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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과 소리를 디자인하는 박훈규

    그래픽 디자이너 겸 VJ(Visual Jockey) 박훈규의 ‘뷰직(view+music)’ 철학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3년 02월 07일

    빛과 소리를 디자인하는 박훈규

    처음이었다. 인터뷰 장소에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디자이너는.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인터뷰이들이 지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작업실로 찾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오히려 그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도 왜 유난히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단지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것 이상의 기다림. 이 사람은 자신의 생에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를 표현하기 위해 ‘브이제잉을 하는 특이한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싶진 않다. 그러기엔 그는 새롭고, 도전적이고, 그리고 광대무변하다.

    전방위적인 작업을 하시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요?

    디자이너가 원래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웃음) 다양한 퍼포먼스를 갖고 있으니까. 상식적이지 않고요(웃음). 영상도 채널을 맡을 정도로 많지만 작업 하나하나가 다 기억에 남아요. 장르마다 다르기도 하고. 작업마다 다른 의미가 있어요. 의미가 없는 일은 되도록 안 하려고 해요. 디자인은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달라지지만 제 작업을 할 때는 편하게 하지요. 곡예사가 중심을 잡는 것처럼 왔다 갔다 해요(웃음).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진 않을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균형을 잡는 걸 생각하진 않아요. 걸을 때도 왼발 오른발 의식하진 않잖아요. 기타를 칠 때도 몇 번 줄을 어떤 손가락으로 잡나 고민하지 않듯이. 지금 상태는 좀 중립적이에요. 엄청난 사운드 속에서 몇만 명의 관객이 흥분해 있어도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하게 돼요. 그 안에서 즐기는 것과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인 것 같아요. 커트 코베인처럼 살고 싶진 않아요(웃음). 오래 살고 싶어서(웃음).

    예전에 여행 책을 내셨는데 롱 헤어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참 좋아 보였어요.

    저도 좋아하는 모습이에요. 표지에 쓸 정도로.(웃음) 그때는 아무 제약도 없던 때라, 돌아오겠다는 생각도 없을 때예요.(웃음) 지금 보면 나도 이렇게 함박웃음을 지을 때가 있었구나 싶어요.(웃음) 여행은 정말로 창조적인 행위예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여행하는 법에 대해 윗세대로부터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영국은 제국주의 자체가 침략의 과정이었잖아요. 무시무시한 방법의 여행이죠. 우리는 그들이 만들 걸 보러 가는 거고요. 디자인을 하려면 여행을 가는 게 좋은데 방법론에 대한 고민은 해야 한다고 봐요.

    일러스트 작업도 하셨는데 그림도 자주 그리시나요?

    박범신 작가님의 책을 한 적이 있는데 흔한 일은 아니에요. 의뢰받아서 그리는 일은 거의 없어요. 두 번째 책이 나왔을 때 일러스트 전시도 같이 했어요.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안 판다고 했어요. 초상화를 그리면서 여행을 다녔던 시절 그림을 남에게 주다 보니 가장 아름답게 그렸던 그림은 정작 제게 남아 있질 않아요. 그림은 한 줄기 빛인 것 같아요. 저만의 것으로 남겨두고 싶어요. 아직 내게 그림이 남아 있다, 싶은 생각을 하면 행복하죠. 순수한 드로잉은 하나밖에 없잖아요. 그 가치를 평가하기도 어렵고요.

    ▲ 『박훈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안그라픽스, 2005), 『박훈규 오버그라운드 여행기』(한길아트, 2007)
    ▲ 소설가 박범신 에세이 『남자들, 쓸쓸하다』 본문 일러스트 작업(2005)
    빛, 소리, 울림, 체험, 혹은 이름. 고대 아람어에서 이 말들은 하나의 단어에 속한다. 빛이 곧 소리이고 울림이며 체험이자 결국 자신의 이름이 되는 세계. ‘박훈규 월드’ 안에서 또 하나의 자신인 PARPUNK가 만든 창조적인 아티스트 그룹 VIEWZIC은 보다(View)와 음악(Music)의 조합으로 이뤄진 뉴미디어팀(View)과 밴드(Music)의 결합이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음악과 디자인을 접목하는 실험을 통해 시각과 청각의 관습을 뚫고 태곳적 인간이 처음 느꼈을 우주의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참된 자신과의 만남’이 아닐까. 

    음악과 그래픽을 접목해서 작업을 많이 하시는데 작업한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12년 정도 되었네요. 음악에 소질은 없고요, 그냥 좋아해요.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바람이려나?(웃음) 그런데 사람들은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몰라요.(웃음) 저도 사실 이상한 길을 가는 거라 그냥 막 하고 있어요.(웃음) 어디로 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서 가다 보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해보고 싶은 장르도 만나게 되네요.

