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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스튜디오 ‘제로 랩’

    “스튜디오 열고 1년쯤 지난 어느 날, 문득 ‘회사 다닐 때와 뭐가 다르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5년 04월 17일

    디자인 스튜디오 ‘제로 랩’

    그들은 말한다. "디자인은 항상 재미있다." 지하 가득 펼쳐져 있는 각종 공구들을 보면 과연! 이라는 감탄이 나온다. 나무야 그렇다 쳐도 직접 불과 철까지 다루는 디자이너 스튜디오가 어디 흔하랴. 일이고 업인 이상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그들에게는 여유가 느껴진다. 기획은 물론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전천후 작업이 가능한 스튜디오 ‘제로 랩(zero-lab)’ 장태훈·김동훈·김도현 디자이너를 만났다.

    제로 랩이란 이름이 특이한데요?

    누가 그러던데, 통장 잔액이 제로라서 제로 랩이냐(웃음). 제품 베이스의 사람들이 갖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자꾸 덜어내고 싶어 하고, 또 저희 세대가 그런 영향을 많이 받은 세대에요. 형태를 지우려 하고, 재정립하려고 하다 보니 저절로 이렇게 온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겠다는 의식이 생긴 시점에 이름을 짓게 된 거죠. 외부에서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제품 스튜디오니까 직접 만드는 일이 많아요. 나이가 들수록 한계를 느끼죠(웃음). 디자이너들은 태생적으로 새로운 걸 좋아하는데 그런 면에서 우린 흥미로운 일을 꾸준히 해온 것 같아요.

    애착이 가는 작업이 있고 아쉬운 작업도 있을 것 같아요.

    하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아요. 저희 상품을 만들기보다 다른 분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정해진 시간 안에 해야 하는데 처음과 끝이 다를 때도 있고요. 그런 점에서 보면 항상 아쉽죠.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작업실을 처음 시작할 때 어떤 방향으로 갈 거냐를 생각하며 했던 전시에요. 그리고 또 하나를 꼽자면 광주 작업이에요. 저희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일이기도 했고, 외부로 보냈을 때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과정을 전부 저희가 하거든요. 물론 외부에 제작이나 디자인을 맡겼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결은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제로 랩이 다른 스튜디오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저희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못한다고 생각하는 게 없다는 점이에요. 오해를 부를 수도 있는 말인데(웃음)…. 저희가 전시도 하니까 작가라고 부르는 분들도 있는데 저희는 작가라고 불리고 싶진 않거든요.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목표는 결국 ‘디자이너’라서 디자인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있어요. 그래픽을 하든 제품을 하든 하나의 디자인으로 묶은 형태인 거죠. 경계가 없는 디자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처음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도 지금까지 없었던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었고요.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하네요.

    스튜디오를 열고 1년쯤 되었을 때 이렇게 가도 될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일은 계속하고 있지만, 어느 날 문득 회사 다닐 때와 뭐가 다르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이렇게 가도 되나? 다른 스튜디오와 다른 점은 뭔가?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반드시 제로 랩에 맡겨야 하는 이유가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관심 있는 분야가 문화예술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부분을 어필하고 표현하려고 노력했지요. 공구 사용할 수 있는 작업실을 구한 것도 그 이유가 크고요. 기본적으로 상업 디자인을 했던 스튜디오이기 때문에 저희가 실험적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우리 범주 안에서 해냈다고 생각해요.

    [좌] 도시횡단 인력수레 [우] 도시횡단 프로젝트 광주
    [좌] 2013안애순 무용단 기획전, 쉼표 [우] 복제품들 우리가 하나였거나 끝났을 때
    [좌] 세계문자심포지아 인포부스 [우] eat project, zerolab x chris ro
    실험적인 디자인, 상업적인 디자인의 경계를 나눌 이유가 있을까. 제로 랩에서 해온 일련의 작업들을 보면 '디자인'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세상의 디자이너 수만큼이나 많은 대답이 존재하겠지만 그중 한 가지는 더할 것이 없는 게 아니라 더 뺄 것이 없는 상태의 것이 아닐까. 

    자리를 잡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 1년 동안은 워크숍을 많이 다녔어요. 재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찾으러 다니고. 결국, 그분들이 일을 주시고 다른 일을 소개해주기도 하셨어요. 초창기 그 시간이 5년을 끌고 온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 다시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2~3년 정도는 돈을 벌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나눠서 했어요. 돈이 안 되어도 몸을 불 싸질러서 재미있는 일 한 번 해보자, 이랬던 적도 있고. 지금은 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서로의 강점은 뭘까요?

