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서 그의 작업을 처음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아날로그의 따스함과 간결함이 묻어있는 그의 손글씨에 자꾸 눈길이 갔기 때문. 지속해서 업데이트하는 그의 인스타그램 속 작품은 대부분이 손으로 그린 레터링 작업이다.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지역에서 태어나 현재 ‘밀크(Milk)’라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안토니 호스(Anthony Hos, @anthonyjhos). 브랜딩, 레터링, 그리고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레터링과 타이포그래피는 굉장히 다른 것이에요!"라고 말하며 말을 시작한다. 글자를 사랑하는 청춘 디자이너, 안토니 호스를 만나보자.
인스타그램에서 어렸을 적 사진을 봤어요. ‘The first typographic creation(첫 타이포그래피 작품)’이라고 쓴 사진이 있던데, 어렸을 때부터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많았던 건가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의 공책들을 보면 발표 수업에 일러스트적인 요소를 사용하여 공을 들였던 흔적이 보여요. 연필을 쥘 수 있었을 때부터 기회만 생기면 그림을 그리고 낙서를 했지요. 이런 것들이 쌓여 2010년부터 ‘핸드 레터링(hand lettering)’을 계속할 수 있게끔 했던 게 아닐까 해요. 사실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학문을 배우기 전에는 ‘레터링’이나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개념이 없었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 ‘핸드 레터링’을 해왔던 거죠.
요즘은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회사에 속해 있기 때문에 항상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해요. 지금은 2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요, 첫째로 뉴질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셰프, 애나벨 랑베인(Annabel Langbein)의 요청으로 그녀와 그녀의 브랜드와 관련된 리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어요. 두 번째는 지금 가장 어렵다고 느끼고, 또 그만큼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일인데요, 뉴질랜드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프 클럽 브랜딩 디자인 작업입니다. 골프클럽 측에서 멤버십 가입자 수가 하락하는 추세여서 우리 회사 쪽에 리브랜딩 요청을 해왔어요. 이 프로젝트는 어렵다고 생각이 들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골프를 생각하는지에 대해 재정의를 하는 작업이 굉장히 재미있어요.
일을 할 때 작가님만의 특별한 프로세스가 있나요?
저의 첫 상사였던 분이 항상 해주던 얘기가 있어요. “쏘기 전에 목표를 조준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많은 총알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Aim before you shoot or you’ll waste a lot of bullets)” 이 조언 덕분에 저는 항상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일에 관련된 모든 리서치에 정말 많은 시간을 쏟는 편이에요. 그다음에는 많은 시간을 콘셉트를 정하는데 투자해요. 그러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종종 펜 없이 바로 노트북에 콘셉트 과정을 바로 옮겨 적기도 하고요. 콘셉트는 다양하지만 정확하고 분명한 아이디어들로 진행이 됩니다. 그리고 그 작업은 제가 기쁜 마음으로 클라이언트들에게 보여줄 때까지 계속돼요. 아이디어가 하나가 아닐 땐 내놓았던 아이디어들을 조금씩 좁히고 수정해가면서 동시에 클라이언트에게 다시 한번 수정된 아이디어에 대해 설명하면서 진행해요. 이런 식으로 클라이언트들과 여러 번의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간 후에 최종 디자인이 탄생됩니다.
인스타그램 속 작가님의 작품들은 대부분 펜과 연필로 되어있던데요, 수작업을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제 인스타그램은 사실 시간이 날 때마다 펜으로 끄적거리던 낙서들을 업로드하기 위해 시작한 거예요. 보통 펜이나 연필을 손에 쥐고 있는 편이기에 둘 중 하나를 사용한 거죠. 가끔 빠른 스케치를 위해 벡터 드로잉을 사용할 때도 있지만, 디자인 과정에서 손 그림만이 가진 특정한 매력이 너무 좋고, 또 그런 느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 업로드를 시작했어요. 매일, 그리고 온종일 맥북을 이용해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연필이나 펜을 이용해서 작업하려고 하고, 또 그걸 좋아해요. 그에 대한 결과물이 저의 인스타그램이고요.
작가님이 만든 페이스북 이모티콘을 잘 쓰고 있어요. 그것을 만든 계기가 있나요?
