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저의 저작인 <미의 신화>와 삼성경제연구소의 에서 12회에 걸쳐 강의했던 내용을 토대로 하여 인류가 성취한 위대한 아름다움(The Grand Beauty)에 대해 연재하려고 합니다. 아름다움을 믿지 않는 시대에 그것도 현재가 아닌 과거를 왜 얘기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겠지요. 과거를 숭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동서양의 위대한 과거를 통해 생각과 질문할 거리를 갖고 싶습니다. 선진적 문화의 성취가 필요한 작금의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배경으로서의 과거를 통해 문제점보다는 그들의 성취를 이해하고 넘어서는 계기로 삼고 싶습니다.
인류가 이룩한 가장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에 대해 욕망의 원초적 근본에서 돌아보고 역사적 통찰력을 가질 수 있을 때 먼저 나아 갈 힘을 가질 수 있겠지요. 자신과 사회의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할 때 역사를 딛고 시대의 끝에 서서 미지의 세계를 볼 수 있고 주변을 지배할 수 있는 창조적 주체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 디자인 사회 문제 중의 하나는 문제의 내면에서 밖을 바라보지 못하고 바깥에서 표피만을 바라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표피적 아름다움과 악에도 끌리지 않으면서 과거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새로운 것의 표준이 되고 싶다면 황혼과 새벽의 갈림길에 서서 사회와 인간을 미세하고 총체적으로 인지하고 주변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고 이전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연약하지만, 자신만의 진실한 힘이 필요합니다. 고격한 자유의 상태라고나 할까요.
그 첫 번째 시작으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Grand Tour를 떠나보겠습니다. 오늘날 선진적인 유럽문화를 성취한 출발로서 17세기 프랑스 귀족들이 생각한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는 기하학과도 같은 명료한 질서와 균형 잡힌 형식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완벽한 형식이란 작품의 생명감을 넘치게 하고, 완전성으로 인하여 경직되게 하기보다는 찬탄할 만큼 생기 있고 명쾌하며 유창하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프랑스의 유명 수학자 파스칼의 문체가 ‘불타오르는 기하학’이라 불렸던 것은 그 논리의 완전성을 반증하는 말입니다. 1,400여 개의 분수와 조각상들이 즐비한 베르사유 궁전은 정원의 중심축을 가르는 일직선의 운하와 함께 거대하나 한정되고 제한된 영역에서 명료한 선을 따라 흐르는 기하학적으로 정리된 세계였습니다. 방대한 정원을 복잡하면서도 단순하게 구획하여, 이 세계를 정돈된 하나의 형식으로 바라보게 하는 견고한 이성의 수학적 아름다움을 음미하게 하는 곳이지요.
베르사유 궁전의 유래
베르사유 궁전이 처음부터 아름다웠던 것은 아닙니다. 궁전의 사냥터와 왕의 밀애 장소였던 그곳은 전망도 없고 음지의 척박한 곳으로 나무와 물, 흙 공기조차 이보다 나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은 절대왕권으로 잘 알려진 루이 14세에 이르러 1661년 시작되어 1682년 완성된 곳인데요, 신권을 부여받은 군주의 영광을 대변하는 장소로서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이고, 유럽에서 가장 화려해야 했습니다. 루이 14세는 좋은 땅보다는 오히려 나쁜 땅을 선호하였는데요. 그는 자연을 지배하고 인간의 기술과 재물의 힘으로 대지를 굴복시키기를 즐겨 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또한 멋진 일이며 자연의 단점을 극복한 인간의 천국은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루이 14세, 그는 누구인가? 태양왕으로 불렸던 루이 14세의 성품을 매우 거만할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그는 오히려 완벽한 매너의 소유자였습니다.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평생 누군가에게 무례하게 하거나 화낸 적이 없고, 침실 하녀 등 아무리 신분이 낮은 여성 앞을 지나갈 때에도 쓰고 있는 모자를 들어 올렸고, 일과 시간을 정확히 지켜 하인들이 힘들지 않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아랫사람을 하대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절도와 품위로 당당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태도를 통해 최상의 대우를 받는 것이 루이 14세 시대 프랑스 왕실의 법도라고 할 수 있지요.
당시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왕은 화려함과 성대함을 즐겼습니다. 사치를 영광의 능력으로 여겼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하였지요. 많은 귀부인은 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고 그 남편들과 자식은 오히려 이를 부의 수단으로 동원하며 확장해 나갔습니다. 15,000여 명에 이르는 궁정 사람들의 생활 속에 관료 및 신하들은 술수와 비열함을 이용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고 경의를 받았는데요, 날마다 열리는 연회와 일상 속에서 루이 14세는 그들을 배려하고 짐짓 무시하는 방법을 통해 능수능란하게 신하들을 이용하였고 그들의 능력을 간파했지요. 노회한 술수와 비열함은 한 나라를 경륜하는 데 꼭 필요한 능력으로 그 속에서 단련된 신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점이 루이 14세를 태양왕으로 불리게 한 핵심 능력이었습니다.
