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워라,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순간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명함과 카드가 이렇게나 아름다운 오브제였던가. 일러스트는 물론 색깔까지 직접 만들어 수작업으로 공을 들인다. 정성을 들인 웨딩카드는 액자에 넣어 평생 간직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작품이다. 한재석, 이해경 동갑내기 부부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아나프레스(ANAPRESS)의 작업물은 기존의 명함이나 카드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아나프레스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아날로그와 레터프레스에서 각각 가져왔죠. 그리고 한재석 실장 명칭이 아나였어요. 아나키스트의 아나. 우리만 아는 아나죠(웃음). 실제 수작업을 많이 하기도 하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일이라 저희 이름으로 적당하겠다 싶었어요.
레터프레스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이해경(이하 이) 원래 일러스트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인쇄 쪽 일은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고요. 제가 예민한 성격이라 작업결과 보고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화면에서 볼 때와 인쇄로 나왔을 때 색상 차이가 너무 큰 게 속상하더라고요. 오류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나중엔 포기하다시피 했죠. 원하는 자가 만들어서 찍는 수밖에 없다면 인쇄소를 차려야 하나?(웃음). 그러다가 한 실장과 함께 방법을 찾게 된 거죠.
레터프레스 초기 개척자로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한재석(이하 한) 생각에서 실행까지 준비 기간만 7년 정도 걸렸어요. 아이디어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는데 그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기가 어렵더라고요. 활판 하나도 구하기 힘든 상태였으니까. 끈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에요. 잉크색깔 맞추는 것부터 시작해 종이 자를 때 1mm 어긋남도 신경 쓰이니까요.
레터프레스의 어떤 매력에 끌렸나요?
감성이 살아 있다는 점이네요. 수작업이 많이 들어가서 그 때마다 묘미가 달라지는 것도 좋고요. 물론 그만큼 힘들 때도 있지만 생각한 대로 결과가 나왔을 땐 정말 짜릿해요. 배우고 싶다는 문의도 많이 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저희도 지금 고민 중이에요.
따뜻하다. 그리고 감성적이다. 이차원 종이에 색을 넣고 프레스를 줘서 누른 것뿐인데 마음을 담는 깊이가 생겨난다. 공간과 시간, 질감까지 살아난다. 명함 한 장을 손에 들고 가만히 느껴본다. 만들어 달라고 한 사람, 만든 사람, 그리고 이것을 받을 미지의 사람. 세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것 같다. 언제든 어디서든 전달하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작업과정이 까다로운데도 오차가 거의 나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가치를 아는 분들을 위해선 시간을 들여서라도 작업을 하죠.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는 미묘한 차이까지 알아봐주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시간도 품도 두세 배 들지만 힘든 작업일수록 노하우가 쌓이니까 배우는 점도 많아요. 저희 작업을 보시곤 이런 인쇄는 처음 봤다며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감동했다는 분도 계셨어요. 정말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힘을 많이 받아요. 어려웠던 과정도 보람 있는 일로 남고요.
소모품이 아니라 소장품의 가치가 느껴지네요. 작업할 때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지구력이 가장 중요하고요(웃음). 일러스트는 보통 밤을 새서 그릴 때가 많아요. 컨셉이 맞으면 빨리 끝나죠. 예쁜 것은 모두 넣고 싶은데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땐 시간이 많이 걸려요.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니까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상상했던 대로의 결과물을 보고 기뻐하시는 얼굴을 보는 게 참 좋아요.
일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요?
자체 개발된 리본이나 디자인이 도용 되는걸 보고 있으면 좀… 속상해요. 각자 개성을 살려 독특한 스타일로 가면 좋겠어요. 레터프레스는 소중하니까요.(웃음)
꿈을 이뤘다. 아나프레스를 통해 오래전부터 염원했던, 원하는 칼라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일을 직접 하게 된 것이다. 한재석 실장의 또 다른 꿈은 일식요리사다. 팔딱거리는 생선을 잡아서 그 자리에서 회를 뜨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천진난만한 웃음이 터진다. 가족이고 친구이며 연인이자 동료인 두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어 자신들의 보폭과 속도로 걸어간다. 이들이 빚어내는 사랑의 이중주야말로 작품을 완성하는 마지막 한 방울 맛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저희 대표작품인 꽃하고 리본이네요. 부케는 신부의 상징과 같잖아요. 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결혼식 때 신부가 꽃 한 송이를 나눠주는 관습이 있는 나라가 있대요. 행복을 나눠주는 의미라고 들었는데 웨딩카드의 꽃을 통해 신랑신부는 물론 초청 받은 분들도 행복하시라는 뜻을 담고 싶었어요.
색감이 참 특이해요.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리는 톤도 그렇고요.
색견본에 없는 컬러죠(웃음). 색채 배합에 공을 많이 들여요. 컬러가 지정된 작업의 경우 제작과정에서 컬러 배합이 잘맞지 않아 보이면 제작을 중지하고 의견을 보내드리기도 하고요. 언젠가 한 분이 색견본에 없는 컬러를 표현하고 싶어하셨는데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니 어느 정도 생각하시는 색을 읽을 수 있겠더라구요. 결과물 보시고 꼭 원하셨던 컬러라시면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어요(웃음).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디자인 개발은 꾸준히 하고 싶어요. 메뉴판이나 와인라벨도 생각중이고요. 지금은 커피 브랜딩 작업에 관심이 가요. 레터프레스를 떠올리면 역시 아나프레스! 라고 불리고 싶어요. 저희가 그랬듯 까다로운 주문을 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아니까 최대한 맞춰드리고 싶거든요. 책임감도 느끼고 있고요.
서로의 장점을 한 가지씩 말해주세요.
한
이실장은 일을 잘 벌여요. 레터프레스 기계도 처음에는 본인이 하겠다고 했지만(웃음) 아무래도 여자가 다루기 쉽지 않은 부분이 많아요. 저 역시 디자이너다 보니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색 조금 안맞아도 속상해 우는 사람인데 제가 맞춰주지 못하면 남편이나 다른 오퍼레이터나 다를게 없잖아요(웃음). 꼼꼼하고 손재주가 탁월해서 어떻게 이런걸 만들었지? 놀랄 때가 많아요. 저한테 없는 걸 많이 갖고 있어요.
이
한실장은 디자인 관련 자료를 광범위 하게 많이 보는편이라 보는 눈 디자인 감각이 좋아요. 성실하구요. 전 혼자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라 제 생각에 갇혀 있을때가 많은데… 엄선된 자료들과 한실장님 작업을 보면 전혀 다른 작업이 나오기도 해요. 말 수가 적고 주로 행동으로 배려하는 사람이라 싸우는일이 거의 없는데…이 일을 하고부터 색에 예민한 저 때문에 많이 힘들거에요(웃음). 집중력도 좋고 요리도 잘하는 광범위한 멀티플레이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