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 이탈리아의 그래픽 디자이너 레오나르도 소놀리(Leonardo Sonnoli)가 자신의 멘토에게 들었던 가장 중요한 말이다. 이 말은 지금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대물림되어 어떤 커리큘럼보다 중요한 지표가 된다. 신념과도 같은 말은 새기며 왕성한 활동을 펼지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좋은 선생. 레오나르도 소놀리를 만나본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레오나르도 소놀리(Leonardo Sonnoli)라고 합니다. 특별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라는 곳에서 1962년에 태어났지요. 트리에스테는 슬로베니아와 인접한 이탈리아 동북부 해안에 자리 잡고 있어요. 국경에는 많은 도시가 모여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습니다. 혼합된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저를 정통 이탈리아인이라기보다는 유럽인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겁니다. 저는 우르비노에 있는 ISIA(Istituto Superiore per le Industrie Artistiche)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고요. 학교는 아름다운 옛 도시의 아름다운 건물에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대학교에서 1년 동안 예술사를 공부했어요. 이론을 배우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그 이론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론과 실습을 겸하여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찾아보았지요. 그때는 건축과 디자인 사이에서 무엇을 고를지 고민했습니다.
특히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그건 아마도 제가 일러스트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 당시 구조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과 같은 20세기 유럽의 아방가르드 예술사조에 매료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러한 예술사조로 인해 타이포그래피 구성의 혁명이 일어났고, 오로지 단어와 문자만이 소통의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열중하고 있는 작품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은 예술작품 전시회의 카탈로그부터 식탁보에 이르기까지 동시에 여러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동료인 이레네 바키(Irene Bacchi), 이고르 베빌라카(Igor Bevilacqua)와 함께 카탈로그 2개를 작업해야 하는데요, 그중 하나는 제일 중요한 것이기도 해요. 현대미술박람회(Contemporary Art Fair)의 아이덴티티를 디자인 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미술전시회(Contemporary Art Exhibition) 관련 디자인 작업입니다. 두 개의 다른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는 작업이지만 사실 둘은 서로 관련이 있어요. 박람회라는 큰 틀 안에서 전시회가 진행되니까요. 둘의 공통점은 ‘유동적인’ 아이덴티티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박람회의 아이덴티티는 ARTISSIMA인데요, 예술계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현대 미술을 만화경으로 바라본다는 아이디어를 냈지요. 그래서 박람회 로고의 조합을 집어넣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작은 만화경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냈습니다. 유사한 접근 방법으로 전시회를 위한 통합이미지 ONE TORINO를 제작했는데요, 움직이는 3차원 형태가 지속해서 바뀌도록 디자인했습니다.
디자인 프로세스와 작업 스타일은 어떠세요?
제가 작업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가능한 많은 정보를 찾아보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죠. 많은 관련 글을 읽고, 보다가 시각적인 관련 자료를 수집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 주제를 시각적으로 해석하려는 방법으로 식상하거나 따분하지 않은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려고 노력하지요. 그와 동시에 해결해야 할 문제(책, 아이덴티티, 신호체계 등)를 살펴보고 나서 제게 필요한 도구와 시각적 솔루션을 결합합니다. 시와 20세기 예술사 등을 통해 많은 정보를 수집하게 되는데요, 디자인 작업과 시각 솔루션 모색을 위해 이러한 정보를 활용합니다. 그리고 저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주로 함께 일하는 이레네와 솔루션에 대해 의논을 하는데요, 이 과정 역시 작업 프로세스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지도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특별한 커리큘럼이 마련되어 있나요?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디자인해야 한다는 거예요.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디자인의 모든 측면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갖도록 일깨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해변서의 휴식, 수면, 독서, 그리고 여행을 좋아합니다.
가장 자랑스럽고 의미 있는 작품이 있다면?
좋아하는 포스터가 좀 있는데요, 예를 들면, Napoli Teatro Festival Italia를 위해서 제작한 시리즈가 있습니다.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4차원 모션 그래픽 기법을 기반으로 하여 디자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아끼는 작품은 베르사유 궁전(Chateau de Versailles)을 위한 설치 조형물입니다.
디자이너로 살면서 본인에게 영향력을 많이 준 멘토가 있었습니까?
네. 그분의 성함은 피에르파올로 베타(Pierpaolo Vetta)라고 합니다. 뛰어난 디자이너였는데 저보다는 7살이 많으셨어요. 처음에는 그분의 보조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파트너로서 함께 작업했지요. 안타깝게도 2003년에 4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만, 그분은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즉, 미래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아이디어, 혹은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받는지 궁금합니다
위 질문들에 대한 답변에서 이미 언급한 바가 있는데요. 몇 가지 정리해서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래주의, 시각시(視覺詩, Visual Poetry), 개념미술, 플럭서스(Fluxus), 60~70년대 이탈리아 그래픽디자인.
가장 좋아하는 폰트가 있나요? 있다면 그 이유는?
산세리프체를 사용할 때 가장 편합니다. 오래된 독일의 그로테스크체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타이포그래피를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어, 글, 말을 통한 소통이라는 발상을 좋아합니다.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소통 방법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그림 대신 알파벳과 같은 추상적인 기호 체계를 사용하는 기법에 반해서 이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요?
고객을 위해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소통 문제에 대한 질문에 자신만의 대답을 디자인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의 기술과 지식의 산물이지요. 대신 개인적인 작품을 만들 때에는 타이포그래피 디자인과 나의 디자인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요?
스포츠를 통해 배운 것이 있는데요, 항상 최선을 다하자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고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좋은 아버지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한국 작가, 작품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그럼요. 한국의 작가를 몇 분을 알고 있습니다. 우선 안상수 씨와 같은 작가를 알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야의 장인이자 훌륭한 분이시지요. 그리고 서울의 홍익대학교, 미국, 우르비노에서 Werkplaats Typografie와 함께 주최한 여름 단기 과정을 통해 한국의 여러 학생을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디자인에 대해 제가 좋아하는 점은 질서와 열정의 균형, 예리하고 곧은 그리드(grid) 또는 기하학적 형태, 그리고 자유로운 표현과 몸짓입니다. 또한, 한국 학생들의 열정과 근면 성실한 자질에 대해 높이 평가합니다.
끝으로 타이포그래피 서울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 주신다면?
타이포그래피를 너무 거대한 것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드리는 말씀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한국에서 한번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