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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체 디자인 스튜디오 ‘비대칭과 정방형’ 김태룡

    글자 만드는 김태룡의 자신감, 또는 자신에 대한 감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20년 02월 03일

    서체 디자인 스튜디오 ‘비대칭과 정방형’ 김태룡

    글자 만드는 김태룡은 스스로를 ‘디자이너’이면서 ‘장사꾼’이라고 소개한다. 하기야, 글자밥(?) 먹는 사람들 중 디자이너/장사꾼 아닌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김태룡은 디자이너이자 장사꾼으로서 스스로를 퍽 솔직히 평가할 줄 안다. 이런 면모에 대해 ‘자신을 잘 안다’라고 일러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는 “소모가 빠른 타입”이라 미팅 다녀온 날은 작업 진행을 못한 채 하루를 날리기도 한단다. 회사에 다니며 퇴근 후 개인 작업을 한다는 것이 그에겐 “불가능”의 영역이란다. 자신이 어떤 타입이며, 어떤 가능/불가능을 지니고 있는지를 김태룡은 처음 만난 인터뷰어에게 무던히 털어놓는다.
    
    기운차게 에고(ego)를 발산하는 기질 못지않게, 자신을 잘 알고 그 잘 아는 바대로 무덤덤히 타인 앞에 열려 있는 태도 또한 ‘자신감’의 일종일 것이다. 김태룡은 후자에 속한다. 그의 자신감은 ‘자신에 대한 감’이다. 그 감으로써 글자를 그려나감에 김태룡(은) 자신이 있다.
    김태룡의 작업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타이포그래피 서울』 독자 여러분을 위해 소개 한 번 부탁드립니다.

    ‘비대칭과 정방형’을 운영하는 김태룡입니다. 안녕하세요! 2016년에 ‘이면체’를, 2018년에는 ‘산유화’를 디자인하고 출시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폰트를 제작하지만, 요즘은 활자를 바탕으로 그래픽에도 조금씩 욕심내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는 ‘비대칭과 정방형’이라는 1인 스튜디오로 활동하고 있어요.

    스튜디오명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는데요. 글을 읽는 행위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시선의 운동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대칭처럼 보이는 활자라도, 시선의 운동에 반응해 활자의 ‘먹’을 ‘비대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방형’은 낱글자가 가진 여백의 다양한 배열과 가능성을 상상하며 떠올린 개념이고요.

    최근에는 2017년 만들어진 활자측정도구 ‘字—자’(제작: 김민주·김소희·오가희·오승현·이용제)의 그래픽을 활용해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의 한글 문화상품을 제작했고, 〈뷀트포메트 국제 포스터 페스티벌3〉의 한국 전시인 ‘단도전(Monochrome Show)’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김태룡이 표현한 ‘글자를 읽는 경험―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시선의 운동’
    〈뷀트포메트 국제 포스터 페스티벌3〉(2019.8.7-9.18 서울 KF갤러리) 참여작 ‘한글모임꼴소리’

    서체 디자이너 김태룡, 하면 아무래도 ‘산유화’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2016년 발표 당시 ‘세로쓰기용 한글 서체’라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그해 한국폰트협회가 주최한 ‘디자이너의 날’ 시상식에서 ‘올해의 서체 – 뉴제너레이션’ 부문 1등을 수상하기도 했죠. 지난해 가을엔 『보그 코리아』의 피처 기사 「저 글씨체 뭐야?」에도 소개됐고요. 산유화를 ‘타입 디자이너 김태룡의 대표작’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한데요. 이 서체를 제작하게 된 계기, 제작 과정 등이 궁금합니다.

    홍익대학교 대학원(미술대학 시각디자인과)에서 석사 논문으로 산유화 작업을 시작했어요. 지도 교수님은 석재원 교수님이셨고요. 세로로 조판한 민부리 글꼴은 자주 보이는데 세로짜기용으로 제작된 민부리 글꼴은 찾아보기 어렵다, 라는 점이 산유화를 기획하게 된 가장 큰 계기였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 제 머릿속에 가득했던 게 ‘눈의 움직임이 활자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까?’였어요. 그래서 산유화를 설계할 때 획의 기울기를 테스트해보기도 하고, 가로획과 세로획을 분리해보기도 했어요.

    산유화 초기안
    가로 조판, 세로 조판에 따른 산유화의 획과 시선 흐름
    산유화의 ‘유’ 파생관계
    산유화 라이트 용례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부분은 역시 ’유’, ‘윷’ 같은 ‘ㅠ’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제작 시 세로기둥이 이루는 가상의 흐름선을 강조해주는 역할을 해주길 바랐어요. 다른 폰트와 차별화를 이루는 지점이고, ‘산유화’ 속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실제 작업 기간이 1년 정도였는데, 논문까지 쓰려니 아무래도 좀 힘에 부치기도 했어요. 특히 논문의 형식이나 글로 활자를 표현한다는 게 생소하고 어려웠습니다. 서체는 2016년 발표했지만, 관련 논문은 이듬해 9월까지도 겨우 2쪽밖에 못 썼나··· 그랬을 거예요. 안병학 선생님(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장)의 꿀밤이 날아왔죠.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만드는 것을 글로 써서 기록하는 경험이 큰 도움이 됐어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고요. 잘 쓴다는 것은 아니지만!