    다들 파트가 나뉘어 있어요. 디자인 콘셉트가 그려지면 거의 그냥 가는 편이에요. 욕망이 강한 사람이 먼저 내놓으면 그게 선택되니까(웃음). 그런 면에서 친구가 아닌 게 더 좋은 것 같기도 해요. 갈등이 별로 없어요. 가끔 몸이 피곤할 때 짜증 날 때는 있지만, 작업을 갖고 딴지를 걸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저희가 사이가 되게 좋은 건 아닌데(웃음). 문제가 생겨도 같이 고민하는 게 좋아요.

    최근 하고 계신 작업은 어떤 건가요?

    두 가지 정도의 일이 있어요. 오는 6월 대림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 당구장’에서 개인전이 있고요, 8월에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에서 하는 APMAP 야외 설치작업이 있어요. 다른 일들도 계속 있는데 올해 가장 중요한 작업을 뽑으라면 이 두 가지 정도예요. 그래서 지금 진행이 어떻게 되고 있느냐면…. 만날 때마다 어떻게 하지? 서로 묻고 있어요(웃음). 오래가는 디자이너와 그렇지 않은 디자이너의 갈림길은 ‘기획’에 있는 것 같아요. 하라 켄야를 봐도 그렇고 기획 자체가 디자인되는 경우도 있고요.

    기획이 중요하게 느껴지는데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나요?

    그 사람의 생각이 보이는 중요한 지점이지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안목이 고스란히 드러나거든요. 디자인 자체의 중요성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서 ‘기획’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가 소모품으로 쓰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봐요. 디자이너의 역할이 스타일링만 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 내부에서 기획을 시작한 의미도 있어요.

     못된디자인, 디자인은 잘못되지 않았다
    제작자들의 도시, ⓒ국립현대미술관
    바이씨클  프린트키오스크
    [좌] 프린팅 스튜디오쇼
     [좌] 스코프 [우] 슈타이틀전 전시 집기
    안정적인 구조 안에서 지속 가능한 생산 시스템을 갖추는 일을 고민하면서도 이들은 건강함을 유지한다.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스스로 즐길 줄 아는 여유의 힘이 느껴진다. 자신을 잘 알고 있고 서로를 신뢰하면서도 동료와의 거리감을 볼 줄 안다. 제품 제작 스튜디오가 드문 현실에서 제로 랩이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새로운 길이 되기를 바란다. 

    스튜디오의 흥망성쇠를 많이 느끼게 되는데 5년 차 스튜디오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희도 참 많이 봐요. 예전에 봐온 제품 디자인 스튜디오들을 봤을 때 다시 생각하게 됐던 일이 뭐냐면 자체 브랜드를 생산해서 파는 스튜디오는 거품이 많았어요. 그게 미디어의 속성이든 내부의 한계이든 지나치게 뜨겁게 달궈진 느낌이었거든요. 한 달 전에 핫 하게 떠올랐던 스튜디오가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그 길보다는 가늘고 길게 갈 방법을 찾고 싶었죠(웃음). 우리 디자인을 내놓았을 때 디자인만 돋보이기보다 기능적으로 쓰임에 적합한 형태면 좋겠어요.

    제로 랩이 바라는, 큰 그림은 어떤 건가요?

    큰 그림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오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오래 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지치지 않아야 하고요.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회의가 들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배우거나 하는 방식으로 리프레시를 하기도 하고요. 회사에 다닐 땐 컨펌을 위해서 디자인을 계속 만들어내야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디자인하는 시간은 짧아졌는데도 결은 정확해지는 것 같아요. 일의 강도는 제작을 직접 하니까 아무래도 높은 편이죠.

    제작을 직접 한다는 점이 다른 스튜디오랑 차이점이 될 것 같아요.

    처음엔 실수도 잦고 이게 될까 싶기도 했는데 점점 스킬이 쌓이니까 노동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있어요. 재미가 있으니까 계속하는 것 같아요. 정신이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마음이 늘 있고, 일이 들어올 때마다 설레고 신나고. 누가 우리를 알아보고 또 전화했나, 영업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았지(웃음). 제작이 재미있는 게, 뭔가를 만든다는 인식이 원동력이 되어줘요. 제로 랩이 할 수 있는 디자인을 충실하게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앞으로 어떤 일을 더 해보고 싶으세요?

    지금 하는 일 끊이지 않고, 지나치게 뜨겁거나 차갑지 않게, 오래오래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지요(웃음). 지금은 문화예술 쪽 일을 주로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못 하게 되는 때가 올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더 현재에 집중하고 싶어요. 일단 문화예술이 들어가면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굉장히 은둔형이라 별로 다니질 않았는데 최근엔 협업하면서 새롭게 갖게 된 생각이 있어요. 디자이너들끼리 만난다고 반드시 파이를 쪼개야만 하는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모든 협업이 반드시 창조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적절하게 필요할 때는 물론 만나서 일하지만 제로 랩의 색깔은 지키려고 합니다.

    [좌] 테이크아웃드로잉, ㅊ수레 [우] 이동 공간 영화
    스툴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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