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문의





    검색

    닫기
    t mode
    s mode
    지금 읽고 계신 글

    ‘리슨투더시티’ 박은선·권아주·정영훈

    “도시도 크게 보면 인간의 집단지성이 만든 공통재(commonwealth)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3년 12월 16일

    ‘리슨투더시티’ 박은선·권아주·정영훈

    남산 가까운 곳의 오래된 한 아파트.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나면 어떤 정서가 진하게 느껴지는 '아지트'라 불릴 만한 곳이 있다. 스타일이 곧 메시지가 될 수 있다면 공간 자체가 그들의 마인드를 반영하는 듯했다. 유동적이지만 강력한 멤버십을 내세우는 그 어떤 모임보다 더욱 끈끈한 유대감이 느껴지는 사람들, 리슨투더시티(Listen to the City)의 박은선, 권아주, 정영훈을 만났다.

    4대강이나 두리반 등 사회적 소재에 대한 작업을 꾸준히 하고 계시는데 계기가 있으셨나요?

    박은선(이하 은선)
    2009년에 우연히 4대강 공사현장을 가게 되었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첫째, 파괴되기 전의 강이 정말 아름다웠는데 공사 시작하자마자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거죠. 또 하나 너무나 큰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미디어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거예요. 어쩌다 이렇게 우리는 철저하게 자연과 괴리 되었는지 고민이 많이 되었죠. 지율 스님과 같이하면서 새롭게 배우고 일도 많이 했어요. 4대강 공사 이후로 공통재(commonwealth)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어요.

    관심을 갖고 계신 또 다른 장소가 있다면요?

    은선
    저희는 도시도 크게 보면 인간의 집단지성이 만든 공통재라고 생각해요. 관심 있는 곳이 많지만, 청계천은 도시의 자생적 역사를 지우고 ‘가짜’ 하천을 만든 최초 사례라서 청계천에서 투어도 하고 있어요. 청계천이 생각보다 현대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곳입니다. 청계천은 도시민의 역사를 무리하게 지워 버린 문제도 있지만 ‘하천’,’녹색’이라는 말을 혼동하게 만든, 본격적으로 언어를 오염시킨 첫 사례인 것 같아요. 4대강을 가능케 했던 주범이기도 하고요. 언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면 ‘4대강 대운하’였는데 어느 순간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잖아요.

    도시라는 주제로 다양한 작업이 가능할 것 같아요.

    은선
    도시교환이라는 프로젝트를 리버풀-서울, 서울-도쿄에서 했어요. 라캉의 거울 단계를 예를 들어 말하자면 아이가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처음으로 하나라고 인식하잖아요. 그렇게 서로의 도시를 보려면 우리가 거울이 되자, 라는 생각에서 출발해서 리버풀 사람들이 서울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고 저희도 리버풀에 대해 상상해서 작업했어요. 정보도 없고 리서치도 안 한 상태에서. 그런데 작업이 끝나고 보니 의도는 서로 비추려고 했는데 자화상을 그린 것 같은 형태가 되더라고요(웃음).

    삶과 밀접하게 이어진 작업이라 기억에 남는 일이 많으시겠어요.

    은선
    하나하나 다 마음에 남죠. 내성천 한 평사기를 할 때, 한 평 사기 참여하신 분들께 유리병에 내성천의 모래를 병에 담아서 전시회 오시는 분들에게 하나씩 드렸어요. 복구될 때 다시 가서 부어주자는 의미에서. 그런데 가슴이 되게 아픈 게 지금 영주댐 시작 2년 만에 이렇게 고운 모래가 많이 없어요. 굉장히 거칠어진 상태예요. 두리반이나 마리 카페에 얽힌 기억도 많고요. 특히 마리카페 같은 경우 두 달간은 용역깡패와 늘 대치가 있는 날들이었고. 부평 콜트콜텍 공장에 잠깐 있었던 작업실 집기나 이런 것도 강제로 들려나간 일도 있고요.

    리슨투더시티 작업실이 있는 남산회현시범아파트. 여기에서 공간의 기록에 대한 작업을 할 예정이다.
    내성천 영주댐 공사 전 후, 포스터, 2013, listentothecity 
    [좌]어반드로잉스02, 휴머니즘과 모더니티, 2010 [우]어반드로잉스02, 4대강 지도, 2010_listentothecity_디자인 정진열 
    청계천, 2010, listentothecity  
    처음부터 도시가 있었던 건 아니다. 도시는 개발되고 확장되고 방식으로 몸집을 불려 왔다. 그 과정에서 이익을 본 사람들이 있는 반면 삶의 터전을 잃고 뿌리를 뽑혀 떠도는 이주민도 생겨났다. 누군가 스카이라인을 볼 때 같은 시각 누군가는 철탑에 올라가 있다. 이주 혹은 탈주를 통해 근대적 공간은 도시라는 이름으로 태어났고, 근대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도시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계속 작업을 해나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권아주(이후 아주)
    아무래도 일 하나하나에 책임감이 많이 느껴지죠. 계속 작업이 이어지는 이유는 은선 씨의 헌신이 정말 큰 덕분이고요, 저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에요. 처음 관심을 갖고 리슨 투 더 시티의 작업을 봤을 때 도와주고 싶더라고요. 한 번 발을 담갔으니 책임을 져야죠(웃음). 단지 우리 작업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런 점은 느껴요.

