다도 먼저) 알게 된 서체였던 것 같다. 그리고 도로 위가 시원해 보이는 인상의 한길체 역시 좋아한다. 영문서체는 DIN을 좋아한다. 이유 없이 좋은 그 단단함이 신뢰가 간다.
[관련글]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7가지 이야기는 ‘소망2’, ‘블랙핏’, ‘화이트핏’, ‘연꽃’ , ‘홍시’, ‘어반빈티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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