    자신의 작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슬픈 일은 일이, 언제 끊길지 몰라요.(웃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만들어야 하잖아요. 주어지는 일만 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선 전 아직도 아마추어 같아요. 생각이 많아져서 그렇겠죠. 현실에서 끊임없이 싸우죠, 지금 고민 중인 것들도 많고요. 제 작업 자체도 초월하려고 노력해요. 또 다른 초월이 있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으니까요. 이게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고 싶기도 하고요.

    작업하면서 힘든 일도 많으시죠?

    밖에 나올 땐 선글라스를 써야 할 정도로 눈도 안 좋아지고, 마우스를 하도 많이 만져서 손가락도 이상해졌어요. 공연장 조명은 어떨 땐 태양 광선만큼이나 밝아요. 계속 보고 있으면 실명할 정도로 세거든요. 게다가 베이스의 중저음 소리는 폐에 굉장히 안 좋아요. 사람들이 공연장에 와서 흥분하고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몸에 해로우니까(웃음). 주변 모든 사람이 병을 지니고 있어요.(웃음)

    작업물이 나올 때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자기 자신의 내면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 같은 트랜슬레이터들의 중요한 철학 중 하나는 인문과학을 실천하는 데 있어요. 사람이 태어나서 말을 하기도 전에 표현할 수 있는 게 동그라미 그리기에요. 누구나 자신의 감정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게 본능인데 디자이너는 그 본능과 바람을 일로 갖고 있는 사람인 거죠. 가장 본능적인 것을 건드리니까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클 수밖에 없죠. 반면 인문과학을 실천할 수도 있지만 새로운 프로파간다가 들어가면서 오도할 수도 있고요.

    ▲ [좌] FREDPERRY SUBCULTURE VIEWZIC SESSION-GLEN CHECK ‘MAISON’ Poster  [우] VIEWZICLUB Poster
    ▲ FRED PERRY SUBCULTURE VIEWZIC SESSION 2012 – KAYIP
    ▲ FRED PERRY SUBCULTURE VIEWZIC SESSION 2012 – PRIMARY SKOOL _Experimental Jam Session_ live concert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생존을 위해 평화시장에서 노동자로 살았다. 그러다 여행을 떠났다. 디자인을 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디자인이 삶의 사치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만 어디에서든 치열하게 살았다. 삶의 오지와 극지를 직접 체험하며 살았던 경험은 작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원형질의 소리와 색채는 그를 통과해서야 비로소 ‘의미 있는’ 형태가 된다. 그는 버티고 견뎌낸 자다. 그렇기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고 살아간다. 눈 덮인 킬리만자로에 홀로 오른 표범과 같은 눈빛으로,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

    요즘 디자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대 사회에선 프로덕트가 디자인의 영원한 클라이언트죠. 현실적으로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그것이 멈추는 순간 새로운 일거리와 창조성을 구현할 수가 없으니까요. 바로 그 지점에서 고민하게 돼요. 내가 하는 작업이 사람들의 소비적인 행태만 도와주고 있는 거라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어찌 보면 디자인 영역에서 더 순수함과 윤리성을 찾을 수 있는 때인 것 같아요.

    삶에서 큰 배움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저는 노동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열일곱에 경제적 독립을 했는데 집을 나와서부터 오히려 저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여행 중 초상화를 그리면서 만난 분들이 모두 스승이었고요. 제가 디자인 학교를 졸업한 게 서른이었어요. 공부에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는데 목표가 생기고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쪽 일은 학연과 지연으로 유지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결과물이 말해주니까. 너무 조급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 같아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계시는데 어떠신가요?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가장 큰일이 교육인 것 같아요.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건조해도 학생들을 만나는 동안엔 희망을 갖게 돼요.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요. 혼자 잘났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학생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하죠. 누구를 길러 내기 위해 가르치진 않아요. 마지막 주가 되면 자연스럽게 할 사람들만 남아요. 10년 20년 보고 가는 일이니까 기다리는 거죠. 애들이 저를 선생으로 생각하는 게 제일 어려워요.(웃음)

    앞으로 어떤 활동계획을 세우고 계신가요?

    지금은 자신이 미디어 자체가 되는 시대잖아요. 공연하고 싶으면 공연을 하고, 책을 내고 싶으면 책을 내는 거지 아름다운 형용사로 저를 포장하고 싶진 않아요. 심플하게 말하면 저 자신이 미디어죠. 뷰직이 저 자신인 것처럼. 미디어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그 개인의 세계가 달라지죠. 지금은 세대 간의 브리지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네트워크 디자인에 대해서도 정말 관심이 많은데 기술적인 부분도 배우면서 해결해야 하니까, 할 일이 많네요.(웃음)

    ▲ KBS 2TV 채널 아이덴티티
    ▲ 개마고원 출판사에서 발간된 경제학자 우석훈 저작 북디자인
        『디버블링』(2011), 『생태요괴전』(2009), 『생태페다고지』(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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