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이너 김택현(Taek Kim)에게 시카고는 특별한 도시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근무하다 시카고로 유학을 떠났고, 그 뒤로 줄곧 ‘based in Chicago’로서 현지에서 활동해 오고 있다. 지금은 개인 작업과 더불어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는 트리니티 국제 대학교(Trinity International University, TIU) 그래픽 디자인과의 조교수다. 학생들에게 김택현은 선생님이자 협업 작가다. 아래 인터뷰 내용에도 나오지만, 학생 한 명과의 협업 프로젝트로 국제 공모전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학생들을 학생 신분으로 놓아두지 않는 선생님이다. 실무 경험을 제공하고, 학교 밖 견학이나 현업인들과의 워크숍도 꾸준히 기획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 자신부터 선생님(조교수) 신분에 정주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가 몸담은 학교는, 어떤 의미에서 그의 또 다른 실무 현장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디자이너는 어떤 연유로 유학을 떠난 것이며, 어쩌다 유학지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인지, 또 어떻게 커리어를 쌓아 왔는지를 꼬치꼬치 묻고 싶었다.
2017년 디자인 스튜디오 ‘Thirst’ 인터뷰를 통해 뵀었지요. 당시 Thirst 소속 디자이너이기도 하셨고, 인터뷰 진행에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지난해 12월 31일을 기점으로 Thirst가 운영을 중단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아쉽기도 하면서, 또 어떤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될까 기대되기도 합니다. 디자이너 김택현의 최근 근황과 함께 Thirst 멤버들의 소식도 살짝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현재 저는 일리노이 주에 위치한 트리니티 국제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시카고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에요.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인터뷰 이후 Thirst 멤버들에게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모두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각자 자리에서 강의와 작업 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 경우는 대학교 강의를 시작한 뒤에도 Thirst와 협업과 교류를 지속했어요. 그러던 중 지난해 말 스튜디오 중단 소식을 듣고 꽤 많이 놀랐습니다. 하지만 기존 디자이너들이 새롭게 도약하려는 시도이고, 열정과 재능이 넘치는 친구들인 만큼 향후 행보가 많이 기대됩니다. Thirst의 디렉터였던 릭 발리센티(Rick Valicenti) 또한 새로운 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어요. 언제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 늘 도전 의식과 영감을 얻습니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크랜브룩 미술대학원(Cranbrook Academy of Art) 출신인 사토루 니헤이(Satoru Nihei)라는 디자이너가 Thirst의 레지던시 아티스트로 함께하기도 했었는데요, 이 일을 계기로 저도 개인적으로 사토루와 가까이하게 됐습니다. 함께 작업할 기회도 있었고요. 흥미로운 작업이 많은 디자이너인데, 한국에도 더 알려지면 좋을것 같습니다.
홍익대학교에서 학사를, 시카고 예술대학(School of Art Institute of Chicago, SAIC)에서 석사를 마치셨지요. 지금은 시카고를 기반으로 활동하시고요. 대학원 유학이 지금의 ‘시카고 기반’에 큰 영향을 미쳤던 건가요? 국내에서 해외로, 특히나 여러 지역들 중에서도 ‘시카고’로 활동무대를 정하신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학부 시절 담당 교수님에게서 시카고 예술대학 얘기를 자주 들었어요. 그때 품었던 시카고에 대한 어떤 환상이 저를 여기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시카고 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의 방대한 자료와 작품 들 속에서 어떤 ‘답’을 찾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시카고 예술대학은 미술관 산하의 학교예요. 그래서 소속 학생들은 미술관 이용에 제한이 없습니다. 대학원 시절 초반, 틈만 나면 미술관과 도서관에 앉아 수많은 예술, 디자인 서적들을 접했습니다. (첫아들 태어나면서 상황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요. 하하.) 시카고 거리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스타일의 건축들도 저를 새롭게 자극했습니다. 전통과 모던, 포스트 모던을 지나 동시대 예술을 아우르는 크고 작은 미술관들, 거리의 풍경들 모두가 저를 이곳에 묶어두었던 것 같네요.