    산유화와 같은 해 발표된 ‘이면체’에 대해 질문 드리겠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이면체의 데뷔무대(?)가 〈전시 히읗 네 번째: 한글의 일상〉(2016.3.22-4.10 국립한글박물관 별관)이었던 것 같은데요. 당시 이면체는 이면체가 아니라 ‘김태룡체’였습니다. 서체에 이름을 짓는다는 건 그 대상을 지칭할 수 있는 고유명사를 만들어주는 일이잖아요. ‘김태룡’ 대신 ‘이면’으로 개명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제 이름을 붙여서 ‘김태룡체’로 출시할 생각은 없었어요. 아마 당시에 폰트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해서 가제로 붙여놓았던 것 같아요. ‘이면’은 종이를 넘기면서 떠올렸어요. 한 장으로 맞닿아 있지만 마주볼 수는 없는 두 면을 상상했고, 글자의 선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출시할 때까지 1년 넘게 고민하다가 제일 마지막에서야 지은 이름이죠. 처음으로 출시했던 폰트라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운 부분도 많이 보여요.

    ‘이면’이라는 이름은 제가 활자를 보면서 항상 고민하는 점을 꼬집어주기도 해요. 활자에서 필기구의 영향이나 인체공학적인 부분을 배제할 수는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손으로 글을 많이 써 본 사람도 아니고, 심지어 악필이기도 해요. 쓰는 것보다 타이핑하는 게 더 익숙해요. 글자를 0과 1의 데이터로 보는 것이 익숙하단 뜻이겠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활자를 그리다 보면 어떤 지점에서 갈림길에 들어서요. 이진법의 갈림길이라고 할까요. 속공간의 획은 직선으로 할까(0) 말까(1), 이 획은 꺾을까(0) 말까(1), ···. 제게 활자를 그려나가는 일이란 찬성과 반대, 0과 1의 갈림길에서 결정을 쪼개 나가는 과정입니다. 찬성에서는 어떤 장점이 있고, 반대에서는 어떤 단점이 발생할지 따져보고 선택하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속공간의 획을 직선으로 깎으면 좀 더 시원해 보이는 장점이 있다면, 곡선으로 설계하면 획의 일관성이 높아 보이고 때에 따라 속공간이 넓어 보이는 듯한 착시를 활용할 수도 있을 거에요.

    이 모든 갈림길들이 제게는 활자의 큰 콘셉트에 따라 작은 선택들을 모아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주는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하나의 활자를 마치고 테스트를 하다 보면, 마치 이진법의 프로그램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요. ‘이면체’ 만들 때도 그랬습니다. 저 혼자 찬성 측, 반대 측이 돼보면서 머리 싸매고 만들었던 기억이 부끄럽게 떠오르네요. 그래서 이면체의 영문명은··· ‘twoface’예요.

    온라인 식품점 마켓가가 BI 작업
    봄맞이 글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레터링

    초면에 나이 얘기를 불쑥 꺼내 죄송합니다만, 제 주변의 타입디자이너들로부터 김태룡 작가님이 ‘30대 초반’임을 전해 들었습니다. 작가님의 경우, 대학 졸업 후 계속 독립 디자이너로 활동해 오신 줄로 아는데요. ‘30대 초반의 프리랜스 타입디자이너’로서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돌아볼 때, 가장 힘들었던 점과 좋았던 점(이를테면 ‘폰트 회사의 소속 디자이너였다면 시도하기 어려웠을 것들’)은 무엇이었나요?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죠. 그리고 혼자서 일정 만들고, 이런저런 일거리를 계속 진행해야 한다는 점도 어렵고요. 그리고 사업자를 내면서 깨달았는데, 서류작업은 공포(!)예요. 이외에는 모든 게 좋았습니다. 물론 당장 생존이 어려운데 다른 장점이 무슨 소용이겠냐만···.

    그렇지만 아마 폰트 회사 소속 디자이너였다면 개인 작업은 못했을 거예요. ‘산유화’도 ‘이면체’도 못 만들었을 겁니다. 저는 굉장히 소모가 빠른 타입이거든요. 오전에 출근해서 주어진 작업을 하고, 퇴근 후에 개인 작업을 시도한다는 건 불가능했을 거라고 봐요. 지금도 미팅이나 현장 답사를 다녀오는 날은 작업이 거의 진행이 안 되고 하루가 날아가버리거든요.

    독립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것에 장단점이 많겠지만,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100퍼센트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은 부분이에요. 활자 그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냐고 하면 또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독립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게 불안하긴 해도, 그만큼 재미있는 부분이 많고, 특히 제가 설계한 활자를 타이핑하는 순간은 굉장히 즐거워요.

