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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라피코스(GRAPHIKOS)’ 임신호

    ‘그라피코스’ 임신호에게는 꽤 중요한 세 키워드 #건축학도출신 #디자이너로_전직 #1989년생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21년 09월 27일

    ‘그라피코스(GRAPHIKOS)’ 임신호

    그래픽 디자이너로 전직한 지 1년 2개월쯤이 지난 어느 1989년생 프리랜서와의 짧은 대화. 인터뷰이의 이름은 임신호. 건축을 하다가 별안간 그래픽 디자인 영역으로 넘어왔다. 그라피코스(GRAPHIKOS)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회색지대(The Greyhound)라는 공동 작업실에서 일과를 보낸다. 작업 수주를 따내기 위해 “(잠재적 클라이언트들에게) 끊임없이 메일과 인스타그램 DM을 보내고”, 재능 거래 플랫폼에 서비스 페이지를 개설하여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다.(해당 페이지에 그는 ‘연락 가능 시간: 언제나 가능’이라고 기재해놓았다.) 지난해에는 국내 디자인 매거진(계간 『그래픽』 46호 ‘Studio Directory’ 이슈)에 박스 인터뷰 형식으로 짤막한 소개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항공기로 치면 디자이너 임신호의 현재 좌표는 활주로일 것이다. 랜딩 기어가 이제 막 가동을 시작했고, 노면을 갓 뗀 메인 휠이 힘껏 기체를 들어올리고 있다. 그렇게 곧 뜨기 전에, 아직 테일 휠이 지상의 바닥과 격렬히 마찰 중일 때, 임신호가 향하는 항로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그 항로가 여기 기록된다면, 임신호처럼 ‘디자이너로의 전직’을 감행한 또 다른 기체들의 이륙이 조금은 덜 막연해질 것 같아서다.

    건축학을 전공하셨지요? 건축설계사무실에서도 일했었고요. 건축학도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전직한 계기보다는 그 과정이 더 궁금합니다. 무슨 준비를 했는지, 디자인 독학은 어찌 했는지,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완성했는지, ···. 직업을 바꿔야겠다고 맘먹게 되는 특이점이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겠죠. 관건은 전직의 계기가 아니라 성공 여부잖아요. 오른손잡이/왼손잡이에서 왼손잡이/오른손잡이로의 전환 같은 거랄까, 상당한 수련(!)이 수반되어야만 전직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임신호의 경우는 어땠나요?

    돌이켜보면 건축학과에서 말하는 ‘탈 건축’은 꽤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지라 전직이 그나마 수월(?)했던 것 같아요. 그래픽과 건축, 두 분야의 결과물을 도출하는 방법론이 상당히 닮아 있기 때문에 조금 이득 본 부분도 있고요.

    전직을 위해 어떤 학문적인 이론과 지식 위주로 공부했다기보다는 건축과 그래픽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발견하고 조율해가는 과정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각 분야의 장점만을 취하고 단점들은 버리는 과정들이 꽤나 흥미로웠지만, 모든 것을 독학으로 하다 보니 아주 조금은 외로웠습니다.

    좀 전의 얘기와 이어지는 질문이 되겠네요. 2020년 7월에 그래픽 디자이너로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신 걸로 압니다. 그때 GRAPHIKOS 스튜디오도 오픈했고요. 어떤 직종이든 프리랜서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절대 조건은··· 역시 ‘클라이언트’일 텐데요.(웃음) 프로젝트 수주는 어떤 방식으로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어쩌면, 예비 독립 디자이너들에게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우 동감하는 바입니다···. 저는 프리랜서를 시작하고 나서 홍보를 통해 수주를 따기보다, 개인 작업 위주로 활동을 했던 것 같아요. 아주 큰, 그리고 건방진 오산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기부터 수주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홍보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이제야 저를 알리기 위한 홍보를 매우 공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메일과 인스타그램 DM을 보내고···. 그러다 보니 조금씩 무슨 일들이 생기더라고요. 수주 따기는 무조건, 공격적인 영업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GRAPHIKOS가 표방하는 슬로건이 ‘하이퍼 그래픽 디자인’입니다. 그래픽 디자인을 초월(hyper)한다? 기존의 그래픽 디자인 문법을 벗어난다? ‘하이퍼 그래픽 디자인’이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하고자 하는 작업을 ‘그래픽을 매개로 하는 걸 초월하기’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로서의 방향성이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지금은 다소 막연한 구상이지만 조금씩 구체화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담아 ‘하이퍼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고요. 개인적으로 hyper라는 접두사의 어감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이제부터는 작업 이야기를 해볼게요. GRAPHIKOS의 포트폴리오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2019년 작업인 ‘이력서, 자기소개서의 반란’입니다. “글자수와 문법을 신경쓰고 소설을 쓰듯이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진정 자기소개서일까? 단순히 글뿐인 것에서 무엇을 가려낸다는 걸까?”라는 이 작업의 문제의식에 공감했습니다. “지면을 평면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지면 자체가 공간이 될 수 있고 입체적으로 바라 볼 수도 있다. 다소 딱딱한 내용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라는 작업 노트도 저한텐 설득력 있게 읽히더라고요.
    그리고,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만, 2019년이면 한창 그래픽 디자이너로의 전직을 준비하고 있었을 시기였을 듯한데요.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도 같고요. 어쩌면 이런 배경에서 ‘이력서, 자기소개서의 반란’ 작업이 시작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웃음) 작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취업 준비를 한 번이라도 해보신 분들은 ‘이력서, 자기소개서의 반란’이라는 작업의 배경에 무조건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제 경우에는 이력서와 자소서 작성이 마치 소설 창작처럼 느껴졌거든요. 억지로 쓰다 보니 싫증이 났습니다. 그렇다고 안 쓸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 싫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이력서, 자기소개서의 반란’을 구상해본 것이었어요.

