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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디자이너 조중현

    “레퍼런스를 깔아두고 작업하지 않는다”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20년 06월 11일

    그래픽 디자이너 조중현

    그래픽 디자이너 조중현에게 에디터는 몇 가지 단어-수식어를 증정하려 했다. 회사 생활과 개인 작업을 병행하는 와중에도 인터뷰 제의를 선뜻 수락해준 데 대한 보답이었다.(별도의 인터뷰 비용을 지불하지 못하는 작은 매체 『타이포그래피 서울』. 그래서 늘 인터뷰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어느 훌륭한 종교 지도자의 어록을 빌리자면, 이른바 “말빚”이다.)
    
    선물하려던 낱말들이란 ‘청춘’, ‘멘토’, ‘무경계’였다. 조중현은 정중히 사양했다. ‘청춘’과 ‘멘토’라는 대표성은 ‘나다움-조중현다움’과 무관하다, 나는 무경계형 인간이 아니다, 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에디터는 증정품들을 도로 가져와야 했다. 반려된 낱말들을 편집실 책상에 올려두고, 이따금 쳐다보면서 인터뷰 원고를 정리했다.
    
    조중현은 “레퍼런스를 깔아두고 작업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개인 작업의 지속 동인을 “정말로 ‘개인’의 작업, 즉 ‘나’의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편집실 책상 위의 낱말들을 응시하면서 에디터는 생각한다. 하마터면 레퍼런스가 될 뻔한 말들이다, 라고. 인터뷰이의 색채를 사라지게 할 뻔한, 뻔한 인터뷰 기사로 흐르게 만들 뻔한, 그렇고 그런 낱말들이라고.

    워낙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셔서 그럴까요? 『타이포그래피 서울』이 ‘조중현 섭외의 후발주자’인 듯한 느낌도 듭니다. 하하.
    ‘멘토’ 혹은 ‘청춘’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몇몇 매체에 소개되신 바 있죠. 왠지 이러한 경험은, 디자이너로서 ‘요즘 젊은 대중의 고민과 욕망’을 가늠하는 데 크든 작든 도움이 됐을 것 같습니다. 즉, 디자이너 조중현의 작업 방식이나 경향성에 얼마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어쩌면 이런 직업의식 때문에라도 ‘멘토’를, 그리고 ‘청춘’을 기꺼이 자처하는 게 아닐까, 하고 넘겨짚어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인상 비평일 뿐입니다. 이에 대한 디자이너 조중현의 반론 또는 부연 설명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글쎄요, ‘청춘’이나 ‘멘토’를 자처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하하하. 제가 어떤 ‘대표성’을 가진 인물인 것처럼 오해를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 오해가 씨앗이 된 탓인지, 저도 모르는 제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난조의 말을 듣기도 해요. 변명하자면, 사실 ‘멘토’나 ‘청춘’은 제가 말하고 싶은 키워드는 아니었어요. 단지 인터뷰를 진행하는 매체의 결이나 콘셉트에 맞추다 보니 ‘저의 여러 부분 중 하나’가 가공된 것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드러내는 데 두려움이 없거든요. 어쩌면 그래서 ‘청춘’ 내지 ‘멘토’ 이미지들이 제 의도와는 무관하게 생긴 것도 같네요. 또, 80년대생 디자이너가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걸 신기하게 바라보는 분들도 계신 것 같고요.

    우리나라는 사회적 성공에 대한 정의나 방법이 확고하게 제시돼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정서 속에서라면, 이른바 ‘젊은 디자이너’의 삶이 낯설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일반적인 성공의 공식과는 충돌을 일으키는 속성들이 있을 테니까요. 이런 존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라는 사람들의 고민이 ‘디자이너 조중현’을 청춘 내지 멘토로 규정한 게 아닐까요?