궁전의 중심인 왕의 침실
왕의 권위가 가장 돋보이도록 신경을 쓴 것이 바로 왕의 침실이었습니다. 침실은 궁전의 중심점에 있어 아폴론 호수와 드넓은 정원의 대운하를 거쳐 직선의 무한처럼 뻗어 있습니다. 수평선 너머로 4두 마차를 탄 태양신 아폴론이 태양처럼 호수 위로 솟아올라 왕의 침실을 비추면, 궁전은 왕의 기상에 맞추어 절대 의식을 거행하는 무대로 변합니다.
서열과 선택에 따라 침실로 입장한 귀족들은 왕의 기상을 돕고 왕의 광채가 발현하는 중심점에서 화려한 공간과 예술품들에 둘러싸여 일과를 수행하였습니다.
에티켓으로 불리는 궁정의 예법은 효율적인 통치의 수단이기도 하였지만, 정치를 문화적인 즐거운 활동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했지요. 루이 14세의 통치 방법과 왕권의 구조는 건축의 전체 구조와도 확연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궁전의 모든 건물은 왕의 침대에서부터 나아가 연결되며, 동일한 창문이 계속되는 ‘U’자 모양의 거대한 건축으로 연장된 개방 구조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기존에 없던 장엄한 궁궐을 통해 경험하지 못한 화려함과 풍요의 삶을 살게 된 신하들은 왕을 신적인 자리로 끌어 올렸으며 왕은 이를 통해 귀족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자발적인 참여와 복종을 이끌어 내게 된 것입니다.
빛이 타오르는 거울의 방
베르사유 궁전을 설명할 때 대연회장인 거울의 방을 빼놓을 수는 없겠지요. 이 ‘거울의 방’은 아치형 대형 거울이 맞은편 유리창과 대칭을 이루며 73미터의 회랑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방입니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는 환상적인 거울 내면의 화려한 빛으로 재탄생하여 ‘빛이 타오르는 수정 구름처럼’ 거울 속에서 되살아나 가상과 실상의 빛을 빚어내고 대운하와 연결되어 전면과 배후의 공간을 확보함으로 지상의 하늘 같은 공간으로 변모한 듯 느껴지는 곳이지요. 이 공간은 프랑스 고딕성당의 빛나는 색채로 만들어진 내부 공간에서 나아가 내외부를 동시에 가지며 안팎으로 뻗어 나가는 타오르는 빛의 내부 공간으로 진보한 형태로 더욱 근대적이 되었지요. 동시에 루이 14세의 승전의 업적과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을 인간과 함께 참여시켜 비현실적이고도 고결한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과 함께 왕의 권력을 신성으로 연결했습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베르사유 궁전의 외부정원과 운하의 간결함은 근대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구조를 취합니다.
반면 건물의 내부는 바로크적인 고대 신화의 알레고리를 사용하여 영웅적 이상주의로 웅장하고 고결한 황제의 이상에 직접 부합하였습니다. 그림으로 채워진 방의 모든 물건은 금으로 상감 세공되고, 화려한 조각으로 치장되었습니다. 청동 도금의 정교하고 미려한 가구와 꽃다발, 공작새 깃털 문양의 비단 천, 무지개 빛깔의 실크로 장식된 방들은 마치 아기천사와 뮤즈들이 연주하는 황금빛 리라의 선율처럼 감미롭고 호사스러움의 환희로 빛납니다.
기하학적 정원의 질서와 화려한 실내의 인테리어는 얼핏 상충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러기에 자연스러운 기하학의 완전한 형식인 불타는 기하학이 되었습니다. 자연이 만든 것도 인간이 만든 것도 아닌 직선으로 다듬은 정원 안의 선명하고도 화려한 실내의 모든 장식은 창밖의 대운하로 사라지며 평화롭고 영원한 경광을 보여줍니다. 불확실하고 모호한 현실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이 미적으로도 분명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느끼던 시대의 산물이었지요. 기하학적 틀에 담겨있음에도 어떤 제한도 받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보이는, 그 어느 곳보다 지평의 천상과 맞닿아 평온하게 흐릅니다.
김개천
국민대 조형대학교수이며 건축가와 디자이너이다.
동양사상과 건축을 전공하였으며, <명묵의 건축>, <미의 신화> 등의 저서가 있다.
대표작으로는 강하미술관, 한칸집, 카트러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