    작업 소개를 해보자면, 우선은 전체적으로 ‘읽히지 않는’ 이력서/자소서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쓴 텍스트를 왜곡한 것도 모자라, 자잘한 건물 형태로 분해하여 부피를 추가하고 확대시켰어요. 각 질문 문항의 제목 텍스트들은 사람 얼굴 형상으로 표현했는데요. 이력서/자소서를 작성하는 저 자신의 미묘한(?) 표정을 묘사한 것입니다.(웃음)

    결과적으로 몹시 기괴한 형식미를 갖춘 이력서/자소서가 완성되었어요. 물론 실제 취업 과정에서 제출할 만한 문서는 못 되겠으나, 그 이력서/자소서 안에 담긴 ‘나’는 적어도 ‘소설 속의 나 자신’은 아니었어요.

    제 선입견일지 모르겠는데요, 건축을 전공한 디자이너니까 왠지 디자인 작업에 ‘건축적 세계관’을 투영할 것 같습니다. 일례로 ‘Text Bulk’(2020) 작업처럼요. “텍스트에도 체적(體積, 넓이와 높이를 가진 물건이 어떤 공간에서 차지하는 크기)은 존재한다”라는 작업 노트가 눈에 띄었거든요. 그래서 질문 드려보고 싶습니다. 건축을 전공한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디자인 작업에 건축적 요소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인가요? 답이 YES라면, 그 방식과 사례를 조금만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예스입니다. 차별화를 위한 제 강박관념이기도 해요.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주로 개념의 시각화 단계에서 ‘건축적 기법’을 활용합니다. 제 경우는 ‘표현하고자 하는 개념을 어떤 기법으로 시각화할 것인가’를 가장 길게 고민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제 자신에게 친근하고 익숙한 건축적 표현 요소를 자주 끌어다 사용하는 편입니다.

    최근에 작업했던 〈TYPOSPACE〉라는 전시의 도록이 그런 예입니다. 이 전시는 일본의 건축가 소모임 ‘가자나와시 건축공간계획연구회(金沢市 建築空間計劃硏究會)’가 ‘타이포, 공간이 되다(タイポ, 空間になる)’라는 콘셉트로 올해 5월 주최한 행사예요. 저는 아이소메트릭 뷰(isometric view) 목업 작업 및 건축 작도 기법들, 3D 프로그램을 사용한 건물 렌더링 이미지, 3차원 공간의 x·y·z 축 같은 건축적 요소들을 활용하여 도록의 디자인 골조를 설계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종종 프로젝트 ‘제안’을 하시던데요. ‘이런 거 한 번 해봅시다, 관심 있는 분들 연락 주세요’ 하고 운을 띄우면, 참여자들이 응답을 하고 실제 프로젝트 결과물이 나오는 게 저로서는 엄청 신선하더라고요. 최근의 ‘천하제일명함대전’(2021) 프로젝트도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 걸로 압니다. 혹시, 현재 준비 중인 또 다른 ‘제안’이 있다면 공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인터뷰 기사를 읽는 독자 여러분도 동참해보시면 좋겠어서요.

    1년째 기획 중이기만 한 ‘salon1989’라는 제안 프로젝트가 있는데요. 1989년생들을 위한 도록이자 오프라인 살롱 프로젝트입니다. 모두가 힘들고 외로운 시기를 겪고 있는 지금, 제 동년배들에게 반추할 거리를 주고 싶었어요. 동년배한테는 떡 하나 더 준다는 말도 있다고 하는데, 사회에서 동갑내기를 만나면 그렇게 반갑더라고요.

    이른바 ‘두 보 전진을 위한 한 보 후퇴’의 형식으로, 같은 시대를 경험하며 살아온 이들에게 잠시 멈춰서 돌아온 길을 반추해보면 어떨까, 라는 취지에서 시작했어요. 언젠가는 꼭 완성되어 세상에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89년생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웃음)

    『타이포그래피 서울』도 자체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인터뷰 애프터뷰(interVIEW afterVIEW)」라는 인터뷰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는 건데요. 누군가와 첫 인터뷰 후 수 년이 경과한 시점에 두 번째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5년 뒤 다시 한 번 ‘그래픽 디자이너 임신호 인터뷰’를 진행해보고 싶은데요. 2026년의 임신호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기를 바라세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자유롭게 살고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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