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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디자이너 이지원

    “디자이너들이 함께 모여서 집단을 형성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3년 11월 11일

    그래픽 디자이너 이지원

    하기 싫은 일은 도무지 할 것 같지 않은 사람, 하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엔 오랫동안 꾸준히 열정을 쏟을 줄 아는 사람, 그의 첫인상은 이랬다. 누구나 그렇지 않냐고 반문하긴 쉽지만 실제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번역, 수업, 글꼴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글쓰기, 팟 캐스트 방송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이지원 디자이너를 만났다.

    번역, 수업, 작업까지 개인생활이 거의 없을 정도로 1인 다역을 하시는데 어디에서 그런 열정이 나오세요?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저희 교수님들이 다들 그러세요.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는 그런 의미에서 여러 가지로 욕심을 많아요(웃음). 우선 예전부터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한 선배 교수님들이 계셨고 그 뜻을 이어받아서 퇴색되지 않게 하려는 뜻을 저희도 갖고 있지요. 매 학기마다 어떤 커리큘럼을 짤 것인지, 어떤 강사 선생님을 초빙할 것인지, 어떤 신입생들을 뽑고 대학원을 운영할 것인지, 그리고 요즘처럼 조형전 시기가 오면 이것들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교수들이 모여 회의도 많이 하고요. 수업도 많이 하는 편인데 학생들을 자주 봐야 소통이 잘 되고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아요. 하지만 그런 걸 모두 떠나서 전 교육 쪽으로는 초보이기 때문에 하드트레이닝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도 있어요.

    교육자로서 디자이너로서 지금 현재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도 궁금하네요.

    요즘엔 디자이너들이 같이 모여서 집단을 형성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조형전 컨퍼런스도 그런 생각 중의 일부이고요. 팟 캐스트 방송 <디자인 읽기 디자인 말하기>도 하고 있어요. 그런 걸 하는 이유가 초창기 우리나라의 그래픽 디자인 사회에선 우선 숫자가 너무 적었어요. 90년대 이후 수적으로는 폭발적으로 많아졌는데 그에 비하면 디자이너들은 뭘 한다가 별로 없어요. 블로깅을 하고 댓글을 달면서 놀거나 싸우거나 이런 일도 없고요. 대의적인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커뮤니티 형성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디자인 사회가 몇 명 유명 디자이너의 목소리가 전부인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건 그분들 잘못도 아니죠(웃음).

    팟 캐스트 방송 <디자인 읽기 디자인 말하기>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주세요.

    디자인 고민상담소라는 코너가 있는데 고등학생부터 학부 전공생까지 엄청난 질문들이 올라와요. 저희가 여섯 명인데 그냥 막 하거든요. 들어보세요. 정말 굉장한 이야기들이 나와요(웃음). 누군가는 이야기하다가 감정이 북받쳐서 막 울기도 해요. 처음엔 디자인 읽기라는 게시판을 먼저 시작했는데 글만 쓰지 말고 말도 해볼까 했는데 말을 더 잘 하는 거예요. 서로 말하려고 하고. 광고나 후원은 일체 받지 않아요. 다들 사비를 털어서 하는 거라 음질은 별로 좋지 않아요(웃음). 많이 웃어서 좋아요.

    가르치는 입장에선 딜레마도 있을 것 같아요. 문화예술로서의 디자인을 학교에서 가르치더라도 학생들은 졸업 후 당장 생존을 위해 취업이라는 고민을 할 것 같거든요.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가치관이나 철학을 실현하는 방법은 많이 있어요. 기업에서 일을 한다고 전혀 실현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스튜디오를 차린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지금까지 디자인 역사 속에서 이름이 남은 분들의 행적을 보면 그 밸런스를 잘 유지한 사람들이 많아요. 클라이언트와 작업을 하더라도 그 속에서 나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경우마다 달라서 어떻게 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고요. 산업에서의 디자인은 클라이언트의 비전을 내가 실현해준다고 해도 1부터 100까지 짜여 있는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98정도가 디자이너가 할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돈을 받는 거죠. 하지만 대전제에서 어긋나면 안 되겠죠. 이 클라이언트가 더러운 일을 하는 걸 알고 있어, 이러면 일을 하지 못하겠죠.

    volume
    그래픽 디자인 들여다보기 3

    그는 밀실과 광장을 자유롭게 오갈 줄 아는 사람이다. 홀로 묵묵히 자신의 작업을 해나가면서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책을 번역해 독자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팟 캐스트를 통해 청취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공동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열정을 쏟는다. 유니크한 유머감각을 가진 굉장한 이야기꾼이지만 마음의 밑바닥에는 어떤 명분에도 구속되기 싫어하는 모습도 지니고 있다.

