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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평론가 최범

    “디자인을 전공할 때부터 내 디자인을 하는 것보다는 사회 속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어요.”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3년 07월 18일

    디자인 평론가 최범

    우리나라의 유일한 디자인 평론가라고 불리는 최범. 단순히 디자인에 대해 평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오해일 수 있다. 그는 한국 디자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담론을 형성하고 아젠다를 만든다. 그리고 통찰의 결과를 책으로 쓴다. 올해 초 한국 디자인의 국가주의적 성격을 정면으로 다룬 평론집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안그라픽스)>는 최근 우리 사회 디자인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와 같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저야 디자인 평론을 하는 사람이니까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거나 공공기관 관련된 자문회의 같은데 참석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관계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비평이라는 게 말과 글로 하는 거잖아요? 비평할 곳은 많죠(웃음). 소액다건으로 하고 있습니다(웃음).

    디자인 평론 분야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디자이너의 길을 가지 않고 디자인 비평가의 길을 가고 있는데, 뭐라고 할까요, 디자인을 전공할 때부터 디자인의 존재 방식이라고 해야 하나, 나의 디자인을 하는 것보다는 사회 속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그런 것에 대해 발언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디자인을 생산하는 쪽보다 디자인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죠.

    디자인 평론이라는 분야의 개척자이신데 쉬운 길은 아니셨을 것 같아요.

    외로워요(웃음). 디자인 평론이라는 것 자체가 낯선 분야잖아요. 처음 시작할 때는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걸 하니까 제가 되게 똑똑하고 잘난 줄 알았거든요(웃음). 그런데 아무리 가도 길벗이 안 나타나더라고요. 그래서 남들은 똑똑해서 이 길을 안 갔구나, 내가 어리석어서 혼자 가는 거구나(웃음). 어떤 분야든 사람이 일을 할 땐 크게 두 가지 동기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자기만족이나 의지 같은 것이고, 또 하나는 타인 또는 사회로부터의 인정이지요. 누굴 만나서 디자인 평론한다고 하면 그런 걸 왜 하세요? 이런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웃음). 일단은 대단하다고 하죠.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무관심해요(웃음). 겉으로는 존경받는데 속으론 무관심한, 하지만 자기만족은 큽니다(웃음).

    어떤 부분에서 가장 만족스러우세요?

    어떤 사람이든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보람을 느끼잖아요. 대단히 큰 건 아니더라도 저 한 사람 보람을 느끼기엔 충분한 정도지요. 한 인간이 의미를 갖고 살아가는 데는 인류 전체의 인정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웃음). 디자인 평론도 제가 자발적으로 하는 거라서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프로젝트를 의뢰받아서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그 결과로부터 성과를 얻어내는 과정 자체가 만족스러워요.

    그는 어딘가에 종속되기보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면서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탐색하고 연구한다. 그렇기에 스스로 던진 문제들이 확인되고 풀려 답을 얻게 되었을 때 느끼는 기쁨은 참으로 크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것에 의문을 갖고 질문을 던진다. 당연하다 여기는 것도 최범이라는 한 인간의 생각 그물에 포착되면 물음표가 된다.
    
    ▶ 디자인학과가 개설되어있는 수많은 국내 대학들

    우리나라 디자인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제가 정말 많다고 봐요(웃음). 디자인 평론가로서 갖고 있는 가장 근본적이 문제의식은 이런 거예요. 우리나라는 디자인 대학도 많고, 일 년에 삼만 오천 명이 졸업하고 있고, 국가에서 디자인에 엄청난 공적 예산을 투입하고 있고, 외형적으로도 굉장히 방대한 디자인 제도를 갖고 있는데 일상에서 경험하는 디자인은 왜 이리 후질까? 제도는 풍요로운데 현실은 왜 빈곤한가 하는 문제죠.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도 있겠지만 왜 그런 걸까요?

    한 가지로 정의하긴 어렵고요. 역사적인 문제라던가,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 또 구조조정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요. 제가 볼 때 한국 디자인의 모순은 자본주의 한 가지 때문에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자본주의와 국가주의라는 두 가지 힘이 결합하여 나타난 것이거든요. 나라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자본주의는 전 세계의 공통 문제이기에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그런데 의외로 국가주의에 의해서 크게 왜곡된 부분은 아무도 문제로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정말 기이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천착하게 되었고 책에도 썼는데 한국 디자인은 국가주의에 대한 설명 없이는 설명이 안 된다고 봐요.