지금의 ‘시카고 기반(based in Chicago)’이 가능했던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특별한 인연이라 표현하는 게 더 맞겠네요. 대학원 재학 중 감사하게도, 제가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두 디자이너와 만났습니다. 한 분은 Thirst 디렉터 릭 발리센티, 다른 한 분은 2012년 당시 시카고 현대 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 디자인 디렉터이자 시카고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제임스 고긴(James Goggin)입니다.
제가 재학 중이던 시절, 시카고 예술대학은 매년 그래픽 디자이너들을 초빙했습니다. 공개 강의를 열고, 다음날 학생들과 온종일 워크숍을 진행했죠. 외부 전문가와 학생들 간 연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유학의 첫 학기를 맞은 뒤 처음 만난 초빙 강사가 바로 릭 발리센티였어요.(현재 릭은 시카고 예술대학 정식 교과 과목도 강의하고 있습니다.)
오디토리움 스크린을 채운 강렬한 그래픽과 대조적으로, 넓은 스테이지 끝자락에 걸터앉아 청중과 유쾌하게 질문을 주고받던 릭. 아직도 그때의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합니다. 이후 몇몇 디자인 관련 행사에서 만났던 인연이 스튜디오로까지 이어졌죠. 그와 가까이 지내며 알게 되었는데, 릭은 강연장의 청중이든 외진 골목길의 홈리스들이든 늘 한결같이 대하더군요. 그런 인간적이고 따뜻한 모습에 감탄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제 아이들이 ‘미국 할아버지’로 부를 만큼, 가족과도 같은 멘토이자 저의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유학 생활 중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이 가능한 한 많은 디자인 행사에 참여하기였습니다. 그렇게 맺은 인연이 공개 토론장에서 만난 제임스 고긴입니다. 오래전부터 가장 좋아하던 디자이너 중 한 분이었죠. 처음 만났을 때 마치 연예인 앞에 선 것처럼 떨렸습니다. 그 후 연락을 주고받으며 많은 조언과 격려를 받았는데요. 제임스 고긴은 저의 학교 강의를 위한 추천도 기꺼이 해주었습니다.
릭 발리센티, 제임스 고긴과의 인연, 그리고 이 두 분의 지원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지금도 종종 생각해봅니다. 대학원 졸업 후 진즉에 한국으로 돌아갔을지 모르죠. 아니면, 시카고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갔을 수도 있고요. 답이 좀 길었네요. 이렇게 나열하고 나니까, 제가 왜 아직 시카고에 남아 있는지 저 스스로도 이제 좀 알 것 같습니다. 하하.
“대학원 과정 중 교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노력했습니다. 학생으로서뿐 아니라 ‘디자이너’로서요. 그래서 Visiting Artist 강의나 학생들 행사가 있을 때 포스터(위 이미지)를 많이 제작했죠. 그런 작업들이 교수님들 기억에 남아 있었나 봐요. 졸업 후에 교수님들과 함께 대학원 홍보 카탈로그(아래 이미지)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로서 바라보는 시카고는 어떤 공간인가요?
시카고는 디자이너가 활동하기에 정말 좋은 도시라고 생각해요. 이곳 디자이너들의 자부심도 높고요. 〈CHGO DSGN〉이라는 전시에 대해 지난 인터뷰 때 소개해 드린 바 있는데요. ‘뉴 바우하우스(New Bauhaus)’ 이후 시카고 기반의 모던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현재 모습을 망라한 전시였죠. 2014년에 열렸는데, 당시 막 대학원을 졸업하고 앞날을 모색하던 저에겐 큰 이정표와도 같았습니다.
