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래피 스케치북 안그라픽스에서 올해 초『타이포그래피 스케치북』이란 책을 출간했다. 올 컬러인데다 365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양이다.
(세네카가 표지까지 포함해 약 4.2cm에 이른다!) 게다가 두꺼운 양장 제본에 묵직~한 무게감까지, 소유욕을 마구 불러 일으켜 나오자마자 바로 구매했다.
『타이포그래피 스케치북』은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츠(SVA)의 디자인 석사 과정 공동 학장이자 세계적인 디자인 평론가인 스티븐 헬러와 리타 탈라리코가 함께 쓴 책으로, 전 세계 타이포그래퍼와 그래픽 디자이너 118명의 스케치를 한데 모아 엮은 것이다.
매우 영광스럽게도 한국의 장동련 교수님(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도 포함되어 있다.
패션 디자인에 관한 디자이너 스케치북은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거장들의 스케치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기에
그래픽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흥미로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원래 런던의 출판사 템스 & 허드슨(Thames & Hudson)에서 출간한 책이다. 마침 회사에 원서를 소장한 분이 계셔서 번역본과 비교해 볼 기회가 생겼다. 표지를 빼곤 모든 내용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6만원이 넘는 원서보다 그 반값인 한국어판을 추천한다. 🙂
이 책은 책장 하나하나 그냥 넘기기 아까울 정도로 아이디어가 넘친다. 매일 조금씩 곱씹으며 읽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한 날 그냥 후루룩 훑어도 기분 전환이 되는, 그런 책이다.
118명의 디자이너 중 우리가 가장 잘 알 만한 에릭 슈피커만(Erik Spiekermann)의 페이지를 찾아 본다. 에릭 슈피커만. 타입이나 그래픽 디자인에 대해 공부를 하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익숙할테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는 이름이다.
에릭 슈피커만은 ‘다이어리 #1’에서 언급했던 유명한 책『타이포그래피 에세이』의 저자다. 독일의 활자 디자이너로, 2011년 ‘독일 디자인 어워드(German Design Award) ‘에서 올해의 인물 부문을 수상하며 여전히 그 파워를 입증하고 있는 분이다. 그의 대표적인 서체로는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메타(Meta)체를 꼽을 수 있다.
『타이포그래피 스케치북』 316페이지에 실린 에릭 슈피커만의 짧은 텍스트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스케치가 얼마나 거친지에 스스로 놀라곤 합니다. 그러나 이토록 간략한 스케치가 아이디어를 제대로 집어낸다는 사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은 이렇게 간단한 스케치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더 놀랍습니다.”
그의 페이지엔 메타체뿐 아니라 독일 국영 철도 도이체반(Deutsche Bahn)을 위한 DB타입, 독일 에센의 폴크방 미술관(Museum Folkwang)을 위한 디자인 스케치가 있다.
나는『타이포그래피 스케치북』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목차에 써 있던 이 글이 마음에 남는다.
All Letters, All the Time. 모든 글자는 언제나.
영국의 록밴드 더 트록스(The Trogs)가 부른 ‘Love is all around’란 노래가 있다. 이 곡은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빌리 맥(Billy Mack)이라는 가수에 의해 ‘Christmas is all around’로 바뀌어 불렸다. 『타이포그래피 스케치북』의 스티븐 헬러와 리타 탈라리코의 ‘All Letters, All the Time’이라는 메시지를 보면서 나는 ‘Letters are all around’를 떠올린다.
자. 이 책이 궁금해지지 않는가.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내 책장에 폼나게 꽂을 수 있는『타이포그래피 스케치북』을 두 손에 사 들고 돌아오자. 그리고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 안에 작은 스케치북 하나를 넣어두고, 내 아이디어에 날개를 달아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