    나중에 합류하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아주
    전 처음에 건축을 했는데 사회 참여적인 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냥 미술이라는 걸 하고 싶진 않아서 건축에서 길을 찾았는데 겉모양이 아름다운 디자인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직장을 다니다 보니 비즈니스와 밀접한 실상과 제 이상과 맞지 않더라고요. 일하다가 환멸을 느껴지는 일도 많이 생기고. 그럴 바에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시각디자인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더라고요.

    실제로 작업하시니 어떠세요?

    아주
    현대미술을 보면 자기 안에 갇힌 경향이 많잖아요. 지나치게 개인에 몰입하는 면도 있고요. 리슨 투 더 시티의 작업을 하다 보면 겉멋 든 작업이 아니라 진짜 참여하면서 사회를 이루는 계층과 소통하려는 모습이 좋아요. 그런 생각을 같이하고 있는 멤버들과 함께 하는 일들이 좋고요. 작은 부분이지만 목소리를 내는 일에 의미가 있고요. 진정성에 다가가는 작업이라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어떤 건가요?

    미술 생산자 모임이라고 있는데 젊은 미술가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결과물을 묶을 예정이에요. 요즘 살기 힘들잖아요. 척박하고 힘들고 산재보험 당연히 안 되고. 이런 상황에서 작가들이 모여서 우리가 어떻게 타파해나갈 것인가, 여러분을 초청해서 토론도 하고 정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는 모임을 하려고요. 앞으로 어떤 콘텐츠가 있을 때 어떤 방법을 찾을 것인지, 내가 관심 있는 이야기에 자율적으로 참가하고 싶어요.

    리버풀-서울 도시교환, 2010, listentothecity_디자인 정진열 

    두리반 뒷뜰의 스페이스 모래, container gallery, listentothecity, 2011, 현재는 내성천에 옮겨 놓았다. 
    sit-in protest architecture 건축 리서치, 2013, listentothecity_디자인 권아주  
    리슨투더시티의 작업은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삶과 디자인이 분리되지 않고 밀착된다. 그렇기에 단기에 끝나는 작업보다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그들의 작업은 이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 빚을 느끼게 하면서도 예술이 사회의 가장 기층적인 힘이 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한다. 봉사나 도움의 객체로 뒤에 있기보다 당당히 주체가 되어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리슨투더시티. 앞으로의 작업이 더욱 기대된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나요?

    정영훈(이후 영훈)
    저한텐 그냥 쉬운 결정이었어요. 생각하면 복잡해져요. 믿고 가는 거죠(웃음). 작업이 재미있을 것 같았고 은선 씨에 대한 믿음이 컸던 것 같아요. 은선 씨나 아주 씨가 지닌 성향과 내가 가진 성향이 만나면 뭐가 나올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전 주장이 강해서 협업이 잘 안 되거든요. 지금도 개선이 안 되는 부분이 있기에, 오히려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또한, 다루지 못하는 영역을 배워가며 다루는 것도 매력적이었고요.

    작업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요?

    영훈
    제 에너지와 다른 분들의 에너지가 결합하고 조화된다면 새로운 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른 생각들이 만나고 부딪혀서 나오는 결과물이 궁금하고요. 아직은 실험단계인 것 같아요. 어떻게 될까? 항상 묻게 되죠. 주로 작업물이 시각적 형태로 나오는데요, 시각적인 것은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고 믿어요. 또 우리도 영향을 받고요. 작업하는 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재미있어요. 힘들 때도 있는데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리슨투더시티 작업은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

    영훈
    현재 모습을 현재의 시점에 맞게 시각언어로 기록하는 데 의미가 있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거에요. 텍스트로서의 기록보다 이미지의 기록이 더 강렬하게 남거든요. 직접적이고 직관적으로 다가오니까요. 현재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고 노력하고 시각언어로 풀어낸다고 생각해요. 왜 이걸 해야 하지? 생각하기보다는 ‘운명인가 봐’ 이렇게 생각하며 해요. 그래야 병이 안 나고 영혼이 안 다치고 안 아파요.(웃음)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요?

    영훈
    저는 글자 만드는 걸 정말 좋아해요. 글자의 형태에 관심이 많고 글자의 형태가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같은 텍스트라도 고딕이나 궁서를 쓸 때 인상이 확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죠. 메시지를 담는 형식 자체가 메시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회현아파트’ 작업실에 있으면서 이곳에서 사용한 글자를 돌아다니며 수집하려고 해요. 수집한 글자를 조합하고 다듬어 폰트로 만들 계획이에요. 단순히 글자를 수집하고 폰트로 만드는 것은 아니고요. ‘회현아파트’가 가진 시간과 공간을 글자라는 미디어를 통해 압축시켜 보려고 해요. 시각언어로 기록하는 작업이 될 것으로 생각해요.

    [좌]콜트불바다, 포스터, 2013 [우]어반드로잉스03, 동대문디자인파크의 은폐된 역사와 스타건축가, 2013, listentothecity_디자인 정영훈 
    콜트불매 포스터, 2013, listentothecity_디자인 정영훈 

    Popular Interview

    인기 인터뷰

    New Interview

    최신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