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멜버른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마사키 미와(Masaki Miwa).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디자인 작품 활동 및 예술, 디자인, 패션,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문화 영역에서 디자인의 속성을 탐험하는 '개인 작가(Independent Makers & Creators)' 프로젝트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그는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 사이에 형성되는 서비스/솔루션 기반의 관계를 넘어 디자인의 세계를 탐험한다. 사회 문화 및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담론하며 콜라보레이션에 참여하면서 콘셉트와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디자인을 결정하며 작품을 만드는 것. 즉, 디자인을 일종의 연구 방식으로 간주한다.
간단한 소개를 해주세요.
저는 저 자신에 대해 소개하는 일을 즐기지 않습니다. 자기소개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기 마련이거든요. 어느 시점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할 것이고, 또 다른 시점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겠지요. 아마도 제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듯 서로 다른 오해가 계속 발생하기 때문일 겁니다. 여러분도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을 거듭하지 않나요?
“저는 그래픽 디자이너입니다. 일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2년을 지냈고, 18년 동안 캥거루와 젖소들로 둘러싸인 호주에서 살았으며, 4년간은 런던에서 프라이드 치킨을 즐겨 먹고 술집을 즐겨 찾으며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지금은 멜버른에서 살고 있고요.”
-2014.06.19. 버전- 이게 요즘 저의 근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작업실에서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제가 일하는 작업실에서는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로서 동등한 위치에 있어요. ‘창조’ 작업과 프로젝트 관리를 담당하고, 콘셉트와 디자인의 방향을 결정하며, 디자인하고, 고객과 상담하며 편집 작업, 초안 작업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각자 모든 이를 위해 이용 가능한 것을 재료로 하여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끊임없이 전파를 내보내는 라디오 방송국과도 같습니다. 계급 구조가 강하지 않아서 좋은 것 같아요.
작품을 보면 패션 산업 분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이쪽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우습게도 저의 개인 작품과 디자인은 그래픽 디자인 접근 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고 출판과 인쇄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패션 관계자들이더라고요. 그건 아마도 일반 대중의 관심 변화, 즉 탐구 중심 디자인에 대한 관심의 증가 덕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걷고 있는 길(그 길을 함께 걷는 다른 디자이너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에 들어선 ‘클라이언트’들이 여태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많은 의문을 갖게 되었고, 그 궁금증을 제가 제시하는 디자인 콘셉트를 통해 풀고자 강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패션과 그래픽 디자인 사이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패션계의 클라이언트들은 디자인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감상하는 것을 즐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콘셉트를 마련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디자인을 통해 실험하고, 즐기며, 콘셉트의 잠재력을 표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 분야에 흥미를 갖게 되었나 봅니다.
작업 방식 또는 작업 프로세스를 알려주세요.
우선 탄탄한 콘셉트와 아이디어를 내고 나서 작품을 개발하고, 분석하고, 디자인하고, 바탕에 깔린 콘셉트에 충실하도록 합니다. 가장 신 나는 것은 거창한 콘셉트를 생각해내는 것입니다(사실 그게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요). 예를 들어, 단어나 구절 몇 가지에서 콘셉트와 아이디어가 나올 때가 있는데, 이럴 땐 정말 황홀합니다. 콘셉트가 정해지면 디자이너는 그것을 시각화하고 작품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Abake(www.abake.fr)에서 인턴을 하면서 배운 건데요) 클라이언트 작품은 하나의 디자인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훨씬 더 심오한 결과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피드백을 받아 하나의 아이디어로 단일화하면 훨씬 강해지고 의미가 깊어집니다. 다중 디자인 옵션을 만들게 되면 클라이언트들은 디자이너를 ‘레이아웃 잡는 인력’ 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런 디자인은 쉽고, 단순하며, 저렴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디자인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큐레이션입니다. 콘셉트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요소를 계산해서 사용하는 것. 이것이 저의 작업 프로세스입니다.
평소에 뭘 하며 지내세요? 여가가 궁금해요.