    작업실 ‘저수지’ 아이덴티티 디자인
    ‘저수지’는 조중현, 권기영 등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동문들의 공동 작업실 이름이다.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홈커밍데이’ 포스터 디자인, 2013
    독립서점 ‘별책부록’ 아이덴티티 디자인, 2014

    디자이너 조중현을 수식하는 말로, 저라면 ‘무경계’를 꼽겠습니다. 작업들을 볼 때마다 늘 떠올린 단어이기도 합니다. 어떤 규범 내지 준칙으로서의 경계를 딱히 두지 않는다, 라는 의미에서의 ‘무경계’입니다.
    특히 글자 다루는 방식에서 무경계의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요. 한자 ‘水’에 등록상표기호 ‘®’을 마치 점획(點劃)처럼 배치한다거나(작업실 ‘저수지’ 아이덴티티 디자인), 프로젝터로 본인 신체에 비춘 레터링 이미지를 고스란히 포스터 타이틀로 활용한다거나(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홈커밍데이’ 포스터 디자인)―왠지 이 작업은 스테판 사그마이스터에 대한 오마주 같기도 했습니다, 한글 자음 ‘ㅊ’을 별표(*)와 유사한 형태로 변형한다든지(독립서점 ‘별책부록’ 아이덴티티 디자인), ···. 이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은 2018년 ‘타이포마니아 페스티벌’ 포스터입니다. 검은 바탕에 눈·코·입이 있고, 최상단엔 ‘EAST-WEST’라는 타이틀 글자가 눈썹처럼 배치돼 있죠. 자꾸만 눈이 가는, 그런 포스터입니다. 요컨대 이런 작업들은 글자/그래픽이라는 경계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스스로 “반골 기질이 있다”라고 말했던데요. 이른바 ‘반골 기질’의 영향으로 디자이너 조중현의 작업은 ‘무경계’의 성질을 지니는 것, 이라고 저 혼자 결론 내려봤습니다. 앞선 질문처럼, 이번에도 반론 또는 부연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무경계’라니, 저에게 멋진 수식어가 생긴 기분입니다. 저로서는 재미난 표현으로도 들리네요. 왜냐면 저 스스로는 경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쳐지고 싶지 않아서요. 국경선을 밟고 있으면 경계한 모든 면에 존재하게 되는 거죠.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느낌과는 조금 다릅니다. ‘밸런스 유지형 인간’에게 안정감과 무게감이 있다면, ‘단순 경계형 인간’에겐 언제든 한쪽으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에너지가 내재돼 있죠.

    언급하신 타이포마니아 페스티벌 포스터의 제목이 ‘EAST-WEST’예요. ‘동양 디자이너와 서양 디자이너의 만남’을 주제로 러시아 각지에 열리는 투어 전시 〈East-West-Post〉의 출품작이었습니다. 이 전시에는 한국의 이진우 디자이너, 채병록 디자이너를 비롯해 독일의 CYAN, 러시아의 Eric Belousov, 스위스의 JOHNSON/KINGSTON 등 해외 디자이너들이 참여했습니다.

    저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한 얼굴에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 차이를 1차원적 얼굴 형태와, 그 얼굴로 행하는 2차원적 감정 표현을 그래픽으로 풀어내려고 했어요. 얼굴에서 감정 표현을 하는 기관 이외에 다른 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별다른 그래픽을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 귀, 콧구멍, 모공, 털, 치아, 주근깨 등등은 일절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심플해 보이긴 하죠. 하지만 지면 전체에 눈·코·입을 표현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쓴 것 같아요.

