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늘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 가득 차 있다. 아이디어가 없어서가 아니라 넘쳐서 문제다. 바람을 타고 풍선이 둥둥 떠가듯, 그의 머릿속엔 디자인이 훨훨 날아다니는 듯 보인다. 브랜딩으로 시작했지만, 특정 분야에 한정 짓지 않고 전방위로 활약하고 있는 스튜디오 ‘미니멀리스트’의 이원찬 대표를 만났다.
어떻게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호주로 유학을 갔는데 처음엔 순수미술을 하고 싶었어요. 진로에 대해서 고민할 때 즈음 디자인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처음 패션 디자인으로 시작했다가 그래픽 디자인으로 전과를 했어요. 과정을 마친 후 공부에 대한 욕심이 더 나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호주 멜버른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귀국하고 2013년에 바로 스튜디오를 시작했어요. 처음엔 자신감 넘치게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에서 학교에 다닌 것도 아니고 직장 경험도 없던 터라 여러모로 힘든 점이 많았었죠. 하나둘씩 일 들어오는 대로 했는데 결과를 좋게 봐주셔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개인으로 활동하는 것과 스튜디오를 하는 것과의 차이점은 뭔가요?
일장일단이 있는데 개인으로 활동할 경우 조금 더 제 개인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담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스튜디오는 아무래도 규모 면에서나 분야로 볼 때 할 수 있는 작업이 폭넓어지는 것 같고요. 요즘 들어 일하면서는 꼭 분야를 한정 짓진 않으려고 해요. 재미있고 좋은 작업이면 팔 걷어붙이고 다 해보자 하고 뛰어드는 편이고 그게 뭐든 일하는 게 신나요. 현장이든 스튜디오에서 하는 일이든.
미니멀리스트가 직함인 줄 알았어요.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오, 그거 괜찮은데요(웃음).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 어떤 이름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대학 다니면서 모더니즘에 심취한 적이 있는데 엄청 넓은 무브먼트잖아요. 자연적으로 모더니즘이 제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치고 간결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되었죠. 추구하는 디자인과 삶의 방향과도 맞는 것 같아서 미니멀리스트로 결정하게 됐죠. 브랜딩을 할 때도 이름의 중요성을 많이 말해요.
작업하신 결과를 봐도 깔끔하고 간결한 특징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보통 정해진 공간과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전달하려고 하는데 사람들 머릿속에 남는 건 한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꼭 필요하고 중요한 메시지를 보다 더 잘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회복탄력성이 큰 사람이다. 최근 힘든 일을 겪었다는데도 말을 꺼내기 전에는 전혀 슬럼프를 겪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디자인 자체가 힘들거나 지루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잘 풀리든 상황이 마음대로 안 되든 소주 한 잔에 툭툭 털어내고 자신의 길을 심플하게 걸어간다. 환하게 웃는 얼굴에서 밝은 에너지가 샘솟는다. 그가 가진 매력이자 힘이다.
‘월간 이원찬’은 어떻게 만드신 건가요?
모든 분이 지금 떠올리고 있을 ‘월간 윤종신’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부분은 일단 맞습니다(웃음). 디자인을 가장 좋아하고 평생 이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누구와도 관계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죠. 마음먹고 개인 작업을 하려고 하니까 마치 다이어트를 해야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과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막연하게 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을 두고 한번 해보자. 그리고 그 기간이 월에 한 번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매월 1일 발행을 목표로 5호까지 나왔는데 그 이후로 보시다시피 휴간 비슷하게 된 상태입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웹진 형식으로 냈기 때문에 나의 디자인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평상시 디자인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짧은 칼럼처럼 쓰기도 하고요.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하니까 작업 자체가 충전이자 활력이었죠. 또 살짝 부담이기도 했고요(웃음).
작업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콘텐츠 자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어떤 작업을 하더라도 제 작업의 기본은 타이포그래피라고 생각해요. 클라이언트와 일을 할 땐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으로 돈독한 관계가 유지되도록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최대한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제안하되,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지 않고 합의점을 찾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개인적인 일은 무조건 재미있고 즐겁게 하자는 주의에요. 같이 일하는 팀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즐겁게 일하자는 거예요. 우선 마음에 맞는 사람들하고 시작하는 게 중요하고 작업 외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술자리도 갖고, 일하면서 못했던 이야기도 많이 해요.