    산유화 라이트(위)와 올해 출시 예정인 산유화 레귤러(아래)
    김태룡의 2020년 신서체 ‘산작’

    앞의 질문들이 너무 ‘과거 지향적’이었던 것 같네요. 이제부턴 현재시제, 미래시제로 바꿔보겠습니다. 최근의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 또는 현재 진행 중인 작업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 작업은 아니지만, 최근에 〈한 글자 One Letter 一文字〉(2019.12.20-2020.1.5 whatreallymatters[구 마포디자인출판지원센터]) 전시를 관람한 것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10년 뒤에 나는 어디쯤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살짝 본 것 같았습니다. ‘새로운 것’, ‘방법론’에만 요 몇 년간 집착하느라 뭔가 하나를 깊이 파고드는 일을 등한시한 건 아니었나 반성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고요. 전시 자체가 마치 ‘지금부터 네가 파놓은 구덩이 밑으로 우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 파고 들어가봐’라는 격려처럼 느껴져서 좋았어요.

    현재 진행 중인 작업으로는 삼화인쇄소 명조를 재해석한 ‘산작’이 있습니다. 삼화인쇄소 명조는 최정호 선생님이 만든 활자 중 독특한 특징이 많이 남은 활자예요. 공간에 원근감이 적용된 것도 그렇고, 특히 ‘ㅊ’의 삐침 등을 살펴보면 낱글자의 균형이 높은 압력과 긴장감을 가진 것으로 보여요. 여러 논리가 세심하게 조율된 글자를 살펴보면서 빈틈없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이 이런 걸까, 하고 깨닫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한 글자, 한 글자를 나아가는 것이 두렵기도 한 작업이죠.

    산유화의 중간 굵기인 레귤러 작업도 병행하고 있어요. 산유화 가족은, 제 스스로 계속 ‘빨리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꽤 늦어졌습니다. 산유화 레귤러와 산작, 두 서체 모두 올해 안에는 출시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산작 제작을 위한 산화인쇄소 명조 집자(集字)

    이면체는 “선과 선이 이루는 이면의 형상에 주목하여 그린 글자”, 산유화는 세로쓰기 전용으로 만들어진 서체입니다. 특히 산유화의 경우, 앞서 언급했던 『보그 코리아』의 기사를 인용하면 “한글이 가로쓰기로 바뀌지 않고 세로쓰기를 계속했다면 어떤 모습일까?”, “민부리 글자체를 좀 더 차별화된 모양새로 그릴 수는 없을까?”라는 두 가지 질문이 곧 기획 의도였습니다.
    두 서체만으로 ‘타입 디자이너 김태룡’의 지향점을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왠지 작가님은 ‘타입 연구가’형 디자이너처럼 보입니다. 대중성(상품성)을 부각하기보다는, 서체 자체의 단독성(독보성)을 더 염두에 두시는 것 같아요. 서체를 ‘상품’이기보다 ‘작품’으로서 대하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제 견해 혹은 오해에 대한 ‘작가의 말’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타입디자이너 김태룡은 지금 어떤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나요.

    차별화가 곧 상품성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한 번 생각을 했어요. 이거 본전 뽑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가능하다고 믿고 있어요. 제게는 상품과 작품을 가르는 기준이 없습니다. 제가 만드는 모든 작업물은 상품이에요. 더 잘 판매하고 싶어서 연구하고, 더 많이 팔고 싶어서 궁리합니다. 작품과 상품을 가르는 기준이 만약 제 생활을 포기하더라도 만들고 싶은 어떤 것이라면 저로서는 앞으로도 ‘작품’을 만들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해요. 스스로 돈 받고 팔기에 부끄럽지 않은 상품을 만들고 싶을 뿐이죠.

    저 개인으로는 멋진 활자 디자이너가 되고 싶지만, 사회적으로는 멋진 활자 장사꾼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 학교에 별로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아마 대부분의 학생이 그랬겠지만요. 그래서 부산의 정육 공장으로 흘러들어갔어요. 반 년쯤 공장에서 일하고 반 년쯤은 시장에서 판매원으로 있었죠. 앞으로 무엇을 하더라도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은 오히려 그 시절에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몰랐더라도 지금도 여전히 나침반처럼 작용하는 부분이 있어요. 정성 들여 좋은 상품을 만들고, 만든 상품을 잘 판매하는 것. 단순하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산작으로 쓴 소설 『마션』의 첫 두 문장

    마지막 질문입니다. 양력, 음력 모두 1월 1일은 지났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연초니까, 작가님의 ‘새해 계획’을 들어보고 싶어요.

    2020년에는 산유화 가족과 산작을 출시할 예정이고 2015, 2016, 2017, 2018, 2019년 목표였던 웹사이트를 올해는 꼭 만들어야겠습니다. 이외의 프로젝트는 아직 계약서에 도장을 못 찍어서 말씀드리기가 좀···. 올해는 활자 디자인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혀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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