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조는 자신의 1인스튜디오 이름을 ‘기조측면(kijoside)’이라고 지었다. 도봉구 쌍문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역시 서울시 땅덩어리의 측면에 해당하는 북쪽 끝이다. 이처럼 측면에 선 디자이너 김기조는 딱히 정면과 중심의 것들을 배척하지는 않지만, 그것들에 대해 퍽 불친절하다. 예를 들어 “요즘처럼 너무 많은 정보들이 노출된 세상에서는 굳이 친절하게 다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거나 “갖고 싶은 디자인은 있지만 닮고 싶은 디자인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 그러하다. 그는 심지어 잘 웃지도 않는다. 농담을 건넨 상대방이 민망스러울 만큼 그는 진지하고 차분한 태도로 일관한다.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을 외치는 인디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의 창립 멤버이자 수석 디자이너로서, 김기조는 소위 딴따라 기질이 결여된 듯하다. 하지만 특유의 복고풍 타이포그래피로 ‘존나 공정한 사회’,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 같은 문구들을 선보이는 걸 보면 장난기가 다분함이 분명하다. 어디 그뿐인가. 자기 입으로 기조측면이란 이름은 “일종의 말장난”이라고 설명해버린다. 아무래도 그의 불친절함과 장난스러움은 디자이너 김기조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측면들 중 일부인지도 모르겠다.
기조와 측면의 결합
본명이 김경준이죠? 블로그에서 보니까 이름의 한자가 받들 경(擎)과 준걸 준(俊)이더군요. 이렇게 멋진 이름을 놔두고 ‘김기조’가 된 이유가 뭔가요?
2008년도에 청년실업 밴드(2005년 초판 발매)의 앨범 재판 작업을 하면서 ‘기조’라는 예명을 만들었어요. 당시 제가 군 복무 중이었는데, 휴가 나와서 그 앨범의 커버 디자인을 했거든요. 작업 시작할 때 ‘김경준은 군대에 가 있고,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라면서 자기암시를 걸었어요. 군인 김경준과는 완전히 분리된 하나의 개별적인 인격체로 보이고 싶었나 봐요. 그래서 새 이름이 필요했죠. 경준이라는 본명이 왠지 무겁고 평범한 느낌이라, 그와 반대되는 예명을 갖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굳이 특이하거나 허세 끼가 느껴지는 예명을 원한 것은 아니었고요. 또 부모님이 지어주신 본명인데 완전히 부정하기는 영 죄송해서 ‘경준’의 초성인 ㄱ과 ㅈ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찾아낸 게 ‘기조’라는 단어였죠. 한자어로도 좋은 뜻이 많아서 마음에 들었어요. 사상과 작품에 흐르는 경향(基調), 아침 일찍 일어나다(起朝), 물고기 지느러미의 뼈대가 되는 줄기(鰭條, 김기조는 이 한자어를 ‘창조의 근간’이라고 해석했다) 등등.
스튜디오 이름에도 ‘기조’가 들어가잖아요. 기조측면(kijoside). 왜 김기조는 측면(side)과 결합했나요?
‘기조측면’이라는 이름은 거창한 의미가 있기보다는 그냥 일종의 말장난이에요. 군 생활 때 병영 막사를 보면서 정한 이름이죠. 막사 건물 가운데랑 옆면에 각각 계단이 있었는데 그걸 ‘중앙계단’, ‘측면계단’이라고 불렀거든요. 센터(center)와 사이드(side)인 거죠. 센터는 중심이라는 뜻 말고도 단체나 기관을 의미하잖아요. ‘디자인센터’나 ‘서비스센터’처럼. 사실 제 스튜디오가 단체나 기관은 아니니까, 센터 대신 ‘디자인사이드’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디자인사이드’는 디자인(design)과 인사이드(inside)의 합성어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 무렵에 만들었던제 예명을 넣어서 ‘기조사이드(kijoside)’, 즉 ‘기조측면’으로 최종 결정했죠. 이 이름은 기, 조, 측, 면 이렇게 네 글자로 딱 떨어져서 마음에 들어요. 또 ‘어떠한 기조의 측면에서’라는 표현도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고.