    <디자이너의 곱지 않은 시선>이라는 책을 쓰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있지요. 책을 쓰려고 쓴 글은 아니에요. 글을 먼저 쓰고 아, 책으로 내도 되겠다, 라는 생각이 나중에 들어서 낸 거예요. 제가 디자인에 대한 제 생각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쓴 거니까요. 생각만 하고 있으면 명확한 생각이 아니고 말로 할 수 있어야 앞뒤가 맞는 논리적인 생각이 되고 그것을 글로 쓸 수 있어야 정말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느끼면서 글로 쓰게 된 거죠. 처음엔 말로 좀 하다가 앞뒤가 안 맞고 했던 말을 또 반복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글을 쓰게 된 건데 소재도 중구난방이고 개인적이고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5년 넘는 기간 동안 쓴 글이라 구성이 잘 짜인 것도 아니에요. 시대 순으로 정리가 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디자인이라는 활동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한 사람의 사고의 과정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한테도 참 매력적인 분야인 것 같아요.

    정말 매력적인 분야죠. 특히 그래픽디자인은 신생분야라서 할 게 참 많아요. 역사도 짧고요. 이론이라고 정립되어서 모두가 공통적으로 알아야 하는 담론이 아직 없어요. 공유되는 담론이 없으니 디자이너들도 다들 다른 목소리를 내요. 여기에서 어떤 것을 막 연구하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 그거 아니야, 하면 할 말이 없어요(웃음). 그 중에서도 담론이 형성된 분야가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요. 디자인이 뭐냐고 물어도 디자이너마다 대답이 다 다를 거예요.

    디자이너 이지원이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세 가지가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눠봤어요. 첫 번째로 인간의 본연의 행위로서의 디자인이 있지요. 미래를 생각하고 계획하는 인간 종의 특질이 발현되는 것이 디자인이에요.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는 거죠. 두 번째는 산업에서의 디자인인데 광고, 로고타입, 패키지 같은 것들이죠. 직업 활동으로서의 디자인이고 전문가로서 디자이너가 나오죠. 마지막으로 예술의 한 부류로서의 디자인이 있어요. 세 번째는 주로 학교에서 많이 생각해요. 커뮤니케이션, 문화, 환경 등이 여기에 다 속하죠. 그런데 보통은 이 세 가지를 뒤섞어 이야기하죠. 하지만 개념을 좀 나눠서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동시에 세 가지 방식의 생각을 공유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봐요.

    제프리 키디의 책을 번역하셨는데 유학 시절 수업을 직접 들었던 선생님이시죠.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그 분 성격이 진짜 안 좋으세요(웃음). 사람을 비꼬아서 속을 뒤집는 신공이 굉장하시거든요(웃음). 하지만 현재 저의 태도나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미치셨어요. 덕분에 좋고 나쁜 건 정황에 따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수용적인 관점을 폭넓게 갖게 되었죠. 한번은 캠퍼스 안에서 우연히 마주쳤어요. 마침 그때 제가 옷 입는 스타일에 변화를 주던 시기였거든요. 교수님께서 뒤통수에 대고 너 좀 달라 보인다. 라고 지나가는 말로 던지셨어요. 디자이너는 스타일을 다루는 사람이다, 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던 게 생각나서 제가 순간적으로 대답했죠. “콘텐츠보다 스타일이죠.” 그랬더니 갑자기 그래? 설명해봐, 이러시는 거예요. 물론 설명은 잘 못했죠(웃음). 평소엔 인간관계에 관심도 없는데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열정적으로 논쟁을 하려고 하세요(웃음).

    Corea Campanella Inc. Logo
    poster matin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디자이너가 된 것이 아니라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디자인을 만나왔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 또한 오랫동안 익혀왔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고민하는 과정 속에 있다. 계속한 것이 전부라고 말하는 그를 보면 꾸준히 해온 힘이야말로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그에게 속한, 확실한 그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안에 팡파레처럼 터지는 웃음과 깨알 같은 즐거움이 빼곡하게 차 있는 것은 물론이다. 