‘The Society of Typographic Arts(STA)’라는 타이포그래피 협회도 언급하고 싶네요. 시카고만의 오랜 전통이 있는 협회거든요. 디자인 행사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매년 국제 공모전을 개최해 오고 있어요. 여러 한국 디자이너들의 작품도 아카이브 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저는 새로운 도시에 가면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립니다. 시카고를 처음 접한 게 2012년이었죠. 당시의 경험과 느낌, 이런저런 감정을 디자인 엽서로 제작해보고 싶었어요. 미국에 온 뒤 워밍업처럼 시작한 첫 작업이었습니다. 사각 프레임 안에서 기하학적 구성으로 시카고의 특징을 담아보려 했습니다. 도시와 연관된 특정 이미지를 사용하기보다, 엽서를 받는 분들 각자가 자신만의 이미지를 그려보실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었어요. ‘Chic’, ‘A’, ‘Go’로 나뉠 수 있는 도시 이름이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각 단어의 의미도 시카고의 느낌과 통한다고 생각했고요. 학교 내 오프셋 기계로 인쇄해 주위 분들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반응이 퍽 좋았습니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가는 작업이에요.”
[위] 시카고 ‘150 North Riverside’ 빌딩의 디스플레이 아트용 타입 디자인(2017)
[아래] 시카고의 아파트 단지 ‘Eight O Five’를 위한 레터링 아트워크 중 하나(2015)
“Thirst 소속으로 활동하며 여러 매체물과 이채로운 작업들을 접했는데요. 특히 저는 타이포그래피 분야를 전담했습니다. 아이덴티티, 포스터, 퍼블리케이션 등을 위한 전시용 서체 개발, 그 서체들을 기반으로 시스템을 세우고 전체 레이아웃에 적용하는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어요. ‘논리적 시스템’과 ‘직관적 자유로움’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작업들이었죠. 이 경험은 지금까지도 제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개인 작업뿐 아니라 클라이언트 작업에서도 ‘논리-직관’의 균형은 저의 중요한 디자인 접근법입니다.”
디자이너 김택현 홈페이지의 소개문 중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주목받지 못하거나 소외되는 이슈들을 소재로, 디자인 과정을 통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해 고민하며 몇몇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요. 시카고 예술대학원에서도 관련 논문을 발표하신 바 있지요.
뜬금없이 들리실 수 있겠지만, ‘소외’라는 개념에서 철학자 질 들뢰즈와 정신분석학자 펠릭스 가타리가 함께 쓴 『천의 고원(Mille Plateaux)』이란 책의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동질적이고 항상적인 체계로서의 다수적인 것과, 창조적이고 잠재적 생성이자 창조되는 생성으로 소수적인 것”, “다수적 생성은 없으며 다수성은 생성이 아니다. 모든 생성은 소수적이다.”라는 것인데요.
저자들이 말하는 ‘소수적인 것’과 김택현의 ‘소외되는 이슈들’은 얼마간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낍니다. 왜 ‘소외되는 이슈들’에 주목하시는지, 그 이슈들을 소재로 어떤 ‘디자인적 생성’을 추구하시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제 개인적 신념에서 막연히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어쩌다 보니 대학원 졸업 논문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저는 디자이너가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 왔는지, 또 사회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아 왔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어요. 지금도 학교에서 ‘디자인과 사회’라는 수업을 강의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생각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고요.
특히, 소통과 소외라는 이슈에 관심이 큽니다. 저는 이 두 가지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문맥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거나, 메시지를 공감할 수 없을 때, 즉 소통히 원활하지 않을 때 우리는 소외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 소통의 대상이 다수와 소수, 주류와 비주류의 관계가 될 때, 소외는 더 극대화되고요. 남들은 다 웃는데 혼자만 못 웃고, 남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불행한 것 같은 상황, 이런 게 소외라고 생각합니다. 시각적 소통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죠.
‘소외의 간극 줄이기가 원활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라는 명제에서 시작해, (그래픽 디자인이 시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전제 하에) 올바른 시각적 소통 방법들을 찾고자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시각 커뮤니케이터로서 어떤 소통의 대상을 택하는가, 어떤 메시지를 대변해야 하는가도 생각하게 되는데요. 자본과 힘 있는 주류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기도 하지만, 가려지고 숨겨진 이슈, 소수의 작은 목소리를 찾아 세상과 소통시키는 것도 시각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양방향 소통을 함께 고려함으로써 소외의 간극 줄이기는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에 세웠던 계획이, 사회적 소수의 목소리를 찾아 소통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문제에 봉착했죠. 누가 다수/주류이고 누가 소수/비주류인가? 이 질문에 먼저 답을 해야 했습니다. 많은 고민과 토론 끝에,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에선 다수/주류이고, 또 어떤 의미에선 소수/비주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배제/소외하거나, 누군가 또는 특정 상황에 의해 배제/소외당하곤 하죠.