2004년에 뺀드뺀드 짠짠의 앨범 커버를 작업하면서 “앞으로 뭔가를 디자인할 때에는 글자부터 새로 만들어야겠다”라는 작업 후기를 블로그에 남겼더군요. 이때부터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갖게 된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앨범 타이틀을 한글로 표기할 때 레터링까지 겸하면 더 풍부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그전까지 저는 글자라는 것을 정보 전달을 위한 도구, 디자인에 필요한 재료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거든요. 레터링에 대해서도 그저 부수적인 디자인 요소로만 여겼어요. 그런데 그림자 궁전 앨범을 작업하는 동안, 처음으로 글자를 만들어보면서 레터링 자체가 디자인의 전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김기조 식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특징은 굵은 획의 장방형 글꼴입니다. 지금은 김기조만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굳어졌죠.
장방형 글꼴은 2005년에 관악청년포크협의회 정규 1집 앨범을 디자인하면서부터 사용했어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타입 디자인의 경향이 탈네모꼴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말 그대로 네모꼴을 벗어난 타입인데, 저는 반대로 네모진 틀 안에 글자들을 우겨 넣는 데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사각형 안에 글자를 우그려 채우다 보면 획을 구부리거나 글꼴 자체를 기울여야 하는 방편적인 디자인이 나오거든요. 내가 억지로 꺾임과 기울임을 줄 수 있다는 게 재미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네모꼴 글자들이 나열되어 있으면 시각적으로 답답하고 방향성이 느껴지지 않죠. 이런 단조로움을 피하려고 고민을 많이 해요. 특히 획과 획을 연함으로결써, 글자들이 한곳으로 흘러가는 듯한 리듬감을 표현하려고 하죠.
작업할 때 반드시 지키는 자신만의 불문율이 있나요?
그런 징크스 류의 버릇은 없어요. 다만, 주어진 작업 시간이 연속성을 가져야만 제 자신이 그것을 온전한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습성이 있죠. 무슨 말이냐면, 두 시간짜리 작업을 오전·오후 1시간씩 나눠서 할 수 없다는 거죠. 두 시간이 연속으로 붙어 있어야만 작업을 할 수 있어요. 이런 습성 탓에 작업을 틈틈이 하기보다는 몰아쳐서 하는 편이죠. 시간 관리를 철저히 못하는 게 부끄럽기도 해요.
딴따라 디자이너의 세련된 불친절
앨범 커버를 디자인할 때 일부러 해당 앨범의 수록곡들을 듣지 않은 상태로 작업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김기조가 디자인한 앨범 커버는 뮤지션의 사진도 없고 앨범 자체의 음악적 분위기와도 별개인 경우가 많더군요. 정보를 알려주지 않으려는 불친절함이 느껴져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뮤지션 이름과 앨범 제목 정도의 기본적인 정보만 파악한 상태로 매장을 방문해 LP나 CD를 ‘발견’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앨범 하나가 발매되면 너무나도 많은 정보들이 노출되잖아요. 과거처럼 새 앨범을 ‘발견’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발견된 앨범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 거죠. 상황이 이렇다면, 굳이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보다는 오히려 불친절하게 안 알려주는 것이 더 세련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의 초기 앨범 커버 디자인을 전부 군 복무 때 작업했잖아요. 이 앨범들이 대중적으로 큰 관심을 받으면서 김기조라는 이름도 많이 알려졌죠. 주둔지 밖의 일까지 병행할 정도로 편안한 군 생활이었나 봐요?
절대! 붕가붕가레코드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이 그만큼 강했던 거죠. 혹시나 붕가붕가레코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디자이너가 작업을 해서 엉뚱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고. 그래서 휴가까지 헌납해가면서 제가 직접 일감을 가져다가 작업했어요.
말이 나왔으니 붕가붕가레코드에 대해 물어볼게요. 슬로건이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인데, 대관절 딴따라질은 뭐고,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은 또 뭔가요?
곰사장(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과 저를 비롯한 창립 멤버들(이들은 모두 서울대 재학생들이었다)은 일종의 패배의식을 갖고 있었어요.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밴드 음악과 비주류 문화였는데, 그걸로 과연 졸업 후에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죠. 서울대 재학생으로 보내는 시간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사회 진출 전까지 반짝 빛나는 시기일 뿐이라는 불안감도 컸어요.
