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사색하는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허창봉(31)의 첫인상은 그랬다. 대화 도중 이따금 지그시 눈을 감는 모습이나 낮고 차분한 음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스튜디오의 서재에 꽂힌 『야생초 편지』, 『배고픔의 자서전』, 『호밀 밭의 파수꾼』, 『넬슨 만델라 자서전』 같은 인문학 서적들의 영향이 더 크다. “열다섯 권 완결인 『로마인 이야기』를 아직 8권까지밖에 못 읽었다”며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도 사색가 인상을 더했다.
허창봉은 2010년에 1인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주요 작업은 BI·CI를 비롯해 기업 카탈로그 및 지면광고 디자인, 상품 패키지 디자인, 각종 잡지와 아트북의 편집 디자인, 책 표지 디자인 등이다. 설립 초기에는 클라이언트잡을 찾아다니느라 동분서주했지만, 3년째인 지금은 반대로 클라이언트들이 허창봉을 먼저 찾는 경우도 늘었다.
스튜디오 운영과 더불어 그는 꾸준히 개인 포트폴리오를 쌓아왔다. 2010년에는 , 이듬해에는 <울고 웃는 글자 이야기展> 등 그룹전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모교인 한양대 시각디자인과 동문들과 함께 재학생들을 위한 디자인 실무 강연회도 정기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허창봉은 매일 책을 읽는다. 스튜디오의 책상 위에는 최근에 구입한 책들 수권이 탑처럼 쌓여 있다. 디자인 서적과 인문 교양서 들이다. 바쁜 일정 틈틈이 허창봉은 조금씩 책탑을 허물고는, 그 위에 또 새 책들을 올려놓는다.
“디자인 하나만 알아서는 힘들다”는 그의 말대로 1인 스튜디오를 꾸려나가려면 혼자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일당백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허창봉은 다독한다. 그의 다독은, 다작을 이루는 동력이다. 창업 준비부터 운영까지 전 과정을 혼자 감당해온 이 젊은 디자이너는 독서와 사색을 통해 완전한 1인으로 거듭나려 한다.
“스튜디오 설립 첫해, 손해 볼 각오해야···”
스물아홉 살에 1인 스튜디오를 차렸다. ‘1인’으로 나서기엔 이른 나이 아닌가?
‘이르다, 늦다’ 차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냥 그때 시작을 한 것일 뿐이다. 대학 졸업 즈음에 디자인회사를 다니기 시작해 1년간 일했다. 좋은 직장이었고, 배울 점도 많았다. 다만, 조금 답답했다. 그래서 혼자 일할 생각을 했다.
어떤 점이 답답했나?
디자인에는 여러 분야가 있다. 편집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광고 디자인, 제품 디자인 등등. 그런데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특정 디자인 분야에만 주력하게 된다. 회사의 성격과 사업 방침 때문이다. 그런 부분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경계 없이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디자이너로서의 욕심이랄까.
창업 과정이 궁금하다
창업자금도 없고, 주변에 창업 노하우를 알려줄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가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는 ‘소상공인 창업아카데미’를 수강했다. 20시간 교육과정 수료자에 한해서 최소 천만 원부터 최대 삼천만 원까지 창업자금이 지원되더라. 그때 받은 지원금으로 스튜디오를 세웠다. 현재 스튜디오 공간(서울 상암동 DMC첨단산업센터에 위치)은 서울디자인지원센터에 입주기업으로 등록해 얻은 것이다. 입주 만기일이 올 가을까지라 이사 갈 장소를 물색해야 한다.
창업은 누구나 다 하지 않나, 운영이 어렵지. 너무 직설적인가···.(웃음)
맞는 말이다. 나 역시 아직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 한 상황이다. 지금은 고정적으로 일감이 들어와 수입이 일정하지만, 창업 초기에는 힘들었다. ‘무턱대고 일을 벌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선 클라이언트잡이 중요할 것 같다. 어떻게 일거리를 찾았나?