방향이 이렇게 바뀌자, 제 시선의 초점도 바뀌었습니다. 사회 속에 존재하는 (‘소외자’가 아니라) ‘소외를 양산하는 쳇바퀴’를 제 작업을 통해 드러내기로 한 것입니다. 타인을 향한 우리의 태도가 누군가를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고, 나 또한 누군가의 태도로 인해 보이지 않게 되는 상황. 서로를 단절하고 서로에게 단절당하는 사회의 단면. 이를 이미지와 설치 작업으로 표현해 전시한 바 있습니다.
“학부 시절 아프리카 리비아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지역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벽화 작업에 참여한 것인데요. 그때의 경험을 작업으로 표현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 대한 사진과 그림, 글을 엮어 책으로 만든 거죠. 이를 계기로,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자선 콘서트를 준비하는 아카펠라 팀과 인연이 닿아 콘서트 홍보 포스터도 제작하게 됐고요. 여러 사정으로 지금은 활동을 중단한 상태이데, 당시 몇 년간 무척 기쁘고 보람된 작업이었습니다. 리비아뿐 아니라, 중국의 한 시골 마을의 보수 및 벽화 작업에도 참여했었는데요. 이런 경험들이 저로 하여금 디자이너의 역할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아요.”
“이민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언어와 문화, 재정적 이유 등으로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잖은 이민자들이 우울하고 위축되는 상황들 속에서 자신들만의 벽을 치고, 방어적 태도로 세상의 관심을 밀어내며 힘들게 살아가죠. 이런 분들께 위로와 격려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메시지의 내용을 고민하던 중, 제 가정을 돌아보고 저나 아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아내의 경우, 당시 언어가 통하는 친구나 가족도 없었고, 육아에 지쳐 있었어요. 하지만 힘든 내색을 내비치진 않았죠. 혼자서만 끙끙 앓았던 겁니다. 제 아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민자 ‘엄마’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었어요. 이런 힘듦이 이민자들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닐 겁니다. 모두가 어느 정도는 안고 살아가는 모습인 것 같아요. 그런 안쓰러움을 보고, 비슷한 상황의 모든 분들께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당신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라는.”
김택현에게 ‘소외’란 화두 같은 것인가 봐요.
많은 일반인들은 패션 잡지, TV광고, 대형 마트 브랜드 같은 큰 주류 기관의 디자인 작업물을 ‘디자인’으로 인식합니다. 저 또한 디자인을 잘 모르던 시절엔 그랬어요. 초년생 때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몰두했던 작업 대부분이 대기업, 보험사 등을 위한 것들이었죠.
그렇게 경험을 쌓아가던 중, ‘내 결과물에 대한 책임’이란 것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당시 제가 만들던 것들이란 주로 ‘쨍한 것’, ‘화려한 것’이었는데요. 어느 날, 그와 비슷한 이미지들을 패션 잡지에서 보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쨍하고 화려한’ 것들은 나 같은 월급쟁이들과는 별개의 세상이다, 라고요. 일종의 소외감이랄까요.
소외를 경험하고 나니, 작업관에도 변화가 오더군요. 내가 디자인 툴로 재현하는 세상이 누군가에겐 그저 공감할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 그저 예쁘고 화려한 디자인이 전부는 아니다,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됐어요. 나는 웃자고 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변호사가 비용을 받고 대변한 기업의 이슈가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도 있듯, 디자이너가 멋지고 화려하게 포장한 기업 이미지가 누군가에게는 다른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의미 있는 메시지, 진정한 소통의 방법,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시점이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계기이기도 했죠.
