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타이포그래피의 대가라고 불리는 얀 치홀트(Jan Tschichold). 그가 환갑이 넘은 나이에 개발한 서체 ‘사봉(Sabon)’은 타이포그래퍼로서 지내온 시간만큼 모든 연구와 경험이 녹아 들어있는 서체이다. 오늘은 ‘얀 치홀트’를 대표하는 우아하면서 가독성이 뛰어난 서체, ‘사봉’에 대해 알아보자.
*이 기사는 윤디자인연구소 통합 폰트 스토어 ‘font.co.kr(폰코)’에 포스팅한 글을 재구성한 것입니다.(원문 보러 가기)
타고난 타이포그래퍼, ‘얀 치홀트’
독일의 한 레터링 아티스트의 아들로 태어난 얀 치홀트는 어렸을 때부터 글자에 관심이 많았다. 독일에 있는 라이프치히 미술 아카데미(Hochschule fur Grafik und Buchkunst)에서 공부하고 타이포그래퍼의 길로 들어섰다. 1923년, 바이마르에서 열린 바우하우스 전시회 관람 후 뉴 타이포그래피에 매료되어 1928년 새로운 사상을 인쇄업계에 설명하는 실용적인 책, 〈뉴 타이포그래피〉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1925년에 잡지 〈타이포그래픽 뉴스〉에 ‘타이포그래피의 원리’를 발표, 체계적 이론정립에도 앞장섰다. 그 이론은 현재까지 전 세계 디자인 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 이론의 기본으로 설명되고 있다.
10여 년 후인 1933년, 그는 모더니즘에 대한 나치의 박해로 스위스 바젤로 이주하게 된다. 그 후, 그는 뉴 타이포그래피 사상이 어딘가 파시즘(국수주의적·권위주의적·반공적인 정치적 주의 및 운동)과 닮았다고 생각하여 그 신념을 버리고 전통 타이포그래피를 다시 연구하기 시작하며 뉴 타이포그래피에서 사용하지 않던 세리프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타이포그래피 디렉터로 일하게 되면서 실용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더욱 진지한 자세와 전문적 식견을 갖추게 되었고, 북 타이포그래피의 장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의 대표 서체인 ‘사봉’은 1960년 독일 인쇄업자위원회에서 새로운 본문 서체 개발요청으로 인해 시작되어 1964년 제작에 착수, 그리고 1967년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개발 당시 이미 환갑이 넘었던 얀 치홀트에게는 이 일이 그의 모든 타이포그래피 인생을 고스란히 녹여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북 타이포그래퍼로서 명성은 떨친 그는 1954년 미국 그래픽아트협회로부터 금상 수상, 런던의 왕립미술협회(Royal Society of Art)에서 ‘명예 왕실 공예 디자이너(H.R.D.)’ 칭호를 부여받기도 하였으며, 1956년에는 구텐베르크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우아하면서도 가독성이 높은 ‘사봉’
사봉은 서체의 독특함이나 효율성이 아닌 알파벳 자소들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을 위주로 작업 되었다. ‘가라몬드(Garamond)’에 기반을 둔 서체로 가라몬드의 우아함을 유지하면서 소문자의 일정한 크기와 글자의 굵기가 조화로워 더욱 가독성을 높여주기 때문에 굉장히 우수한 본문용 서체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가라몬드보다 5% 정도 폭이 좁기에 경제적인 서체이기도 하다. 사봉이라는 이름은 그 당시 무수히 많던 다른 가라몬드 서체들이나 가라몬드 제자의 활자체인 ‘그랑졍(Granjan)’과 혼동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때 가라몬드의 제자였던 ‘자크 사봉(Jaques Sabon)’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가 바탕을 두었던 가라몬드의 견본이 자크 사봉이 재디자인한 1592년 활자 견본이기 때문이다. 사봉은 독일이 아닌 미국에서 더 많이 보급되었는데, 이유는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브래드버리 톰슨(Bradbury Thompson)’이 디자인한 성경 때문이었다. 성경 특성상 대량으로 인쇄되어 오랫동안 사용되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익숙함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패션 잡지 〈보그〉의 본문용 서체로 사용되며 더욱 사랑을 받았다.
현재는 서체 디자이너인 장 프랑수아 포르셰(Jean Francios Porchez)가 다듬어 ‘사봉 넥스트(Sabon Next)’라는 이름으로 패밀리 폰트를 출시했으며, 어도비(Adobe)사에서도 다양한 버전으로 배포하고 있다. 또한, 2013년에 스티브 맷슨이 온라인과 E-book 특성에 걸맞게 다듬어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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