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디자인숍 빈손 (Vinçon)
작년 가을, 가장 저렴한 바르셀로나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두고 꽃눈 날리는 봄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었나. 그동안 6권의 바르셀로나 관련 책을 읽고, 또 읽어서 이미 머릿속에 구엘공원이 어디인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어디인지, 람블라스 길이 어디인지, 가보지 않아도 지도를 휙휙 그릴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6권 모두 각각 특징이 있지만, 유혜영씨의 ‘스페인 디자인 여행’은 바르셀로나 여행을 앞둔 디자이너라면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은 사실 ‘스페인 디자인 여행’이라기 보다 ‘바르셀로나 디자인 여행’이라고 불리는 것이 정확하다. 바르셀로나를 조금만 공부하다 보면 그 스스로가 ‘스페인’이라 불리기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페인 디자인 여행’을 읽으면서 꼭 한번 가봐야지 하고 찜해둔 곳이 있었는데, 바로 ‘빈손(Vinçon)’이다. 세계적 명품들과 디자인 전문숍이 즐비한 세련된 그라시아 거리에 있고, 유명한 가우디 건축물 까사 밀라(Casa Milá)와 인접해 있어 일종의 디자인 성지나 다름없다.
건물 역시 까탈루냐 출신의 갑부 화가 라몬 까세스(Ramon Casas)의 집이었다고 하는데, 외관 공사 중이라 건물의 전체적인 모습을 감상하지 못한 점은 조금 아쉬웠다.
* 까탈루냐(Cataluña) 현재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까탈루냐 주의 주도이다. 포르투갈과 달리 독립하지 못하고 힘에 의해 스페인에 귀속되었다. 그래서인지 카탈루냐 지방의 사람들은 저항심이 강하고 스스로 ‘스페인’ 사람이기 보다는 ‘까탈루냐’ 사람이길 원한다고 한다
자, 그럼 빈손으로 들어가 볼까.
빈손의 입구에는 3개의 쇼윈도우가 있어 정기적으로 전시 내용이 바뀐다고 한다. 입구는 작지만 이건 고래의 작은 입일 뿐.
빈손의 1층은 갖가지 스테이셔너리, 디자인서적, 주방/욕실/애견/가든용품과 토이, 유아용품들까지, 없는 게 없는 디자인 잡화점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빈손의 1층은 갖가지 스테이셔너리, 디자인서적, 주방/욕실/애견/가든용품과 토이, 유아용품들까지, 없는 게 없는 디자인 잡화점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들어가자마자 반가운 상품을 보았는데, 팔로마(Palomar)라는 이탈리아 회사에서 만든 소프트 맵이다. 작년 로마(Rome)의 어느 작은 서점에서 기념품으로 하나 사와 집에 붙여 놓았었는데 이것이 단지 로마(Rome)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여러 수도가 시리즈로 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팬톤 팔레트 같은 알록달록 패키지에는 그 도시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표현되어 있다. (바르셀로나는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이 시리즈가 어디까지 나온 건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지금까지 꽤 많은 도시의 지도가 나왔다.
언젠간 서울의 소프트 맵 작업도 해주길 기대해본다. 만약 만든다면 패키지에 들어가는 이미지는 남산 혹은 경복궁의 실루엣이 되겠지만, 한글 자음 ‘ㅎ’꼴 하나만 들어가도 참 멋지지 않겠는가! (동시에 우리나라의 제로퍼제로(zeroperzero)가 디자인하는 시티레일웨이시스템(City Railway System)의 발전도 참으로 기쁘다!)
조금 더 들어가니 눈을 화사하게 하는 팬턴(PANTONE) 상품들이 잔뜩이다. 컵이나 노트 등의 제품은 국내에도 이미 들어와있지만, 의자는 꽤 신선했다. 홍대 앞에 PANTONE café가 생기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벽에는 컬러칩과 알록달록한 포스터가 붙어 있고, 팬톤 의자에 앉아 팬톤 머그잔에 담겨 나오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팬톤 연필로 팬톤 노트에 일기를 써내려 가는 하루. 어라. 이 아이디어 꽤 괜찮은 것 같은데 누구, 사갈 분 없나요? ^__^
주방용품 코너에 가니 모던한 저울이 눈에 들어 온다. 이것은 프랑스의 테라리온(terraillon) 사에서 만든 것으로 평소에는 윗부분을 뚜껑처럼 덮어두다가 무게를 잴 때 뒤집어 내용물을 안에 넣으면 되는 매우 실용적인 저울이다. 깔끔한 형태는 물론이거니와 아이보리와 블랙, 레드(ivory+black+red)의 색조화가 이 저울의 세련미를 더한다.
조셉조셉(joseph joseph)은 영국의 주방용품 브랜드로 한국에선 4가지 컬러의 인덱스 도마가 압도적으로 인기가 높지만, 사실 조셉조셉의 상품군은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 근데 마릴린 먼로와 앨비스 프레슬리 얼굴에 매번 칼질을 해야 하니 그들의 안티에게 더욱 유용한 도마가 아닌가 싶다.
첫 번째 빨간 매트에는 새우, 문어, 올리브 등 스페인 타파스에 많이 사용되는 재료들이 재치있게 그려져 있다. 이 재미있는 일러스트를 그린 작가는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MADE IN SPAIN’은 101개의 스페인 디자인 아이콘에 관한 책이다. 한국에서는 절대 못 사지 싶어 바로 구매했다. 캠퍼(Camper), 토스(Tous), 자라(Zara), 로에베(Loewe), 츄파춥스(Chupa Chups)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스페인 브랜드부터 아직은 낯선 브랜드와 문화상품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츄파춥스(Chupa Chups)가 미국이 아닌 스페인 상품이었다는 것은 여행 전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츄파춥스의 꽃무늬 로고가 그 유명한 까탈루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손을 거쳤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그 외 1층에서 구경한 것들.
‘빈손’에 있는 모든 것을 카메라에, 눈에 담아올 순 없었지만 성지를 다녀온 순례자들의 마음이 풍성해지듯 내 안에서 새로운 자극으로 꿈틀대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이제 겨우 1층이다. 이 곳은 거대한 디자인 박물관이나 진배없다. ‘빈손’의 매력에 너무 깊이 빠진 탓인지, 바로 옆에 있는 까사 밀라에 입장하려던 계획은 폐관 시간이 3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리에 물거품이 되었다. “에잇, 까사 밀라는 내일이나 모레 들가보지, 뭐~ 빈손에 다시 가자!” 우리는 또 다시 빈손으로 들어왔고, 2층 쇼룸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2층은 다음 일기에!
** 빈손(Vinç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vinc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