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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서점 ‘땡스북스’ 주인 이기섭의 작업실

    ‘소유’로 채우기보다 ‘향유’로 비워둔/열어둔 공간


    글. 임재훈 / 사진. 이희진

    발행일. 2012년 03월 02일

    동네서점 ‘땡스북스’ 주인 이기섭의 작업실

    “작업실요? 그냥 컴퓨터 하나만 놓을 수 있으면 충분하죠. 단 한 번도 제 공간을 번듯하게 꾸며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그래픽디자이너 이기섭의 작업실은 정말 휑뎅그렁하다. 책상, 의자, 책장, 컴퓨터, 약간의 책들, 가방, 끝. 실용품들로만 이뤄진 공간 활용이다. (디자이너의 작업실에는 당연히 있을 거라 기대되는) 그 흔한 디자인 소품 하나가 없다. 하다못해 그의 작업물마저 보이지 않는다. 장식이 배제된, 그야말로 실용의 공간이랄까. 다소 텅 빈 느낌도 들고 말이다.

    ▲ 자신이 운영하는 동네서점 ‘땡스북스’ 홍대점에서 만난 이기섭

    그의 작업실을 보다가 문득 ‘공간’이란 낱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빌 공(空), 사이 간(間). 비어 있는 사이·틈이라는 뜻이다. 또, 공간은 영어로 스페이스(space)다. 스페이스는 우주(宇宙)를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기섭의 공간은, 말하자면 엠프티 스페이스(empty space)다. 비어 있는 우주. 하지만, 모든 걸 담을 수 있는 우주. 어이쿠, 휑한 작업실 하나만 봤을 뿐인데, 우주까지 들먹이게 됐다. 이런 걸 두고 ‘사고의 지나친 확장’이라고 하던가. 어쨌든 분명한 건, 이기섭의 작업실은 실(室, room)보다는 공간이라 부르는 편이 훨씬 어울린다는 사실이다.

    주어진 공간을 ‘그냥’ 사용한다

    작업실이 자리한 곳은 서울 서교동. 이기섭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여기에서 “5년째 더불어” 작업을 해왔단다. 이건 또 무슨 말이냐고? 사실, 그의 작업실은 스토리텔링 컴퍼니인 ‘봄바람’에서 마련해줬다고 한다. 회사 안의 공간을 나눠 이기섭에게 내어준 것. 이기섭이 작업실을 꾸미지 않는 이유를 조심스레 넘겨짚어본다.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남에게 빌려 쓰는 공간이기 때문에 마음껏 꾸미기가 불편한 건 아닌지? 이에 대한 이기섭 본인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 땡스북스 홍대점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이기섭의 작업실

    “공간에 자기 취향이 딱 드러나야 흡족해하는 분들이 있죠. 그런데 저는 공간 꾸미는 거에 별로 큰 의미를 안 둬요. 내 공간은, 그냥 내가 머무는 곳이니까요. 굳이 내 취향을 반영시키고 싶지는 않아요. 주어진 공간을 그냥 사용하는 데에 익숙해서 말이죠. 저는 공간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의 공간을 향유하는 거죠.”

    ‘있는 그대로의 공간을 향유한다.’ 이기섭의 이런 기질은 작업하는 동안에도 얼마간 드러난다. 예를 들어볼까. 주변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오면 집중에 방해가 될 법도 한데, 이기섭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들리는 음악 그냥 듣고, 없으면 안 듣고”란다. 다만, 자신에게 음악 선곡 기회가 주어지면 재즈 피아노 연주를, 특히 빌 에반스(Bill Evans)의 음악을 주로 튼다. 그뿐이다.

    허허실실의 마음가짐이랄까. ‘내가 어디에 있든 그곳이 바로 극락’이라는 불교 철학을 떠올리게도 한다. 하기야, 대학원에서 선(禪)을 공부한 사람에게 이런 삶의 자세는 달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 터.(이기섭은 홍익대 섬유미술과를 졸업한 뒤,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에 다녔다.)