“사회엔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고정관념 탓에 좁은 시야를 못 벗어나곤 하죠. 포스터는 복잡히 얽힌 현대 도시 사회를 재현한 것입니다. ‘여’, ‘러’, ‘시’, ‘선’이라는 네 글자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늘리고 연결시킴으로써, 다양한 시점들이 동시에 뒤섞인 공간을 표현했습니다. 하나의 형태조차 보는 시선에 따라 또 다른 모양으로 인식되는 것이죠. 그 무엇도 하나의 시선만으로 평가될 수 없습니다. 총체적이고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때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작업은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열 번째 전시(회원전): 교차·交叉·Intersection〉에서 처음 선보였고, ‘제7회 중국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의 전시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도쿄 TDC(Type Directors Club)’ Excellent Work 부문, ‘시카고 STA(Society of Typographic Arts) 100 공모전’ Winner 등을 수상했고, ‘시카고 디자인 아카이브(Chicago Design Archive) 2015’ 수록작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Typeforce〉라는 타이포그래피 전시를 위한 설치 작업입니다. 우리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얼마나 많이 자신을 복제하며 살아가는지를 표현해봤습니다. 소파에서 앉았다 일어나면 자국이 남죠. 누군가의 기억 속엔 제 모습이 남게 됩니다. 제가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누군가에게 제 흔적을 남긴 셈이에요. 의식적 흔적 남기기는 어떨까요. 소셜미디어에 글 올리기, 자신을 사진으로 계속 기록하기 등등. 어딘가에 복제된 나는 변이하고 확장됩니다. 더 이상 어느 특정 부분 하나만으로 ‘나’를 정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거죠.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정의돼야 하는가, 이런 고민을 작업으로 풀어보았습니다. 위 ‘여러 시선’과도 어느 정도 맥락이 통합니다. 누군가에 대한, 사건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의 근거가 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들 중 하나가 ‘쓸데없다’였습니다. 어느 날 저도 무의식적으로 ‘쓸데없다’는 말을 내뱉었는데, 그 후 문득 이 말을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어떤 이슈, 혹은 누군가에 대해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하고, 낙인 찍고, 격리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찮은 것으로 쉽게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지는 않은가···?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 중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구절이 있죠. 제가 아주 좋아하는 표현들이에요. 이 시구들처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쓸데없는’ 것들이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거기 있을 만한, 혹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죠. 이런 메시지들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트리니티 국제 대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치고 계시지요. 개인 페이스북에 학생들의 작업들도 자주 소개하시던데요. 왠지 ‘좋은 선생님’일 것 같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타이포그래피 서울』 독자님들 중에도 언젠가 디자이너 김택현의 수업을 듣게 될 분이 계실지 모르죠. 디자인 교육론이나 커리큘럼 기획 주안점 등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 수업의 핵심 목표는 학생들에게 내재된 창의적 재능을 깨워주는 거예요.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창의적 작업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있다고 믿습니다. 제 두 아이들과 주위의 다른 아이들만 봐도, 매일 뭔가를 만들고 그리거든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모두가 자기 안의 창의적 재능을 발견하지는 못하죠. 남들과 비교하면서, 혹은 현실적 제약들에 부딪혀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아트스쿨’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부터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많았어요. 좋은 디자인 멘토 분들을 못 만났다면 이겨내기 힘들었을 거예요. 학생들이 자기 안의 재능을 잘 발굴하고 다듬을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 저에겐 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학생들 한 명 한 명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매 학기 학생들을 제 사무실에 초대해서 저의 작업이나 제가 아카이브해 두었던 작업들을 공유하기도 하고, 수업 외적으로 학생들의 작업 진행 상황이나 개인적 어려움들을 수시로 묻고 듣습니다. 학생들 대부분의 상황을 알고, 작업 과정도 꼼꼼히 챙기다 보니까, 학생들이 만드는 작업에 대한 애정도 많아졌어요.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 늘 즐겁고 자랑스럽답니다. 하하.
