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큐자이너’라는 예명으로 소개되길 원했다. 본명을 못 밝힐 사정이 있다고 했다. 이름을 가린다는 게 이름‘만’ 가리는 건 아님이 이번 인터뷰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름뿐 아니라, 그 이름에 귀속된 것들도 인터뷰 안으로 들여오지 못했다. 그가 이름을 걸고 했던 여러 작업·발언·행위들이 이야기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제약 덕에 인터뷰는 얼마간 간명해진 듯하다. 이름으로서의 개인 말고, ‘디자이너’라는 행위체에 좀더 수굿이 귀 기울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큐자이너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디자인 실무자이면서 대학원생이다. UX 분야 연구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딱 이 정도 선에서 인터뷰어의 질문과 인터뷰이의 답변은 오갔다. 선을 넘지 않는 몹시 정제된 대화, 다이닝보다는 티타임이 적합할 만남. 큐자이너의 실생활도 어쩌면 이러하지 않을까 싶다.(물론, 저녁 식탁에 오로지 차 한 잔만 올라올 거란 뜻은 아니다.) 선과 선, 범위와 범위를 매일 지키고 오가며 자기 생활의 제어권을 착실히 행사하는 모습 말이다. 원형으로 된 일과표에 선분을 긋는 행위는 곧 시간 쪼개기다. 이렇게 시간을 조각 단위로 사는 데 익숙한 이들은, 한 조각의 시간에서 크고 둥근 시간을 가늠하는 데에도 능숙하다. 쪼개진 시간들이 후일 어떻게 아귀 맞춰질지를 전망할 줄 안다. 일종의 수학적 예지력이다. 큐자이너는 그런 부류의 사람일지 모른다. 이 인터뷰는 분명, 다가올 어느 때 어느 날의 한 조각이 돼 있을 게 분명하다. 덧붙임. 2022. 8. 24. 본래 이 인터뷰는 [interVIEW / afterVIEW] 코너로 기획된 것이었다. 『타이포그래피 서울』 초창기였던 2012년 12월 인터뷰이, ‘그래픽 디자이너 장순규’는 2020년 6월 당시 국내 기업에 근무 중이었다. 실명과 현재 소속을 비공개한 채 인터뷰에 참여해도 되겠느냐는 그의 제안(아마도 임직원들의 대외 활동에 관한 사칙을 우려한 조처였을 것이다)을 우리는 받아들였고, 그렇게 이 인터뷰는 이루어졌다. 2022년 8월 24일, 장순규는 회사를 그만두고 계명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전임교수로 근무하게 되었다는 근황을 알려왔다. 이에 본 인터뷰의 ‘큐자이너’가 그래픽 디자이너 장순규임을 뒤늦게나마 밝힌다.(그래픽 디자이너 장순규: 사이트 / 인스타그램)
‘큐자이너’라 적고, 여기에 수식어를 붙인다면 어떤 말을 고르시겠어요? 가령, 다큐멘터리 영화 〈헬베티카〉 중 마시모 비넬리(Massimo Vignelli)의 언표를 빌리면 “추함과 싸우는” 큐자이너, 같은 식으로요. 물론 스스로 고른 수식어에 대한 해설도 부탁드립니다.
‘재미없는 줄 알았던 세상에 재미를 부여하는’이라고 하고 싶네요. 디자이너로서 주변의 관심을 받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인기 끌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지는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말하는 ‘세상에 없던 것’, ‘뭔가 특별한 것’을 찾으려고 하죠. 이 과정 속에서 소소한 가치들을 놓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주변에는 유별난 의미가 없는, 보편적이라 표현되는 무언가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으레 재미없다고 치부되죠. 사실, 재미가 없다기보다 재미가 아직 부여되지 못했다는 쪽이 더 정확한 말 아닐까요?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보편성은 의외성으로 탈바꿈하기도 합니다. 저는 디자인이 그런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재미없는 줄 알았던 세상을 재미있게 만들기. 이것이 디자이너로서 제가 가진 본질적인 목표입니다.
UX를 오래 공부했고, 지금은 이 분야로 박사 학위 논문도 준비 중이잖아요. 발표되지 않은 논문의 주제를 묻는 건 실례이니, 대신 이렇게 질문해보겠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UX 분야를 깊이 연구함으로써 가 닿고 싶은 지향점이 무엇인가요?
세상에 정답은 없지만 해답은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디자인을 통해서 우리는 사용자 혹은 구매자라는 명칭을 가진 사람들에게 ‘경험’을 전달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간접적일 수도 직접적일 수도 있죠. 그래픽디자인과 UX디자인 모두, ‘경험을 어떻게 전달해서 세상을 보다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탄생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디자인의 ‘끝’은 대체 어디일까, 라는 걸 혼자 고민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가설을 세워봤어요. ‘이미지 안에 이야기를 담는 것과 문자로써 생각을 담는 것, 이 둘의 지향점은 같다’라고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자신의 생각과 크리에이티브를 통해 세상을 좀더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의 길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 길은 디자이너 전용로가 아니에요. 디자인이든 글쓰기든 또는 그 어떤 방법이든, 재미난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다면 직업적 타이틀의 구분은 무의미하죠. 제 UX 연구는 이런 맥락에 놓인 것입니다. 저는 세상을 재미있게 만드는 데 한 사람의 몫을 하고 싶고, 그 일환으로 UX를 다루고 있다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이크로 카피』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부제가 ‘UX 디자이너의 글쓰기’인데요. 저는 UX가 오로지 디자인의 영역인 줄로만 알았다가, 이 책을 계기로 시각이 바뀌었어요. 웹사이트의 카피, 즉 텍스트가 UX 품질에 기여한다는 사실이 저로서는 새로웠거든요. 이 인터뷰를 기회 삼아, 제가 UX에 대해 궁금했던 점 딱 하나만 질문해도 될까요? ‘잘된 UX 디자인’의 기준이랄까, 공식 같은 것이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UX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향을 지향합니다. 따라서, 남녀노소 혹은 문화와 환경을 뛰어넘어 모두가 이해하기 쉽고 설명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 잘된 UX의 기준이라고 봐요. 그래서 더더욱, ‘잘된 UX 디자인’이라는 걸 딱 하나만 꼽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구글·애플 같은 미국의 사례, 삼성·네이버·라인 등 국내 사례, 또 중국의 여러 서비스의 발전 사례를 보면, 글로벌 시대의 아이콘들처럼 느껴져요. 한국인들이 미국과 중국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외국에서 만든 거라 너무 불편하네’라고 느끼지 못했다면, 그런 게 올바른 UX 아닐까요?