    타이포마니아 페스티벌(러시아 모스크바 박물관 2018.5.26-6.3) 출품작 ‘East-West’

    이모티콘을 보면, 서양인은 입으로 감정 표현을 해요. 반면에 동양인은 눈으로 하는 것이 많죠. 예를 들어 미소 짓는 표정을 표현할 때 동양 문화권은 주로 ^^ 나 ^_^ 를 이용합니다. 서양 문화권의 경우 🙂 나 😀 를 이용하고요. 우는 모습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나라의 경우 ㅠㅠ 로, 서양 문화권의 경우는 :‘-( 로 표현하죠. 글래스고 대학(The University of Glasgow)의 레이첼 잭(Rachel Jack)이라는 교수가 이를 논문으로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감정을 표현할 때 동양은 상대방의 눈을 보고 서양은 입을 주로 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동서양이 서로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서로 개념을 교차시켜 서쪽을 향하는 눈동자 (W)와 동쪽을 향해 움직이는 (E)로 표현했죠. 서양인 입장에서 동양인의 전형처럼 여겨지는 째진 눈, 그리고 서양인의 높고 긴 코를 배치했어요. 개념은 모순적이지만 재미있는 지점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의도적으로 그래픽을 최소화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타입 자체가 기호이면서 그래픽 그 자체이다 보니, 다른 부수적인 걸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수지’, ‘홈커밍데이’, ‘별책부록’ 등도 같은 맥락입니다. 바꿔 말하면, 타입에 간단한 개념적 트릭을 써서 디자인(복잡하든, 간결하든)을 하는 게 제가 디자인하는 방법인 것도 같네요.

    네이버의 워크숍 프로그램 ‘UXDP’ 포스터 디자인, 2016
    일러스트레이터 안민주와 협업한 ‘뉴욕독 프로젝트(New York Dog Project)’의 포스터 시리즈 중 한 편,
    ‘개나 소나 다 한다(Every Tom, Dick, and Harry)’, 2018
    단편영화 〈병훈의 하루〉 포스터 디자인, 2018

    직장 생활과 개인 작업을 병행할 수 있는 체질(혹은 체력)도, 역시 천성적인 반골 기질(또는 무경계성) 덕분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데 좀더 생각해보면, 이런 이중생활(?)은 오피스 라이프와 프리랜서 커리어를 제외한 많은 것들을 일상의 경계 저- 멀리로 물리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듯합니다. 어쩌면, 디자이너 조중현은 대단히 엄격한 경계인일 것도 같아요. 스스로 절대 타협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나요?

    글쎄요. 제 스스로에게 전혀 엄격하지 않습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작업하고 싶을 때 작업하는 편리주의라서요. 게다가, 마감일 직전에 작업을 하기도 해요. 몇 가지 지키려고 하는 저만의 무언가가 있다면, ‘나 같은 디자인’을 하려고 합니다. ‘언제나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다’ 혹은 ‘세상에 없던 디자인을 하고 싶다’ 때문인데요. 그걸 지키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레퍼런스를 참고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퀄리티가 높은 작업을 하자’입니다.

    저는 유학을 다녀오지도 않았고, 국내 일류 대학에서 공부하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저를 성장하게 해주었던 소중한 몇몇 방법이 기억납니다. 전공 수업 중에, 학생 개개인을 디자인적 한계로 밀어붙이고 그걸 뚫고 성장하게 만들어주는 수업이 있었어요. 마치 영화 〈위플래시〉처럼요. ‘다 왔다’ 생각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조금만 더, 좀더······ 하면서 꾸역꾸역 나아가는 느낌이랄까요. 그때 제가 체득한 게 있습니다. 레퍼런스를 사용하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더군요. 한계에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는 방식은 언제나 ‘나’에게 있었습니다.

    그때 배운 게 또 하나 있어요. 세상(디자인)에 정답이 없듯 나도 정답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제 작업을 객관화하는 데 도움을 줬어요. ‘아직 더 남았구나’ 스스로 되뇌면서 한 번 더 제 자신을 몰아붙일 수 있는 힘도 주었고요. 그래서 이런 저만의 방법을 작업에 적용하려 노력합니다.