지금까지 했던 작업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신가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콘셉셜하게 진행했던 르벤 맥주였어요. 저희 스튜디오를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된 작업이었어요. 혹자들은 맥주가 어떻게 병이 아닌 곳에 담길 수 있느냐, 병원에서 쓰는 유린백 같이 보인다, 욕도 많이 먹고(웃음). 원래는 병에서 시작했는데 저희는 패키지에서 가장 중요한 게 차별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마트나 매장에 가면 선반에 몇백 개의 제품이 진열되어 있는데 말하자면 패키지는 제품 이전에 소비자가 그 상품을 처음 접하게 되는 곳이잖아요. 뭔가 달라야 눈에 띌 것이고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아이디어를 얻은 건 호주에 있을 때였어요. 편의점에 얼음을 사러 갔는데, 거기선 얼음을 큰 비닐백에 담아 팔거든요. 그 순간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진행을 하게 됐죠. 공
간 작업에서 미니멀리스트만의 특징이 있다면 뭔가요?
많은 분이 얘기해주시는 건데 기존의 인테리어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공간과 저희가 해석하는 공간이 다른 것 같다고 하세요. 3차원 공간을 하나의 면으로 보고 평면처럼 작업하니까 그걸 재미있게 보시더라고요. 벽 하나를 봐도 재질이나 구조를 생각하기도 하지만 캔버스를 보듯 어떻게 하면 그래픽적으로 풀어볼까를 고민하거든요.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디자이너로 오래 살아가려면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그는 잘라 말한다. 사랑하면 저절로 공부하게 되고, 노력하게 된다. 길게 보고 시간과 정성을 들인 만큼 자신의 길이 보이기 마련일 것이다. 클라이언트 일과 나의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싶다는 그는 올해 안에 새롭게 선보일 어패럴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어떤 과정을 통해 작업으로 이어가는지요?
거리를 다니면서도 뭘 하더라도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있어요. 핀터레스트 중독이라 거의 온종일 쳐다보고 있고, 이런 이미지를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생각도 많이 하고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아요. 속된 말로 꿍쳐놓은 게 많아서(웃음) 작업을 시작하면 바로 풀어내는 편이에요.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말로 풀어서 언어로 정리하면서 체계적으로 만들죠. 그 언어들을 시각화하고 픽업하고 뽑아내는 건 빨리하는데 어떤 전략으로 접근하고 기존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지금 이 결과물이 최선의 해결책을 가져다줄 것인지 그 과정을 조율하는 게 시간이 걸려요.
좋은 결과를 내려면 어떤 것을 하는 게 도움이 될까요?
디자인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느냐가 좋은 결과와 비례한다고 믿는 편이에요. 그리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홍보하세요. 비핸스, 핀터레스트, 어떤 채널이든 작품 올리고 개인 웹사이트는 꼭 만드시고요.
디자인에서 사고의 힘을 강조하시는 데 도움되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게 저도 가장 힘든 부분이에요. ‘빨갛다’라는 단어는 시각적으로 쉽게 표현할 수 있잖아요. 그렇지 않은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게 어렵죠. 예를 들어 용맹함을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 누군가는 사자를 통해 보여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힘 있는 서체를 통해 나타낼 수도 있겠죠.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클라이언트가 생각이 다른 점도 있고 의도를 전달하는 데 막히기도 하잖아요. 그럴 땐 스토리로 풀기도 해요. 콘셉트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은유나 상징을 써서 한 편의 동화처럼 이야기를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데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즐기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도 좋고요. 그리고 학교는 휴학하지 말고 빨리 다니고 필드에 나와서 부딪쳐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현장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 분명히 보지 못했던 벽을 만날 것이고 그때 비로소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알 수 있어요. 야근 많고 박봉이지만 일을 좋아해서 시작했다면 최소한 현장에서 3년만 버티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그리고 많은 분이 강조하는 중요한 부분, ‘인성’이라고 생각해요. 학교를 막 마친 주니어가 효과적으로 필드에서 실무를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럼 결국 새내기 디자이너의 갭은 그리 크지 않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는데, 결국은 오래 함께 일할 수 있는 인성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 인성이라는 것이 뭐 크게 거창한 게 절대 아니에요. 사람을 보면 인사하고, 웃고,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기본적인 품성을 갖추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