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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책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

    ‘다른 몸들’이 아니라 한 몸(비장애인의 신체)만을 위해 디자인된 세상, 이를 재설계하기


    글. 임재훈

    발행일. 2023년 03월 14일

    이달의 책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

    한 달 한 권
    ❶ 제목 | ❷ 저자 또는 차례 | ❸ 서문
    딱 세 가지만 속성 소개

    스물한 번째 책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 장애, 세상을 재설계하다』
    사라 헨드렌 지음, 조은영 옮김, 김영사, 2023

    제목과 저자: 이 책이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

    제목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원제는 『What Can a Body Do?』)과 부제 ‘장애, 세상을 재설계하다’(원제의 부제는 ‘How We Meet the Built World’)는 이렇게 조응된다. ‘다른 몸들 = 장애(장애인들의 신체)’, ‘디자인 = 세상을 재설계하다’.

    제목과 부제는 이 책의 주요한 세계관 세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장애를 ‘(제품 디자인 과정에서 당연히 고려되어야 할) 다른 몸들’로 바라보는 시각. 둘째, 세상이 ‘재설계―리디자인(redesign)’되어야 한다는 문제 제기. 셋째, 세상 재설계 작업의 주체 또는 동인을 ‘장애―다른 몸들’로 인식하는 사고 체계.

    첫 번째와 두 번째 관점은 공학적 세계관이다. 현재 상용화된 숱한 기기 및 탈것 일체가 애초에 ‘다른 몸들’의 사용 환경을 배제한 채 만들어졌다는, 즉 ‘한 몸’을 위해서만 만들어졌다는 설계 결함(design deficiency)을 지적하는 것이다. 제품 사용자들이 수많은 ‘다른 몸들’임에도 왜 설계는 여전히 ‘한 몸’만을 향하고 대량 생산되는가, 라는 다분히 이성적이고 일면 시장 원리에도 부합하는 논리다.

    세 번째 관점은 사회학적 세계관이다. 책의 부제 ‘장애, 세상을 재설계하다(장애가 세상을 재설계하다)’는 주어가 분명한 문장이다. 타인의 배려를 기다리며 대기하는 신체, 조력(외력)으로써만 움직여질 수 있는 신체가 아니라, 보행·주행하고 생산·설계하는 누구나의 몸체(corps)의 일부로서 ‘다른 몸들’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음을 바로 보자는 저자의 메시지다.

    사라 헨드렌(Sara Hendren)은 예술가이자 디자인 연구자다. 스스로를 ‘기술 분야의 휴머니스트(a humanist in tech)’라 소개한다. 현재 미국 매사추세츠 올린 공과대학(Olin College of Engineering)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앞서 설명한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의 세 가지 세계관은 사라 헨드렌 본인의 사회적 행보와도 일치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부터 그녀가 진행해 오고 있는 [접근성 아이콘 프로젝트(The Accessible Icon Project)]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사라 헨드렌은 국제장애인접근성표(ISA, International Symbol of Access)를 리디자인한 스티커를 거리 곳곳의 기존 심벌 위에 덧붙이는 캠페인을 벌였다. ISA 마크는 부동 자세로 휠체어를 탄 사람의 아이콘인데, 그녀는 이를 ‘움직이는’ 모습으로 변형했다. 비록 국제 표준 자체를 바꿔놓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취지에 공감한 미국 내 몇몇 지자체들이 ‘움직이는’ 장애인 마크를 공식 도입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2016년 사라 헨드렌은 이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글 「아이콘은 동사다(An Icon is a Verb)」를 쓰기도 했다.

    사라 헨드렌이 재설계한 장애인 마크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이미지 출처: [접근성 아이콘 프로젝트] 공식 사이트

    서문: 지어진 세계(Built World)의 설계 결함 ‘정상성’

    “세상의 모든 몸은 제 주위의 건설환경[bult environment(자연환경 이외의 모든 인공적인 환경을 가리키는 용어 — 옮긴이)]과 매일 불화하며 살아간다.”

    서문(들어가는 말) 「누구를 위해 지어진 세계인가?」의 첫 문장이다.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을 단 한 줄로 요약한 소개문이자, 앞 단락에서 기술했던 이 책의 세계관을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게 함축한 명문이다. 세상의 모든 몸―‘다른 몸들’이 ‘건설환경’과 불화한다는 인식, 즉 공학적 문제 제기와 사회학적 제언이 일체화된 인상적인 머리말로 이 책은 열린다.

    서문 「누구를 위해 지어진 세계인가?」는 사회적으로든 정책적으로든 혹은 무의식적으로든, 장애와 장애인을 이상(abnormalcy)의 범주로 배치하는 우리 판단의 기저를 실증적으로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우리가 지닌 관념들을 재고해볼 것을, 그러니까 마음을 열 것을 권한다.

    원제의 부제 ‘How We Meet the Built World’와 서문 제목에 공통적으로 ‘지어진 세계(Built World)’라는 키워드가 들어간다. 스스로 ‘노멀(normal, 정상·표준)’이라 믿는 이들에 의해 지어진 세계를, 저자 사라 헨드렌은 재설계의 대상으로 삼는다. 설계 결함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정상성(normalcy)’이다.

    장애학자 레너드 데이비스(Lennard Davis)는 “19세기 이전에는 서구 문화에서 ‘이상(理想)’의 개념이 신체를 지배하는 주요 패러다임이었다”라고 썼다. “따라서 당시에는 모든 인간의 몸이 이상적이지 못했다.” 표준이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느 인간의 몸이든 초인적 존재, 즉 신과 영웅들이 가진 완벽한 몸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나 현대 통계학의 등장으로 비교의 대상이 (…) 주변 사람으로 바뀌었고, 다른 사람을 상대적으로 관찰함으로써 ‘정상성’을 판단하는 비교 분석이 시작되었다.
    (…)
    19세기를 거치며 정상성은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권한’이라는 유해한 힘을 뒷받침하게 되었고 결국 그 유산이 현대에까지 전해졌다. 평균적인 것은 곧 바람직한 것이 되었고 신장, 체중, 그 밖의 신체적 특징이 다수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은 바람직함을 넘어서 의무로까지 여겨졌다. (…) 그렇게 평균은 더 좋고 가장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서문 중, 25~27쪽

    요컨대 정상성이 표준은 아니다(normalcy is not the norm), 라는 것이다. ‘다른 몸들’이 아니라 한 몸(비장애인의 신체)만을 위해 디자인된 세상, 이 ‘지어진 세계’를 ‘재설계’하자는 선언, 이것이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의 시작이다.

    본문은 의수 및 의족, 가구, 거주 공간과 도시 공간, 시계 등 다양한 리디자인 사례들을 소개한다. 앞 단락에서 언급했듯 기본적으로 공학적·사회학적 관점을 전제로 한 책인 만큼, 각 사례(디자인 결과물)마다 기능성과 사회성에 대한 맥락이 충실히 서술되어 있다. 다만, 해당 디자인물들의 시각 자료가 더 풍부했다면 저자의 텍스트와 메시지가 좀더 선명히 공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은 디자인 이론서 겸 사회과학서로 보아도 무방한 책이다. 디자이너든 일반 독자든 누구나 흥미롭게 정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유니버설디자인(universal design) 사업을 입안하는 민관 실무진에게는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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