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았다. 따뜻하고 행복한 아우라가 그의 곁에만 둘려 있는 느낌이랄까. 웹툰 <오무라이스 잼잼>에서 일상의 음식을 맛깔나게 설명해주는 아빠 캐릭터 그대로였다. 만화가로 잘 알려진 조경규(홈페이지) 작가. 그런데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의 작업들을 보면 볼수록 헷갈리고 또 헷갈린다. 어쩜 그리 변화무쌍한지. 이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경계가 뚜렷하다. 누구나 다른 모습은 있다지만, 해도 너무한. 아수라백작 같은 매력의 그가 점점 궁금해진다. 글. 황소영
만화가, 그래픽 디자이너, 피바다, 황신혜 밴드 멤버…. 그동안 여러 가지 작업을 해왔는데,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소개하고 계신가요?
자영업이죠. 이것저것 일이 들어오는 대로 다하는 사람.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할 때 쓰는 이름이 블루닌자인데요, 그림자처럼 클라이언트 뒤에서 조용히 일을 해치운다는 뜻이에요.
요즘 가장 열중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요?
항상 비슷해요. 여러 가지에 발을 담그고 있지요. 당분간은 만화 연재하니까 그 일의 비중이 반 정도 되고 나머지 일들은 늘 해오던 것들이에요. 공연물 디자인, 웹디자인, 어린이책 일러스트, 잡지 일러스트 등이 있어요.
처음에는 어떤 일로 시작하셨나요?
돈을 받고 작업한 첫 번째 작업은 하나은행 사외보에 들어가는 일러스트였어요. 벌써 12년 전이네요. 더듬이가 달려있던 남녀 외계인이었는데, 이후로 사외보 일러스트를 많이 그렸었네요. 디자인하우스에 아는 분이 계셨거든요. 거기 프로젝트를 주로 받아서 했어요.
(모든 작업이 그렇지만) 특히 잡지를 이용한 꼴라주 작업(바로가기)이 흥미롭습니다. 뭔가 비하인드가 있을 것 같아요.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는데 물감들이 너무 비쌌어요. 하나를 사면 금방금방 쓰니까 비용을 못 당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신문은 공짜니까 잘라서 글씨도 맞추고 그림도 맞추고. 그렇게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빠져들었죠. 제가 원래 이것저것 잘라서 붙이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지금도 시간이 비면 이 작업을 조금 조금씩 계속해요.
그래픽으로도 꼴라주 작업을 하시잖아요.
제가 포토샵을 참 좋아해요. 처음 시작했을 때가 20년 전이었는데, 그때 처음 했던 작업이 누끼 따는 작업이었어요. 사진의 레벨과 색깔을 조절하고 잘라서 붙이고, 조합하고. 재미를 느껴서 계속하다 보니 이렇게 발전되어 왔네요. 저는 보통 포스터 작업도 포토샵으로 해요.
작품에 키치적 감성이 많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무엇으로부터 표출되는 감성인가요?
예전엔 사실은 그런 것들이 멋있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저 어렸을 때만 해도 마징가 같은 로봇들이 인기였는데, 사실 그것들이 색깔이 화려할 뿐 그렇게 세련되지 않잖아요. 마찬가지로 인쇄물도 다 원색 계열이었고. 그땐 그게 키치적인 느낌이 아니라 멋지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죠. 저는 지금도 그런 것들에 마음이 끌리고 멋있어요. 반면 요즘 보통 세련되었다고들 하는 식의 영어가 들어간 디자인은 겉멋 들어 보이고 싫더라고요. 세대가 달라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저하고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디자인에 들어가는 글자도 영어보다는 한글로 딱딱 쓰여 있는 게 좋아요.
인사동 ‘토토의 오래된 물건’에는 작가님이 만든 딱지도 있잖아요.
70년대 물건을 전시해 놓은 가게인데, 그 수집품들을 팔 수는 없잖아요. 딱지를 마치 수집품처럼 디자인해서 판매했던 거예요. 저는 딱지 디자인의 포맷이 참 예뻐요. 종이가 있고 동그라미가 있고 캐릭터가 있고 별도 있고 타이포도 있고.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섞여 있잖아요. 이 일은 정말 재미있게 한 일이었어요. 한 어린이 잡지에 3년간 제 딱지들이 별책부록으로 나갔던 적이 있었거든요. 매달 2~30장 정도를 샘플로 받았는데, 전 한 장도 못 뜯어 썼어요. 너무 아깝더라고요. 심지어 우리 아이들에게 주는 것도 아까워서 아주 가끔만 줬어요.(웃음)
작가님 하면 <팬더댄스>, <차이니즈 봉봉클럽>, <오무라이스 잼잼> 등 만화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학창시절 ‘피바다학생공작소’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고, 혼자서 만화도 열심히 그렸어요. 그러다가 한 십 년을 쉬었는데, 결혼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날 팝툰이라는 만화 잡지에 <차이니즈 봉봉클럽> 연재 제의가 들어왔어요. 아는 분이 거기 편집자였는데, 그분은 제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만화도 좋아하고 먹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거든요. 한마디로 저를 발견해 준 거죠. 제안을 받았을 땐 어떨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생각했던 거랑 비슷하게 나오더라고요. 처음엔 스크린톤을 붙인 흑백 만화였어요. 웹툰으로 들어오면서 칼라로 바뀐 거지요. 중간에 잡지사가 망하면서 저와 같은 작가들이 DAUM에 소개된 것인데요, 잡지와는 달리 반응이 바로바로 오니까 나름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하게 되었네요.
음식 그림이 정말 리얼해요. 배고플 때 보면 눈이 돌아갈 지경이죠. 그릴 때 어떤 비법이 있나요?
