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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T』 9호 미리 보기 #2 새로운 광고, 새로운 시선

    타이포그래피 매거진 『the T』 9호 미리 보기 ― 「새로운 광고, 새로운 시선」


    글. 요한네스 캄프스
    옮김. 김수정

    발행일. 2017년 07월 18일

    『the T』 9호 미리 보기 #2 새로운 광고, 새로운 시선

    이 글은 국내 유일의 타이포그래피 전문지 『the T』 제9호(혁신호)
    ‘번역’ 코너에 수록된 글 「새로운 광고, 새로운 시선」 일부를 옮겨 온 것입니다.
    『the T』 제9호에서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포스터의 예술이란 주로 일반적 예술에서 의미하는 작품의 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표현의 명료함을 통한 효과와 신체와 정신에 미치는 색의 작용 그리고 그 강도를 의미한다.
    광고로서 영향을 미치는 넓은 범위 안에서, 보는 이의 시각을 자극시키고 새로운 시선을 형성함으로써
    포스터는 사회적인 예술품이 된다.”

    얀 치홀트, 「새로운 포스터(Das Neue Plakat)」, 『책과 광고 예술(Buch und Werbekunst)』 제7호

    1927년 독일 뮌헨의 극장 ‘포에부스팔라스트(Phoebus-Palast)’를 위해 만들어진 얀 치홀트(Jan Tschichold, 1902~1974)의 포스터는 ― 역사에서 종종 그래왔듯 ― 기존의 것에 대한 개혁이 강하게 요구되던 시기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당시 영화계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는 실용적이고 장식 없는 서체와 사진을 이용한 포스터를 요구하고 있었다. 또한 교통과 기술의 발달로 점차 다양해지는 도시상은 함축적인 시각적 기호의 재생산을 원했다.

    치홀트는 1925년 10월 『타이포그래피 보고서(Typographische Mitteilungen)』라는 저널 특별호에 쓴 글 「기초적 타이포그래피(Elementare Typografie)」에서, 이미 사진이나 산세리프 그로테스크 계열 서체와 같은 순기계적인 재료의 사용만을 주장한 바 있다. 이 주장에 관해 저술하기 위한 실험물로 그는 포에부스팔라스트 포스터 작업을 이용했다. 이후 출간된 그의 주요 저서 『새로운 타이포그래피(Die Neue Typographie)』(1928)나 『한 시간 인쇄 디자인(Eine Stunde Druckges-taltung)』(1930)은 이 실험을 정리한 ‘이론적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이는 이론에 대한 실제 ‘실험적 결과물’로서 작업물을 제시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치홀트의 포에부스팔라스트 포스터 연작 중 세계 여행에 관한 영화 〈이름 없는 여자(Die Frau ohne Namen)〉(1927)는 구성주의의 진열장에 형태들이 잘 정리된 듯한 조형적 정제미를 보여준다. 보는 이는 이 포스터에 나타난 면들의 복잡한 교차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치홀트는 자신이 ‘상상한’ 영사기의 기능을, 이미지를 보여주는 매체(매개물)로 시각화한다. 이를 통해 영상이 투영되기까지의 기술적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들은 오른쪽 위로부터 두 묶음으로 나뉘어 방사형으로 뻗어나가고, 시선은 이 방사형 선들과 반대 방향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즉, 시선은 제목을 거쳐 선들의 시작점으로 향하게 된다. 그 시작점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선들 안에 영화의 장면들이 관찰자 쪽으로 점점 확대돼 놓여 있다. 이렇게 놓인 마지막 장면의 중심으로부터, 여행의 상징인 기차는 면 밖으로 달려나오는 듯 보인다. 여기서 2개의 서로 중첩된 뾰족한 피라미드 형태가 생겨나고, 이 두 사각뿔은 하나의 밑면이기도 하며, 다른 하나의 몸통이 되는 붉은 원에 의해 서로 묶여 있다.

    〈이름 없는 여자〉 포스터

    영화 장면의 일부 이미지는 앞서 설명한 사각 프레임 안의 점점 확대되는 영화 장면들과는 다르게 표현돼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왼쪽 위 여자의 모자로 보이는 원뿔 형태는, 먼 곳으로부터 나오는 듯한 기차의 형태와 같이 프레임 없이 배경 위에 놓여 있고, 삼각형을 띠며, 서로 대칭 구조를 이룬다. 또한 하단 상영 정보 아래의 사다리꼴 형태는 외따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사다리꼴의 선을 연장해보면 각 측면의 선이 열차의 소실점과 만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작업에서 치홀트는 ‘명료함과 일목요연함’ ― 그 자신이 준수하고자 했던 고유의 작업 방침 ― 을 지키지 않고 있다. 그러나 포스터상에서 서로 교차된 반대 방향들은 “포스터는 그림처럼 보이며, 최소한 단번에 ‘읽히지’ 않는다”라는 명제에 부합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 방향들을 이용해 ‘시선을 강제로 유도하기’란 불가피한 것이었다.