    서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오히려 서체에 관심을 갖지 않는 디자이너는 한 명도 없다고 말하고 싶은데요(웃음). 정말이에요. 모두 너무너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요. 글꼴 디자이너도 두 부류가 있는데 한쪽은 타입 디자이너에요. 그 사람들은 그래픽 디자인 안 하죠. 다른 쪽은 그래픽 디자이너인데 가끔 글꼴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프리 키디도 그렇죠. 저도 글꼴 하나 만들었다고 어디이선 글꼴 디자이너라고 해주시기도 하는데 전 그래픽 디자이너에요. 하다보면 이런 거죠. 타이거 우즈가 골프를 하다보니까 필드를 디자인하고 싶은 거죠. 디자이너도 글꼴을 많이 다루고 쓰다보면 이런 글꼴 있으면 좋겠다, 글자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면 그걸 만드는 거죠.

    바른지원체는 어떤 가능성을 보시고 만든 건가요?

    명조체, 고딕체 말고 본문용 서체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지원체 중에서 바른 지원체는 본문용 서체이고요 패밀리가 있는데 가늘고 바른지원체, 바른지원체 보통, 본문용 바른지원체, 두껍고 바른지원체가 있어요. 물론 아직 만들진 않았죠(웃음). 지원체라고 한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에요. 서양에선 브랜드를 만들 때 자기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잖아요. 그 전통을 따르면서 동시에 내 이름을 붙이면 애정을 갖고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고요. 과정도 재미있었어요. 힘들다고 여겼으면 못했을 거예요. 클라이언트 잡이 아니라 개인 작업이었기 때문에 재미가 중요하거든요. 어떤 의무도 지고 싶지 않았기에 펀드도 받지 않았어요. 정말 개인적으로 순수하게 즐기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서체 만드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장인도 이런 장인이 없다 싶어요.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이 잘 안 되는 작업인데요.

    서체가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도 공예적 성격이 가장 강하죠.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작은 크기 때문에 그래요. 큰 크기에서는 형태가 보이기 때문에 완벽을 추구하는 게 의미가 없는데 작은 크기에서는 조금만 어긋나도 안 되거든요. 그리고 반복이 되니까 하나가 너무 이상하면 눈에 금방 띄어서 단점이 되죠. 그리고 서체의 이차저작권이라는 문제가 있는데 서체 자체가 책이나 포스터나 다른 용도에 쓰이잖아요. 그래서 더 큰 책임감이 있어요. 서체는 나중에 수천만, 수백만 번 사용되니까 점 하나를 옮기더라도 백 년을 생각하면서 하니까 무섭죠.

    젊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누군가한테 기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학교 수업을 하면 스텝 바이 스텝으로 가르쳐준 과목은 평가가 좋고요 너 마음대로 해봐, 가져오면 우리 함께 이야기해보자, 라고 하면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와요. 견해가 다를 때도 제3의 의견을 내는 게 아니라 어느 한 쪽을 따르려고 해요. 정확한 지침이 있을 때만 제대로 과제를 해오는 점은 실망이 크죠. 시스템에 지나치게 기대려고 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내서 어딘가로 불려가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시스템 안에 소속되려고만 하거든요. 칭찬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기대지 말고, 상처받지 말고, 자신의 작업을 하다보면 길이 열린다는 것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그 과정 중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고요.

    조형전에 맞춰 제프리 키디의 책을 번역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작업을 잘 되고 있나요?

    번역서를 내기로 한 것도 조형전에 제프리 키디를 초청했거든요. 그 전에 글을 묶어서 번역서를 내면 좋겠어, 라는 생각을 했죠. 그땐 정말로 생각만 했어요(웃음). 그런데 조형전이 시작되기 전에 책이 나와야 하잖아요, 느긋할 수가 없는 거죠. 그리고 조형전은 학생들을 위한 전시니까 학생들과 같이 해야 해요. 저 혼자 뭘 빨리 한다고 의미가 없는 거죠. 학생들에게 임무를 줘야 하는데 수업과 연결이 되어야 하니까 맞물리게 되죠.

    바른지원체
    곧은지원체 노드이탤릭
    소리흉내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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