페이스북 측에서 제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연락을 해왔어요. 페이스북 디자인 팀과 ‘Give Thanks Project’라는 페이스북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작업은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페이스북 측 리드 디자이너와 제가 또 다른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할 수도 있게 되었지요. 그 작업들은 곧 저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디자이너로서, 작가님의 멘토는 누구인가요?
트레이시 폭스(Tracey Fox), 에디 벌라(Eddie Berla), 사이먼 케언스 (Simon Cairns), 트리스탄 오셰너시(Tristan O’Shannessy), 그리고 벤 라이드(Ben Reid)예요. 이들 모두 굉장히 창의적인 사람들이지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들입니다. 사실 대학교에서는 디자인에 관한 기초적인 것들만 배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교내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하는 작업들이 많았고, 덕분에 다른 사람들과 일을 할 때 어떤 식으로 상대방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말 많이 배웠어요. 만약 저의 멘토들과 학교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하는 수업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는지 궁금해요.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가령 그들이 듣는 음악이라든지, 자주 방문하는 웹사이트, 혹은 그들의 지인과의 대화 속에서도 말이에요. 저도 그렇거든요. 제 주변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제가 자주 가는 디자인 블로그들 또한 그날그날 영감을 받는 데 큰 영향을 주지요.(안토니 호스가 자주 가는 디자인 블로그들: Designspiration / BP&O / Aesse Visual Journal / Gurafiku to name a few)
어떤 게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에게 좋은 디자인이란 심플한 디자인이에요. 최소한의 디테일로 메시지를 효과 있게 전달하거든요. 디자인할 때 자신이 전하고 싶은 아이디어는 효과적으로 남기면서 가장 심플한 형태로 남을 수 있게 불필요한 것을 전부 버리는 연습을 하면 좋아요. 작업이 완성되면 심플함 속에 녹아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매우 놀라울 거예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린든 리더(Lindon Leader)의 ‘페덱스(FedEx)’ 로고는 정말 최고라고 생각해요. 앞서 말했듯 제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은 최소한의 설명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는 것이지요. 페덱스의 로고가 그렇다고 생각해요. 로고 속에 숨어있는 화살표는 정말이지 독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이포그래퍼 중에서는 ‘허브 루바린(Herb Lubalin)’을 가장 좋아해요. 그의 작품들은 아직도 혁명적이라고 생각하고, 저에게 레터링에 관한 애정을 가장 크게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신 분이죠.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글자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지가 저의 모든 호기심을 자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인간으로서 우리는 매일 타이포그래피와 레터링을 통해 읽고 쓰잖아요. 또, 목소리를 이용해서 글자 위에 자신의 느낌을 얹어서 또 다른 레벨의 커뮤니케이션을 나타내고요. 하지만 목소리 없이 글자 자체만으로도 우리가 전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타임스(Times)’나 ‘바스커빌(Baskerville)’ 같은 서체를 사용하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진지한 내용이라는 걸 깨닫고, ‘길 산스(Gil Sans)’나 ‘쿠퍼 블랙(Cooper Black)’, 혹은 ‘코믹 산스(Comic Sans)’ 같은 서체를 사용하면 재미있고 밝은 느낌이라는 것을 아는 거죠. 서체만으로도 커뮤니케이션의 단계를 높일 수 있다는 게 참 놀라운 일 같아요.
혹시 ‘한글’을 본 적 있나요? 있다면, 한글을 이용한 디자인을 해 볼 의향이 있으신가요?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올드보이>일 정도로 한국 영화 팬이에요. 그런 관심 덕분에 지금까지 많은 한글을 봐왔고, 또 한글을 보는 것과 듣는 것 모두를 사랑해요. 기회가 있다면 한글을 이용한 레터링을 해보고 싶네요.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건 장기적인 목표인데, 나중에는 꼭 저만의 디자인 에이전시를 가지고 싶어요. 대신 그전까지는 저의 디자인과 인생 경험을 여행과 더욱 다양한 디자인 마켓을 통해 더욱 넓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 흥미로워요.
디자인하려는 친구들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사람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일은 절대 하지 마세요. 지금은 깨닫지 못하겠지만, 먼 미래에 당신의 커리어와 디자인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칠 거예요. 당신이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혹은 지금 당신의 주위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온몸으로 흡수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뭐든 열심히 하세요. 또한, 배우는 것을 절대 게을리하지 마세요. ‘진짜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진짜 배움은 시작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