글쎄요.(웃음) 저도 사실은 보면서 맨날 놀라요. 완성되기 전까지는 어떻게 나올지 저도 모르거든요. 사실 햄버거, 샌드위치 같은 거는 빨간색, 초록색 칠하면 대충 나오거든요. 그런데 김치찌개 같은 것은 어려워요. 빨갛지만 투명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레이어가 있어요. 그런 건 해봐야 알고 하다 보면 노하우가 생기는 거죠.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그리기 때문에 더 리얼하게 느끼시는 걸 거예요. 거기에 ‘제가 사랑하는’ 포토샵의 기술. 100% 다 포토샵으로 작업한 거죠. 그림 그리고 폰트 쓰고 레이아웃도 잡고. 익숙한 프로그램이니까 참 좋아요.
<차이니즈 봉봉클럽> 때문에 베이징까지 가셨다고 들었어요.
책 때문에 간건 아니었고요, 거기에 있는 회사에 디자이너로 스카웃돼서 가게 된 것이에요. 처음엔 일 년 정도를 계획하고 갔는데 음식 먹다 보니 3년을 지냈네요. 그곳에서 맛본 중국 음식은 정말 대단했어요. 정말 여러 가지 경험을 했죠. 반면 우리나라 음식에 대해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겼어요. 중국인이 외국 음식을 다루는 방법을 보며 한국인이 외국 음식을 다루는 것과 비교해 보기도 했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요?
그때그때 달라요.(웃음) 아무래도 여기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생각 많이 나죠. 중국 짜장면에 한참 맛을 들여가지고 신 나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한국에 와선 한동안 짜장면을 못 먹었어요. 한국의 짜장면과는 너무 다르거든요. 그 맛에 익숙해지기까지 1년이 걸렸는데, 어느 순간 그 맛의 매력을 정확히 느낄 수 있겠더라고요.
피바다 때하고 지금 그리는 그림은 스타일이 완벽히 다르잖아요.
평소에 공포 만화나 공포 영화를 자주 봐요. 반면 굉장히 귀여운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누구나 한 가지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음식도 매운 것도 먹다가 달콤한 것도 먹는 것처럼요. 저 또한 한 가지만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재료를 바꾸기도 하고 그림체도 일부러 바꾸기도 해요. 거기에 더하면 계절감이 들어 갈 수도 있고 기분이 들어갈 때도 있는 거지요.
작업할 때 특별히 고집하는 부분이나 스타일이 있나요?
클라이언트가 원한다면 뭐든 다 해요. 디자인에 제 색깔은 거의 안내는 편이에요. 개인 작업이나 만화로 풀면 되니까요.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마음’이에요. 내 작업은 내가 하는 거니까 내 마음이 중요한 거고 남의 작업할 때는 남의 마음이 중요해요. 예를 들어 공연 포스터나 리플렛 작업을 한다고 했을 때 거기 출연하는 사람 하나하나가 본인 얼굴 예쁘게 나오길 바라잖아요. 그런데 제 작업에 관여할 발언권까지는 없고. 그런 분들의 얼굴도 최대한 예쁘게 해주고 단체 컷 같은 경우도 얼굴 대조해서 빠진 사람 없나 꼼꼼히 확인해요. 왜냐하면, 그런 경우에는 사람들이 자기 얼굴만 보거든요. 디자인이 훌륭하고 안 훌륭하고를 떠나서 자기 자신이 멋지게 나오는 것을 원해요. 아무리 작은 역할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집에 가서는 부인도 보여주고 친구도 보여주고 자랑해야 하니까요. 남는 건 결국 인쇄물이잖아요. 공연이든 전시든 책이든.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건 저에게 그런 의미에요.
디자이너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 디자인을 한다면 남의 디자인은 잘 안 봤으면 좋겠어요. 영향을 받고 영감을 받는 루트가 책이나 음악, 영화 등 다른 분야이면 좋겠다는 거예요. 사실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는다면 결국 비슷하게 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게 오히려 자기를 힘들게 하는 걸 수도 있어요. 그리고 여력이 된다면 디자인 말고 다른 일도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가위질을 하거나 만화를 그리는 것처럼요. 돈과 연결되거나 꼭 프로처럼 하지 않아도 돼요. 일종의 창의적인 취미인거죠. 하지만 취미도 오랜 세월 계속 파고 들다보면 또 다른 나의 작업이 될 수 있겠지요. 사실 디자인은 완전한 내 것이 아니에요. 그게 불가능하죠. 작업을 의뢰한 사람이 빛날 수 있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지 그 사람과 나를 하나에 담으려고 하면 힘들어요. 나는 오로지 내 작업에서 빛날 수 있으니까 뭔가 창의적인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작품과 삶 모든 측면에서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요?
저는 야망이 전혀 없어요.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처럼 계속 살고 싶어요. 사실 10년 전에도 같은 생각이었죠.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남의 밥그릇을 뺏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제 일의 장점인 것 같아요. 들어오는 대로 하면 되니까요. 지금까지 일 때문인지 인맥 때문인지 제가 제시하는 금액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일이 들어오고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혹시 올해 계획된 일이 있나요?
올해 계획 정도는 저도 있죠.(웃음) 자잘한 것은 다 빼고. 피바다 만화 중 좀비 만화 그린 것이 있는데 분량이 꽤 돼요. 피바다 특성상 굉장히 고어(gore)적인. 그걸 웹툰에 연재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가명이 됐든 실명이 됐든 연재를 하는 것이 올해 목표 중 하나에요. 그리고 지콜론북에서 제 디자인 작업들을 책으로 내자는 제안을 해왔어요.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이야기되고 있으니 그것도 준비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