저는 1학년 디자인 기초 수업부터,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4학년들의 졸업작품 수업까지 맡고 있어요. 기초 수업들에선 다양한 창의적 표현 접근법들로 학생들의 말랑말랑한 가능성들을 독려합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론을 통한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규칙들을 강조하는 편이고요. 이와 동시에,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실험을 프로젝트로 제공해줍니다. 각자의 개성과 주체성이 투영될 수 있도록요. 논리와 직관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본인 이야기를 본인 목소리로 전달할 줄 아는 디자이너로 모든 학생들을 발전시키는 것이 제 수업의 목표입니다.
‘좋은 선생님’일 것 같다는 예상이 맞았네요.
학생들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요. 저는 강의하는 교수의 실무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제가 실무에서 경험하는 실패담과 성공담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게 좋은 사례가 돼줄 테니까요. 제 작업 과정을 공유할 때, 학생들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선경험 기회를 제공받게 됩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데리고 스튜디오에 방문하거나, 제가 실무를 통해 알게 된 디자이너들을 초빙해 강의와 워크숍 등을 마련하기도 해요.
학생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해줍니다. 각자가 자신만의 계단을 오르고 있다고요. 어떤 계단은 폭이 너무 넓어서, ‘계단을 오른다’는 인식조차 못 하게 만들죠. 힘들기만 하고 ‘목적지를 향해 올라가고 있다’는 성취감도 흐릿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강조합니다. 지금 분명히 다음 스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언젠가 도약할 시기가 온다, 라고요. 교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끝자락에 닿을 때까지, 학생들과 함께 ‘계단’을 걸어주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제 수업의 테스트나 프로젝트는 평가를 위한 수단이 아닌, 어디까지나 학생들의 성장을 위한 장치들이에요. 수업 이해도와 적용 능력을 점검하고, 부족하다면 몇 번의 기회들을 또 제공합니다. 각 단계의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기에, 학생 개개인의 상황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노력해요.
“몇몇 교내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학교이다 보니 신학적 이슈와 관련한 연구 프로젝트들이 많아요. 아시다시피 창조론 이슈는 늘 과학과 신학의 대립 양상을 띱니다. 각 분야 내에서도 여러 논쟁이 많죠. 제가 참여한 ‘The Creation Project – Identity’의 핵심은, 창조론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을 아우르는 것이었어요. 다양성을 포괄하되, ‘The Creation’이라는 주제의식을 담은 아이덴티티를 도출하고자 했습니다. 학구적 분위기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친근할 수 있는 정서를 동시에 담고 싶었어요.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레고 같은 블록 완구였습니다. 무언가를 쌓아 올리고 조립하는 형태가 ‘다양성 포괄하기’와 잘 매칭이 되더군요. 여섯 가지 다른 스타일의 전시용 폰트를 개발해 그래픽 요소로 섞어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앞 질문과 이어질 수 있겠습니다. TIU 학생들과 진행하신 ‘The Beauty of Buffering’이라는 프로젝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소개문 첫 문장이 “모든 세상이 (어둠 없이) 빛으로만 감싸인다면, 과연 아름다울까?(If the entire world were totally bathed in light, would it be beautiful?)”였죠. 퍽 강렬하게 다가오는 의문문이었습니다. 철학적 화두 같기도 했고요. ‘The Beauty of Buffering’ 프로젝트에 대한 해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강의 첫해, 학생 한 명이 저와 협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드와잇 데이비스(Dwight Davis)라는 학생이었죠. 아주 똑똑하고 열정 넘치는 친구였습니다. 어떤 작업을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제가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던 예전 작업을 진행해보기로 했죠.
학교 강의를 시작하기 얼마 전,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기다림의 가치, 소중함, 그런 것이었는데요. 우리가 뭔가를 계획했을 때 당장 이루어지지는 않잖아요. 기다림의 시간을 필요로 하죠.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고 믿는데요. 내가 원한다고 바로 다음 계절로 이동할 수는 없죠. 기다림의 시간이 답답하고 무의미하게 여겨진 때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꼭 필요한 시간들이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알을 충분한 시간 동안 품어야 생명이 태어날 수 있는 것처럼요. 저는 크리스천이라 매일 기도하는 시간이 많은데, 기도의 응답 또한 하루아침에 주어지지는 않더군요.