    〈인류의 죄악(Laster der Menschheit)〉(1927) 포스터는 본질적으로 더 간단히 구성돼 있다. 주연 배우 아스타 닐젠(Asta Nielsen)의 사진은, 필름을 스크린에 투사하는 광원으로부터 방사되는 선들과 그 끝점으로 형상화된다. 피라미드 형태로 추상화된 기하학적 광추(헤드라이트에서 내뿜는 원뿔형의 불빛)와 영사 스크린은 영화관의 어두운 내부를 연상시키는 검정색 면으로 둘려싸여 있다. 거기에 치홀트는 극장 입구의 네온 간판을 연상시키는 글자 블록을 차례로 연이어 붙인 뒤 스크린을 의미하는 사진에 평행으로 정렬시켰다.

    〈인류의 죄악〉 포스터

    얼마 뒤 치홀트는 원근·공간적 구성을 버리고 완전한 평면으로 전향한다. 〈카사노바(Casanova)〉(1927) 포스터는 〈인류의 죄악〉과는 달리 평면 구성이지만, 여기서도 추상적으로 변환된 요소와 영상 기술을 표현한 디테일을 찾아볼 수 있다. 이 포스터에서 둥근 원형의 사진은 필름릴(film reels)을 의미하고, 푸른 배경에 솟은 흰색 면은 투사 렌즈를 연상시키며, 왼쪽 아래의 베네치아 궁전 사진은 스크린에 영사된 이미지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역방향으로 연이어진 수직선들은 구성적으로 균형을 이룬다.

    원근 구성인 〈이름 없는 여자〉와 〈인류의 죄악〉, 평면 구성인 〈카사노바〉 포스터는 공통적으로 대각선과 삼각 구도, 그리고 원형이 만들어내는 역동적 교차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달리 〈루이 페르디난트 왕자(Prinz Louis Ferdinand)〉(1927)와 〈사랑이 있는 밤(Nacht der Liebe)〉(1927), 〈베일을 벗은 여인(Die Lady ohne Schleier)〉(1927) 포스터는 직각으로 이뤄진 정적 상태를 다루고 있다.

    이 세 포스터에서 효과적으로 비워둔 여백과 인쇄면은 시각적으로는 대조를 이루고, 구성적으로는 상호 보완한다. 포스터 가장자리에 평행으로 놓인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의 사진들은 글자, 그래픽적 요소를 직각으로 연결한다. 이는 특히 〈베일을 벗은 여인〉에서 보다 뚜렷하게 나타난다. 포스터 왼쪽의 붉은 막대는 중심부의 큰 사진을 향하며, 사진은 오른쪽 아래의 검은 사각형과 접한다. 이 검은 사각형은 다시 포에부스팔라스트의 글 박스를 가리킨다.

    〈루이 페르디난트 왕자〉 포스터에서 위쪽의 작은 사진과 세로 방향의 ‘막대’가 만들어내는 직각은 왼쪽에 놓인 글자 면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왼쪽 아래에 놓인 사진과 극장의 상영 시간을 알리는 텍스트는 위의 구성에 대응하며, 큰 여백은 ‘사이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 포스터 연작에서 더욱 일관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것은 치홀트가 말한 “순수한” 타이포 포스터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직각 구성과 면들의 평행 배치다.

    〈카사노바〉, 〈사랑이 있는 밤〉 포스터
    〈베일을 벗은 여인〉, 〈루이 페르디난트 왕자〉 포스터

    〈사랑으로 장난하지 않는다(Man spielt nicht mit der Liebe)〉(1926) 포스터에서 치홀트는 위 세 편의 작업에 도드라졌던 막대를 글자 쪽으로 정렬시킨다. 이것은 하단에 놓인 극장명, 상영시간을 나타내는 텍스트와 상호 작용하며 대응 구조를 보인다. 상단의 영화명과 그 아래 놓인 원작 소설 및 배우 이름이 적힌 글자면은, 막대의 끝선에 맞춰 포스터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자유로운 빈 여백과 인쇄 공간의 협주는 글자와 그래픽 요소, 배경의 비대칭적이며 균형 잡힌 비율을 만들어낸다.