    언제나 내가 생각한 결과값에서 한 단계 더 생각하는 걸 하고 싶어요. 그것이 나만이 할 수 있는 디자인이고, 그것은 언제나 새로울 수 밖에 없죠. 나 자신(개인)으로 부터 나오는 작업이니까요. 제가 개인 작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말로 ‘개인’의 작업, 그러니까 ‘나’의 작업이었기 때문인 것 같네요.

    새로운 것은 언제나 힘을 주고, 다음 작업의 원동력을 만들어줍니다. 그렇기에 그래픽 작업에 레퍼런스를 깔아두고 시작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렇다고는 해도, 제 자신을 계속 경계합니다. 제 무의식 속 기억이 어느 틈엔가 레퍼런스로 작용할 수도 있고, 저도 모르게 트렌드에 휩쓸릴지도 모르니까요.

    2018년 제1회 〈대강포스터제〉 참여작 ‘불놀이야’
    ‘불놀이야’는 1980년 ‘제3회 TBC 젊은이의 가요제’ 금상 수상곡으로, 건국대학교 캠퍼스 밴드 옥슨80이 불렀다.

    현재 인터뷰 시점(2020년 6월)에서,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고 싶은 작품들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딱히 대표작이라 할 만한 게 있는지 모르겠네요. 다만, 근 몇 년 제일 재미있었던 작업이 있기는 합니다. 제1회 〈대강포스터제〉에 출품했던 ‘불놀이야’라는 포스터예요. 〈대강포스터제〉를 기획하게 되면서 저도 출품을 하게 됐는데요. 〈대강포스터제〉는 대학가요제의 노래들을 선정해 포스터 디자인을 하는 전시입니다. 당시 저는 80년대 캠퍼스 그룹사운드의 전성시대를 견인했던 밴드 중 한 팀, 건국대학교 출신 ‘옥슨80Oxen80’의 노래 ‘불놀이야’를 골랐습니다. 많은 분들이 개그맨으로 잘못(?) 알고 있는 홍서범이 바로 이 밴드의 보컬리스트였어요.

    아시다시피 건대 앞은 서울의 대표적인 불야성이잖아요. 저는 지역 특징을 매개해서 ‘불놀이’를 연인들의 불장난으로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건대 앞에 있는 모텔과 여관을 다 뒤져서 ‘건대 앞’과 ‘모텔’, ‘온천 기호’가 동시에 표현된 간판을 찾았죠.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6번 출구 골목에서 겨우 발견했어요. 이 완벽한(?) 간판 덕분에, ‘불’은 여관의 온천 기호로, ‘불장난’은 모텔이라는 공간으로, ‘건대 밴드 옥슨80’은 건대가 위치한 지역명인 ‘화양동’으로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간판은 어디 하나 손볼 필요 없이 완벽했고, 사진을 찍어서 그대로 포스터 안에 담았습니다. 누군가는 그래픽이라고 착각하더라고요. 제 그래픽 실력은 그정도로 좋지 않습니다. 하하. 간판의 완벽한 얼굴은 가져왔으니, 간판이 돋보이도록 타입으로 된 장식을 달았어요. 현란하고 싼티 나는 LED 전구가 색색들이 잔뜩 박혀 있는 것처럼요. 저에게 ‘불놀이야’ 포스터는, 한 차례 고생 끝에 시원하게 풀린 경험을 선사해준 고마운 작업입니다.

    건국대학교 공예학과 박은총 석사학위 청구전 포스터 디자인, 2017

    『It’s Nice That』에 실린 디자이너 조중현에 대한 에세이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동료들과의 협업이 언급된 대목이 기억에 남아요. “내 친구가 패션 디자이너라면, 자연스럽게 패키지 디자인이나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을 해줄 거다”라는 발언(인용문)도요. 그렇다면 거꾸로, 디자이너 조중현이 제안 받아보고 싶은 협업 프로젝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 발언의 근거는 ‘오너십을 믿고 양도한다’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친구라서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위험한 발상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 발상과 연관 지어서 계속 얘기해보자면, ‘커다란’ 디자인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커다란 작업—가령 비행기 외부라든지—부터, 디테일하게 커다란 작업—이를테면 사용자 경험의 세세한 플로우를 책임지는 것—까지 해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 친구들이 모두 잘나가야겠죠? 하하.