일상적인 일요? 평소에 하는 일 말씀이죠? 최근 몇 년 동안은 아침마다 커피를 내리고 담배를 한 대 피웁니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죠. 좀 무미건조하지 않은가요? 그런데 일을 마치고 나서 ‘여가(이 말을 정말 좋아하는데요)’는 개인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씁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무엇이든지 만들어 보고, 그동안 해 보고 싶었던 작업을 합니다. 출판물, 잡지, 전시, 다른 작가와의 콜라보레이션과 같은 개인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고요. 아니면 프리랜서로 상업용 디자인 작업도 합니다. 클라이언트 대부분이 친구들이지만요. 스무 살 무렵에 만난 한 아티스트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다른 사람의 3배만큼 일을 하시오.’라고요. 그때 들었던 말을 지금까지도 제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출판물 작품이 많은데요, 인쇄 매체에 대한 애착 때문인지요? 덧붙여, 작업할 때 가장 편한 재료는 무엇인가요?
책, 출판물, 인쇄물을 작업할 때 제일 신바람이 납니다. 물리적 존재를 만지고 느끼는 경험은 특별하거든요. 우리 마음속에 지닌 콘셉트, 아이디어, 디자인이라는 것은 결국 물질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그러한 점에서 저는 전시 큐레이션 작업과 그 결과물을 아주 좋아합니다(구체화하지 않은 방식으로 관람객들이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 작가의 출판물과 잡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요?
저는 개인 작가의 출판물과 잡지 이면에 숨겨진 로맨틱한 스토리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만들기 시작하는 이유는 소재나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거나, 대세에 반하여 소외당했거나, 아니면 단지 자기 생각과 관점을 공유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서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인쇄 페이지를 통해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모습을 비치고, 무언가를 해 내려고 노력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작품이 트렌드를 따른다고 생각하는지요? 트렌드를 따르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음, 그 질문이군요. 저도 저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져 온 질문이기도 한데요, 작품 중에서 어떤 것은 트렌드를 따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것은 이미 구닥다리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요. 작품이 만들어졌을 당시의 목적과 콘셉트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그 당시 작품들의 전시 카탈로그가 하나 있는데, 그 작품의 배경에 어떤 콘셉트 또는 (디자인 콘셉트와 방향을 제시하는) 큐레이션이 없었다면, 그 당시 유행하던 방식대로 디자인했을 겁니다. 만약 대통령을 위한 정치 문서를 디자인하도록 의뢰받았다면, 여러분은 트렌디한 형광 웨이브 서체를 페이지 주변에 넣지는 않을 겁니다(아주 재미있는 발상이기는 하지만요). 메시지와 콘셉트는 디자인의 정보가 되고, 다시 그 디자인은 콘셉트와 메시지의 정보가 됩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관계지요.
디자인하다가 막히는 게 있으면 어떻게 해결하나요?
‘땅바닥에 쓰러질 때까지 위스키를 마신 다음 다시 작업을 시작하기.’라고 말하면 재미있는 대답이 될 텐데요.(웃음) 동료 디자이너나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피드백을 요청합니다. 그렇게 하면 작업하다가 놓친 부분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요. 그들이 다른 시선으로 제 작품을 바라보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예술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관점이 다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하나를 빠뜨렸네요…. ‘커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같이 일해 오셨잖아요. 콜라보레이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콜라보레이션이라는 말은 한동안 유행어가 되었던 것이기도 한데요, 이러한 트렌드는 자연스러운 운동 또는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여러 분야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선할 방법은?’, ‘기능을 저해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왜 그곳에 그것이 존재하는가?’, ‘어떤 특성이 그것을 저렇게 만들었는가?’ 등의 질문이 있기에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시도할 기회가 열리는 겁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일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볼트를 가지고 있다면, 다른 한 사람은 너트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러한 연대감을 느끼며 일하고 싶기 때문에 늘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려고 합니다. 저에게 콜라보레이션이란 지식, 프로세스, 의견을 공유하고 서로 배우며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로켓을 만들어서 달을 탐사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서 그것을 ‘달 공화국’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디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연설, 행사, 혹은 공연에 초대된다면 어떻게 그것을 시각화하고 싶으세요?
일회성이고, ‘매우 짧은’ 경험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즉, 여러분이 그 장소에 있어야만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요. 더 큰 맥락으로 진화할 수도 있을 테지만,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그곳에서 경험하고 그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요?
엄격함. 특이함. 배려.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세요?
이렇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