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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디자이너 유명상

    “자기 성향에 맞는 작업을 하고 싶은데, 그 성향이 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5년 08월 11일

    그래픽 디자이너 유명상

    사람들 속에 있어도 자신만의 공간을 지닌 사람처럼, 그는 고요히 침묵 속에 있다.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 시간, 말과 말 사이의 짧은 침묵은 그 자신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 듯하다. 생각이 많아서일까. 밀도가 높은 침묵의 세계에서는 불꽃 튀는 포탄처럼 격렬한 사고의 편린들이 오고 간다. 독특하고 흥미롭다. 그래픽 디자이너 유명상을 만났다.

    최근 근황은 어떠세요?

    책을 만들고 있는데 글은 거의 없고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책이에요. 하나의 주제로 시리즈를 만들어 그 이미지를 모으는 성격이 될 것 같아요. 처음엔 선인장 이미지에 끌려서 여러 개 만들다가 조금씩 변형을 하게 됐어요. 종이로 만들어 붙여서 둘러싸는 식으로 공을 많이 들여서 시작했는데, 이렇게 50개를 만들긴 힘들겠구나…(웃음). 식물과 재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형태를 실험하는 작업이 될 것 같아요.

    하나의 형태를 변형하는 것에 흥미가 많으신 것 같아요.

    작업할 때 사람마다 자기가 집중하는 분야가 있을 것 같은데 저는 내용이나 이야기를 보고 좋다고 하기보다 이미지를 보고 좋으면 아, 좋다 하는 타입이에요. 비교적 최근에 한 생각이긴 하지만 확실히 형태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욕구도 있고요. 이런 종이컵 작업도 특징이 손으로 하는 건데 어떻게 하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나온 것이거든요.

    왜 그렇게 끌리셨어요?

    잘 모르겠는데…(웃음). 예전에는 타이포그래피를 기반으로 한 작업을 많이 했는데 어느 순간 계속하기엔 에너지가 안 생기더라고요. 외부에선 좋다고 하는 분들이 계셨어도 제가 진심으로 좋다고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그때부터 방향을 새로 잡게 된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었고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가장 컸던 것 같아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도 있는데, 그 말도 맞지만, 그래도 계속 작업을 하게 된 동력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하신 작업 중에서 가장 새롭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떤 건가요?

    얼마 전에 끝난 전시에서 협업을 했는데 작가가 작업한 것을 바탕으로 제가 포스터와 도록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디자이너가 평소 하던 대로 하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재미있게 했던 것 같아요. 결과도 비교적 만족스럽고요. 404호에서 전시를 했고, 작가가 404쪽이라는 제목을 붙였죠. 그래서 저도 그것을 변형해서 작업했어요.

    <녹색책(가제)>의 부분, 개인 작업, 책, 2015
    404쪽 page 404, 커먼센터, 포스터, 2015
    그의 작업에서 눈에 띄는 컬러는 단연 흑백이다. 선명하면서 흐린 것까지 스펙트럼이 다채로운 흑백들은 복잡한 사고의 신경 다발, 혹은 섬세한 신경의 뉴런처럼 보인다. 전면에 배치되어 있는데도 동시에 한쪽으로 물러나 있는 느낌. 묘한 이중성과 복합성은 신화와 무속의 분위기를 띠며 무의식을 자극하고 수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흑백 작업이 많은데 선호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도 뭔가 이유가 있으면 좋겠는데 색을 잘 못 쓰는 것 같아요. 색을 써도 단순하게 들어가고. 제가 봤을 땐 인쇄 매체의 속성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흑백으로 간 것 같기도 하고, 그래픽적으로 다듬어진 이미지를 선호하다 보니 색의 레이어가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색을 쓸 때도 배합이 마음에 들지 않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것과 별도로 분명 흑백이 갖고 있는 매력이 있어요. 하지만 자연스럽게 흑백 쪽으로 갔을 때 내가 너무 안전하게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죠. 그래도 마음 한쪽엔 시안을 만들 때 최대한 색을 쓰려고 하는데도 흑백보다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많네요.

    작업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요?

    일로 하는 것과 개인 작업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편이에요. 클라이언트 일은 최대한 원하는 대로 맞춰드리지만, 개인 작업은 순수하게 이미지가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만족도가 첫 번째에요. 최근 식물의 형태를 바탕으로 하는 작업을 모아 ‘녹색책(가제)’이라고 이름 정하고 이미지와 함께 작업 과정을 글로 적었거든요. 무언가 작업을 하고 설명할 때 정말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설명을 위한 설명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우선 지켜보고,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먼저 하는 게 필요하더라고요. 많은 고민을 하지 않고 습관처럼 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것을 책으로 묶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작업에 대한 고민도 많으실 것 같아요.