    비어 있는 서재

    작업실 안의 책장은 그 큰 크기가 무색하게 숭숭 비어 있다. 디자인 관련 서적 몇 권만이 듬성듬성 꽂힌 채다. 얼마 전 이기섭은 작업실을 이사했는데, 아직 짐 정리가 덜 되었다고 한다. 이사라고는 하나, ‘봄바람’ 스튜디오 안에서 방만 옮긴 것이다. 원체 자기가 가진 물건에 별 애정이 없는지라, 이사 과정에서도 전부 챙겨오지는 않았다. 짐 정리를 다 끝낸 후에도 ‘비어 있는’ 느낌은 변하지 않을 듯하다.

    ▲작업실에 놓인 책장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테지만, 이기섭은 홍대 앞 동네서점 땡스북스 대표이다. 명색이 책방 주인인데, 서재만은 그럴듯하게 꾸며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이기섭의 대답은 단호하다.

    “책을 수집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안 해요. 어느 순간부터 큰 만족을 못 느끼겠더라고요. 열심히 모은 책들을 그냥 책장에 꽂아 수집해두는 게 별 의미가 없더군요. 수집이라는 게 결국 소유를 위한 거잖아요. 서점이라는 공간도 책을 사는 곳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여러 종류의 책들을 구경하며 향유하는 즐거움이 더 크지 않을까요?”

    대답을 듣고 나니, 그의 땡스북스는 확실히 향유의 공간임을 알겠다. 바깥에서도 훤히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통유리창, 정기적으로 열리는 책 전시회, 점원들이 직접 내어주는 커피. 이 모든 것들이 ‘책 사세요’가 아니라 ‘책 즐기세요’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 땡스북스 홍대점

    ″영원히 소유하고 싶은 물건? 그런 거 없어요.″

    이기섭은 최근 땡스북스라는 브랜드로 디자인스튜디오를 열었다. 사무실은 서교동 땡스북스 근처다. 한적한 골목길 어귀에 위치해 있는 20평 남짓한 공간이다. 지역주민이 살다가 비운 곳을 개조했다고 한다. 아, ‘개조’라는 표현은 실수다. 이기섭은 이곳을 ‘그냥’ 그대로 쓰고 있다. 책상과 컴퓨터 등 실용품만을 들여놓았을 뿐, 따로 인테리어를 꾸미진 않았다. (디자인스튜디오라면 으레 있을 법한) 아기자기한 소품 하나 보이지 않는다. ‘봄바람’ 스튜디오에 있는 그의 공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기섭은 땡스북스 스튜디오 안에 자기 작업실을 마련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스튜디오 실장(그래픽디자이너 김욱)이 전체 관리를 자율적으로 할 수 있으려면, 대표실이 아예 없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 땡스북스 스튜디오

    그에겐 도통 자기 것을 취하려 하지 않는 괴벽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 그는 진정 ‘나’를 버릴 줄 아는 경지에 이른 것인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그도 어쩔 수 없이 세속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필시 하나쯤은 영원히 소유하고 싶은 것이 있으리라. 디자인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그러나 그의 대답은 또 다시 단호하다.

    “그런 거 없어요. 정말로. 저는 이미 많은 것들을 갖고 있어요. 굳이 더 안 가져도 될 만큼 여유가 생긴 거죠. 이 상태에서 제가 뭔가를 더 가지면, 그것이 제 공간을 차지하게 되겠죠. 저는 그게 싫어요. 굳이 비움이니, 불교적인 영향이니 하는 거랑은 크게 상관없어요. 그냥 쓸데없이 많은 것들을 소유함으로써 신경 쓰이는 게 싫은 거죠. 어찌 보면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지요. 제 기준에서는 꼭 필요하지 않은 소유물이 없는 게 가장 편한 거니까. 제 이기적인 생각들 중에서 제일 이기적인 게 바로 ‘고만고만한 물건들을 더 이상 갖지 않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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