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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 ‘힉’ 서희선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에 개의치 않게 된” 태도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5년 10월 30일

    스튜디오 ‘힉’ 서희선

    반짝반짝 빛나는 맑은 눈을 들여다보면 참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3년 차 젊은 디자이너는 어떤 생각과 가치를 갖고 작업을 할까? 독일에서 2년, 한국에서 6개월의 경력이지만 디자인의 재미에 흠뻑 빠졌던 어린 시절부터 디자인 말고 다른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그녀. 스튜디오 힉(Hik)의 서희선 디자이너를 만났다.

    최근 근황은 어떠신지요?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운이 좋아서 일을 많이 하게 됐어요. 아직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는 없고 프리랜서 시작한 게 올해 4월부터인데 걱정도 돼요. 그동안 뮤지엄과 갤러리에서 전시 디자인을 했고요, 올해 처음으로 페스티벌 봄을 시작해서 서울 시립 미술관에 신진작가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작가분들 전시 디자인이랑 예술 공간 쪽 디자인을 주로 했는데 굉장히 재미있게 일했어요. 특히 생각나는 건 한 작가분의 책을 만드는데 올해만 230편이 넘는 작업을 하셨더라고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튜디오 이름이 특이해요. 독립을 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지요?

    친구들이 힉이라고 불렀어요. 별다른 이유는 없고 희선을 힉선이라고 부르다가 그게 줄여져서 힉이 됐는데 스튜디오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하다가 풀 네임을 붙이기엔 부담스러워서 힉이라고 하게 됐어요. 대학원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에서 2년 동안 소규모 스튜디오에서 일을 했어요. 한국에서도 몇 년 정도는 어딘가 소속되어 일하다가 독립을 하고 싶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독립하게 됐네요.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해 본인 소개를 좀 해주시면 어떨까요?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영어신문 디자이너로 일을 잠깐 했다가 장학금을 받을 기회가 생겨서 미국 예일대 그래픽 디자인학과로 유학을 갔어요. 3개월 동안 베를린에서 인턴십을 했는데 대학원 졸업하고 기회가 되어서 그쪽에서 일하게 되었죠. 어렸을 때 남미에서 자랐어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남미에 있었는데 외국인이 저희밖에 없으니까 항상 시선을 받게 되는 거예요. 그것에 익숙해지다 보니까 남들의 시선에 대해 두려움이 없어진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생활이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에 개의치 않게 된다고나 할까. 한편으로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심리상태가 될 수가 있는데 외국에 있을 때나 한국에 돌아와서도 조금은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성장 과정에서 낯선 외국인들한테 늘 시선을 받다 보니 남한테 신경 쓰지 않게 된 점도 있고요. 그런데 저도 잘 몰랐는데 길을 갈 때 누가 저를 쳐다봐도 제가 잘 모른대요(웃음). 주위에 별로 집중을 안 하나 봐요. 그런 게 자라온 과정에서 받은 영향일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늘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좌] 페스티벌 봄 2015(협업: dgt), 포스터, 클라이언트: 페스티벌 봄, 2015 [우] Afterpiece 막후극, 포스터, 클라이언트: 인사미술공간, 2015
    [좌] 백발무중(협업: 정지훈), 포스터, 클라이언트: 정기훈(서울시립미술관), 2015 
    [우] H.(협업: 정지훈), 포스터, 클라이언트: 프로파간다(전주국제영화제), 2015
    그녀는 평범하게 보이는 것을 다르게 보려고 한다. 아무도 눈치를 못 채더라도 은밀하게 살짝 바꾸어 보는 것. 그래서 가치를 바꾸거나 뒤엎는 것에 관심이 많다. 누군가에는 중요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것이 되기도 한다. 또는 한 집단에서 추앙받는 일이 다른 집단에선 이상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얻게 되는 생각의 확장은 고정불변이라고 굳어진 것도 다른 방식으로 보게 한다. 

    자신의 작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번은 모교 후배들 앞에서 강연을 했는데 주변에서 내 작업을 보면 이게 뭐지? 한대요(웃음), 본인은 그걸 알고 있는지 물어보더라고요. 당돌하기도 했는데 그게 전 되게 좋았어요. 모든 사람이 내 작업을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모두가 좋아하는 작업이 재미없다고 생각해요. 클라이언트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지만 대중적인 눈으로 보면 이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느 현대 음악가가 남들이 자기 음악을 좋아하게 되면 자신은 이 작업을 버리고 새로운 걸 할 거라는 말을 했는데 참 와 닿더라고요.

    처음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제인가요?