    생각이 정말 많은 편인데 그게 좋은 것 같진 않아요. 그래서 요즘은 몸을 먼저 쓰자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새로운 이미지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는데,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때부터 생각으로 들어가요. 예전엔 평소 봐온 레퍼런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흐름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실제로 1년 이상 레퍼런스를 안보기도 했어요. 결과적으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웃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레퍼런스를 많이 봐서가 아니라 네 수준에서 너무 적게 봐서 그럴 수도 있다, 압도적으로 많이 봐라, 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제가 어떤 부분에선 강박적인 면이 있는데 지금은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작업과 자신에 대해 엄격한 면모가 보이는데요

    그런가 봐요. 주변에서도 그런 얘기를 종종 하시고. 완벽주의냐는 얘기도 듣고. 많이 풀렸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게 있어요. 그래도 예전 같으면 지금 같은 작업을 못 했을 것 같아요. 겉으로는 되게 투박하게 보여도 이면에는 엄청나게 다듬어서 딱 만들어놓는 성향이 있었거든요. 지금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요. 그래서 가끔 작업이 과해질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수영장 시리즈, 개인 작업, 포스터, 책, 2014 ~ 2015
     종이컵, 개인 작업, 신문, 2013
    그의 작업 스타일은 설령 쉽게 한 듯 보이더라도 손이 엄청나게 많이 갔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이면에는 숱한 고민과 생각이 겹겹이 켜켜이 쌓여 있다. 자유분방함을 지향하면서도 수도자처럼 자신을 꽉 얽어매고 있는 듯, 모순처럼 여겨지지만 서로 다른 방향이 한 지점에 모여 있다. 평면인데 입체인 듯 보이는 그의 작업처럼 단순하지 않은 그의 에너지가 다음 작업에서 어떻게 풀릴지 기다려진다. 

    텍스트보다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작업을 보면 메시지도 강하고 할 말이 많아 보여요.

    수영장 시리즈는 작업 자체를 제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한 것이에요. 현재 1부터 6까지 나왔는데 시리즈별로 작업하는 방법이나 지점을 조금씩 다르게 하면서 어떤 식으로 해야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오는지 보려고 했던 작업이었어요. 예를 들면 첫 번째는 어렸을 때 수영장에서 겪은 일이 강렬하게 남아 있던 것을 일러스트처럼 풀어본 것이고, 두 번째는 그 기억을 글로 풀어봤어요. 세 번째는 제가 쓴 글의 한 장면을 푼 것이고요, 시작은 제 개인의 이야기에서 시작했지만, 작업을 하다 보니 그게 중요하지는 않더라고요. 이 작업을 하면서 스타일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긴 했던 것 같아요.

    가볍게 보고 지나는 작품이라기보다 내면의 깊은 감정을 자극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저한테는 또 다른 고민이긴 한데 제가 좋아하는 레퍼런스를 봐도 무거운 톤의 이미지들을 좋아하더라고요. 제 작품에 대한 자신의 선호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런 점이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데 과연 도움이 될까? 고민은 돼요. 무겁고 어둡고 강렬한 것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 많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더 중요한 건 그런 쪽의 일이 많지 않아요(웃음). 예전에는 일부러 만들어나갔던 분위기인데 지금은 깨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작업이 안 풀릴 땐 어떻게 하세요?

    작업을 몰아서 하는 편이라 안 풀릴 땐 안 해요. 그렇게 할 수 없는 일도 있지만. 대개는 머릿속으로 계획을 짜서 만드는데, 마감 직전에 즉흥적으로 만들 때도 있거든요.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했을 때 결과가 마음에 드는 경우가 많았어요. 후자의 방법은 제 마음을 쉽게 풀리게 하는 요소가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으세요?

    자기 성향에 맞는 작업을 하고 싶은데, 그 성향이 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웃음). 장기적으로는 지금 제가 있는 곳의 반경을 넓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그중 하나는 공간에 관련된 일이고 또 하나는 도자기나 가구처럼 손으로 만져서 하는 일이에요.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단기적으로는 지금 하고 있는 책 작업을 꾸준히 해서 몇 권 만들고 싶어요. SNS처럼 외부의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많이 열려 있는 세상이지만 저랑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생산된 물건으로 만나는 길을 생각하는데 제가 만든 무언가가 사람들과 만나는 창구가 되길 바라고 있어요.

    <도면 외우기, 도면 만들기, 도면 지우기>, 개인 작업, 책, 2013
    (좌) <BB: 바젤에서 바우하우스까지>,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책, 2014 (우) <불가사의한 예술 프로젝트> 결과 보고서,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책, 2013
    해인 아트 프로젝트, 해인사, 전시 디자인, 2013
     (좌) 육장육부, 생강한의원, 일러스트레이션, 2015 (우) 식당극장,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포스터,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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