질문에 이미 답이 있다. 찾아다니면서 찾는다. 스튜디오 설립 초기에는 일거리를 얻는다기보다 일단 허창봉이라는 디자이너를 알리는 데에 의미를 뒀다. 날마다 국내 기업들 홈페이지를 수시로 방문했다. 카탈로그나 브로셔 제작 공고를 발견하면 담당자에게 내 포트폴리오를 첨부한 이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드문드문 일감을 얻기는 했지만 운영은 힘들었다. 손해 볼 각오를 하고 호된 시기를 보냈다. 1년 정도가 지나니 이곳저곳에서 작업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하더라. 그러면서 상황이 조금씩 나아졌다.
클라이언트들과 작업 외적으로 만나기도 하나? 음, 예를 들면···.
무슨 질문인지 잘 안다. 그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건 중요하다. 식사를 함께한다거나 술자리에 동석한다든지···. 그런데 내가 그런 걸 잘 못 한다. 원체 말주변도 없고, 술을 그리 즐기는 편도 아니라서.
그들과의 관계 유지가 경쟁PT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 점점 질문이 이상해진다. 미안하다.
글쎄.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이거 하나다. 클라이언트가 디자인회사들을 상대로 경쟁PT를 진행할 정도면 대형 프로젝트일 것이다. 그런 큰 작업에 참여하려면 한국디자인진흥원에 디자인전문기업으로 등록되어 있어야 한다. 미등록 시 PT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입찰가 오천만 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력이 있는지가 PT 참여 조건으로 명시되는 경우도 있다. 자기 디자인만 고집하면 스튜디오 운영이 어려워지고, 외부 일에만 몰두하다가는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잃는다. 스스로 엄격하게 그 둘의 평행을 유지해야 한다. 진짜 힘든 일이기도 하다.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디자인 책만 읽을 수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건가? 독서량이 대단한 듯한데?
결코 왕성한 독서가는 아니다. 부끄럽게나마 한 달에 한 권씩은 꼭 읽는다. 디자인도 결국 우리 삶과 연결된 것 아닌가. 책 속에는 다양한 삶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사고의 폭을 넓히려 한다. 디자이너가 디자인 하나만 알아서는 분명 한계에 부딪힌다. 아니,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디자인 하나만 알아서는 안 된다.
서재를 둘러보니 디자인 서적 말고도 소설책과 교양서들이 많다.
인문학 서적들을 좋아한다. 특히 소설을 좋아한다. 작가들의 독특한 상상력을 접하면서, 디자이너로서 사물을 다르게 보는 시각을 키우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 4권이 그런 예다. 우물 속에 들어간 남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서술되는데, 무척 신선했다. 독서 마니아가 꼽는 최고의 디자인 서적은? 독서 마니아 아닙니다···. 『신 타이포그래피 혁명가 얀 치홀트』(김현미 저)를 좋아한다. 얀 치홀트가 직접 저술한 『타이포그라픽 디자인』 역시 명서라고 생각한다. 1902년에 태어난 사람이지만, 그가 디자이너로서 남긴 행적이나 책에 쓴 글들은 지금 봐도 새롭다.
얀 치홀트가 롤모델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 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순수 미술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시각디자인과에 진학한 건데, 정말 힘들었다. 디자인 용어들도 생소하고,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에서 군대를 다녀왔다. 여전히 복잡했다. 그때 학교에서 얀 치홀트를 배우게 되면서 타이포그래피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겠다’ 마음먹게 된 계기는 당시 그래픽 디자인 수업을 진행하셨던 조현(SO프로젝트 대표) 선생님 때문이다. 수업 자체가 정말 짜임새 있었다. 매 시간마다 다른 주제들을 배웠다. 한 학기가 그렇게 짧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디자인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분이랄까. 조현 선생님과 얀 치홀트의 영향으로 나는 지금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허창봉도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좋겠다.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가 생기면, 그만큼 책임감도 강해지고 더 노력하게 될 테니까. 음,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나는 학교 후배들에게 국내 디자인 관련 잡지와 온라인 매체를 많이 접하라고 권한다. 특히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의 인터뷰를 꼼꼼히 읽으라고 한다. 그분들의 생각, 어떻게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왔는지를 배우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무대로 활동할 거라면, 한국의 디자이너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 명함에는 ‘그래픽 디자이너’와 ‘타이포그래퍼’라는 타이틀 두 개가 적혀 있다. 올해부터는 타이포그래피 작업량을 점차 늘려나가려고 한다. 지금은 무리겠지만, 시간이 좀 흐른 뒤에 폰트를 개발하고 싶은 장기 계획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