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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T』 10호 미리 보기 #5 쓰여진 것의 이미지/형상성과 작동으로서의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매거진 『the T』 10호 미리 보기 ― 「쓰여진 것의 이미지/형상성과 작동으로서의 디자인」


    글. 김남시

    발행일. 2017년 06월 27일

    『the T』 10호 미리 보기 #5 쓰여진 것의 이미지/형상성과 작동으로서의 디자인

    이 글은 국내 유일의 타이포그래피 전문지 『the T』 제10호(혁신2호) 중 
    ‘특집 · 한국 디자인 생태계 2 - 문자의 이미지성’ 섹션에 실린 글 일부를 옮긴 것입니다.
    『the T』 제10호에서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문자가 읽혀질 뿐 아니라 보여지는 대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광고 포스터들만 둘러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지하철과 버스 안은 물론 도심 곳곳에서 우리의 주목을 끌고, 뇌리에 깊은 인상과 기억을 남기는 그 문자들은 결코 그 언어적/사전적 의미만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 다양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들에는 우리 눈을 잡아채고, 오래 기억나게 하며, 다양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내는 이미지 혹은 형상적 성격이 작동하고 있다. 

    회화나 그래픽의 이미지성과 구분되는 이러한 문자의 이미지성 또는 형상성을 이론화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문자를 최종적 결과물로 정태적으로 파악한다. 문자를 만들어진 결과물로만 분석하면서 그 문자의 형상/이미지성이 생성되기까지의 수행적이고 작동적인 과정에는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타이포그래피가 근원적으로 ‘쓰기(Writing)’라는 인류의 오랜 문명적 성취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의아한 일이다. 왜냐하면 ‘쓰기’라는 활동에는 언어뿐 아니라 도구, 그리고 그 도구를 매개한 인간 신체에 어울려 생겨나는 수행적(performativ)이자 작동적(operativ) 차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문자의 형상성/이미지성은 쓰기가 지닌 이러한 수행적, 작동적 차원을 고려하여 분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이러한 연구를 위한 예비적 고찰이다.

    손과 도구

    쓰기는 쓰는 사람의 구체적인 육체적 행위, 곧 손으로 쓰는 도구를 붙잡고, 그를 움직여 특정한 흔적을 남기거나 문자기호를 기록하는 육체적 행위에 의해 실현된다. 나뭇가지로 바닥에 표시를 하건, 펜으로 종이에 글을 쓰건,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고 마우스를 클릭해 메일을 보내거나 손가락으로 핸드폰 키패드를 눌러 메시지를 보내건 거기에는 우리의 손, 그리고 그 손의 움직임을 가시화시켜주는 도구/테크놀로지라는 두 요소가 동시에 참여한다. 하지만 쓰기 도구가 변화함에 따라 손의 움직임과 쓰여진 것 사이의 관계는 질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것은 인간의 손과 도구/테크놀로지의 관계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발생한 변화이기에 쓰기 도구와 손의 관계를 논의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인간의 손과 도구의 관계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동물의 부분들에 대하여(Parts of animal)』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동물들 중 인간에게만 손이 있다는 사실은, 자연이 언제나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택하며”(687a), 이유 없는 일은 벌이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손이라는 훌륭한 도구를 그를 사용할 줄 모르는 동물에게 부여했다면 그것은 마치 “연주할 수도 없는 자에게 플루트를 주는”(687a) 것처럼 부당하고 쓸데없는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손은 그 자체로 물건을 잡고, 들어 운반하고, 때리거나 부수고, 자르거나 찢는 등의 다양한 기능을 갖는 1차적 도구이면서 동시에 돌, 창, 칼, 망치 등의 2차적 도구의 사용을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의 도구”(687b)이기도 하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날개, 예민한 청력이나 후각 등 동물들이 태생적으로 지니는 1차적 도구가 대부분 제한된 기능만 수행하도록 고정되어 있는 데 반해, 아무 특화된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은 “도구의 도구”인 손을 통해 다양한 2차적 도구를 제작 사용함으로써 태생적 결핍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손이 그 자체로 도구이면서 또한 도구의 도구이기도 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은 인간과 도구/테크놀로지의 역설적 관계를 사유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다. 손에 의해 제작되고 사용되는 2차적 도구는 1차적 도구로서의 손의 능력을 그만큼 확장시켜주었지만, 2차적 도구의 발전은 점차 손과 그 도구의 기능 사이의 내재적 연관성을 약화시킨다. 예를 들어, 창이나 칼과 같은 도구와 화약 무기를 비교해보자. 창이나 칼로 무엇인가를 찌르거나 자르는 힘은 근본적으로 그 도구를 사용하는 손의 근력과 숙련성에서 나온다. 손에 힘이 없거나 대상을 정확히 조준할 능력이 없다면 창이나 칼은 요구되는 만큼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2차적 도구로서의 창과 칼의 기능성은 1차적 도구로서의 손의 능력에 의존하며, 이러한 점에서 창과 칼은 도구의 도구로서의 손의 능력을 양적으로 확장시켜 주는 도구라고 말할 수 있다.

    〈Hand II〉, Jeremy Mayer, 2010 / 출처: American Craft Council

    하지만 화약무기의 경우는 사정이 달라진다. 발사되는 총알의 파괴력은 손의 근력이나 숙련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와는 독립적인 화약 에너지의 폭발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손은 화약 에너지를 총알의 추진력으로 전환시켜주는 기계장치를 간단한 움직임을 통해 작동시킬 뿐이다. 그러면 그 장치는 손의 근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산출해 낸다. 1차적 도구로서의 손의 움직임과 그 움직임을 통해 개시되는 2차적 도구의 작동이 질적으로 서로 다른 층위에 속하게 된 것이다. 탄도 미사일이나 핵무기 발사 버튼을 누르는 손은, 그 손으로부터 완전히 자립적인 기계장치를 통해 인류 전체를 절멸시킬 수도 있는 거대한 파괴력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프랑스의 고생 인류학자 르루와 그루앙은 이러한 사정을 “손이 도구이기를 멈추고 모터가 된다”라고 표현한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이러한 사정은 오늘날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통합되어 있는 컴퓨터, TV, 휴대폰 등의 일상적 장치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컴퓨터나 TV 리모콘, 휴대폰 등을 조작하는 손의 움직임과 그로 인해 작동되는 그 장치들의 다양한 기능들 사이에는 좀처럼 어떤 내적 연관성도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서 손은 어떤 행위와 사건을 일으키는 1차적 도구로 기능하는 대신, 인간의 손으로부터 자립하여 스스로 작동하는 장치의 운동을 촉발시킬 뿐이다.

    매체 이론가 빌렘 플루서는 이런 장치들을 조작하는 것은 사실상 손이 아니라 “손가락”이며, 이 손가락의 움직임은 딱딱한 사물을 붙잡고 변형시켜 “형태를 부여(in-formieren)”하는 제작 활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컴퓨터 자판, TV 리모콘, 스마트폰 키패드를 누르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탄환이 장전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듯 그 장치에 이미 사전에 프로그램화되어있던 과정을 ‘선택’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2차적 도구를 사용하는 손의 움직임은 1차적 도구로서의 손의 움직임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쓰기라는 활동에서의 사정은 어떠한가?


    글. 김남시
    프베를린 훔볼트대학 문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예술학 전공 조교수이다. 로이 해리스(Roy Harris)의 『Signs of Writing』을 번역(『문자의 기호들』, 연세대학교 출판문화원)했고, 문자/텍스트와 그림/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연구논문들을 발표하였다.(namseekim@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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