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에도 농도가 있다면 ㅋㅋㅋ가 ㅎㅎㅎ보다 조금 더 진할 것 같다. 가까운 사이사이 농담의 일부인 듯 참 즐겁고도 경쾌한 어감이다. 그런데 이 웃음을 일상 속 텍스트로 만날 수 있게 만든 사람들이 있다. 투박한 택배 상자에도 죽어라 사무적으로 보이는 봉투에도 이것만 붙여져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ㅋㅋㅋ 테이프를 만든 디자인 스튜디오 무브투무브의 손우진, 김주영. 일본에 있는 손우진과는 화상 채팅으로, 한국에 있는 김주영과는 얼굴을 맞대고 웃음 끊이지 않았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브투무브의 뜻
우리의 슬로건인 “We move to move someone’s heart.”라는 문장에서 move to move 부분만 따서 이름을 지었어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움직일 수 있는 움직임을 하자, 해서 지어진 이름이에요. 무브투무브는 발음하는 것도 재미있고, ‘무브’와 ‘무브’ 사이에 ‘투’가 들어가는 대칭적인 구조도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무브를 위한 무브를 하고 싶어요.
무브투무브 소개
무브투무브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아무도 모르는 일을 하고 싶어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늘 궁금해하고, 관심 가져주길 바라고, 이상하다고 생각해 주길 바라요.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된다는 거예요. 결과물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 가장 최근에는 ‘무브투무브의 ㅋ 테이프’ 가 나왔어요. 테이프를 보시고 ‘이게 뭐야 ㅋㅋㅋ 웃겨.’, ‘이런 걸 만들다니 ㅋㅋ.’, ‘웃을 일이 없었는데 테이프를 보고 웃게 되다니 ㅋㅋㅋㅋ.’라는 반응들이 매우 좋았어요. 우리가 만든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분위기를 바꾸고, 가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해요. 우리 로고가 사람이 마주 보고 웃는 모습인데요,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면 그 웃음이 커지고 행복해진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우리의 작업을 보며 웃는 사람들이 그만큼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요즘 최고의 관심사
ㅋ으로 하는 작업이 재미있어요. 제가 글자체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걸로 뭐 재미난 걸 할 수 없을까?’하다가 제가 만든 한글 자음 ㅋ을 컴퓨터 상에서 나열해 봤어요. ‘ㅋㅋㅋㅋㅋㅋㅋ’ 혼자 모니터를 보며 재미있어하다가 페이스북(바로가기)에 올렸는데 굉장히 반응이 좋은 거예요. 이대로는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쯤 떠오른 게 테이프였어요. 원하는 만큼 ㅋ을 잘라내서 붙이는 거예요. 실제로 ‘무브투무브의 ㅋ 테이프’는 총 길이가 45M 정도 되거든요. 웃음이 멈추지 않고 계속 터졌으면 좋겠어요. 테이프를 구매하시고 다 사용하고 나면 왠지 또 사주실 것 같다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웃음) ‘ㅋ 테이프’를 시작으로 ‘ㅋ 시리즈’는 앞으로 더 재미있는 작업이 나올 것 같아요.
