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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디자이너 박철희

    “한 번도 안 해봤던 걸 시도할 때, 노동 집약적인 작업을 할 때 대체로 흥이 나요.”


    인터뷰. TS 편집팀

    발행일. 2014년 05월 09일

    그래픽 디자이너 박철희

    한글에 새로운 시각 언어를 입히고 싶어 시작했다던 레터링 작업. 그래서인지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완성도의 문제를 떠나 그냥 재미있고 흥미롭다. 한글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인지 문장력도 좋고, 맞춤법 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이해력을 바탕으로 한 작업은 재미와 흥을 뒤집어썼지만 그만큼 견고하다. 조금씩 조금씩 자신만의 생각과 목소리를 다져가는 청춘, 그래픽 디자이너 박철희를 만났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박철희라고 합니다.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이제 막 졸업한 뜨내기예요. 모교인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사무실에서 조교로 일하고 있어요. 일이 끝나고 5시에 퇴근하면 그제야 ‘부업’으로 디자인을 해요. 저의 이런 상황이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앞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작업을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이렇듯 요즘은 많은 시간을 ‘할 것’에 대한 상상에 할애하며 미래를 계획하고 있죠. 앞으로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그동안 어떤 작업을 주로 하셨는지요.

    군대에서 막 전역한 2011년 즈음은 한참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한글 사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때였어요. 새로운 한글 사용법에 대한 갈망이 복고바람으로, P.O.P로, 캘리그래피로 나타났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표정이 느껴지지 않는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신물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어요. 서체는 부족한 것 같고, 만들자니 한글에 대해서 아는 것은 많지 않았죠. 한글에 새로운 시각언어가 입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글을 어떻게 하면 새롭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하곤 했어요.

    레터링이 독특해요.

    처음에 어떻게 이런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전역하자마자 집주변에 사는 친구들을 모아서 ‘또랑’이라는 소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레터링을 열심히 해 볼 생각이었죠. 하지만 글자를 그리면 그릴수록 레터링의 일회성이 큰 단점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한 생각이 ‘한글은 모아쓰기 문자니, 꼭 다 그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였어요. 다른 언어에 비해 비교적 많은 소리의 표현이 가능한 모아쓰기 문자의 ‘유연한’ 특징을 폰트라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졸업전시 작품으로, 한글을 ‘조합이 가능한 형태모듈’로 나눈 뒤 그것을 조합해 글자를 써나가는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자모를 조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듯 형태모듈을 조합하여 글자를 만드는 방식이에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지는 못해 미완성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의 모듈세트로 평체든 장체든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로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기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리소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2012
    훗, 2013
    또랑, 2011
    레터링, 2012
    한글 레터링 모듈화, 2013

    그림도 직접 그리시는 거죠? 좋은 의미로 약간 키치적이랄까. 그런 것이 느껴져요. 어떤 것에 영향을 받는 편인가요?

    키치 한가요? ‘엄청 키치 하게 만들어야지!’ 하고 무언가를 만들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디자인이라고 규정하는 울타리 바깥에서 소재를 찾아오곤 해요. 그러다 보니 괴상한 것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것 같네요. 제가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관습적 시각언어로 ‘디자인스럽게’ 디자인하는 거예요. 보통 스케치나 생각 없이 바로 작업에 들어가면 이런 것들이 무의식중에 튀어나오곤 해요. 제 작업에서 언제나 새로운 부분이 한 군데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어요.

    디자인적으로 특별히 관심 갖는 주제가 있나요?

    새로운 것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막히는 부분이 있어요. 식물에 비유한다면 과거의 줄기에 다른 가지를 뻗기 위해서 어딘가 발을 딛고 싶은데 무엇을 찾아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한국의 현대 디자인을 모아보면 꼴라주를 감상하는 것 같은 즐거움은 있지만, 그 정체성은 여전히 모호한 상태인 것 같아요. 고정된 정체성이 없는 게 정체성인 것도 같고요. 그냥 가끔 그 빈 공간을 생각해봐요. 새로운 디자인은 쌓여가고 있지만 가끔은 멀리 누군가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흥’이예요. 저는 방법적으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할 때, 또는 노동 집약적인 작업을 할 때 대체로 흥이 나요. 이 두 가지 모두를 만족한 적이 한 번 있어요. 이걸 작업할 때 정말 신 났었죠. 이 포스터는 디지털 시대의 장인에 대한 과제였는데, 저는 네모난 오브젝트를 대지에 올려놓고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의 나이프(knife) 툴을 사용해 조각을 하듯이 깎아서 만드는 방법을 사용했어요. 제가 시도해 본 적 없는 방법이었고, 스케치가 끝나고 파내는 일만 남았을 때는 마음이 편안해지며,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밤을 새워도 피곤하지 않았고, 테스트출력 해해볼 때 막 뛰어다녔어요. 이런 즐거운 기분을 ‘흥’이라고 생각하고 작업을 할 때 ‘흥’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요.

    작업 프로세스 중에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작업이 끝나고 제 작업이 인쇄되고 있는 것을 볼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결과물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에요. 기분이 후련하고 저에게 상을 주고 싶어집니다.

    아키타입프로젝트, it’s LONG HARD STUPID Way, 2012
    매직핑거페스티벌, 2013
    스페이스문 시리즈, 오픈파티, 2014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밴드 피해의식의 로고를 만들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피해의식은 자신이 고용한 디자이너를 믿어주었다는 점에서 여태껏 만난 클라이언트 중에 가장 좋았습니다. 로고 작업은 ‘대상의 본질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옮기느냐’가 중요한 작업이잖아요. 저는 제가 그런 것에 소질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클라이언트가 저를 믿고 기다려 준 덕분에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다들 좋아해 주어서 아주 기뻤던 작업이었죠. 클라이언트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좋은 과정을 통해 나온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과정이란 클라이언트와의 긴밀한 소통, 가치에 상응하는 대우, 디자이너의 열린 생각, 단련된 손, 적절한 도구 등이 모두 버무려진 것으로 생각해요. 제가 디자이너다 보니 이렇게 제작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네요. 이런 좋은 과정을 통해서 나온 결과물은 당연히 좋을 거라 생각해요. 저도 저에게 오는 프로젝트들의 모든 과정을 최대한 좋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의문만 늘어가고 있어요. 넘쳐나는 디자인학과 졸업생들과 함께 기형적으로 변해가는 산업구조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더 이상 이곳에 못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이 기술을 기반으로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할 때라고 생각해요. 미술을 처음에 시작할 때 마음가짐은 즐겁게 인생을 살기 위해서였는데 갈수록 그렇게 하기가 힘이 들어요. 하기 싫은 걸로 돈을 벌고 하고 싶은 것에 돈을 쓰는 구조는 너무 소비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에요.

    피해의식, 2013
    Paul Thek’s Teaching Note,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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