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인계의 피카소, 폴 랜드. 그의 작지만 단단한 디자인 고전이 70년 만에 한국 출간된다. 오늘 소개할 〈폴 랜드의 디자인 생각〉은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폴 랜드(Paul Rand, 1914~1996)가 서른세 살에 집필한, 디자인에 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이다. 1947년 뉴욕에서 초판을 발행했고, 이후 절판되었는데 폴 랜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컬북스에서 복간했다. 이 복간본을 우리말로 처음 번역해서 출간한 것이다.
폴 랜드는 20세기 미국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로, 아트디렉터, 북 디자이너, 어린이 책 작가이자 교육자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IBM, ABC, UPS, Westinghouse, NexT 등 기업 로고를 디자인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폴 랜드는 이 책에서 무엇이 ‘좋은 디자인’을 만들고 무엇이 좋은 디자인을 만들지 않는지, 그리고 디자인에서 ‘변치 않는 원칙’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직접 작업한 잡지, 트레이드마크, 패키지, 북 디자인 등 작품 82점이 수록되어 있다. 100쪽 정도의 분량이지만 폴 랜드의 디자인 철학과 원칙을 얻기에 부족하지 않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는 폴 랜드를 “경이적인 사상가이며 작가입니다. 예술과 비즈니스의 얽힌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죠.”라고 평했다.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NexT 컴퓨터 로고를 만들었을 때 폴 랜드는 클라이언트와 동등한 입장에서 작업했다. 그는 최고의, 단 하나의 시안만 들고 잡스를 찾았고, 잡스는 시안을 보고 두말 않고 폴 랜드를 안아 봐도 되겠냐고 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폴 랜드가 죽기 전, 스티브 잡스는 그를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존경했다.
〈폴 랜드의 디자인 생각〉은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름다움과 실용성은 다르지 않음’, ‘디자이너가 해결할 문제’, ‘상징, 유머, 타이포그래피의 힘’, ‘전통과 현대의 관계’, ‘독자 참여’ 등의 주제를 담고 있다. 특히 ‘손을 사용하라’는 메시지에 주목해보자.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시대, 창조적인 작업도 컴퓨터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게 당연해졌다. 그러나 오히려 레터프레스(Letterpress)와 같은 전통 금속활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손을 이용해 한 장씩 찍는 작업은 번거로울 수 있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폴 랜드는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기법을 중시하면서도 직접 손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폴 랜드의 메시지는 아직 유효할뿐더러 더 중요해질 것이다.
디자이너는 선입견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면 안 된다. 주의 깊은 관찰과 연구를 통해 나온 결과가 아이디어이고, 그 아이디어의 산물이 디자인이다. 디자이너는 과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신적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 13쪽, ‘디자이너의 문제’에서
상징이 상징으로서 가치 있으려면 단순해야 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가장 우수한 상징 일부가 단순화된 이미지로 되어 있다는 점은, 단순화란 단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성의 효과를 지칭할 뿐이다.
– 15쪽, ‘광고에서 상징’에서 –
손이나 컴퓨터를 사용해 만든 ‘추상적’인 모양, 기하학적 무늬, 서체 등을 분별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용이 단순히 그 자체를 나타내는 수단에 그친다면 결국 표현은 치졸해진다. 반면 시각 언어가 아이디어의 핵심을 표현하고 있고, 기능과 상상 그리고 분석적 판단에 근거를 둔다면 독창적일 뿐 아니라 의미심장해지고 오래도록 기억된다.
– 38쪽, ‘상상과 이미지’에서 –
책 정보
폴 랜드의 디자인 생각
저자: 폴 랜드(Paul Rand)
출판사: 안그라픽스
출간일: 2016.8.31.
가격: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