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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이너 이새봄의 ‘새봄체’ 제작기 #2

    ‘새봄체’의 원형인 궁체를 공부하기 위해 펼쳤던 책들


    글. 이새봄

    발행일. 2013년 07월 02일

    디자이너 이새봄의 ‘새봄체’ 제작기 #2

    생각의 흐름을 따라서 새봄체에 대한 콘셉트를 잡고 나니, 그다음 할 일은 궁체 중에서 어떤 ‘궁체’를 원형으로 삼을지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궁체에 대해 살펴보며 아름다운 글자꼴을 가진 궁체가 어떤 것인지 찾아보았습니다.

    2011년, 새봄체의 첫 모습

    2011년 새봄체를 제안했을 때에는 ‘궁체를 다시 보자’라는 생각으로 진행했기에 제가 살펴봐야 할 ‘궁체’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한글서예변천전』(예술의전당, 1991년)을 살펴보면서 조선 시대의 문헌 중 궁체로 쓰인 문헌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았고, 그중에서 글자의 형태가 아름답게 보이는 서책들을 몇 권 택하였습니다. 이때 선정된 문헌들이 <출사표>, <옥원듕회연>, <남계연담>이었지요. 그래서 이 세 서책의 글자들을 종류대로 분류한 뒤, 획의 형태와 굵기, 위치 등을 분석하였고 그것을 직접 활자에 대입하고 적용하면서 제안 글꼴(새봄체의 첫 모습)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 제4회 한글글꼴창작지원금 제도에 지원했던 제안서 일부. 새봄체의 첫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안을 보셨던 심사위원들께서 “세 권의 서책으로 활자화하는 것은, 서사자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고, 그것은 필체와 필력 또한 모두 다르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 활자의 정체성에 혼란을 줄 수 있다. 그러니, 한 권으로 한정하여 그 서체의 특징을 더욱 반영하는 것이 좋다”라고 권해주셨습니다.

    사실, 제안 글꼴을 만들기 위해 각 서체의 특징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발견했었습니다. 필체의 서로 다른 특징으로 인해서 한 글자에서 어떤 형태를 더 우선하여 택해야 하는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제 미감을 의지하며 결정했었기 때문에, 그 조언이 굉장히 동의가 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작업 방향을 바꾸어, 하나의 서책으로 원형을 삼기로 했습니다.

    새봄체의 원형을 찾아서

    새봄체의 원형이 될 아름다운 궁체로 쓰인 서책 한 종류를 고르기 위해 또다시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궁체의 형태를 눈으로 보고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서책들을 골랐다면, 이번에는 궁체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본 뒤 궁체의 아름다움에 대해 논하자, 라는 생각으로 하나씩 공부하기 시작했지요. 먼저 궁체의 대상은 무엇인지, 궁체가 어떻게 서체로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어떻게 발달하였고 그에 대한 역사적 의미는 어떠한지 등등에 대하여 공부해나갔습니다. ※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논문 「한글 궁체 연구를 통한 현대 활자꼴 개발」(이새봄, 2012)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흐름 1. 궁체에 대하여

    궁체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쓰기 시작하여 생긴 서체[박병천. 『한글궁체연구』(1983), 117쪽]를 말합니다. 혹은 궁중의 궁녀들이 쓴 서체라고 해서 궁체라 하기도 합니다. 서예학계에서 이렇게 의견이 나뉘는데, 이는 궁체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궁체 작품의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으로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저는 전자의 정의를 따르고자 합니다.

    궁체는 처음부터 서체로서의 틀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궁중에서 남녀 신분에 상관없이 한글 필서가 사용되어 온 과정에서 한자 필서에 고착화되지 않았던 여성들(주로 궁녀)을 중심으로 오랜 시간 동안 다듬어지면서 형성된 한글 서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허경무, 『한글 서체의 원형과 미학』(2008), 15쪽 및 193쪽 참고]

    궁체의 시초는 한글이 반포된 지 불과 18년 후인, 세조 10년(1464)에 쓰인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이라 할 수 있으며, 이후 숙종조(1674~1720)부터 영조·정조 시대(1725~1800)에 이르러(이 시기를 ‘궁체의 발전기’라고도 부릅니다) 드디어 궁체라 불릴 수 있는 하나의 서체 전형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궁체가 짧은 기간 내에 혹은 갑자기 만들어진 서체가 아니라, 그 태동부터 대략 260여 년이 넘도록 연마되어 형성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 궁체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1464)

    이렇게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 온 궁체는 글자 생활을 위한 수단으로 쓰였지만, 한글이 지니고 있는 붓글씨로서의 멋과 아름다움을 한껏 표출해냄으로써 글자의 예술화에도 깊은 관심과 노력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허경무, 위의 책, 194쪽 참고) 예로부터 시서화(詩書畫)를 통해 붓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해왔던 우리 선조가 한글을 쓰면서도 자연스레 아름다움을 추구했을 것으로 생각해봅니다.

    흐름 2. 아름다운 궁체에 대하여

    이런 역사를 지닌 궁체 중에서 과연 어떤 시대의 어떤 서책의 서체가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한글 서예 전문가들의 평가를 참고하였습니다. ‘내 눈으로 봤을 때 아름다운 것을 과연 만인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만인이 아름답다고 하는 서체를 원형으로 고르기로 했습니다.

    한글 서예 전문가 박병천 선생님은 <한글궁체연구(1983)>를 통해, 아름다운 궁체 원전 5권을 대상으로 미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하였으며, 이를 직관적 판단과 수치적 분석을 통한 판단으로 나누어서 궁체의 문장 구성미와 글자 구조미를 고찰하였습니다. 그 결과, <옥원듕회연>의 서체가 가장 아름답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에 대해 비단 박병천 선생님뿐만 아니라 꽃뜰 이미경 선생님, 난정 이지연 선생님 등 많은 서예 전문가들도 의견을 함께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를 바탕으로 <옥원듕회연>의 서체를 새봄체의 원형으로 삼기로 하였습니다.

    ▲ 한글 서예 전문가들이 아름답다고 평가한 조선 후기 소설 <옥원듕회연>

    오늘은 새봄체를 제작하면서 공부했던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어서 다음 주에는 이 <옥원듕회연>의 서체를 갖고 실제로 어떻게 제작하게 되었는지, 새봄체 제작 과정(2)과 앞으로의 새봄체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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