    〈바바라 워스의 승리[원제: The Winning of Barbara Worth, 독일제목: 해방된 요소들(Entfe-sselte Elemente)]〉(1926)와 〈키키(Kiki)〉(1926) 포스터 역시 비슷한 구조를 보인다. 우선 〈바바라 워스의 승리〉의 경우, 위쪽 붉은 사각형 아래 글자면이 위치하고 오른쪽 하단부에 검은 정사각형과 글자면이 직각을 형성한다. 그 사이에서 상영시간을 알리는 글박스가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키키〉는 정반대 구성이다. 왼쪽 하단에 놓인 극장명과 그 아래 놓인 굵은 선은 통일성을 이루고, 위쪽의 제목 또한 오른쪽 가장자리에 있는 막대에 의해 보완된다. 〈사랑스러운 도적[원제:The Beloved Rogue, 독일제목: 구걸시인(Der Bettelpoet)]〉(1926)에서 이 굵은 막대는 왼쪽 가장자리에 홀로 자유로이 놓여 있는데, 이로 인해 이 포스터는 더욱 열려 있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두 포스터에서 제목은 상부에 가볍게 위치하거나(〈키키〉), 중심선 하부에 놓여 있다(〈사랑스러운 도적〉). 대각을 이루며 상호 대응하는 요소들을 포기한 결과, 유용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바바라 워스의 승리〉 포스터는 붉은 사각형을 전면에 내세운 강한 대비 효과로 제목을 시각적으로 돋보이게 하는데, 그럼에도 드라마틱한 구성이 충분히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아 있는 세 아이(Die 3 Niemandskinder)〉(1927) 포스터 또한 비슷한 예로 들 수 있다. 이 작업에서는 붉은색 제목의 단어들이 검은색 숫자 3으로 인해 조각조각 분리된 형상을 보여준다.

    〈키키〉, 〈바바라 워스의 승리〉, 〈남아 있는 세 아이〉 포스터

    포스터 구성 경향에서 확실히 치홀트는 라슬로 모호이너지(László Moholy-Nagy)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모호이너지가 작업에서 사진을 주로 썼던 것처럼, 치홀트 역시 사진에 대한 열정을 1923년 포스터 작업으로 끌어들였다. 글자와 관련해 치홀트는 “타이포그래피는 다른 무엇보다 전달을 위한 도구로, 그것은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인 형태의 명료한 전달이어야만 한다”라는 모호이너지의 주장을 따른다. 모호이너지는 1925년 『구텐베르크-페스트쉬리프트(Gutenberg-Festschrift)』에 실린 「시의에 맞는 타이포그래피 – 목적, 실무, 비평(Zeitgemaesse Typographie – Ziele, Praxis, Kritik)」에서 다이내믹하면서 조금은 이상해 보이는 면의 구성에 대해 언급하며, 각 요소들의 전체 통일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시선을 순차적으로 한 점으로부터 다른 점으로 이동시키는 것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또 다른 관련 인물로는 엘 리시츠키(El Lissitzky)를 들 수 있다. 리시츠키는 타이포그래피를 위한 “표현의 경제성”을 강조하며 형태는 “타이포그래피 특유의 소재와 기술로부터 도출”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1925년 『구텐베르크-페스트쉬리프트』에 함께 기고됐던 모호이너지의 글과 리시츠키의 글을 연관시켜보면, 치홀트의 포스터 작업은 리시츠키의 주장과도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글에서 리시츠키는 면의 분할이 글자들 안에 있는 “횡선과 종선, 사선, 곡선” 등 문자의 구성 요소들 ― 면의 기본 방향을 정하는 것들 ― 을 따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즉, 전체 구성이 횡선과 종선 방향을 따라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 역시 모호이너지와 마찬가지로 횡적, 종적 개념을 디자인의 기본 개념으로 들면서, 면의 가장자리를 향하는 요소들이 직각을 이룰 때 정적 상태가 되며, 대각선 방향으로 배치될 때 역동성이 일어난다고 말한 바 있다. 치홀트의 포에부스 팔라부스 포스터 연작에서 이 ‘역동성’이 효과적으로 작용한 작품은 〈이름 없는 여자〉, 〈인류의 죄악〉, 〈카사노바〉, 〈장군(Der General)〉(1926), 〈나폴레옹(Napoleon)〉(1927) 등이다. 다다이즘으로부터 시작돼 기존의 정적인 형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비대칭성과, 외관상 무질서해 보이는 글자와 문장의 배치는 이미 허버트 바이어(Herbert Bayer)의 바우하우스 시절에도 다뤄진 바 있다.

    〈나폴레옹〉 포스터

    글. 요한네스 캄프스(Prof. Dr. Johannes Kamps)
    영화와 미술사를 연구하며 다양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AVA(Academy of Visual Arts)에서 예술사를 가르쳤으며, 저서로 『플라캇Plakat』(1999)이 있다.

    옮김. 김수정
    라이프치히 서적예술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와 서적예술을 전공했다. 책과 관련한 디자인과 번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저작을 집필 중이다.(suje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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