    아, 물론, 목적을 갖고 친구를 사귀는 건 결코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가정법일 따름입니다. 만약 누군가의 작업을 기준으로 친구를 고르게 된다면, 저는 천체물리학자나 과학자를 선택하겠어요. 나사NASA가 미션을 수행할 때마다 엠블럼을 만들고 브랜딩을 하는 것부터, 은하계 너머 미지의 영역을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것까지 모두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제1회 〈을지로, 라이트웨이〉 포스터 디자인, 2015
    〈을지로, 라이트웨이〉는 조명 상권이 형성된 을지로를 알리기 위해 서울 중구와 서울디자인재단이 매년 공동 개최하는 행사다.
    동명의 동화 원작인 뮤지컬 〈마당을 나온 암탉〉 포스터 디자인, 2015
    2019년 제2회 〈대강포스터제〉 기획단 기념사진

    〈대강포스터제〉 기획단장을 맡고 계시죠. 4월 초에 기획단원 중 한 분인 임이랑 디자이너와 인터뷰를 가졌었는데요. 올해 제3회 행사의 개최 여부는 아직 미정이라고 하더군요. 그 뒤로 두 달이 지났고 기획단장님을 인터뷰하게 됐으니 한번 문의하고 싶습니다. 올해 〈대강포스터제〉 진행 상황을 살짝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좋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강포스터제〉 1회 때 인연을 맺은 ㈜노리단(부천아트벙커B39를 운영하는 사회적기업)과 협업을 하게 됐거든요. 예정대로였다면 지난 5월 프랑스 예술 축제 ‘Printemps Coréen 2020’에 초청받아 낭트Nantes에서 전시를 진행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라는 변수가 생겼습니다. 올 2월 초부터 낭트 현지 및 파리의 주프랑스한국문화원과 꾸준히 상황을 논의했는데요. 결국, 행사를 축소하고 전시를 연말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전시 자체의 개최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고요.

    〈대강포스터제〉 1회 때는 기획단이 너무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2회부터는 조금 힘을 빼고 진행했습니다만, 여전히 아쉬운 게 많았어요. 비수익 전시라는 콘셉트로 인한 자금 조달, 참여 디자이너들의 당위성 확보, 전시 콘텐츠 자체의 한계 등등이 고민이었습니다.

    올해 진행하게 된다면, 전시 아카이브나 라이브 세미나 같은 온라인 행사라든지, 현 상황에 맞게 구성하고 싶고요. 포스터 작업뿐 아니라, 음악가와 디자이너가 협업하는 구조도 만들고 싶습니다. 재해석된 하나의 포스터, 편곡된 하나의 노래. ‘보기-듣기’가 동시에 가능한 공감각적 전시가 된다면 너무 좋겠네요. 음악저작물을 사용하는 형태가 될 테니까, 아무래도 저작권 관련 법규를 공부해둬야겠군요.

    제1회 〈뷀트포메트 국제 포스터 페스티벌〉 참여작 ‘광명동굴’, 2017
    제2회 〈뷀트포메트 국제 포스터 페스티벌〉 참여작 ‘Worldcup: Brazil vs. Mexico’, 2018

    나 자신이 그래픽 디자이너여서 참 좋다, 라고 여기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보는 사람’에서 ‘보게 만드는 사람’이 된 것이 참 좋습니다. 또 있습니다. 단순히 시각언어를 사용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시각 유희를 즐길 줄 아는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점! 요즘처럼 한국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주목받는 시대를,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굉장한 영광입니다. 멋진 그래픽 디자인이 계속 나올 테니 제 다음 세대는 어떻게 느낄까 정말 궁금해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엔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어떤 작업을 할지도 알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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