    제도의 비호를 받아서 침묵을 지킨 걸까요? 아니면 인식 자체를 못했던 걸까요?

    거의 무의식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는데 다르게 말하면 소위 국가주의적 포섭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얘기죠. 예를 들면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이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은 그 제도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인 거죠.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디자인의 영역을 넘어서 인문학적인 문화 비평의 성격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흔히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말을 하는데 디자인은 당연히 인간을 위한 거죠. 인간의 문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게 인문학이고 디자인의 문제를 인간의 문제와 연결해서 다루니 당연히 인문학적 접근이 될 수밖에 없죠. 제가 평론 활동을 시작한 게 우리나라에 문화 비평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1990년대 초부터예요. 지금은 디자인 비평이라는 좀 더 구체적인 영역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회적 신원을 따지자면 1990년대 등장한 일군의 문화 평론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회 양극화는 디자인 영역에도 고스란히 반영되는데 그는 이런 현상을 디자인 양극화라고 표현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그런 엘리트 디자이너가 있는가 하면, 디자이너라고 부르기 곤란한 정도로 단순한 일을 반복하는 디자이너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디자인의 주권은 철저하게 대중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스타 디자이너만 앞에 내세우는 정책, 공공의 이익을 지향하지 않는 반(反)대중적인 디자인 정책에도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한다.
    
    ▶ [좌]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최범 디자인 평론집 3)  [우]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최범 디자인 평론집 2)

    우리나라 디자인의 모순은 국가주의에 한쪽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런 의미에서 근대화 과정과도 맥이 닿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식민지라는 과거 역사도 있고요. 어떤 의미에서 한국 디자인은 심하게 도구화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디자인만 그런 게 아니라 교육을 포함한 한국 사회의 모든 삶의 장면들이 거의 그래요. 솔직히 말해서 인격을 고양하고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학교에 가는 사람이 있나요?(웃음)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서 취직하는 사람은요?(웃음) 교육도 직업도 돈을 벌기 위해 철저하게 도구화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잖아요. 한국의 근대화가 만들어낸 구조적인 요인이겠죠.

    디자인 그룹 내부의 엘리트주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디자이너 집단 전체로 봤을 때는 오히려 엘리트주의를 가진 디자이너들이 소수일 거예요. 사실은 훨씬 더 많은 디자이너가 엘리트 의식을 가질 여건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 기술자로 일하고 있거든요. 문화 평론가 서동진 씨가 디자인 잡역부라고 표현한 계층인데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발언권도 없지만, 대다수 디자이너들이 여기에 속하죠. 문제는 목소리를 내는 소수의 디자이너가 대개 대학교수라는 점이에요.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만 해도 회원들의 70%가 대학교수거든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디자이너 단체의 중심조차 실무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뜻이죠.

    대학을 중심으로 디자인 교육이 이뤄지는 것에도 문제가 있을까요?

    가장 큰 문제는 제도화된 디자인 집단은 우리 사회 또는 시민의 질을 위해서 봉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국가중심의 발전주의에 결합한 전문가 집단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영혼을 판 거라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네요. 제가 좀 과격한가요?(웃음) 어느 분야든지 전문가들이 공공정책에 관여하는 것 자체는 당연하지요. 그게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다만 그들의 정책 방향이 시민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묻는다면 국가 편에 서는 자들이 압도적으로 많거든요. 적어도 자신이 한 사회의 전문가라면 사회적 소명을 가져야 한다고 봐요. 엘리트여서 문제라는 게 아니라 엘리트이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왜냐면 한 사회의 엘리트로 성장할 땐 혼자 잘나서가 아니잖아요. 사회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죠.

    디자인 영역에서 대중 혹은 시민의 역할은 어떤 걸까요?

    전 디자인이 대중이 경험하는 일상의 문화라고 봐요. 우리나라 헌법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표현이 있는데 디자인에도 헌법이 있다면 마땅히 디자인의 주권은 대중에게 있는 거죠. 디자인은 철저히 대중을 위해야 하고 대중이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제가 비판하는 국가주의 디자인의 핵심도 거기에 있고요. 디자인 문화는 경험되는 것이지 구경거리가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론이나 전시로 끝나는 디자인이 아니라 실천적 행위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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