또 학교가 위치한 관악구라는 지역이 문화적인 변방이기 때문에 뭔가 재미있는 일을 벌이려고 해도 인프라가 없었죠. 딱히 해결책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 다들 실실 쪼개면서 자조(自嘲)했어요. 그러다가 진지하게 토의를 했죠.
‘우리가 하려는 일은 주류적인 시각에서 볼 때 딴따라질이 맞다. 우리는 이 딴따라질을 지속하고 싶다. 그러려면 가늘고 길지언정, 딴따라질을 지속 가능케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보자.’
이런 결론이 나왔어요. 그래서 ‘지속 가능한 딴다라질’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붕가붕가레코드의 첫 번째 공연을 열었죠. 공CD에 우리 밴드들 음악을 굽고, 직접 구입한 종이 케이스 표면에 제가 스티커 형태의 커버 디자인을 부착했죠. 그때 아마 CD 한 장당 1,900원에 팔았을 거예요.
‘갖고 싶은 디자인은 있지만 닮고 싶은 디자인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죠? 곰사장이 쓴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이란 책에도 나오더군요. 무슨 뜻이죠?
‘갖고 싶다’는 것은 소비자로서의 의식이에요. 디자이너도 창작자이면서 소비자이니까 갖고 싶은 디자인이 생길 수 있죠. 다만, 창작과 소비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해야 해요. 미대 학생들 중에는 창작적인 취향과 소비적인 취향을 헷갈려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술이나 디자인을 그저 향유하고 소비하는 데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 스스로를 창작자인 줄 아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옷 입는 걸 좋아했던 아이들이 의류학과에 들어가는 식이죠. ‘닮고 싶다’는 건 우상이나 멘토로 삼을 만한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겠다는 의지 표현이잖아요. 누군가의 추종자이거나 팬으로서, 혹은 인정받지 않은 제자로서, 그 누군가가 걸었던 길을 따르려는 태도가 저는 마음에 안 들어요.
가장 학생다운 모습으로 졸업하기
올가을에 졸업이죠? 그동안 디자인과 학생이면서도 현업 디자이너로 활동했잖아요. 앨범 커버 디자인에 대한 강연도 했고. 혹시 스스로 겸손해져야겠다는 압박감은 안 느꼈나요? 이를테면 나는 아직 졸업도 안 한 학생이고 교수님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같은.
압박감까지는 아니지만, 겸손함에 대한 인식은 늘 있죠. 그렇다고 ‘나는 아직 학생이니까’라는 식으로 디자이너로서의 제 자신을 제한하지도 않았어요. 학생 신분과 디자이너 직함을 동시에 갖는 것이 제 행동 양식 자체를 크게 좌우하지는 않거든요. 지금 제가 어떤 ‘지점’에 도달한 게 아니잖아요. 긴 생애에서 일부에 지나지 않는 시기인데. 이 일(디자인)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진행 중이고.
이런 상태에서 많은 분들이 저를 종착역처럼 여기는 것이 부담스러워요. 종종 인터뷰어 분들께서 예비 디자이너들을 위해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하시면 굉장히 어렵죠. 지금의 저도 예비 디자이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하세요’가 아니라 ‘이렇게 같이 해봅시다’ 같은 톤으로 말하죠.
학생 김기조의 졸업 전시도 기대되는군요.
졸업 전시는 지난해 12월 초에 마쳤어요. 저는 그때 작품 출품 말고도 전시장 설계를 맡아서 몇 달간 준비를 했죠. 따로 전시 공간을 얻는 게 아니라 교내 빈 공간을 전시장으로 꾸미는 일이었는데, 몸 쓰는 일이 많아서 조금 힘들었어요(웃음). ‘학생다운’이란 걸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졸업 전시의 모든 과정에 동참하고 싶었죠.
그런데 사실, 졸업 전시에 출품한 제 작품들은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좀 민망했죠. 아쉽기는 한데, 그게 졸업 전시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완성작이 아니라 과정을 보여주는 것.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학생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거죠. 졸업식에서도 가장 학생다운 모습으로 졸업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