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란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일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완벽하게 인정받는, 그런 엄친딸(엄마 친구의 딸)의 이미지는 아닐까. 하지만 여기 ‘성공한 커리어우먼’에 대해 제각기 다른 해석을 보여주는 7가지 서체가 있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서체로 담아냈는지, 윤디자인연구소의 세로운 서체 ‘성공한 커리어우먼 시리즈’를 제작한 7명의 디자이너에게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Medium과 Bold 2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350자의 한글 외에 129자의 한글 추가자를 포함하고 있다.
디자이너
엄소정(윤디자인연구소 서체디자이너) 달콤한 첫키스, 연아폰트 패키지의 우리연아, 연아처럼, 충남 예산군 추사사랑체, BC카드 전용서체 등 제작.
컨셉
여성으로서 성공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열정적인(혹은 전투적인) 모습의 이면에 존재하는 여성 본연의 부드러움과 상냥함, 주변을 두루 챙기고 관심을 갖는 친화력이 목표를 실현하는데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장점을 서체에 담아내고 싶었고, 디자인 구상을 하던 중 캘리그라피 수업을 하면서 눈여겨봤던 옛 서체, ‘민체’를 떠올리게 됐다. ‘(서)민체’는 인쇄술이 없던 시대에 소설이나 가사, 편지 등을 읽고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글자로 여성과 서민들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필자아와 연대는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독특하고 자유로운 붓글씨이기 때문에 궁서체나 판본체와는 다른 정겨운 매력이 있는데, 이런 민체의 매력을 현대적 감성에 맞게 재해석하기로 했다.
제작과정
본격적인 작업 전, 지인들에게 수소문도 하고 도서관에서 민체 관련 논문과 옛 서적을 찾으며 참고자료를 모아봤지만 캘리그라피 수업 때 받은 프린트가 원본의 전부였던 탓에 자소의 형태를 유추하는 부분이 어려웠다. 많은 고민 끝에 원본 민체의 특징을 최대한 분석하여 민체를 사용하던 옛 궁녀에 빙의되자는 마음으로, 빈도수가 높은 한글 자소 400여자를 중심으로 붓으로 직접 쓴 후 마음에 드는 형태를 추려 스캔하는 과정을 거쳤다.
한글과 어울리는 영문과 숫자, 특수문자를 제작하기 위해서도 자료조사가 이루어졌다. 많은 캘리그라피 작품들과 영문 사이트, 타이포그라피 책들을 참고해 한글에서 느껴지는 곰살맞고 순박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특징
제목용 서체인 ‘홍시’는 필력에 따라 획의 굵기와 모양이 변화하는 붓글씨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고자 하였다. 붓이 지나가면서 생기는 질감은 살리되, 너무 묵직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몇 차례 테스트를 거쳐 적용단계를 결정한 다음 작업하였다. 또한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충분히 보여질 수 있도록 각 자소마다 고유의 형태와 속공간에 알맞게 자간값을 가변폭으로 제작하였다.
각 자소별 형태뿐 아니라 단어와 문장을 이루었을 때 어색하지 않게 잘 읽히는지, 자소를 파생하는 과정 중에도 프린트 테스트를 통해 글줄과 형태, 질감 표현에 대해 오랜 수정 작업을 가졌다. 그날의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어제까지 좋아 보였던 글자들이 다시 보면 스스로 당황스러울 만큼 이상하게 보일 때면 자책 아닌 자책을 하기도 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난관과 시행착오에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애정을 쏟았던 작업이기도 하다.
영문은 붓으로 한번에 쓸 때 나타나는 방향성은 물론 열린 획들을 통해 공간의 여유로움을 살리고 크기 변화로 재미를 더했다. 한글과 달리 붓글씨로 작업할 때 어느 정도 획을 생략하고 연결을 주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며 세리프를 넣어보기도 하고, 다양한 스타일로 쓰고 다듬으면서 한글과의 조화로움을 생각했다.
네이밍
보통 작업을 할 땐 가칭을 쓰다가 완성 단계에서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홍시’도 여러 후보들이 있었지만, 작업을 진행하는 사이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홍시’로 불리면서 정이 들기도 했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소 ‘ㅇ’과 ‘ㅎ’의 모양에서 홍시의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해 정식명칭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에필로그
한 벌의 서체는 짧게는 수개월, 길개는 몇 년의 작업기간을 거친다. 미적인 부분과 가독성, 기본적인 구성 요소들이 모두 갖춰지면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친다. 개인 작업일 경우도 있고, 팀프로젝트일 때도 있지만 항상 주변의 선후배 디자이너들과 지인들의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와 조언이 큰 도움이 된다. 늘 이전보다 좀 더 나은 서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작업이 끝나고 나면 언제나 후련하보다는 아쉬움과 미련이 오래 남는다. 이제 내 손을 떠난 ‘홍시’를 앞으로 오래오래, 의미 있는 많은 곳에서 만나게 되길 바라본다.
서체 디자이너 엄소정에게 궁금한 몇가지
이름 엄소정. 밝을 소(昭) 맑을 정(晶)… 이름의 뜻처럼 밝고, 맑게 살도록 해야겠다.
나는? 꿈을 이루는 사람.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1인~!!
서체디자이너
대학 교수님과의 인연으로 서체디자인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작업을 하면서 좀 더 배우고,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열심히 하고 있다.
보물 1호
힘들고 외로울 때 응원해주는 우리 가족 🙂 좋아하는 서체 좋아하는 서체는 많지만 한 가지씩 꼽으라면 한글은 ‘코스모스체’를 좋아한다. ‘오늘의 네코무라씨’라는 만화책에서 말풍선에 사용된 것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는데, 그 이후 제품 패키지나 책 표지 등 다양한 곳에서 볼 때마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느낌 맘에 들었다. 영문은 최근 ‘Gulyesa script’라는 서체를 영문폰트 사이트에서 봤는데 따뜻한 질감의 손글씨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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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커리어우먼의 7가지 이야기는 ‘소망2’, ‘블랙핏’, ‘화이트핏’, ‘연꽃’, ‘어반빈티지’, ‘여우비’로 이어집니다.
※이 서체는 윤디자인 폰트스토어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