현 시점(2020년 6월)에서 스스로 꼽는 대표작들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친구들과 함께 만든 ‘평양 지하철 노선도(Pyeongyang Metro Railway City Map)’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냥 ‘지하철 노선도’라면 평범하지만, 여기에 ‘평양’이라는 지역성이 더해지면 호기심을 일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는 해도, 지하철 노선도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보편적 요소라서, 무슨 지역명이 붙든 딱히 특별한 정서를 자아내긴 어렵습니다. 다만, 다른 어떤 곳도 아닌 ‘평양’이기에 재미있어지는 지점은 존재해요. 우리가 평양이라는 곳을 쉽게 경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죠.
파주 임진각에는 개성행 열차가 세워져 있습니다. 파주 시내엔 개성까지 몇 킬로미터 남았다는 도로 표지판도 있고요. 이렇게 교통편이 확실한데도, 우리가 ‘북’을 경험할 수 없다는 점이 곱씹을수록 흥미로웠습니다. 어딘가로 계속 나아가던 생각들의 정차역이 ‘평양 지하철’이었어요. 그러고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평양 지하철 노선도를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또 다른 생각의 문이 열렸습니다.
작업에 착수한 뒤에, 구글 어스(Google Earth)로 평양 시내를 들여다보는 게 재미있었어요. 직접 가볼 수 없는 장소를 가상으로 경험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더 재미난 사실은, 평양 지하철이 세계 8위 수준의 고퀄리티 지하철에 선정된 적이 있다는 거였어요. 간접 경험으로 얻은 정보에 이런저런 상상력을 결합해본 시간이었기에, ‘평양 지하철 노선도’는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한국만의 이야기를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 동일한 스타일의 작업들에 여러 차례 도전했었어요. 그중 하나가 ‘유교의 파르테논(Parthenon of Confucianism)’이라는 그래픽 작업입니다. 언젠가, 한국의 종묘(宗廟)는 아시아의 파르테논 신전 같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아마도 외국인이 쓴 것이었을 텐데요. 종묘의 웅장미를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그 감흥을 디자인에 담아보고 싶어서, 가로로 긴 형태의 작업으로 종묘를 표현했었어요.
그리고, 한동안 건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20세기를 표현하자면,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아닐까 해요. 우리나라만 해도 한국전쟁 이후의 사상 대립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건축사적으로 보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나타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건축 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해요. 이념에 따라 서로 다른 건축물 양식이 발전했다는 거죠.
건축에 대한 관심을 작업으로도 표현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2018년 제70주년 광복절 기념 포스터예요. 서울과 평양 각각의 건축물들을 이어서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을 연출했었습니다. ‘서울-도쿄: 데칼코마니 시티(Seoul-Tokyo: Décalcomanie City)’라는 작업도 언급하고 싶네요. 서울이랑 도쿄는 비슷한 발전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도시의 랜드마크들을 조합해서 데칼코마니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봤었어요.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꽤 많은 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하는 듯해서요.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 저는 직업인이면서 대학원생 신분까지 갖고 있습니다. 학업의 경우, 최근에는 코로나19 시국 때문에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된 상태예요. 학교에 직접 가지 않아도 되니까 확실히 육체 피로는 덜한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래도 제 몸이 버텨주고 있네요. 크게 아프거나 힘든 적은 없었습니다.
체력은 그렇다 쳐도, 스케쥴 관리에서는 아쉬움이 큽니다. 디자인 실무와 학업을 병행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제가 즐겁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그렇기는 한데, 물리적 시간의 총량은 정해져 있잖아요. 여행을 떠난다든지, 가만히 멍때리며 있는다든지 하는 여가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즐겁고 재미있어요. 스트레스가 한계점까지 차오른 적도 없고, 딱히 힘들다고 느끼지도 않습니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인터뷰 콘텐츠 중 「인터뷰/애프터뷰」라는 꼭지가 있습니다. 수 년 전 인터뷰했던 디자이너들을 다시 만나서 그간의 신변 변화(?)와 근황을 들어보는 시리즈예요. 5년쯤 시간이 지나 큐자이너 작가님을 ‘애프터뷰’ 할 수도 있습니다.(미리 요청을 드리는 겁니다. 하하.) 첫 질문과의 수미상관을 의도하며,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5년 후의 자신은 어떤 수식어로 소개되기를 바라시나요?
어릴 적, 하라 켄야의 책을 읽으면서 ‘디자인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결과물을 보다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디자이너가 점차 오퍼레이터의 성향을 띄는 직업으로 변화하는 느낌을 받는 요즘, 저는 이야기와 의미를 찾는 ‘지식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 나올 법한 크리에이터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