    중학교 2학년 때 남미는 치안이 안 좋으니까 집에서 주로 컴퓨터를 했어요. 그때 한국에 포토샵 카페가 유행이었어요. 전 글씨도 잘 못 쓰고 그림도 잘 못 그리는데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욕구는 있었어요. 컴퓨터를 접하게 되면서 표현방법의 수단을 갖게 된 거죠. 반짝거리는 움짤 비슷한 걸 만들었는데 개당 500원 줄 테니까 10개를 만들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최초의 클라이언트였던 셈이죠. 그때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관심을 갖게 됐죠. 이런 걸 만들어주면서 돈을 벌 수도 있구나, 어떤 일을 하면 되나 알아보다가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보니 시각디자인과를 가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디자인을 참 즐겁게 하는 것 같은데 뭐가 가장 재미있으세요?

    단계별로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구상하는 단계에서도 리서치를 하면서 새로운 공부를 하는 것이고,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몰랐던 사람을 알아가면서 배우는 게 있고요. 실제로 작업 과정에서는 내가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간다는 즐거움이 있고, 시안을 보낸 후 조마조마한 시간을 기다리다가 좋은 피드백을 들으면 기쁘고, 최종 결과물이 나와서 보게 되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고요. 중간에 단순노동을 해야 할 때도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하면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몰입할 수 있어서 좋고요. 한순간도 디자인 말고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10년 후엔 어떻게 되어 있을지 저도 모르겠어요.

    클라이언트 일 말고 자신의 작업을 하고 싶은 생각도 있을 것 같아요

    개인 작업은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계속해온 게 있는데, 베를린에 있을 때 친구들과 10년 프로젝트로 계획한 게 있어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작가들을 만드는 일인데 지금은 독일 작가를 작업하고 있어요. 가치를 바꾸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70년대 활동한 크리스토퍼 다칸젤로(Christopher D’Arcangelo)라는 무정부주의자 아티스트가 있는데 그는 예술이 제도화되는 것을 반대했어요. 자신의 삶 자체가 자신의 사상이고 예술인 사람이었는데 그분 얘기를 듣고 많이 공감하고 존경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작업을 하더라도 답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파괴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이게 허풍으로 끝날까 봐 걱정인데(웃음).

    [좌] 힉, 포스터, 클라이언트: 국민대학교, 2015 [우] CA포럼: 12개의 기억들 #04, 포스터, 클라이언트: CA, 2014
    [좌] Universal Language, 포스터, 개인 작업, 2011 [우] 나불나불 9, 책, 클라이언트: 나불나불, 2014
    마음속에 자신만의 별을 갖고 있는 사람은 길을 헤매더라도 방향을 잃지는 않는다. 지치고 넘어지기는 할지라도 다시 일어나 가던 길을 간다. 타인의 주변을 도는 행성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내면의 빛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자신만의 생각과 방식을 만들어가면서 창조적인 디자이너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녀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올해 하반기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지금은 그룹 전시회 준비를 하고 있어요. 디자인 잡지 그래픽에 영 스몰 스튜디오로 나온 적이 있는데 그때 실린 스튜디오들이랑 같이 10월 1일부터 우정국에서 전시를 계획 중이에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보면서 경험해보고 싶어요. 패션 포토그래퍼 분이랑 소규모 출판사를 만들었는데 책 작업을 더 하고 싶어요. 영역이 넓어지는 것도 재미있고 기대가 돼요. 항상 다른 걸 하고 싶고,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언어가 다른 환경에서 작업하는 게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졸업한 후에는 영어나 독일어를 쓰면서 일을 했고, 성장 과정이랑 작업환경의 영향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한글 타이포그래피가 약해요. 어떤 폰트를 써도 비슷한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영문 폰트는 많이 만들어서 쓰기도 했거든요. 프로젝트마다 시간이 되면 새로 폰트를 만들어서 작업했기 때문에 그것도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 하고 있어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뭔가요?

    주어진 주제를 잘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형태가 없는 주제라고 해도 거기에서 오는 레퍼런스나 키워드를 찾고, 한 가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니까 하나를 발전시키든 모두 합쳐보든 다양하게 시도를 해보는 편이에요. 아직은 나만의 프로세스가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게 떠오르는 게 있으면 떠오르는 대로, 안 떠오르면 안 떠오르는 대로 더 찾아보면서 일을 하거든요.

    젊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마디 해주세요.

    학생들에게는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도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께 많이 들었던 이야기긴 한데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작업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니까요. 그러려면 자기만의 무언가를, 꼭 디자인적인 방식이 아니더라도,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생각을 하고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좌] Calendar 2013, 포스터, 클라이언트: 1984, 2013 [우] 원뿔행동 – 음소거, 엽서, 클라이언트: 김실비(트렁크 갤러리), 2014
    [좌] LADY-X, 포스터, 클라이언트: 장파(서울시립미술관), 2015 [우] Flower Pants, 포스터, 클라이언트: HIGIMI,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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