이런 생각을 할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데, 인터넷이 느려서였는지 제 컴퓨터의 오류였는지, 웹 서치를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브라우저 반응이 더뎠어요. 그리고 어떤 영상을 검색하는데 버퍼링이 걸리고 이미지들은 알아볼 수 없게 부서졌죠. 평소 같으면 에러라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컴퓨터를 재부팅 했겠지만, 그날따라 모니터 화면이 굉장히 멋지게 보이더라고요. 어떤 이미지를 검색하든 전부 픽셀로 분열되는 모습이 새로웠죠. 그 순간, 버퍼링이 불러온 멋진 이미지들이 제가 생각하던 기다림의 가치와 겹치면서 어떤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 버퍼링이 함축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해보자, 라는 것이 드와잇 학생과 저의 프로젝트였어요. 저희 둘은 버퍼링과 관련한 여러 이미지 오류 자료들을 모아 타이포그래피 작업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부수고 해체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색채 조합으로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표현해내려고 했습니다. 이런 작업 의도가 많은 공감을 얻었는지, 미국과 이탈리아 등의 공모전에서 수상을 했어요. 학교를 대외에 알리는 기회가 되었죠.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는 11월에 미국 대선이 있지요. 시카고는 미국 민주당의 ‘텃밭’인 것으로 압니다. 2016년 대선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득표율이 매우 낮았던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올 한해 시카고 지역사회 분위기는 꽤 분주할 것 같아요. 저의 괜한 참견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올해 대선은 김택현의 생활 환경이나 작업, 교육 활동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디자인 선생님으로서 2020년을 어떻게 기획하고 계신지요?
그러고 보니 벌써 대선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네요. 4년 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스튜디오에 싸늘한 바람이 불던 분위기가 기억납니다. 당시 실망한 동료들 중 어떤 디자이너는 하루 종일 벌건 얼굴로 화가 나 있기도 했어요. 생각보다 더 격앙된 모습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후로 일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또 어찌됐건 시간은 지났네요.
개인적으로 요 몇 년간은, 육아 핑계로 세상 돌아가는 일에 신경을 많이 못 쓰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올 한 해 동안은 개인 작업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할 생각이고, 개인전이나 디자인 리서치 활동도 계획 중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오랜만에 한국에 방문하고 싶기도 하고요.
아까 잠깐 언급했던 디자이너 사토루 니헤이와 협업하는 작업들이 있는데, 그분이 지금 일본에서 활동 중이거든요. 제가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서로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질 테니 새로운 기회를 같이 모색해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제 아내와도 합께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아내 역시 디자인을 공부했고 디자인 일을 한 경험이 있거든요. 생각은 많은데, 모두 예상일 뿐이고, 우선은 현재 강의하고 있는 학교에서 열심히 학생들을 지도하고, 제 작업에 더 집중하는 것을 올해 목표로 삼겠습니다.
“2014년 시카고 사회에는 최저임금법 문제, 흉악범 전용 수용소 ‘Tamms Correctional Center’ 폐쇄를 둘러싼 찬반 등 이슈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일리노이 주지사이자 재선에 나섰던 팻 퀸(Pat Quinn)이 해당 이슈들과 관련한 공약을 냈는데, 이에 공감하는 바가 있어 선거 캠페인에도 참여했습니다. 제가 제안한 캠페인 디자인 시안이 사용되지는 못했지만,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디자이너의 정치 참여’에 대해 생각해보고 경험할 수 있던 기회였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작업입니다. Hiebert Center라는 연구 기관의 리플릿을 만드는 일이에요. Hiebert Center는 이민자들의 여러 다양한 문화가 이 땅에서 어떻게 공존하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지를 연구하는 곳입니다. 기관 설립자인 Paul G. Hiebert의 이념과 연구 주제에 걸맞은 디자인을 고민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