무브투무브 결성 히스토리
조금 길어요.(웃음)
제1막 우진이 형은 학교 선배였어요. 학교에 다니며 학생회 활동도 같이 하고, 전시회 활동도 같이 했어요. 그러다 일본에서 열리는 공동 졸업작품 전시회인 TETSUSON(테츠손)이라는 전시회 준비를 같이 하면서 많이 친해졌어요. 그때 전시회 스텝이 모여 전시회 로고를 만들자며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형이 그렸던 그림이 인상적이었어요. 스마일 두 개를 합쳐 얼굴을 두 개로 만들고, 눈이 세 개가 되고, 입이 두 개가 되는 그림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죠? 한국과 일본 두 나라 학생들의 교류전이라는 성격에 맞게 그렸던 그림이었는데 결국 회의 결과 다른 로고로 결정됐어요. 하지만 저는 그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이 그림을 내가 써도 되겠느냐고 물어봤고 형은 흔쾌히 허락했어요. 네 마음대로 하라고….(웃음)
제2막 그리고 1년 뒤 이때의 일은 까맣게 잊고 있을 때쯤 저는 학부 4학년이 되었고, 학교에서 디자인 기획이라는 수업을 듣게 됐어요. 가상의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최종 과제물인 수업이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인 수업이었어요. 팀원이었던 후배와 함께 회사 이름을 무브투무브라고 짓고 로고를 고민하던 찰나, 우진이 형이 그렸던 그 그림이 생각났어요. 지금의 슬로건도 그때 나왔고, 무브투무브라는 이름과 로고가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느낌에 무척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나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회사를 만들고, 이름도 짓고, 로고도 만들게 되니까 수업 시간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제3막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났을 때 우진이 형은 일본에서 대학원 진학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우진이 형이 지내는 곳에 놀러 가게 됐고, 19일 정도 일본에 머무르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됐어요. 그 시간 동안 학생 때 재미있게 작업했건 무브투무브를 다시 꺼내보게 됐고, 마음을 정했어요. 무브투무브를 하자!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형이 같이하자고 제안을 했고, 그렇게 무브투무브는 김주영과 손우진이 함께하며 다시 태어났어요. 무브투무브는 저와 후배가 처음 만들었지만, 로고를 만들었던 형이 함께하면서 진짜 무브투무브가 시작된 거죠. 그렇게 형은 일본에서 저는 한국에서 활동을 따로 또 같이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때가 벌써 2011년 1월이네요.
무브투무브에서 각자의 역할
우진이 형은 올해로 2년째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동경 예술대학 대학원 디자인과에요. 그래서 한국에서 실질적인 운영은 거의 제가 담당하고 있고, 제가 하는 일에 대해 방향을 잡아주거나 제가 놓치는 부분을 잡아주고, 정리해주는 역할을 형이 하고 있어요. 한국의 서울 / 일본의 도쿄.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메신저나 화상 채팅, 메시지, 이메일을 통해 거의 매일 연락하고 있어요. 앞으로 시간이 많이 지나고, 무브투무브가 더 큰 팀이 되어 재미있는 일을 많이 벌이게 됐을 때 현재의 시간이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 재미있고,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지금과 또 다른 상황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 상황을 즐기며 서로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해 주며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의 활동
무브투무브는 뭘까, 내가 하고 싶었던 무브투무브는 뭐였을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나’였어요. ‘내가 곧 무브투무브’라는 생각으로 제가 좋아하고, 제가 하고 싶은 작업들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아직 뭔지 알 수 없고, 정리가 안 되지만 작업들이 쌓이고 쌓였을 때는 그림이 그려져 나갈 것이라는 생각이었어요. 우리 색깔이 만들어지고, 우리의 이야기에 힘이 실리는 때를 위해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렇게 무브투무브의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두고 제일 먼저 무브투무브만의 글자체를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됐어요.
무브투무브의 글자, 김주영체 탄생기
수업 시간에 만들었던 무브투무브의 로고는 서로 마주 보며 웃는 얼굴과 그 밑에 move to move라고 영문으로 쓰여 있는 것이 전부였어요. 그걸 본 제 친구가 로고에 들어가는 글자를 직접 만들어 넣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을 해줬어요. 처음엔 귀찮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의 말이 뇌리에 남았어요. 그렇게 알파벳 소문자 m, o, v, e, t를 직접 만들어 봤어요. 그런데 욕심이 생겨서 알파벳 소, 대문자를 만들었고, 또 욕심이 생겨 한글 자음과 모음, 숫자, 특수기호까지 만들게 된 거예요. 2011년 3월부터 만들기 시작했고, 다듬고 다듬어서 지금의 모습이 됐어요. 김주영체의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었고, 왼쪽으로 정렬하는 것이 특징이에요. 이건 제가 중학생일 때 교과서를 받으면 책의 머리에 이름을 적던 습관을 그대로 적용한 거예요. 그 습관 그대로 성인이 되어서도 책에 이름을 적을 땐 그렇게 적어요. 김주영체의 모든 한글은 그때의 제 습관대로 만들어졌어요. 중학생일 때부터 제가 이름을 쓰던 방법을 가져와 만든 글자체이기 때문에 김주영체라고 이름 짓게 된 거예요.
김주영체에 대한 사람들 반응
글자체를 조금씩 공개할 때마다 짧은 문구나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제가 평소 느끼는 감정들이나 하고 싶은 말들을 툭툭 내뱉는 느낌이에요. 저와 평소 알고 지내는 분들은 ‘김주영 같아’라고 해요. 지금은 무브투무브를 알고 있는 사람보다 무브투무브가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김주영 같아’라는 말이 듣기 좋아요. 하지만 앞으로는 무브투무브를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아져서 ‘무브투무브 같아’라는 말을 더 많이 듣게 됐으면 좋겠어요.
첫 번째 작업
2011년 겨울에 ‘메리크리스마스 가방’을 만들었어요. 공식적으로 처음 했던 작업이에요. 무브투무브를 하며 맞이한 첫 번째 크리스마스 시즌이었고,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한창 글자체를 만들고 다듬던 시기라 이것저것 제 글자체로 써 보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는데 그날도 다른 날처럼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써보게 됐어요. 그런데 우연히 모두 받침이 없는 글자였고, 자음과 모음을 빨강과 초록으로 만들었는데 좋아 보였어요. 이걸로 가방을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주고받다가 친구와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하게 됐어요. etoffe(에토프)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TETSUSON(테츠손) 전시를 통해 알게 된 친구예요. 친구와 함께 천 가방에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만든 메리크리스마스 가방이 탄생하게 됐어요. 그렇게 위탁 판매 가게에서 판매도 하고, 크리스마스 때 카페에서 전시도 하게 됐어요. 무브투무브 이름으로 그리고 김주영체로 했던 첫 작업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해서 더 기억에 남는 작업이에요.
기억에 남는 작업
무브투무브 로고를 응용해서 하는 작업들을 좋아해요. 좋아하는 브랜드나 재미있는 생각이 나면 만들어보곤 하는데, 놀이라고 생각하면서 하고 있어요. 애플 로고에 우리 로고를 넣은 것도 있어요. 이건 나만의 컴퓨터를 갖고 싶은 마음에 스티커를 만들어서 붙인 건데 다 붙이고 불이 들어오는 순간 정말 좋았어요.(웃음)
존경하는 아티스트 또는 롤모델
손우진 히딩크요.(웃음) 2002년 월드컵 때 제가 재수를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재수라는 우울한 현실에서도 월드컵 때문에 신 나는 거예요. 축구 선수들도 잘했지만, 히딩크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대한민국을 즐겁게 만든 거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웃음)
김주영 전 아빠에요. 아빠는 예술적인 소질이 많은 분이세요. 창의적인 생각, 엉뚱한 상상들…. 아빠에게 많은 영향을 받으며 자라서 그런지 비슷한 점이 많아요. 손재주도 좋으셔서 무엇이든 고쳐 주셨어요. 아티스트가 꼭 유명하고 대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게 아빠는 훌륭한 아티스트에요.
올해는 어떤 일들이 계획되어 있나요?
비밀이에요.(웃음) 사실 어떤 일이 생길지 저희도 모르니까요. 무브투무브는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하는 일이 없어요. 의도하지 않고 갑자기 재미있겠다 싶으면 하는 편이에요. 간단한 스케치 정도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나가면서 바뀌는 과정들이 재미있어요. 앞으로도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 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